소설리스트

던전 성자-781화 (76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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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넷사가 실제로 던전에서 싸우는 모습은 오늘로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역시나 내 생각대로 바넷사는 4계층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전투를 해나갔다.

    굳이 스테이터스 창을 보지 않았더라도, 저택에서 보여줬던 모습만 생각해봐도 전투력이 상당할 것은 자명했으니까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저택에서 보여줬던 모습처럼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싸운 건 아니고, 평범하게 마법으로 멀리 있는 몬스터들을 끌고 오기만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늘도 순조롭게 성장을 마친 나는,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바넷사에게 말을 걸었다.

    "바넷사."

    "네."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내가 앞으로 손을 쫙 펼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바넷사는 느닷없이 무슨 헛소리냐고 말하는 것 같은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대꾸했다.

    하지만 난 그런 바넷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속해서 내가 할 말만 했다.

    "네가 내 의외로 진지한 일면을 보고 새삼 반했다는 사실은 잘 알겠어!"

    "전혀 아닙니다만."

    "크헉. 컥."

    하지만 아무리 그런 나라도 이어지는 바넷사의 대꾸까지 무시할 수는 없어서, 결국 나는 가슴팍을 움켜쥐고 각혈을 토해냈다.

    너 진짜 너무하지 않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지?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집사 같으니라고!

    "머, 멋있지 않았다고? 열심히 일하는 남자는 멋있다고, TV에서 그랬단 말이야! 나 지금까지 속고 살았던 거야?!"

    "스스로 그걸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틀렸습니다."

    "그럼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내 의외의 일면에 두근두근…."

    "전혀 아닙니다."

    …저기요. 바넷사씨. 정말 부탁이니까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척이라도 한 다음에 대답해주면 안 될까요?

    제 유리같이 섬세한 심장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거든요?

    거기에 대고 확인사살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진작에 오버 킬이에요 오버 킬.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그런 날 보면서 바넷사는 뭔가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 답지 않게 살짝 주저하는 말투로 그렇게 운을 뗐다.

    "응?"

    "제가 아니라고 한 건, 의외라는 부분입니다."

    "응? 잠깐만."

    그러니까, 의외가 아니야?

    내가 아까 뭐라고 했더라? 그래. 의외로 진지한 모습…어? 잠깐만. 그러니까 바넷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다시 말해서….

    "크흑! 바넷사! 난 널 믿었다!"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바넷사의 몸을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그 행동은 내 손이 바넷사의 몸에 닿기도 전에 제지당했다. 가면 앞을 바넷사의 손에 턱하고 막혀서.

    "바, 바넷사씨? 까먹고 있을까 봐 말하는데, 너 지금 내 여자로 여기 있는 거거든요? 물론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집사로 있는 게 너무 익숙하다 보니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으시면 이건 대체?"

    "던전 안은 위험하니까 그만두십시오."

    젠자아앙! 누가 디아나 부하 아니랄까 봐!

    디아나도 이것보다는 조금 더 융통성이 있다고!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아. 포기하지 않는다고!

    원래 사람 심리라는 게 말이야, 안 된다고 할수록 더 끌리는 법이거든.

    반드시 껴안고 말겠어.

    "그러니까 네 말은, 잠깐 끌어안는 것 정도로 우리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그렇게 나랑 껴안는 게 큰일이야? 긴장이 쫙 풀려서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서 불안해?"

    "네."

    내 도발에, 바넷사는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으, 응?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당황한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나 변함이 없었다.

    "네."

    응. 역시 잘못들은 게 아니었어.

    아니. 바넷사씨.

    왜 갑자기 이럴 때만 솔직한 건데에에에!

    아니. 기쁘지만! 기쁘지만!

    "정말로 그런 도발 통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머리를 감싸 쥐고 소리 없는 절규를 외치는 날 보면서, 바넷사가 살짝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너 실은 딱히 나랑 껴안는 거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그러는 거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할 거면 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서 말해줘!"

    …뭐, 자세히 보니까 뺨이 아주 희미하게 붉어져 있기는 했지만.

    일단 나랑 껴안으면 긴장이 풀어질 것 같다는 말이 사실이기는 한 모양이다.

    그야 물론 던전 안에서 긴장하고 있는 건 중요하지만, 넌 조금 긴장을 풀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어차피 여기서 우리가 위험에 처할 일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성자 스킬 한 방이면 아주 좋아 죽는다니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하아…좋아. 그럼. 끌어안는 건 포기할 테니까, 적어도 기분이라도 내게 해줘."

    "기분…이라뇨?"

    "네가 지금 내 여자로 여기 있다는 기분 말이야. 이래선 집사를 끌고 다니는 것 같잖아."

    "…야한 건 안됩니다."

    내 말에 바넷사도 느끼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이번에는 완전히 거부하는 대신 내 선택지를 줄이는 대답을 했다.

    야. 그건 집사가 아니라 메이드가 해야 되는 대사…아니. 신경 쓰지 마.

    "아무리 나라도 던전 한복판에서 그런 걸 할 생각은 없다고. 너 내가 그럴 놈으로 보여?"

    어제 사라한테 던전 한복판에서 힐링 섹스하자고 졸랐던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하게 말했다.

    "네."

    크윽! 이미 한 짓이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게 슬프다!

    "…아무튼, 야한 걸 해달라는 게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겉모습을 내 여자답게 하라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지?"

    "……."

    내 대답에 바넷사는 침묵을 유지했다.

    아까 아침에 보여줬던 침묵과 달리, 이번에는 평소 바넷사가 자주 보여주는 불리할 때 나오는 침묵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 여기에 내 여자로서 있고, 자기 때문에 디아나의 차례를 미뤘다면서 화난 것도 대화를 통해 풀었는데도, 여전히 바넷사는 용인족의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아…바넷사는 이런 때마저 사도 인장을 숨기는구나. 나랑 사랑하는 사이라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심지어 아무도 안 보고 있는데도?"

    "…그것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바넷사는 슬며시 한쪽 손을 자신의 엉덩이 쪽으로 가져갔다.

    응. 나도 알아. 지금 변신하면 바지에 구멍 뚫려서 계속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그거야 데이트에 집사 복을 입고 온 네 잘못이지."

    뭐, 이걸 데이트라고 표현하기에는 상당히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사랑하는 두 사람이 밖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거니까. 데이트라고 말 못 할 것도 없잖아?

    "…큿."

    하지만 내가 자비 없이 딱 잘라 말하자, 바넷사는 날 살짝 노려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훗. 어떠냐. 자기 말에 남이 딱 잘라 대답해버릴 때의 기분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난 내 여자에게는 관대한 남자니까.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는 수 없으니 옷을 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냈다.

    물론, 내가 인벤토리에 가지고 있는 바넷사에게 맞는 옷이라고 하면 딱 하나밖에 없었다.

    피부 면적의 90% 이상은 드러나는 것 같은, 그 메이드 복 말이다.

    "…지금 이걸, 여기서 갈아입으라는 말입니까?"

    "몬스터는 걱정할 필요 없어. 갈아입는 동안, 넌 내가 지킬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만."

    최대한 멋진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말해봤지만, 바넷사는 차가운 눈빛만을 내게 보냈다.

    "그럼 누가 볼까 봐? 그것도 걱정 마. 저기 구석으로 가서 내가 막고 있으면 절대 안 보일 거야!"

    "……."

    "아니면 그냥 바지에 구멍 뚫던가!"

    아무리 말해도 바넷사의 차가운 눈빛이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외쳤다.

    "…야한 건 안 된다고 했습니다만."

    "야하다니? 설마 이 옷이? 넌 이 옷이 야해? 부끄러워? 이거 네 옷이잖아. 이게 야하면 언젠가 이걸 입고 일했을 넌 치녀…죄송합니다."

    이 이상 말하면 바넷사가 진짜로 화낼 것 같아서, 나는 곧바로 사과를 했다.

    결코 약해진 게 아니야. 그저 스스로 빠질 때를 잘 알고 있는 것뿐이야.

    "후우…주십시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바넷사의 설득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뭐, 마지막의 그런 말들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효과가 있었던 건 네가 내 여자라는 기분이라도 내고 싶다고 했던 처음 말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바넷사는 내 손에서 자신의 초미니 메이드복을 빼앗아서는, 내가 가리켰던 구석으로 향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바넷사는 나와 자신의 얼굴을 연결하던 공기 방울을 없애버렸다.

    바넷사도 몬스터 유인을 위해 마법을 썼지만, 결국 실질적인 전투는 내가 하고 마나 소모량도 내가 더 많았기 때문에, 대화를 위한 공기 방울은 바넷사가 만들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물속.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물의 흐름으로, 나는 지금 바넷사가 내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갈아입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것도 두근거리는 뭔가가 있어서 좋네.

    그렇게 생각하며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바넷사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응? 벌써 다 갈아입는 건가? 너무 빠른데?

    "……."

    살짝 의아하게 여기면서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확실히 옷을 갈아입고 덤으로 변신까지 풀어서 용인족 모습이 된 바넷사가 있었다.

    다만, 갈아입은 건 하의뿐이었지만.

    아니. 물론 그 멋진 각선미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행복해지는 건 맞아. 맞지만 말이야.

    "생각해보니 위쪽은 굳이 갈아입을 필요가 없더군요."

    "바넷사. 진지하게 네 패션센스에 대해서 토론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야. 진심으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패션에 대해서 뭐라고 할 정도면 진짜로 심각한 거라니까?

    너 진심으로 집사복 상의랑 그 미니스커트가 어울린다고 입고 있는 거야?! 이 패션 테러리스트가!

    "아까 구원님이 말하신대로,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내가 보잖아! 보통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제일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게 여자 마음, 아니. 사람 마음이라는 거 아니냐?!"

    위아래로 그 예쁜 피부를 훤히 드러내며 내 눈을 즐겁게 해줄 거라고 기대했던 내 풋풋한 마음에 당장 사과해!

    "그러니까 구원님 눈에는, 제가 이런 차림을 하면…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바넷사는, 내 말을 예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받아쳤다.

    스스로 예쁘다고 말하면서 답지 않게 살짝 부끄러운 티를 낸 게 사랑스럽기는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 물론 그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어, 어라? 야. 잠깐만. 그 논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아니. 그걸 따라 하면 어떻게 해?!

    대체 응용력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물론, 내 눈에는 네가 어떤 차림을 해도 예쁘지만!"

    "그럼 문제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저희…증표도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기야…하죠."

    차마 사랑의 증표라는 말을 하지 못한 바넷사를 놀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 젠장. 아까 바넷사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상대방이 부정할 수 없는 말로 몰아치기. 내가 시작한 거지만 너무 방식이 악랄해.

    "그럼 가시죠. 마나도 충분히 회복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바넷사는 먼저 헤엄쳐 나갔다.

    그리고 그러면서 바넷사의 긴 다리가 내 눈앞을 지나가자, 나는 아무래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야 물론 예상과 달리 바넷사가 계속 상의를 꽁꽁 싸매고 있는 건 아쉽게 됐지만, 저 멋진 다리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

    그래. 바넷사가 너무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하고 있으면, 괜히 사냥할 때 신경 쓰여서 방해만 될 뿐이고. 지금 수준의 노출도가 딱 좋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 고작 상의쯤이야. 어차피 상반신의 노출도를 높여봤자 물살에 바넷사의 커다란 가슴이 출렁이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는 것밖에…것밖에…젠자아아앙!

    "저쪽에 몬스터입니다. 끌고 오겠습니다."

    크흑. 이렇게 된 이상, 이 울분을 전부 몬스터 녀석들에게 풀어주겠어!

    지금부터 절정과 쾌감의 파티 타임이다! 이 바다가 산란하는 물고기들의 알로 가득 차게 만들어주겠어!

    …응. 내가 말하고도 의미를 모르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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