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617화 (60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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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아의 감정

"그래. 보고 싶은 거잖아? 보여줄게."

나는 내심 펠리시아의 반응에 흡족해하면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던져뒀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펠리시아도 내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듯 더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자기! 정말로?!"

"그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섹스를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 원하는 대로 해줄게. 네가 이대로 사랑의 멋짐을 모르고 지내는 것도 불쌍하니까 말이야."

옷을 전부 챙겨 입은 나는 한쪽 입꼬리만을 올려서 비열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렇게 말하고는, 당황하는 펠리시아를 뒤로한 채 방을 나왔다.

크으. 설마 내가 이 유명한 대사를 스스로 읊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말을 하는 주인공이 악당처럼 보일 정도로 짜증났던 대사였는데 말이야.

아무튼 방을 나선 나는, 그대로 마차가 세워진 곳으로 향한…게 아니라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실비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배짱을 부린 게 아니라고.

다 대안이 있어서 그렇게 펠리시아 앞에서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거다.

애초에 말이야. 내가 진짜로 펠리시아 앞에서 바넷사를 안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걔는 아직 내 여자가 된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데다가, 심지어 아직 사도 임명조차도 되지 않는 상태다.

괜히 말이라도 꺼냈다가 싸대기라도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니. 싸대기만 맞으면 차라리 다행인 수준이다.

아무튼 그런 고로, 나는 대안으로 실비아를 데려가기로 했다는 거다.

둘은 절친이고, 실비아도 펠리시아의 행위는 이미 몇 번이나 본 경험이 있으니까 익숙하겠지.

그리고 실비아 걔가 나랑 있으면 상태가 이상해지기는 하지만, 내가 없을 때의 평상시 모습은 멍하고 무뚝뚝한 녀석이다.

그런 성격까지 감안해보면, 펠리시아에게 행위를 보이는 것 정도는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적인 관점이지, 부끄러워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말이야.

게다가 진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랑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죽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바넷사한테 죽기 싫어서 실비아를 죽이려는 선택을 했다든가, 그런 거 아니니까 말이야!

일단 그런 점도 다 염두에 두어두고, 실비아에게 온 거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의 계산들은 전부 나와 실비아가 정말로 펠리시아의 앞에서 관계를 가질 걸 상정하고 한 계산이다.

하지만 말이야. 솔직히 난 진짜로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단 말이지.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런 계산을 한 거기는 하지만 말이야.

방금 전 펠리시아의 당황한 반응을 보면, 그냥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제일 높아보였다.

그리고 내게는 그 가능성을 높여줄 계획도 있고 말이다.

"바벳 경 말입니까?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메이드의 뒤를 따라 가자, 전보다 훨씬 가까운 방에서 실비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뭐, 전에는 폭주한 펠리시아의 기운이 퍼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멀리 있는 방에서 대기하게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구, 구원님! 벌써 끝나신 겁니까?"

내가 방에 들어가자, 왠지 거울 앞에서 서있었던 실비아가 화들짝 놀라며 날 반겼다.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살짝 궁금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 전에 우선 확인할 것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아니. 그보다 실비아는? 부모님하고 얘기는 잘 나눴어?"

"네, 네헵?! 넵! 자, 잘! 잘 했슙니다!"

…나, 별로 이상한 말 안 했지? 쟤는 왜 또 저렇게 당황하고 그러냐.

대체 부모님이랑 무슨 말이 오갔는데 저러는 거지?

나한테 얘기하기 부끄러울만한 얘기라면…아, 혹시 사도 임명 얘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확실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분명 축하해주셨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결혼 얘기까지 나왔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엄청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뭐, 지금 실비아의 정신력을 이 이상 깎아먹어서 좋을 게 없으니, 일단 그 얘기는 넘어가주기로 할까.

말해두지만, 딱히 결혼 문제에서 도망가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 잘 됐네. 그래서? 지금은 뭐 하고 있었어?"

"으헷?! 아,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아!"

아무튼 그래서 나는 주제를 바꿔서 그렇게 말을 했던 거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실비아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아니. 실비아야. 두 손으로 이마를 그렇게 꽉 누르고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냐.

싫어도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자연히 알게 되잖아.

하여간 그렇게 좋을까.

아니. 뭐, 저렇게까지 좋아해주는 건 기쁘지만 말이야.

실비아에게 사도 임명을 해준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실비아는 아직도 혼자 있을 땐 사도 임명을 보면서 혼자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흐앗! 아, 아아아아…."

나는 그런 실비아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대로 다가가 꽉 껴안고는 정수리에 키스를 해줬다.

내게 안겼을 때는 공중으로 펄쩍 뛰면서 격한 반응을 보였던 실비아였지만, 정수리에 키스를 하는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흐물흐물 내 품에서 가만히 진동만 하게 됐다.

"그럼 갈까?"

"으흐흐흣…! 네, 네헤에에…."

때문에 실비아는 내가 어디로 가자고 하는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저 내게 이끌리는 대로 순순히 따라오게 됐다.

물론 나는 그런 실비아를 데리고 곧장 공주의 방으로 향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내 품에서 행복에 겨워 떨고 있다고는 하나, 실비아도 우리가 공주의 방으로 가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를 챘을 거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저 돌아가기 전에 인사라도 하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가는 동안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기. 구원님? 들어가기 전에, 그, 떠, 떨어지는 게…."

"괜찮아. 괜찮아."

방문 앞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그렇게 중얼거리며 반응을 보이기기는 했지만,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실비아를 공주의 방으로 데려갔다.

"자기, 다녀왔…실비아?!"

그리고 방안에 들어온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여전히 침대위에 앉아있던 펠리시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아니. 야. 내가 누굴 데려올 거란 건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 사이에 적어도 뭘 좀 걸치고 있어야하는 거 아니냐? 하여간 저건 부끄러운 줄을 몰라요.

"으, 응…."

그런 공주의 반응에, 실비아도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실비아가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공주의 알몸을 봐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명확했다.

그냥 공주 앞에서 내 품에 안긴 채로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는 게 민망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라? 그럼 혹시 행위를 보여주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거 아니야?

그럼 안…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나.

"자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위를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 그럼 실비아도 상관없잖아. 너도 실비아의 모습이 더 보기 편할 거고, 마차에서 대기하고 있는 바넷사보다 실비아가 더 가깝기도 했고, 그리고 나랑 사랑하는 사이가 된 건 실비아가 더 먼저니까 말이야. 조금이라도 더 보고 배울 구석이 많을 거라고."

"…집사씨는 무서웠구나."

"아, 아니거든?!"

나는 공주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내 장황한 설명은 공주의 말 한 번에 논파 당했다.

아니. 논파는 아니지만 말이야. 애초에 사실이 아니고.

아무튼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펠리시아를 무시하고, 나는 실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튼 그런 거야. 실비아. 괜찮지?"

여기에 데려올 때 용건을 설명한 게 아니라, 이제 와서야 이렇게 실비아의 의견을 묻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설명을 하고 데려오면, 실비아의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난 상태일 거라는 거 아냐.

하지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확인을 하면, 아무리 내 말이라면 뭐든 듣는 실비아라도 할지라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거다.

부끄럽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가지는 거부감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리고 난 그걸 노린 거다.

펠리시아의 반응을 보면, 펠리시아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섹스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닌 모양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눈앞에서 자기 절친인 실비아가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펠리시아도 포기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즉, 나는 펠리시아를 골탕 먹이기만 하고, 아무런 피해 없이 사건을 수습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어때? 나 엄청 똑똑하지 않아?

"샤, 샤라아아앙…헤헷…샤랑…. 으아아아…샤라아앙…! 샤, 샤라앙…."

하지만 실비아는 나와 펠리시아의 대화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던 건지, 혼자서 샤랑샤랑 거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안 들은 건 아니구나.

실비아가 이렇게 된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 다음부터일 테니까.

혼자 중얼중얼 대다가,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선 고개를 좌우로 붕붕 흔들어대고, 또 이내 멍한 표정으로 샤랑샤랑 거린다. 완전히 중증이었다.

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귀엽기는 하지만.

"사랑해."

"흐야아아아…."

그런 실비아의 귓가에 살짝 사랑을 속삭여주자, 실비아가 그대로 녹아내렸다.

"…저기. 자기, 그런 건 나중에 다른데 가서 해주겠어?"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면서, 펠리시아가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뭣이?! 이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두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불쌍해!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

"……."

"샤랑…헤헤…샤라랑…."

그런 펠리시아에게 한 번 더 장난을 쳐봤지만, 돌아오는 건 펠리시아의 살짝 울컥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쟤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는 건 처음일지도 모르겠는걸.

이러니저러니 해도 표정 관리가 엄청 잘 되는 애니까 말이야.

심지어 사라한테 무릎 꿇고 나와의 관계를 허락해달라고 빌었을 때조차, 나는 반쯤 연기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자기랑 섹스하려던 남자가 정작 자신한테는 삽입도 안 하고는, 진짜 사랑이 뭔지 보여주겠다면서 방을 나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온 거다.

게다가 여자를 데려오고 나서는 보여준다던 섹스는 안 보여주고 둘이서 염장이나 지르고 있고, 그런 남자에게 끌려온 자기 절친은 옆에서 샤랑샤랑…아니. 이제는 샤라랑 거리고 있는 거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펠리시아가 폭발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쟤 진짜 표정관리 장난 아니네.

머릿속에 섹스밖에 없는 것 같은 풀어진 분위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펠리시아야말로 바넷사보다 표정관리가 더 철저한 타입 일지도 모르겠다.

"실비아. 야. 정신차려. 실비아."

"샤라…우헷?! 네, 네헷! 무, 무슨 일이십니까아?!"

아무튼 이대로 계속 펠리시아를 놀리는 게 미안해진 나는, 얼른 실비아의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용건이나 말하기로 했다.

"실비아. 잘 들어."

몸을 흔들어서 겨우 샤랑샤랑 거리는 상태를 빠져나온 실비아에게 눈을 맞추고, 나는 아까 펠리시아와 했던 얘기를 간단하게 요약해서 들려줬다.

그리고 돌아오는 실비아의 반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 무, 무리! 무리무리무리무리무리!"

얘기를 듣자마자, 실비아는 고개를 맹렬히 좌우로 흔들면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얼마나 놀란 건지 내게 존댓말을 하는 것도 잊고는 무슨 소리냐는 듯 강렬한 안광까지 보내오는 실비아를 보며, 나는 솔직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부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내게 나쁠 건 없다.

이제 펠리시아의 눈치도 있으니 대충 실비아를 설득하는 척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안 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실비아를 보내면 끝이다.

"아니. 실비아. 잘 생각해봐."

나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실비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겉으로만 그럴 뿐, 속으로는 오히려 실비아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잘하고 있어, 실비아.

"우…."

하지만 실비아는 그런 내 한 마디에, 어째선지 움직임을 우뚝하고 멈췄다.

어, 어라? 실비아? 실비아?! 야, 왜 그래?! 더 저항해야지! 너 내가 키스하려고 할 때도 좀 더 격렬하게 저항했잖아! 물론 그땐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이것도 충분히 심각한 문제 아니야?!

그런 내 마음의 소리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실비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와 펠리시아를 번갈아가며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날 똑바로 바라보고…아니. 아니아니. 야. 실비아야. 결심이 너무 빠르지 않냐?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아, 알겠습니다. 페, 펠리시아에게, 저, 저, 저희의 사, 사, 샤, 샤라, 샤랑을…! 아읏!"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혀 깨물 정도로 긴장할 거면 그런 결심은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실비아야아아아아!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날이 더워서 그런지 글 쓰는 속도가 엄청 느려졌네요.

분명 쓸 내용은 다 머릿속에 있는데 좀처럼 속도가 안 붙네요.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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