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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54화 (53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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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 강림을 위하여

    아무튼 그런 고로, 우리는 우선 얼음동굴을 목표로 했다.

    얼음동굴로 가는 열쇠가 레이아의 스태프밖에 없는 만큼 중간에 하프 물범이 있는 곳으로 가서 예비 열쇠를 하나 더 얻을 생각도 해봤지만, 그 계획은 우리 애들이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저지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레이아 스태프 하나만 있는 건 불안하잖아.

    나도 딱히 걔들을 잡고 싶은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런 야만인을 보는 것 같은 눈은 그만둬 주지 않겠어?

    특히 천사님. 천사님이 그런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정신적 데미지가 장난 아니니까 정말로 그만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도착한 얼음동굴은, 확실히 이전과 비교해서 모험가들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공격력은 강하지만 그만큼 방어력이 약한, 빠르게 성장하기엔 최적의 장소니까 말이다.

    특히 던전의 모든 계층 중에서 가장 지형변화가 심해서 진입하기 까다로운 4계층 직전의 난이도다.

    지금까지 4계층에 진입하지 못하고 막힌 모험가들이 여기로 전부 몰려들기라도 한 건지, 이전에 비해서 펭귄을 만나는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뭐, 전에 왔을 때가 이상할 정도로 펭귄을 많이 만난 거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어차피 목적은 4.5계층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는 거니, 귀찮게 펭귄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거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고?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

    펭귄이 줄어든 만큼, 도중에 모험가를 만나는 비율이 늘어났다.

    던전을 탐험하는 내내 한두 파티도 만나기 힘들었던 모험가들이, 오늘만 벌써 세 파티 째.

    "오, 성자! 성자 파티다! 댁들이 여길 발견한 거지? 땡큐! 덕분에 왕창 벌고 있어!"

    "어때? 그쪽도 여길 돌아다닐 거면, 우리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

    게다가 내가 유명해진 덕분에, 만나는 파티마다 말을 걸어왔다.

    소규모 계층 간의 이동을 비밀로 하고 있는 입장으로선, 솔직히 말해서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아니. 보다시피 우리 파티는 인원수가 많아서. 이 이상 인원이 늘어나면 오히려 불편해져."

    "하긴. 그것도 그런가. 그럼 수고해! 서로 몸조심하자고! 성자님은 안 그래도 호되게 한 번 당한 모양이니까!"

    뭐, 일단 기본적으로 모험가란 족속들은 털털한 녀석들이라, 이쪽에서 거부하면 쉽게 떨어져나갔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조난당한 거, 엄청 유명한 사건인 모양이네.

    아니. 다들 그 난리를 쳤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말이야.

    "하아…이래서야, 몰래 수컷 펭귄을 찾는 것도 상당히 고생하겠네."

    모험가 파티가 모습을 감춘 후, 사라가 가벼운 한숨을 내뱉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어차피 코볼트 동굴이나 개미굴을 생각해보면, 수컷 펭귄도 어딘가 숨겨진 장소에 숨어있을 테니까. 거기로 들어가기만 하면 들킬 일은 없겠지. 그리고 덕분에 펭귄들을 귀찮게 일일이 상대할 필요도 없어졌잖아? 게다가 지도까지 완성해주고.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의 허리를 안으려고 하자, 사라가 가볍게 몸을 피한 후 다시 후위 쪽으로 돌아갔다.

    "야."

    "바보. 던전 안이잖아."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해봤자 설득력 없거든?

    자기가 먼저 내가 다른 모험가랑 얘기하는 걸 보고 질투하면서 옆으로 온 주제에.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모험가 길드에서 공수해온 지도를 바탕으로 우리가 이전에 들러보지 않았던 곳을 중점으로 들쑤시고 다니며 수컷 펭귄을 찾아다녔다.

    전에 가봤던 곳들은 이미 비밀 장소가 있는지 면밀히 확인하면서 지나갔던 곳이니까 말이다.

    "없네요…."

    그렇게 얼음 동굴을 탐험한지 벌써 12일째.

    레이아의 말대로, 오늘도 우리는 수컷 펭귄을 찾지 못하고 허탕을 치고 있었다.

    던전에서 먹는 식사치고는 상당히 호화로운 식사를 하면서, 나도 레이아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러게. 코볼트 동굴이나 개미굴이랑 다르게 여기는 밝으니까, 솔직히 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으읏…얼음이 반사 되서 오히려 눈이 아플 정도네요."

    마틸다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가볍게 자신의 눈언저리를 비볐다.

    확실히. 밝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얼음에 반사되는 빛이 눈부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얼음으로 뒤덮여있다 보니 아무리 밝아도 숨겨진 길을 찾는 다는 게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디아나가 바람 마법을 이용하여서 자신의 주변에 미약한 바람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을 정도였다.

    어딘가 숨겨진 통로가 있다면, 저 바람이 통할 거라는 계산이다.

    "흠.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쉽게 찾아왔던 걸세. 안 그래도 이 몸들은 던전의 비밀을 초고속으로 파헤쳐 왔으니 말일세. 가끔은 이렇게 다른 모험가들 같이 끈질긴 조사 끝에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도 자네들의 성장에 있어서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걸세."

    불평을 늘어놓는 우리를 보면서, 디아나는 어른스런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쟨 우리 중에 제일 체력도 없는 주제에 제일 활기차보이네.

    설마 레이아가 안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

    얼음 동굴에서 바람 마법을 다루고 있는 거다.

    인간 선풍기가 되어있는 디아나에게는, 아무리 디아나를 껴안고 있기 좋아하는 레이아라도 가까이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슬슬 한 번 돌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뭐?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마틸다 생각도 해줘야지."

    "네? 저, 저요? 뭔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틸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어딘지 두근거리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핑크빛 모드가 되려고 하지 마라.

    너 사실은 하나도 안 피곤하지?

    "아니. 뭐냐니…. 그 마나가 이질적이니 뭐니 하면서 마틸다는 유독 못 견뎌했잖아. 괜찮은 거야?"

    "아, 아아! 그, 그걸 걱정해주신 건가요오…?"

    뭐냐 그 이제야 생각났다는 반응.

    그리고 핑크빛 모드 되지 말라니까.

    전 같았으면 막대해서 풀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핑크빛 모드를 풀기 위해서 라고는 해도 널 막대하기 힘들단 말이다.

    "그래. 어째 멀쩡해 보인다?"

    "당신…당시인…."

    야. 그러니까 던전 안에서 키스하려고 하지 말라고!

    "구원. 구원이 대체 얼마나 오래 조난당해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대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마틸다를 대신해서, 사라가 그렇게 대답을 해줬다.

    "응? 갑자기 그 얘기가 또 왜 나와?"

    "마틸다는 그동안 교황청에, 그리고 이 도시의 사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를 제외하곤 계속 4계층 마을에 있었던 거잖아. 게다가 구원 걱정을 하느라 이질적인 마나같은 건 신경도 못쓴 채로. 그러다보니 조금 익숙해진 거야."

    과연. 아무리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마을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던전 안은 던전 안이다.

    마나가 이질적인 건 변함이 없으니, 마틸다는 계속 4계층에 있는 훈련을 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다는 건가.

    게다가 사라가 이걸 알고 있다는 건…과연. 어쩐지 다들 마틸다를 받아들이는 걸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준다 싶더라니.

    내가 조난당한 사이에, 얘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사이가 돈독해졌던 모양이다.

    "일단은 마틸다의 문제는 해결 됐다고 봐도 된다는 건가. 설마 이런 식으로 극복할 줄이야. 그렇게 따져보면 내가 조난당한 게 꼭 나쁜 일이었던 것도…."

    "구원씨."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농담을 던져보려 했던 나였지만, 레이아의 한 마디에 곧장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런 눈을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진짜로 심장에 안 좋으니까.

    "하지만 자네 말대로, 이쯤에서 한 번 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구먼. 지도에 표시된 구역은 다 확인을 한 게지?"

    "응. 일단은. 우리가 전에 돌았던, 황제 펭귄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만 제외하면."

    이곳을 들르는 다른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탐색보다 사냥이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미 우리가 4계층까지 통하는 길은 밝혀놓기도 했기 때문에, 이곳을 공개하고 흐른 시간에 비하면 지도가 작성된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사냥보다 탐색이 목적이었으니까 이동속도가 빠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거긴 전에 이미 살펴봤잖아?"

    "내 말이. 설마 바람 마법까지 동원해서 이렇게 구석구석 살펴봤는데 발견을 못할 줄이야. 설마 여긴 수컷이 어디 막혀 있는 곳에 숨어있기라도 하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 던전은, 막힌 곳을 지나가려면 기본적으로 성기를 통해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원하는 건 수컷 펭귄이다.

    암컷밖에 없는 지역에서 수컷을 찾기 위해 성기로 통로를 만들고 지나가야 한다니.

    완전히 모순되어 있잖아.

    "……핫!"

    하지만 내 푸념을 들은 순간, 행복한 표정으로 따뜻한 수프를 마시던 실비아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응? 실비아. 왜 그래?"

    "이, 있습니다!"

    "있다니? 뭐가?"

    실비아의 그 말에 이끌려 일단 주변을 살펴봤지만, 주변에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 막힌 곳 말입니다!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뭐?! 어딘데!"

    "그 커다란 펭귄이 있던 곳입니다!"

    커다란 펭귄? 그러니까 황제 펭귄 말하는 거지?

    거기에 어디 그런 게…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나는 실비아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짐작이 갔다.

    "그런가! 황제 펭귄이 뚫고 다녔던 곳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저 부리만 박히는 수준에서 끝나는 다른 펭귄들과 다르게, 황제 펭귄은 아예 벽을 뚫고 다니면서 사방팔방에서 공격을 해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황제 펭귄에 뚫어놓았던 지형은, 지금 생각해보니 확실히 던전의 다른 곳에 비해서 메워지는 속도가 늦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메워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유일하게 문제가 있다면, 황제 펭귄의 몸크기가 다른 보스들에 비해서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건데.

    물론 다른 보스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일단 일반 펭귄들과 비교해봤을 때는 크긴 컸다.

    아마 우리 애들은 충분히 지나갈 수 있겠지.

    다만…내가 지나갈 수 있으려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걸 걱정하기에 앞서서 우선은 정말로 거기가 수컷 펭귄에게 통하는 길인지 아닌지 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아, 하지만 그 전에….

    "실비아아아! 넌 왜 이렇게 이쁜 짓만 하냐아아!"

    실비아부터 칭찬해줘야지.

    "흐야아아아아앙!"

    "야, 바보!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실비아를 죽일 셈이야!"

    "괜찮아! 실비아는 지금 전투 모드니까!"

    사라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등짝을 찰싹찰싹 때려댔지만,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했다.

    "아, 아님니다아아! 바, 밥먹…쥭습…니이이이…."

    그 말을 끝으로, 실비아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 실비아? 실비아?! 안 되겠어! 이렇게 된 이상 힐링 섹스를…!"

    "흐야아아앗!"

    아무래도 이번엔 기절까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비아는 팔다리를 파다다닥 움직여서 얼음 바닥을 미끄러지더니, 사라의 뒤로 가서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구워어어언…."

    "야. 말해두겠는데. 일단 난 순수한 호의로 칭찬해 주려고 말이지. 게다가 아무리 나라도 진짜 여기서 그런 짓은 안 한다고. 당연히 힐링 섹스는 농담…."

    "흐응? 그러셔?"

    내가 변명을 늘어놓자, 사라가 생긋 미소 지었다.

    이상하다. 분명 예쁜데 무서워.

    "사랑해. 사라야."

    "응. 나도 사랑해."

    결국 한 대 맞았다.

    뭐, 소리만 컸지 아프진 않았지만.

    아닌 척 하면서도 직전에 사랑한다고 말한 게 먹혔던 모양이다.

    하여간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했어?"

    "아뇨. 아무것도."

    가끔 생각하는 건데 말이야, 쟤 진짜 사람 마음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지?

    정말로 섬뜩해질 때가 있다니까.

    그리고 그런 사라 뒤에서, 실비아가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했다.

    그런 실비아를 보고, 나는 가볍게 손을 들며 미소를 지어줬다.

    괜찮아. 괜찮아. 오히려 난 아직도 더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인걸. 돌아가서 듬뿍 칭찬해줄게.

    안 그래도 돌아가면 최우선으로 안아준다는 말도 했었으니까.

    내 미소를 보고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 건지, 실비아의 몸이 한 차례 바르르 떨렸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누굴지? // 우선, 다음 전직 레벨은 200이 아니라 250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시면. 사라의 근력 절대치가 구원의 내구 절대치보다 높아졌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저 구원의 내구 상승 비율보다 사라의 근력 상승 비율이 높다고만 써있죠.

    절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여전히 구원의 내구가 더 높습니다.

    다만 사라의 수치 상승 비율이 더 높다는 거죠.

    조난당하는 동안 구원이 그동안 내구가 17 상승했는데, 사라는 근력이 30 이상 상승했거든요.

    구원은 조난 당하는 동안 무투가 레벨업 시 확률적으로 내구가 상승했는데, 사라는 용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근력이 무조건 올랐으니까요.

    즉, 사라가 그냥 때리는 걸 구원이 무방비하게 맞아도 데미지가 없을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근력 수치가 내구 수치보다 낮다고 데미지가 아예 안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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