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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83화 (46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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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일보

    "아무튼 그렇게 정말 별 일 없었으니까, 너무 그렇게 미안해할 거 없어. 애초에 너희가 미안해할 일도 아니잖아. 내가 혼자 떠밀려간 건 사고였고, 너희한테 돌아가서 구조를 요청하라고 한 것도 나고. 너희가 제대로 구조요청을 해준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여기에 도착한 거니까. 오히려 난 너희한테 감사하고 있는 걸."

    "감사라니, 그런…. 구원씨…."

    "그러니까 오늘은 이제 그만 푹 쉬어. 너희 얼굴 핼쑥해진 거 보니까 가슴이 다 아프다. 그리고 사실 나도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고 싶어서 말이야. 일단 오늘은 일단 좀 쉬자. 응?"

    사실 레이첼 누님과 만났을 때까지 자고 있었고 누님과 힐링 섹스의 효과도 받았기 때문에 전혀 피곤하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얘들이 도저히 쉴 것 같지가 않아서 나는 일단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알겠네."

    디아나는 오랜만에 본 내게서 떨어져 잠을 자는 게 싫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내 설득이 통했는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원씨. 저는 같이 자도 되나요? 어차피 원래 제 차례였으니까요. 괜찮죠?"

    "뭣?! 레이아양! 치사하네!"

    하지만 정말 드물게도, 레이아가 내 말을 바로 따라주지 않았다.

    디아나가 불의를 찔린 듯 외쳤지만, 레이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 눈동자만 지긋이 바라보며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닌 레이아가 이렇게 행동할 줄이야.

    조금 예상외이긴 했지만, 저렇게 행동할 정도로 레이아가 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천사님이 떼쓰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로 좀처럼 없는 일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들기는 했지만…그래도 이번만큼은 나도 물러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다들 얼굴이 초췌해져있었던 거다.

    얘들을 강제로 쉬게 만들려고 했다는 마법 협회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물론 힐링 섹스가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으니 섹스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럴 땐 잠을 자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고로 나는 모처럼 천사님이 어리광 담긴 부탁에도, 미안하지만 거절하기로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 섹스는…. 내일 저택으로 돌아가서 해줄 테니까, 응? 그러니까 오늘은…."

    "굳이 관계를 안 가져도 되니까요. 그냥 같이 옆에서 자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번 제 차례는 그걸로 넘어가도 상관없으니까요."

    내가 그렇게 설득해보려 해도,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가. 차례를 언급하니까 무조건 섹스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같이 자는 정도라면….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럼 다들 얼른 방에 돌아가서 쉬어."

    "우으…."

    "실비아."

    "네, 네엡! 구원님도 푹 쉬십시오!"

    실비아 역시도 나와 떨어지기 싫기는 했던 모양이다.

    오늘만큼은 구석으로 도망도 안 가고 계속 내 가까이에 있기도 했고.

    하지만 내가 조금 엄하게 말하자, 그제야 실비아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실비아씨 말대로, 정말로 푹 쉬세요. 별 일 없었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오랫동안 조난되어 있었던 거니까요. 눈치 채지 못했을 뿐, 분명 피로가 쌓였을 거예요."

    그리고 마틸다는 추기경이란 지위에 걸맞게 그런 충고를 한 후 내게 피로회복 마법을 한 번 걸어주고는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슬슬 자리를 파하고 각자 쉬러가는 분위기가 조성된 와중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라였다.

    얜 아까부터 대화에도 제대로 끼지 않고, 계속 내 몸을 끌어안고만 있단 말이지.

    "자, 사라도 가서 쉬어. 아, 혹시 여기가 사라 방인가?"

    "아닐세. 이 몸의 방일세."

    "그럼…사라?"

    "…싫어."

    "으, 응?"

    "안 놔줄 거야."

    "아니. 보다시피 난 이제 괜찮으니까…."

    "안 놔줄 거야."

    …이거 곤란하네.

    억지로 떼어내려고 마음먹으면 떼어낼 수야 있겠지만…. 어쩌면 좋을지.

    "아무래도 사라양을 떨뜨려 놓기는 힘들 것 같구먼."

    그 모습을 보고, 디아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래는 이렇게 누가 나와 오래 붙어있기만 해도 질투하면서 자주 말싸움을 하곤 하는 둘이지만, 역시나 이런 심각한 때는 나이가 제일 어린 사라를 디아나가 어른스럽게 넘어가준단 말이야.

    대화하는 내내 사라가 나한테 붙어있는 것 역시 한 마디도 뭐라고 하지 않기도 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디아나는 역시 어른이야.

    "그러니 어쩔 수 없구먼. 오늘은 여기서 다 같이 자는 것이 어떻겠나?"

    …어른…아니. 뭐, 이것도 어른스런 해결책이기는 하지. 응.

    "네에에?! 하, 하지만 오늘은…!"

    "레이아양의 차례는 내일로 미뤄지는 걸로 하면 끝인 문제 아닌가. 어차피 오늘은 몸을 섞지도 않을 예정 아니었나?"

    "하, 하지만…."

    "음음. 자, 자네. 침대가 조금 좁기는 하지만, 괜찮네. 제일 작은 이 몸은 자네 위에서 잘 테니. 잘 붙으면 다 같이 잘 수 있을 걸세!"

    …디아나. 어른스런 생각으로 그러는 거 맞지?

    "정마아알…."

    레이아는 살짝 입술을 내밀고 토라진 표정을 지었지만, 사라가 내게서 떨어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이상 디아나의 제안에 따르는 것밖에 방법은 없어보였다.

    결국 내가 먼저 침대에 눕고, 좌우에 각각 사라와 레이아가. 그리고 내 위에는 디아나가 엎어져서 잔다는 구도로 우리는 잠을 자게 됐다.

    "나 지금 완전히 하렘 상태네."

    "후훗. 구원씨도 참. 그렇게 고생하시고도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아니. 뭘 이정도 가지고…칭찬하는 거 맞지?

    뭔가 말에 미묘하게 가시가 돋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에이. 설마 천사님이 그럴 리가.

    물론 혼자 날 독점하지 못하게 되자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짓기도 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천사님이 그러실 리가.

    응. 그럴 리가 없어.

    "이제 같이 목욕도 하면…."

    "자네는 아직도 포기 안 한 겐가?!"

    "포기할 리 없잖아?!"

    "그, 그렇게 힘줘서 말할 일인 겐가…?"

    위에서 가볍게 내 가슴을 토닥였던 디아나였지만, 내가 오히려 정색하고 말하자 조금 위축 되서는 중얼거렸다. 귀엽다.

    오랜만에 보니까 귀여움이 배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정말로…구원씨. 구원씨도 분명 피곤하실 테니까 너무 그렇게 장난치시지 마시고 얼른 쉬세요. 잠이 안 오시는 거라면, 제가 자장가라도 불러드릴까요?"

    디아나와 장난치는 날 보고, 레이아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혼낼 때처럼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짓더니 그렇게 꾸짖듯 말했다.

    우리 천사님은 저런 표정조차도 아름다우시다.

    "아, 아니. 괜찮아. 레이아야말로 얼른 자."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자장가까지 불러주는 건 조금 부끄러웠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애들 눈도 있고 말이다.

    나중에 단 둘이 있을 때 부탁드립니다. 천사님.

    "구원씨가 먼저 주무시고 나면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상체를 내 몸에 꾸욱 밀착시키고는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우오옷! 가, 가슴을 들이밀지 말게!"

    그 행동으로 왠지 내 위에 있던 디아나가 스플래시 데미지를 입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천사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실은 오랜만에 보는 우리 애들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고 있고 싶었기 때문에, 얘들이 다 잠든 후에도 난 안 자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아까 마틸다가 나가면서 말했던 대로,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쌓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과연 추기경님이라고 할까?

    게다가 오랜만에 맛보는 폭신폭신한 침대의 감촉과 전신에 달라붙어오는 우리 애들의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이 더해져서, 나는 어느 순간 뚝하고 정신의 끈이 끊어졌다.

    "…그러니까 피로를 더 확실히 풀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

    "…아뇨. 디아나. 그런 거라면 제가…!"

    "…여, 여러분 이런 때에…."

    "…이런 때이기 때문일세. 얼마나 피로가 쌓였으면 이 시간까지 일어나지도 않고 있겠는가. 이 자가 항상 귀신같이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건 자네들도 잘 알지 않는가. 레이아양은 교리가 있으니 나가 있어도…."

    "…디아나는 그런 취미니까 나가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게…."

    "…누, 누가 그런 취미인가…!"

    "…아무튼 폭주할 위험이 있는 디아나보단 여기선 제가…."

    "…차, 차라리 제가 할 게요! 원래부터 순서를 따져보면 제…."

    "…하지만 레이아는 성직자니까…."

    "…여러분이 나가시면…!"

    "…아뇨. 애초에 지금은 차례랑 별로 관계가…."

    "…그렇다네. 어차피 레이아양은 오늘 밤에…."

    …뭔가 주변이 소란스러운데.

    귓가에서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소곤소근 조요한 말소리였지만, 내 잠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실은 오랫동안 사람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반동으로, 사람 목소리에 조금 민감한 상태기도 했고 말이다.

    "…응…무슨 말 하는 거야?"

    "꺄아아악!"

    "으햐아아앗!"

    "꺄앗!"

    내가 눈을 뜨면서 질문을 하자, 고막을 울리는 높은 비명소리와 함께 내 얼굴 근처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셋이 동시에 파바밧하고 떨어져나갔다.

    아니. 그 와중에도 사라는 내 팔을 꽉 껴안고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디아나. 당황한 건 알겠는데, 사람 얼굴을 토닥토닥 때리지 마라.

    그야 아프진 않지만 말이야. 오히려 마사지 받는 기분마저 들지만 말이야.

    "자, 자네. 일어났는가?"

    "구, 구원이 이렇게 늦잠을 자다니. 별 일이네."

    "저, 정말이에요. 역시 무척이나 피곤하셨나 봐요."

    "……."

    수상해. 엄청나게 수상해.

    셋 다 뭔가 엄청나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태도였다.

    "너희 방금 전까지 뭐했어?"

    "따, 딱히 아무 것도 안 했네만?"

    "…레이아?"

    "정말이에요. 그냥 오랜만에 구원씨 얼굴을 보니까 너무 좋아서 다 같이 빤히 보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조, 조금 너무 만지작거리긴 했지만요…."

    과연.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중에 내가 갑자기 일어나서 놀랐다는 건가.

    천사님이 이런 걸로 내게 거짓말을 할리도 없으니,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로 했다.

    "거 보게! 이 몸이 뭐라고 했는가!"

    방금 전까지 쫄아있던 디아나가 가슴을 쫙 펴고 갑자기 당당해진 걸 보니까 또 괴롭혀주고 싶어지기는 했지만.

    "애초에 레이아한테 확인을 한다는 게 맘에 안 들어. 레이아 말만 믿을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사라는 옆에서 살짝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댔다.

    "오, 사라. 이제 좀 멀쩡해졌네."

    "머, 멀쩡해졌다니, 뭐야 그 말투. 마치 내가 멀쩡하지 않았던 것 같잖아."

    "아니. 실제로 멀쩡하지 않았잖아. 거의 반쯤 유아퇴행해서는 나한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도 않고."

    "유화퇴행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거든?!"

    뭐, 확실히 유아퇴행은 좀 과장한 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던 모습을 생각하니 달리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뭐, 아무튼 다들 잘 잤어?"

    "음. 자네도 푹 잔 것 같구먼."

    "후훗.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건드려도 일어나지도 않으시는 게 귀여웠어요."

    디아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아는 내 볼을 손끝으로 쿡쿡 찌르며 따스하게 웃었다.

    "그럼 다들 일어나자. 실비아나 마틸다도 불러서 다 같이 식사하고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아, 그러고 보니 마법사 협회 누님들도 날 찾는 거 도와줬다면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누가 말했어?"

    "음. 괜찮네. 안 그래도 자네가 일어나기 전에 확인해보고 왔다네. 어제 레이첼양이 알려주고 갔다고 하더구먼."

    "그래. 레이첼 누님이…."

    과연. 여관에 안 따라오셨던 건, 그런 이유도 있었던 건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이거 또 빚을 져버렸네.

    고백 건도 포함해서,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뭐,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이 상당히 많을 것 같지만 말이다.

    이번에 지상으로 올라가면 할 일이 상당히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디아나 이 녀석.

    내가 일어나기 전에 확인하고 왔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어제 입고 있던 옷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갈아입기까지 했으면서 굳이 또 내 위에 올라와있었던 거냐.

    아니. 뭐, 별로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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