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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55화 (53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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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 강림을 위하여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선 다시 황제 펭귄이 있던 곳으로 온 우리였지만, 실비아의 말대로 황제 펭귄이 뚫는 구멍들을 확인하기에 앞서 두 가지 문제점이 존재했다.

    하나는 이곳엔 현재 황제 펭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조난당하는 기간 동안 당연히 부활을 한 번 하기는 했을 테니, 그 사이에 또 다른 파티가 잡기라도 한 거겠지.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다시 황제 펭귄이 부활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니까.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라 다른 한쪽이었다.

    바로 이곳과 4계층이 연결된 통로에서, 한 그룹의 모험가 파티가 튀어나왔다는 사실 말이다.

    "후우…. 역시 우리들만으로 저길 뚫는 건…응? 아앗! 네, 네 녀석! 아, 아니. 다, 당신?"

    그 파티에는 드물게도 남자 모험가마저 한 명 포함되어있었는데, 녀석은 어째선지 날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면서 그렇게 외쳤다.

    반말을 해야 하는지 존댓말을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는 표정으로.

    "초면에 삿대질이라니. 실례되는 녀석이로군."

    "아, 아아. 미안하다. 이건 그런…아니! 누가 초면이란 거냐!"

    녀석은 꽤나 착실한 성격인 건지, 곧장 손가락을 내리며 사과를 하다가 고개를 들고는 내 말에 딴죽을 걸었다.

    …응? 어디서 만난 적 있었던가?

    미안. 사내새끼 얼굴은 웬만큼 인상적이지 않는 한 기억을 잘 안하는 편이라서 말이야.

    "전에 다음에 보면 인사라도 하자고 한 건 그쪽이잖아!"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의 날 보고 대충 자길 기억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한 건지,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왠지 복장 터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귀찮은 녀석이네.

    "아, 아아! 그래. 그래. 캬아. 오랜만이다. 잘 있었냐?"

    "…당신. 전혀 기억 못하고 있지?"

    일단 대충 맞장구를 쳐 봤는데, 녀석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쳇. 들켰나. 성가신 녀석.

    "아아!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거냐?!"

    "화나야할 건 이쪽이라고! 어떻게 잊을 수 있는 거냐?! 전에 신전 앞에서 만났잖아?! 당신 거기 그쪽의 레이디를 희롱한다고 내가 착각하는 바람에…."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실비아를 보고는 부끄럽다는 듯 살짝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놈의 그 말로 인해서, 나도 기억 한 구석에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뇌는 사내새끼에 대한 정보는 즉각 소거해 버리지만, 우리 애들에 관한 기억은 착실히 쌓아두고 있거든.

    그리고 내가 대로변에서 실비아로…실비아랑 장난치다가 웬 놈팡이한테 딴죽을 걸린 기억도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 그때 딴죽을 걸었던 녀석은 쓸데없이 정의감 넘치고….

    나는 힐끔 시선을 놈의 뒤에 서있는 여성 모험가 둘에게 돌렸다.

    여기까지 올 수준이다. 꽤나 예쁘장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어딘가 어려보이고 발육부진 기미가 엿보이는 외모.

    기억났다.

    "디아나! 실비아!"

    "우왓! 뭐, 뭔가?!"

    "읏…!"

    나는 황급히 디아나와 실비아의 앞을 막아섰다.

    깜짝 놀라는 디아나와, 그나마 방금 전까지 전투를 하며 왔기에 평소처럼 극심한 반응까지 보여주지 않는 실비아.

    "저 녀석 무려 우리 레이아의 가슴에 눈길 한 번 안주고 실비아의 널빤지 같은 가슴만 뚫어질 듯 쳐다보면 극도의 빈유 페티시에 아동성애자 의혹까지 있는 놈이야! 조심…!"

    "이, 이익! 사라양!"

    "네!"

    "크허헉…왜, 왜애…."

    그런 둘을 향해, 나는 필사적으로 녀석의 위험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디아나는 이마에 힘줄을 띄우면서 자길 감싸 안은 내 허리를 토닥토닥 공격하다가, 안되겠는지 사라까지 불렀다.

    그리고 사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등짝에 등짝 스매시를 한 대 날렸다.

    어, 어째서…감싸주려고 한 건데….

    "누가 빈유인가아아아아!"

    "누가 아동성애자란 거냐!"

    그리고 내 앞뒤에서, 디아나와 저 놈팡이의 목소리가 멋지게 하모니를 만들었다.

    그래. 인정한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좀 있기는 하지. 우리 디아나는 나한테 충분히 큰 소리를 쳐도 돼. 하지만 넌 안 돼.

    나는 곧장 디아나의 몸을 들어서 놈의 정면에 세웠다.

    "우리 디아나. 어떻게 생각해?"

    "뭐, 뭣?! 갑지가 그게 무슨…그, 그거야. 아, 아름다우시다고 생각하지만…."

    "디아나! 봤지?! 내 뒤로 숨어!"

    "사라양!"

    "네!"

    "크허허헉…."

    한동안 그런 소동이 오간 후에야, 우리는 드디어 차분히 자리에 앉아서 대화의 자리를 가지게 됐다.

    여긴 보스 룸인 만큼, 보스가 없어지면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안전한 공간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뒤에 여성분들은 왜 둘 밖에 없냐? 원래 셋 아니었어? 설마 어린애를 좋아하는 취향이 들켜서 차였냐?"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 할 질문이란 게 그거냐!? 아니야! 제대로 이유가 있어서 모험가를 그만둔 것뿐이야! 그리고 애초에 난 어린애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게 더 수상해."

    "다, 당신 말이지…아무리 성자라고 해도 나도 참는데 한계가 있다고."

    과연. 일단 네 녀석이 아니라 당신이라고 존칭 비슷하게 불러주는 이유는, 내가 성자였기 때문인 건가.

    "그래. 그래. 뭐, 장난은 이쯤하자고."

    "장난…말이지. 본심은?"

    "이 이상 맞으면 내 등껍질이 까질 거 같아."

    "하핫. 그거야 그렇겠지. 상당히 아파 보였으니까 말이야."

    놈은 그래도 장난을 일일이 맘에 담아두는 성격은 아닌 건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주는 거냐? 그래. 진짜 사라 쟤 손맛이…크흠. 아무튼. 그래서? 우리한테 뭐 볼 일이라도 있냐? 굳이 이렇게 불러 세우기까지 하고."

    "그래. 실은 그거 말인데. 조금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여기까지 왔다는 건, 당신들도 이 앞을 통과해서 4계층으로 나갈 생각이지? 실은 우리도 그럴 생각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어때? 힘을 합치는 건?"

    그러고 보니 이 녀석 파티, 4계층으로 이어진 통로에서 나왔지.

    과연. 어떻게든 여길 통해 4계층으로 가보고 싶었는데,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해류에 감히 나갈 엄두를 못 내고 다시 돌아왔다는 건가.

    "힘을 합친다고 해도, 너희 파티는 마법사도 없어 보이는데?"

    그래. 장비로 보아하니 그랬다.

    파티 리더로 보이는 이 녀석은 창을 들고 있고, 그리고 뒤에 있는 둘은 각각 단검과 스태프를 들고 있었으니까.

    "아니. 마법이라면 나도 조금 다룰 줄 알아. 다만, 그래. 네 말대로 이 앞을 지나가기엔 실력이 부족하지. 이래 봬도 다른 마법 전사에 비하면 마법을 다루는데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은 손바닥 위에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확실히 제안이라고 말하는 건 조금 건방진 발언이군. 정정하지. 너희가 만약 이 앞을 지나가려는 거라면, 우리도 같이 껴주지 않겠어? 아까 전에 날 놀렸던 대가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고, 녀석은 꽤나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만약 우리가 여길 통해 4계층으로 나갈 거였다면, 솔직히 껴줘도 별로 상관은 없다.

    어차피 물의 흐름을 마법을 통해 멈추는 거다.

    얘들을 데리고 간다고 마나가 더 드는 일도 아닐 거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목적은 그게 아니란 말이지.

    나는 곧장 녀석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뇌리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그래. 잠깐 떠볼까?

    "만약 거절한다면?"

    "그땐 어쩔 수 없지. 이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조금 더 힘을 키운 후에 다시 도전해보는 수밖에."

    그리고 내 걱정은, 역시나 맞아떨어졌다.

    쳇. 귀찮게 됐네.

    이 녀석들이 계속 이 주위를 맴돈다면, 보스가 나올 때까지 계속 여기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를 수상하게 여길 거다.

    게다가 보스전이 끝나고 뚫린 구멍을 지나갈 때 역시, 그 모습을 보일 확률이 컸다.

    진짜로 귀찮게 됐네.

    아니. 딱히 이 녀석이 나쁜 게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야.

    나는 재빨리 우리 애들과 눈짓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할까? 일단 얘들을 4계층으로 데려다주고 올까?’

    ‘하지만 우리 목적은 여기잖아?’

    ‘그래도 이 분들이 계속 여기 계시면 비밀이 들킬 위험이 커지겠네요.’

    ‘아아…당시이인….’

    ‘음. 역시 일단 4계층에 데려다주고 오는 게 좋겠구먼. 어차피 이곳의 주인이 부활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니, 시간 때우기라고 생각하세나.’

    ‘하지만 마나는 어때? 괜찮겠어?’

    ‘음. 충분하네. 이 몸은 전투에 전혀 참여를 안 했으니 말일세. 전 같은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걸세.’

    눈빛만으로 이렇게까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끼어있기는 했지만.

    마틸다야. 내가 눈빛 좀 보냈다고 해서 핑크빛 모드가 되는 건 심하지 않냐?

    "좋아. 어차피 우리도 가는 길이었으니."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우리는, 겉보기엔 일단 호쾌하게 승난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고맙다! 처음엔 괴팍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성자는 성자구나!"

    "따로 가라."

    "하핫. 미안. 미안하다. 농담이야."

    내 냉철한 한 마디를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녀석은 그렇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농담 아니었거든? 뭐, 진짜로 따로 보냈다가는 귀찮아질 것 같으니 보내주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을 듀크라고 소개한 녀석의 파티와 함께 일단 4계층으로 가기로 했다.

    이곳의 거친 물살을 헤치고 지나가는 전법은 간단했다.

    날 구하러 돌아다니는 동안 당연히 우리 애들도 마법사 협회 사람들을 대동한 채로 이 곳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고, 그 사이에 이곳의 복잡한 물의 흐름에 대해서도 대강 파악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 내용을 토대로 이 물의 흐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최단 루트를 설정하여 딱 그 부분만, 최대한 마나 소모를 줄이며 물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단숨에 빠져나간다.

    마나를 걱정했던 내게 디아나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던 것도, 다 그렇게 대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단 거다.

    그런 고로, 저번 같은 사고도 없이 우리는 무사히 물살을 뚫고 4계층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며칠 만에 맛보는 사방팔방이 물로 뒤덮인 감각.

    물론 저택에서 수영연습을 할 때 거든 적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이렇게 던전 안에 있는 것과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나는 자연히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구, 구원?! 구원?!"

    그리고 그런 날 눈치 챘는지, 사라가 황급히 이쪽으로 다가와서 내 안색을 살폈다.

    아니.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애들 전원이 내게 다가와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내 안색을 살폈다.

    심지어 그 실비아마저도 전혀 떨지 않고, 그 마틸다마저도 핑크빛 모드가 되지 않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흠. 실수했군. 너무 오버했나.

    우리애들은 아무래도 내가 떠는 게 트라우마가 발동해서 떠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거 아닌데 말이야. 난 그렇게 섬세한 놈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하지만 여기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말을 내뱉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 애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겠지.

    할 수 없지. 하는 수밖에.

    "후하하핫! 내가 돌아왔…아팟!"

    "이 바보가 진짜! 장난도 좀 상황 봐가면서 치란 말이야!"

    "장난이라니! 장난 아니거든! 남자가 비장하게 복수의 시간을 음미하는 걸 훼방하다니!"

    뭐, 반쯤 장난 맞았지만.

    하지만 이것도 다 계획이라고. 나는 사라한테 눈빛을 보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복수 말인가?"

    다행히 내가 뭔가 계획이 있다는 걸 눈치 챘는지, 디아나가 그렇게 받아줬다.

    "그래. 내가 조난당하게 만든 그 고래놈. 놈에게 복수할 때가 찾아왔어. 뼈도 움츠리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자, 얘들아 가자!"

    나는 일부러 살벌해 보이는 미소를 만들어 보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봐! 구원!"

    그리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려는 내게, 듀크가 말을 걸어왔다.

    "여기까지 같이 데려다준 보답이다. 그런 거라면 나도 거들어주지."

    쟤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금 너 떼어놓으려고 연기하는 거 안 보이냐?

    "아니. 너도 남자라면 알 텐데? 남자의 복수는 스스로 해야 하는 법. 이건 나만의 싸움이다. 끼어들지 말아줘."

    "…그런가. 내가 눈치가 없었군. 알겠다. 그럼 난 자리를 비켜주도록 하지. 살아서 다시 보자!"

    내 비장한 목소리를 듣고, 놈은 완전히 공감한다는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쟤 혼자 무게 잡고 뭐하냐? 아니. 나쁜 녀석은 아닌데 말이야.

    "그래!"

    물론 나도 똑같이 무게를 잡고 대답해줬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아마 아무도 기억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여기서 덧붙입니다. 269화에 나왔던 그놈입니다.

    Brokenherat // 우선 사라는 레벨이 20넘게 오른 게 맞습니다.

    사라가 전투로도 레벨 업을 한다지만, 한 때 구원이 고레벨 여자들과 섹스를 하면서 던전에 안 가고 섹스로만 레벨을 엄청 올린 적이 있었죠.

    때문에 전투 아니면 직업 레벨을 올릴 수 없는 사라가 파티원 중 100레벨 한계 돌파를 가장 늦게 했었고요.

    그 여파로 구원 조난 전까지는 아직 파티원 중 사라의 레벨이 가장 낮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가 오히려 구원보다 레벨이 높아졌죠.

    그리고 사라가 구원의 방어력을 뚫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원이 성자빨로 자기보다 레벨 높고 매력 높은 여자 상대로 섹스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사라도 용사빨로 어느정도 레벨차이나 스탯 차이는 무시하고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라가 레벨에 비해 데미지가 이상할 정도로 잘 나온다는 묘사는 작중에 이미 몇번이나 나왔었죠.

    그리고 이 세계에서 레벨이 깡패인 이유는 단순히 고레벨이 스탯이 더 높아서가 아니라, 레벨 보정이라는 게 따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소설 극초반에 근력이 낮은 고레벨 마법사가 근력이 자신보다 더 높은 저레벨 전사랑 팔씨름을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이 나온 적 있죠.

    그리고 지금은 사라가 구원보다 레벨이 더 높습니다.

    즉, 레벨 보정은 오히려 사라가 더 유리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이 사라를 너무 화나지 않게 놀리자고 생각한 이유는, 사라가 눈 돌아가게 화나면 마나를 안 쓰고 때릴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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