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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65화 (44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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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바뀐 관계

    "저거랑 싸우면 소리 울리지 않을까?"

    우리는 일단 통로를 빠져나가지 않고, 위에서 수컷 개미를 내려다보면서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아니. 그래봤자 2.5계층의 몬스터다.

    그냥 잡는 것 정도야 별 문제 없겠지만, 문제는 이걸 남들한테 알리지 않고 잡아야한다는 거다.

    여기로 올 때 이미 주변에 모험가들이 없다는 건 확인했지만, 여왕개미의 방에서 거대 마석을 연구 중인 마법사 협회의 사람들이 문제였다.

    디아나가 나서서 입막음을 하는 방법도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이왕이면 수컷의 존재 자체를 남한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흠. 소리는 이 몸이 마법으로 막을 수 있네만, 문제는 땅울림이로구먼."

    "그렇지. 저런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야 울리겠지."

    저 놈도 여왕개미와 마찬가지로 날개를 달고 있고.

    여왕개미처럼 점프 공격이라도 하는 날에는…생각하기도 싫다.

    "좋아. 그렇다면 드디어 내가 전력을 다할 때가 온 모양이로군."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뭘 하려고?"

    "응? 뻔하잖아. 놈이 움직일 틈도 없이 죽이면 되는 거잖아? 즉, 암살이야."

    크크큭. 드디어 내 암살자란 직업을 전투에서 써먹을 때가 온 모양이군.

    지금까지 실컷 야한 짓을 할 때만 써먹었던 직업이지만, 여기 수준의 몬스터라면 내 암살자 레벨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난 직업이 암살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암살자, 무투가, 성자가 합쳐지면 얼마나 흉악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지.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몸에 힘 조절을 안 한 최고 위력의 성자의 손길을 두른다.

    그리고 은신을 사용해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다가간 후, 무투가의 스킬까지 병행해서 급소를 강타한다.

    암살자라는 직업은 급소 공격 시 데미지 배율이 증가하는 스킬을 패시브로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예전에 늑대개들을 중성화시키면서 얻은 급소 공격 데미지 배율 증가 스킬이 하나 더 있지.

    이 둘이 합쳐지면, 내 급소 공격은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낳게 될 거다.

    거기에 성자의 손길을 두른 무투가 스킬로 공격이라니.

    환상적인 콜라보다.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로 말이야.

    물론 아무리 그래도 저런 덩치를 한 방에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라와 연계까지 하기로 하고, 은신술을 사용해서 살며시 개미의 뒤로 돌아갔다.

    성기 강타라…남자로서 미안해지는 행위지만, 그나마 상대는 곤충. 포유류와는 기본적인 생김새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나는 미안한 마음을 그나마 좀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개미에게 뒤에서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나는,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어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돌이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발에 성자의 손길을 두르고 훌쩍 뛰어오르며 몸을 뒤집고 다리를 올려 찼다.

    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개미 녀석의 어그로도 끌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아마 사라의 귀에는 제대로 들렸을 거다.

    이거야 말로 사라하고만 가능한 환상의 연계 플레이라는 거다.

    나는 발에 놈의 급소가 닿기도 전에 이미 성공을 확신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섬머솔트 킥!"

    자, 어떠냐? 쾌감에 미쳐서 복상사냐? 아니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쇼크사냐?

    어느 쪽이든 좋아.

    나는 놈이 사정을 했을 때를 대비하여 위쪽을 쳐다봤다.

    비록 공중에서 몸이 뒤집혀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히 레벨을 올린 게 아니라고!

    지금의 내 신체능력이라면  그깟것을 피하는 것쯤은….

    퍼어엉!

    …뭔가. 지금 발에서 폭발음 같은 게 들렸는데. 내 기분 탓이겠지?

    아니. 그야 물론 괴성도 들리기는 했다. 수컷 개미의 끔찍한 단말마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지금 그게 아니었다.

    터진 거다. 내 발이 닿은 부분이.

    아무리 내 공격이 강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폭죽 터지듯 터지는 건 뭔가 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수컷 개미는 교미를 하면 바로 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죽는다고 했더라?

    잡아 먹혀서? 아니. 그건 거미 얘기였고.

    분명 개미는…사정과 동시에 성기가 터져서….

    "구원! 성공했어!"

    …응. 알아. 굳이 때릴 필요도 없이 사정만 시키면 죽는 놈이었거든. 이 녀석은.

    "응. 마석은 머리에 있으니까 대신 좀 캐줄래?"

    나는 최대한 냉정을 가장하고 사라에게 말했다.

    아마 개미의 몸에 가려져서 쟤들한테 내 모습은 안 보겠지.

    마석을 캐내서 개미의 몸이 사라지는 동안, 최대한 기분을 진정시키자.

    그렇게 마음먹어도 뺨을 타고 눈물이 한 줄기 흐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젠장. 난 왜 항상 잘 나가다 이런 꼴을….

    그리하여 우리는 무사히 개미의 성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마석을 캐내고 내 멘탈이 회복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굳이 말하자면 레이아의 가슴이 부드러웠다고만 말해두지.

    아, 참고로 드랍 된 성기는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지만, 잡기 전에 성기가 손상을 입더라도 드랍은 멀쩡한 모습으로 되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근처에 있던 구멍에 성기를 꽂아 넣고 3.5계층으로 향한 우리였지만, 3.5계층에 발을 디디자마자 곧장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우와앗! 으앗! 으아아!"

    "꺄악! 아파라아…."

    그랬다. 3.5계층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얼음 동굴이었던 거다.

    벽이나 천장뿐만 아니라, 바닥까지도 전부.

    그것도 하필이면 내려오는 통로 중간부터 갑자기 지형이 변하는 바람에, 방심한 우리는 그대로 미끄럼틀 타듯이 엉덩방아를 찧고 그대로 쭈욱 미끄러져 내려오게 됐다.

    "흠. 과연. 이런 지형이구먼. 과연. 이곳을 탐험하는 것도 꽤나 고생을 하겠구먼 그래. 그래도 코볼트 동굴이나 개미굴과는 달리 빛이 있다는 것 하나는 마음에 드는구먼."

    유일하게 엉덩방아를 찧지 않은 디아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냉정하게 상황을 관찰했다.

    저 몸치가 어떻게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냐고? 간단하다. 날고 있거든. 저 치사한 녀석.

    "이왕이면 우리도 좀 도와주면 안 됐냐?"

    "이 몸도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네만, 아무래도 이 인원을 전부 띄울 정도로 대량의 마나를 모으기에는 경황이 없어서 말일세."

    …확실히. 이해는 된다. 아무리 대마법사님이라도 대비도 못하고 갑자기 미끄러진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마법을 사용한 거다. 자기 몸을 간수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겠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혼자 공중에 떠서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말하니까 뭔가 열 받는다.

    "하지만 어떻게 하죠? 이래선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텐데요."

    "그러네. 일단 다시 올라가서…."

    젠장. 못 올라가잖아.

    체감 상 우리는 꽤나 긴 길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평지에서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미끄러운 바닥인데, 오르막길을 올라가라고?

    마석 채취용 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얼음벽에 꽂으면서 등반하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전원이 두 자루씩 쥐고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나이프를 넉넉히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디아나. 마법으로 우리 전원을 위쪽 계층 올리는 건 가능할까?"

    "음? 아니. 불가능하네. 그 전에 마나가 다할 걸세."

    "그, 그런…그렇다면 저희는…. 대체 어떻게 해야…."

    레이아는 넘어지면서 걷어 올라간 치맛자락을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개조한 사제복은 옆쪽 슬릿이 깊게 파여 있어서 멋진 각선미가 그대로…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괜찮아. 내게 생각이 있어."

    어쩔 수 없지. 이런 비상시다. 조금 희생을 해볼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내 옷을 잔뜩 꺼냈다. 그래. 아무런 장식도 없는, 투박한 천 옷 말이다.

    "옷? 갑자기 그런 걸 꺼내서 어쩔 셈인데?"

    "뭐, 보고 있으라고."

    나는 꺼낸 옷가지들을 여러 겹 겹쳐 발에 둘러 묶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어떻게든 될 것 같네."

    몸을 꾸미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착용감마저 그다지 좋지 않은 투박한 천 옷이었지만, 그 투박함이 이번에는 도움이 됐다.

    이렇게 발바닥에 깔고 있으니 제대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마찰력을 만들어주는 거다.

    뭐, 그래도 조금 방심하면 넘어질 것 같기는 했지만, 임시방편치고는 꽤나 쓸 만했다.

    "어머. 대단하세요."

    "헤헷. 그렇지. 그렇지?"

    "으, 으응…대단하네. 와아. 구원 똑똑해."

    "……."

    "뭐, 뭐야. 그 시선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치, 칭찬해 달래서 칭찬해줬잖아?!"

    내 침묵의 의미를 자기도 대충 알고 있는 건지, 사라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내게 항의해왔다.

    "어, 응. 고마워. 귀여웠어."

    "귀, 귀엽…?! 갑자기 왜 귀엽다는 말이 나오는데?!"

    아니. 어색한 모습으로 열심히 칭찬하려는 모습이 깜찍했다고.

    뭐 입 밖으로 내면 또 부끄러워하면서 때릴 지도 모르니까 말은 안 하겠지만.

    "자, 자. 그러지 말고 다들 발에 이거 두르라고."

    "으으음…."

    사라는 내가 얼버무리려고 하는 게 맘에 안 든다는 듯 살짝 날 노려봤지만, 그래도 착실히 옷가지를 받아서 나처럼 발에 둘렀다.

    레이아와 실비아, 마틸다도 다들 발에 옷가지를 두르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게 됐다.

    "꺄악! 죄, 죄송해요."

    그리고 겨우 출발하려고 했던 그때, 갑자기 레이아가 내 팔에 매달려왔다.

    덕분에 이런 식으로 내 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커다란 가슴이 내게 마구잡이로 짓눌려왔다.

    갑옷 때문에 아쉽게도 감촉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짓눌린 모양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요. 오히려 감사합니다. 감사…커헉."

    "하여간 이 바보는…."

    결국 본심을 말한 나는 다시 한 번 사라에게 등짝 스매시를 맞게 됐고, 레이아는 잠깐 방심한 것뿐이었는지 곧장 내 팔에서 떨어져 균형을 잡았다.

    "크, 크흠! 자네! 이 몸에게도 옷가지를 주게나."

    그리고 그런 레이아를 보고, 디아나가 내게 손을 뻗어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나는 일단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뭐? 왜? 디아나는 떠다닐 수 있잖아?"

    "언제까지나 쓸데없이 마나를 소모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뭐, 그거야 그렇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지만.

    그 증거로….

    "우아앗! 이, 이거 정말로 꽤나 균형 잡기 힘들구먼…."

    디아나는 발에 옷가지를 두르자마자 곧장 내게 안겨왔다.

    다만,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넘어질 뻔했지만.

    하여간 몸치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긴 3.5계층이니까. 말해두는데 업고 다닐 수는 없다."

    아직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벨만 따지고 보면 딱 우리 레벨에 적합한 계층일 거다.

    뭐, 우리 파티는 레벨에 비해서 훨씬 강한만큼 그다지 힘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방심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알고 있네."

    디아나는 대답하고는 내 팔에 매달려 천천히 균형을 잡았다.

    "차라리 레이아랑 같이 붙어있지 그래?"

    "무, 무, 무슨 소릴 하는 겐가?! 그럴 필요 없네! 안 춥지 않나?!"

    확실히. 3계층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3계층과는 다르게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일까?

    그냥 조금 서늘한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뭐, 만약 추웠더라도 디아나가 따로 뭔가 준비해왔겠지만 말이야.

    추운 곳에 갈 거란 걸 알게 되자마자 바넷사를 애타게 찾기도 했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균형 잡기 힘들잖아? 난 앞에서 있어야 하니까 계속 나한테 매달려있을 수도 없고. 실비아도 전위. 사라는 활을 쏴야하고, 마틸다는 후위진의 호위. 남은 건 레이아밖에 없잖아."

    "그러네요! 네! 그래요! 자, 디아나씨. 이리 오세요!"

    레이아. 엄청 좋아하네.

    뭐, 기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디아나 얘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은 냄새 나고, 안고 있으면 기분 좋지.

    "시, 싫네! 가슴은…가슴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아나는 또 다시 레이아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레이아의 커다란 가슴을 머리 위에 얹고 있는 디아나의 표정이 그렇게 안쓰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뭐, 원인을 따지자면 나 때문이지만.

    "그럼 갈까. 일단 목표는 3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는 거야. 우선 여길 빠져나가서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재정비하고 오자고."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의  3.5계층 탐험이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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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밤에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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