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31화 (5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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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경의 고민

    "……."

    "뭐, 뭐냐 그 눈은."

    날 바라보는 바넷사의 눈이 평소보다 훨씬 더 차갑게 보여서, 나는 반사적으로 그 얼굴을 보자마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실은 바넷사는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눈을 하고 있고, 내가 찔려서 냉정하게 보인다고 생각할 뿐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참고로 분노가 가라앉은 사라도 자신이 그런 플레이를 했다는 게 상당히 부끄러운 건지, 내 뒤에 숨듯이 몸을 가리고는 새빨갛게 굳어져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정말로 모르는 건지 시치미를 떼는 건지.

    평소와 미묘하게 다르게 들리는 목소리로 되묻는 바넷사에게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모르는 것이든  시치미를 떼는 것이든, 일단 자신이 나서서 추궁할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그걸로 됐다.

    나는 그냥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정신건강상으로도 더 좋고 말이다.

    "왔구먼. 잘 잤는가?"

    "좋은 아침이에요. 구원씨."

    "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아!"

    아무튼 바넷사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하자, 거기에는 언제나 그렇든 우리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아니. 한 명 없잖아.

    "…마틸다는?"

    설마 늦잠이라도 자는 건가?

    아니. 평소 그런 태도이기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마틸다는 저래 봬도 추기경님이다.

    그리고 어느 종교가 그렇듯, 종교인들의 삶은 꽤나 빡빡한 법이다.

    그건 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마틸다 역시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 식사에 늦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여기까지 우릴 안내한 슈퍼 집사를 바라보며 질문하자,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컨디션 불량으로 오늘 아침 식사는 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늦잠을 자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오늘 컨디션 불량이라니.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아?

    "마틸다 걔, 어제 수영할 때 컨디션 안 좋아 보이거나 그랬어?"

    물론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해서 속단할 순 없다.

    정말로 컨디션 불량일 수도 있는 일이니, 나는 일단 확인 차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어제는 분명 괜찮아 보이셨어요. …그렇죠?"

    레이아는 일단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은 없는 듯, 같이 수영을 한 실비아와 바넷사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물론 실비아와 바넷사도 곧장 레이아의 말을 긍정해줬다.

    뭐, 굳이 실비아와 바넷사가 대답하지 않더라도, 레이아가 괜찮아 보였다고 말한 순간 내 안에서 마틸다의 꾀병은 확정사항이 됐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천사님이라고?

    자기랑 같이 있는 사람의 컨디션이 안 좋은지 어떤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천사님은 무신경하지 않다.

    오히려 다른 사람한테 너무 신경을 써줘서 탈일 정도니까 말이다.

    그런 천사님이 괜찮아 보였다고 말씀하신 거다.

    적어도 어제까지 마틸다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는 거다.

    물론 밤사이에 창문을 연 채 이불을 덮고 자지 않았다든가 해서 컨디션 불량이 됐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마틸다 걔가 애도 아니고 말이야.

    애초에 감기 정도면 신성마법을 사용해서 스스로 치료할 수 있잖아.

    그런 고로 나는 마틸다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래. 일단 그럼 식사는 우리끼리 하자."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방에 쳐들어 갈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어차피 오늘 하루는 길다.

    마틸다와 대화를 나누는 건 식사 후에 하기로 하고, 나는 우선 자리에 앉았다.

    "아, 그래. 레이아. 실비아. 오늘은 너희도 수영 연습은 쉬는 게 어때?"

    식사를 하면서, 나는 일단 오늘 할 일을 위해 밑밥을 깔기로 했다.

    "네? 저희도 말인가요?"

    "네, 넵! 아, 알겠습니다!"

    내 말이 의외였는지, 레이아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귀여우시다.

    그리고 실비아야. 일단 이유라도 묻고 대답하는 게 어떠냐? 아니. 잘 따라주는 건 고마운데 말이야.

    "응. 수영 연습은 기본적으로 실비아와 마틸다를 위한 건데, 실비아 혼자 진도를 나가버리면 마틸다가 나중에 따라잡는다고 또 무리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바넷사도 매일같이 수영연습을 도와줬으니까. 혹시 일이 밀려서 곤란한 상황인 건지도 모를 일이고."

    "구원씨…."

    내 대답을 듣고, 레이아는 감동적이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저렇게 쳐다봐주시니 조금 양심이 찔린다. 아니. 물론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야. 정말로 저렇게 생각하고 수영 연습을 쉬라고 말한 건 맞아.

    다만 그 이유가 저것들만 있는 것이 아닐 뿐이지.

    "아뇨. 밀린 일 같은 건 없습니다만."

    야. 슈퍼 집사. 네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잘 알겠으니까 괜히 분위기 깨지 마라.

    레이아 같은 저런 리액션까진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좀 분위기 좀 맞춰줘라.

    "그럼 바넷사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단 걸로."

    "그런 건…."

    "쉬어라 좀."

    아니. 진짜로. 너 쉬는 날이 있기는 있냐?

    내가 이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 쉬는 꼴을 단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말이야.

    "……."

    야. 거기서 침묵하기냐?

    사람의 배려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게 어때?

    "가끔은 그렇게 하게나."

    "…감사합니다."

    결국 디아나까지 그렇게 말한 후에야 솔직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표하는 바넷사였다.

    쟤도 진짜 고집 있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오늘 할 일의 밑밥까지 전부 깔아둔 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마틸다의 방으로 향했다.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문을 가볍게 노크하고, 나는 곧장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꺄악! 다, 당신 말이죠! 그러니까 그러면 노크의 의미가…! 정말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마틸다는 오늘도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말해두지만 진짜 이건 고의가 아니야. 고의일 리가 없잖아.

    내가 무슨 문 너머가 보이는 투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너야 말로 내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일부러 벗고 있는 거 아니냐?"

    "뭐, 뭣…! 무슨…!"

    내 적반하장이 그렇게 기가 막혔던 건지, 마틸다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아니. 야. 기가 막힌 건 알겠는데, 반응이 그래서야 마치 진짜로 네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잖아.

    오해받기 딱 좋은 태도라고?

    넌 안 그래도 평소 태도가 여러모로 남한테 오해받기 좋으니까, 좀 더 주의하지 않으면.

    "아무튼 컨디션 불량이라면서?"

    "네?! 네, 네에! 그, 그런…데요오?!"

    너 거짓말 진짜 못한다.

    혹시 바네사한테 꾀병 부릴 때도 이런 말투로 말한 거 아냐?

    바넷사 녀석. 그럼 좀 미리 말하라고.

    아니. 물론 난 이런 상황도 이용해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별로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좋아. 그럼 치료해주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반라의 마틸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네, 네엣?! 자, 잠깐만요! 치, 치료?!"

    "그래. 힐링 섹스로. 그거 자연 치유력도 향상 되거든. 걱정 마. 네가 어떤 이유로 컨디션 불량이 됐든 간에 금방 나을 수 있을 거야."

    "거, 거짓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벗고 있던 곳가지를 가슴께로 올려서 몸을 가린 마틸다가 그렇게 외쳤다.

    "거짓말이라니. 아냐. 정말로…."

    "제, 제가! 컨디션 불량이란 게 거짓말이에요!"

    "……."

    야. 추기경님. 아무리 그래도 실토하는 게 너무 빠르지 않냐?

    아니. 추기경님이신 만큼 거짓말하고 있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던 거겠지. 그래. 그런 걸로 해두자.

    "뭐, 좋아. 하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저주를 풀기 엄청나게 싫은 모양이군."

    "뭐, 뭣…!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갑작스런 내 직구에 당황한 건지, 마틸다가 말을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야 그렇겠지.

    저 저주를 일부러 풀지 않는다는 건, 저주에 영향 받아 고자가 되어있는 남성들을 일부러 구제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

    남녀 간의 성관계, 특히 자식을 낳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걸 권하는 여신을 모시는 성직자로서는 금기에 가까운 행동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라면 더욱더.

    그러니까 마틸다는 저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거겠지.

    다만,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마틸다가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기쁜 마음마저 들었다.

    "즉, 나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 거라고 해석해도 되는 거냐?"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마틸다를 무시하고,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읏…!"

    그러자 정곡을 찔렸다는 듯, 마틸다는 숨을 멈추며 날 쳐다봤다.

    "그, 그런…당신 말이죠! 저, 전…!"

    엄청 당황하고 있어. 심지어 태도는 틱틱대는 태도면서 부정은 못 하고 있어.

    뭐, 전에 이미 한 번 나한테 고백을 했었으니까 말이지.

    이제 와서 부정하기는 힘들겠지.

    "나도 교황님과 얘기하면서 얘기를 들었어. 저주를 치유하면 다시 교황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라면 제대로 말해줘. 뭣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건지. 네가 뭔가 고민하면서 나와의 관계를 피하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계속 눈치 채고 있었어. 혹시 교단 일로 고민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지금까지 참견 안하고 있었지만, 나랑 관련된 일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지. 그래서 어떤 건데?"

    "그, 그건…."

    저주 해제를 피해왔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도 마틸다는 쉽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이런 진지한 얘기를 할 때는 되도록 이런 짓은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대로 있으면 아무리 지나도 얘기가 진행될 것 같지 않으니, 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틸다."

    "아…."

    나는 마틸다의 허리를 확 끌어안아서 내 몸에 밀착시켰다.

    그러자 마틸다는 몽롱한 목소리를 흘리며 가슴께에 올리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이 풀려갔다.

    덕분에 손에 쥐고 있던 옷가지가 스르르 내려가면서 그 아름다운 상반신이 드러났다.

    하반신은 허리가 내 몸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옷이 걸려서 아슬아슬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남자의 본능 때문에 그 아름다운 가슴에 자연스레 눈이 갈 것 같이 됐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마틸다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최대한 진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

    "아, 아아…구원씨이…."

    그 한 마디에 완전히 핑크빛 모드에 돌입해버린 마틸다였다.

    이 상태가 되면 조금 태도가 이상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솔직한 마틸다의 심경을 들을 수 있겠지.

    "마틸다. 말해주지 않겠어? 대체 뭘 고민하는 건지."

    "읏…! 그, 그거언…!"

    내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틸다는 순식간에 제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머뭇거렸다.

    응? 잠깐만! 지금 핑크빛 모드가 풀린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상반신 누드인 마틸다의 왼쪽 반신에는 여전히 검은 저주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즉, 저주가 풀린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핑크빛 모드에서 벗어난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예상외의 사태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도, 마틸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결심을 했는지, 자신의 매력적인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아요. 당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제 이기심 때문에…저는…저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그렇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대답하는 마틸다.

    대체 어떻게 핑크빛 모드가 이렇게 쉽게 풀렸는지는 둘째 치고, 나는 우선 그런 마틸다를 달래주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마틸다. 그런 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

    나는 마틸다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최대한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네가 원한다면, 넌 어디에도 갈 필요 없어. 저주는 관계없어. 중요한 건 네 진심이야. 네가 그렇게 원하기만 한다면, 계속 내 곁에 있으면 돼."

    "하지만 그런…그렇게 쉽게…당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 쉬운 일이야. 난 성자잖아? 여신님의 사자께서 그런 걸 바란다는데, 여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그걸 거부할 거라고 생각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쓰굴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선얘 // 그러고 보니 엉덩이로 하는 데 섹스 부스트가 발동 된다고 썼네요. 제 실수입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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