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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60화 (54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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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보내준 마지막 선물

    "그러니까 말이지. 계속 혼자 있으면 쓸쓸하잖아? 아무 말이라도 막 하는 편이 정신 건강상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어떻게든 우리 애들을 설득해보려고 힘썼다.

    아니. 물론 행복은 했어. 당연히 행복했지. 절세 미녀 다섯이서 동시에 날 보살펴주는 건데.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그냥 기만에 불과하다.

    애초에 내가 예전에 꿈꿨던 하렘왕의 이미지가 바로 이런 생활을 하면서 지내는 거였으니까.

    고마워. 펄슨. 네 덕분에 내가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

    다만 우리 애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이 상황을 즐기기만 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겉으로는 날 안심시켜주듯 방긋방긋 웃고 있지만, 속으론 날 엄청 걱정해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

    그 증거로, 내가 쓸쓸했다고 실토한 순간 다들 엄청나게 어두운 얼굴이 됐다.

    "그런 표정할 거 없다니까. 혼자 있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된다고. 하지만 이제 이렇게 너희랑 같이 있는 거니까. 응? 아! 행복해! 난 세계에서 최고로 행복한 놈이야!"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까지 과장되게 외쳐봤지만, 우리 애들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려고 하질 않았다.

    "하지만 자네. 그 허파를 본 순간의 반응은 도저히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잖은가."

    "그, 그거야 어쩔 수 없잖아! 조건반사 같은 거야! 그냥 보는 순간 그때 생각이 잠깐 떠오른 것뿐이야! 정말 별 일 아니었으니까."

    "구원씨."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레이아가 두 손으로 내 얼굴 양옆을 붙잡더니 자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만든 후 정면에서 똑바로 내 두 눈을 쳐다봤다.

    평소완 다른 박력 있는 레이아의 태도에, 나는 자연히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눈 돌리지 마시고 똑바로 제 눈을 봐주세요."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다.

    아, 아니. 레이아. 이건 말이지. 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반사적으로…레이아가 가슴 파인 옷을 입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난 아무 잘못 없어!

    "하아…. 저런 모습만 보면 정말 멀쩡해 보이기는 하는데요."

    사라는 내가 시선을 내린 이유를 깨달았는지, 옆에서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네? 그게 무슨…저, 정말! 구원씨도 차암!"

    사라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레이아도 내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이유를 깨달았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꼬리로 내 허벅지를 가볍게 탁탁 때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도 가슴골은 안 가리시는구나. 아니. 감사하기는 합니다만.

    "구원씨. 정말로 별 일 아닌 거죠?"

    "그럼 당연하지!"

    이번에는 나도 레이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렇게 대답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멀쩡해. 아무렇지도 않다고.

    "으으으으음. 알겠어요. 구원씨가 저한테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한동안 나와 눈싸움을 하던 레이아는, 결국 내 말을 믿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역시 천사님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엔 내 말을 너무 쉽게 믿어주신다니까.

    "아니. 잠깐 기다려보게."

    하지만 너무 손쉽게 믿어준 레이아와 다르게, 디아나는 아직 내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디아나가 레이아보다 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든가,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이 사실은 내 정신 상태와 관여된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여러 번 검증을 거쳐서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겠지.

    즉, 당장 내 말을 못 믿은 건 그냥 레이아와 성격이 다른 것뿐이라는 거다.

    "자네. 정말로 괜찮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라면, 한 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네."

    "그래. 뭔데?"

    디아나가 뭘 확인하든 자신이 멀쩡함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던 나는 아무거리낌도 없이 당당하게 디아나에게 되물었다.

    그 자신감은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완전히 뭉개지고 가루가 되어 흩날려 사라져버렸지만.

    "어디 한 번 꺼내보게."

    "뭘? 펄…허파를?"

    "음."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내게 거부권은 없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순순히 인벤토리에서 펄슨이었던 것을 꺼냈다.

    크흑. 펄슨…이렇게 쪼그라들어서는….

    "이 몸에게 줘보게."

    내가 펄슨을 꺼내자, 디아나가 곧장 손을 내밀고는 그런 요구를 해왔다.

    "으, 응? 이걸? 뭘 하려고?"

    "상점에 팔 걸세."

    "뭐, 뭣?!"

    디, 디아나!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아, 얘 엘프지….

    아니. 하지만 지성 있는 생물체로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못하겠는가?"

    디아나는 내 반응을 보고, 역시나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밀었던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낭군님. 한동안 외출을 금하고 저택에서 편안히…."

    "모, 못한다니!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은 파는 게 당연한 거잖아. 디아나도 참. 그냥 이것만 디아나가 따로 파는 게 어색해서 그랬을 뿐이야! 하핫. 그럼. 아무렇지도 않고말고!"

    미안. 펄슨. 그동안 고마웠다. 특히 하렘을 맛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픔을 이겨내고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특히 지금같은 타이밍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어.

    마틸다의 스킬 레벨만 올리면 드디어 다시 여신님을 만날 수 있게 된 이 타이밍에 말이야!

    용서해라! 펄슨!

    나는 마음 속으로 펄슨에게 감사와 사과의 인사를 전하고, 그걸 그대로 디아나에게 내밀었다.

    "하아…자네도 참 고집 있구먼."

    디아나는 내게서 펄슨이었던 것을 건네받은 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치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는 듯이.

    "고, 고집이라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알겠네. 알겠네. 자네는 멀쩡하네."

    그런 내 애처로운 항변에도 불구하고, 디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만 줄뿐이었다.

    "그래. 구원은 멀쩡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사라도, 내 팔을 붙잡고 옆에 찰싹 붙어서는 그렇게 인정해줬다.

    "너희들 말이야…전혀 멀쩡하다고 생각 안 하고 있지?"

    "아니. 왜?"

    "아니면 대체 왜 이렇게…."

    자신의 가슴 사이에 내 팔을 끌어안고 있는 사라를 보면서 중얼거리자, 사라가 뻔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냥 내가 이러고 싶어서 그런 건데? 왜? 싫어?"

    "아뇨. 감사합니다."

    결국 펄슨이었던 것을 희생한 덕분에 내가 정상이란 사실은 받아들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 애들과 다 같이 하렘 라이프를 만끽했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좋았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펄슨. 고맙다.

    그리고 저녁 식사까지 내 방에서 마치고 난 후, 다들 자연스럽게 해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에 내가 조난에서 귀환했을 때처럼 오늘은 다 같이 자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멀쩡하다고 인정해줬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까 디아나가 내 커진 물건을 보고도 결국 해소는 못시켜 줬으니, 밤에 해소시켜줘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럼. 사라양. 부탁하네."

    "잘 부탁드려요."

    "사라씨. 힘내세요."

    "네, 네에…."

    다들 모여서 뭔가를 신중하게 속닥거리더니, 결국 그렇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 같은 말투로 대화를 끝맺음한 후, 사라를 제외한 전원은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런 모두에게 애매한 말투로 대답을 한 후, 사라는 어째선지 시선을 실비아에게 고정시켰다.

    "…후우. 실비아. 잠깐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저…말입니까?"

    실비아는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별 말 없이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전에 내가 이 시간대에 불렀을 때랑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는구나.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하지만 사라가 굳이 이 시간에 실비아를 부르다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둘이서 따로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다들 나가자마자 문을 닫은 사라는, 내가 보는 앞에서 곧장 대화를 시작했다.

    "…실비아. 오늘은 실비아가 구원이랑 자요."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이었다.

    물론 실비아의 예상조차도.

    "……네? 엣? 네에에에에에엣?!"

    실비아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면서,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줬다.

    "…오늘은 실비아가 저 대신 구원이랑 자세요."

    그리고 그런 실비아를 보면서, 사라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말투로 그렇게 다시 한 번 확인을 시켜주듯 말했다.

    "하, 하, 하, 하지만! 어, 어째서?"

    "던전에 가기 전에 신전에 다녀온 이후, 제가 구원한테 달라붙었던 거 기억해요? 원래는 실비아의 시간이었는데, 제가 제대로 망쳐버렸으니까요."

    "마, 망쳤다니! 그런! 아닙니다! 전혀 그런 게…!"

    "아뇨. 망친 게 맞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실비아가 구원이랑 자요. 전 빚지고 살기 싫어하는 성격이거든요."

    "빚이라니!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사라님이!"

    "실비아."

    "네, 넵."

    "구원이랑 자라고 몇 번이나 말하게 되는 제 입장도 생각해주세요. 그것도 이런, 구원이 불안정해 보이는 날에 말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양보하기 싫어요.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몇 번이나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아, 아아…네, 네엡…."

    그런 사라의 감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목소리에 진심을 느낀 건지, 실비아는 그 이상 거부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음. 크흠. 실비아. 우선 몸부터 씻고 올래?"

    둘이 대화하는 동안 계속 멍하니 얘기를 듣고만 있었던 나도, 그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는 실비아에게 일단 그렇게 말했다.

    "네, 네헵!"

    물론 여기서 씻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던 실비아는, 내 말을 듣고 곧장 방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실비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 나는 사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사라. 대체 무슨 생각이야?"

    "무슨 생각이고 뭐고. 실비아한테 한 말 그대로야. 원래는 그 날 실비아랑 하려고 했었잖아? 내가 방해해버렸으니까."

    "아니. 하지만 난 그때 부담 가지지 말라고…."

    확실히 그때 사라가 조금 많이 미안해하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이야.

    "바보. 어떻게 그래. 이런 건 바로바로 풀어줘야 된다고. 바람둥이인 누구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지내야 하는 여자들끼리라면 더더욱. 이런 사소한 게 싸여서 깊은 골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님 뭐야? 구원은 우리끼리 항상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내 말에, 사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새초롬하게 그렇게 말했다.

    즉, 물론 실비아한테 미안한 감정도 있지만, 거기에 더해서 내 여자들끼리 사이가 나빠지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란 거다.

    그 배려심을 깨닫자, 나는 사라의 뒤에서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천사야. 우리 애들은 진짜 하나같이 다 천사야.

    "아니. 그런 건 당연히 아니지만…정말로? 정말로 괜찮겠어."

    "괜찮…지는 않지만 참을 수 있어. 하루 정도는. 그날 당겨 쓴 거라고 생각하지 뭐."

    "사라…."

    "그러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아예 사도 임명까지 해버리라고. 저런 성격이니까 티는 안 내겠지만, 실비아 혼자서 얼마나 쓸쓸하겠어?"

    감동하는 내게 무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사라가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하여간 우리 애들은 하나같이 다들 왜 이렇게 착한 걸까.

    그 질투심 많은 사라마저 이렇게….

    "설마 실비아한테 오늘 밤을 내주고 흥분하려고…아얏!"

    "이 바보가 진짜!"

    "농담. 농담이라니까. 사라야. 사랑해."

    "바보. 나도 알아."

    내가 그 몸을 껴안아주자, 사라도 자연스럽게 내게 안겨서는 키스를 해왔다.

    "그러니까 다음 내 차례까지는 던전에 가면 안 돼? 알았지?"

    게다가 설마하니 이런 확인까지.

    얘 설마 내 정신 상태를 걱정해서 곧바로 다시 던전에 가는 것까지 막으려고 이런 행동을 한 건가?

    대체 몇 가지 생각을 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거야?

    사라, 무서운 아이!

    "당연하지. 어떻게 널 한 번도 안 안고 가겠어."

    물론 나는 사라의 말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마틸다의 스킬 레벨업을 위해서 다음 던전행은 빠르게 다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라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나는 사라의 몸을 껴안고, 그대로 손을 살짝 아래로 내려서 그 탄력 있는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엄지는 뻗어서 사도 인장의 언저리를 어루만지며.

    언제나 예뻤던 사라지만, 오늘은 유독 더 예뻐 보인다.

    "실비아, 씻고 오려면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응읏. 바보. 그러면 모처럼 실비아한테 양보하고도 미안해져버리잖아."

    사라를 꼬드겨봤던 나였지만, 사라는 잠깐 고민하더니 결국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서 떨어졌다.

    "그럼. 구원. 잘 자. 내일 봐."

    원래는 자기 차례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색한지, 사라는 미묘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시 한 번 키스를 해주고 나서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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