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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50화 (33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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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마석의 정체

    하지만 그런 내 분노의 외침도, 구원을 목 놓아 부르짖는 광신도들의 함성 앞에서는 그저 조용히 묻혀 사라질 뿐이었다.

    "디아나. 혹시 목소리를 키워주는 마법 같은 것도 있어?"

    "으, 음. 필요한가?"

    디아나도 이 광신도들의 물결을 바라보며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디아나뿐만이 아니다.

    레이아와 마틸다는 얼마나 놀랐는지, 광신도의 물결에 겁을 먹고는 내 뒤에 숨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나 이외의 남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라는 온몸이 검은 오라에 휩싸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살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나마 사라가 이렇게까지 살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저렇게 외쳐만 대고 있는 거겠지.

    이 광신도들은 모험가도 아닌 그냥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실비아마저도 전투 모드로 들어가서 검을 뽑은 채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으니 더욱더 다가오기 힘들었겠지.

    "응. 걸어줘."

    디아나가 목소리 증폭 마법을 걸어준걸 확인한 후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배에 힘을 주고 한 번에 내뱉으며 외쳤다.

    "다들 닥쳐어어어어어!"

    생각보다 목소리가 훨씬 크게 나와서, 주변 일대가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크흠. 그럼 거기 너."

    "네. 아, 넷!"

    살짝 무안해진 나는, 앞에 있던 한 광신도를 가리켰다.

    "네가 대표로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봐."

    "그, 그러니까…다, 당신께서 여신님께서 보내주신 성자님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목당한 남자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이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그게, 여러 소문들이…사제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어떤 음유시인의 말로는 아무도 치유 못하는 저주에 걸린 추기경님마저 치유해주고 계시다고…."

    좋아. 일단 살생부에 제일 처음 이름이 적힐 새끼는 그 호인족 새끼다. 그 새끼 이름이 뭐더라.

    "그래서?"

    "네, 넷?"

    "그래서, 너희는 지금 이렇게 떼거지로 모여서 나한테 뭘 구원해달라고 하는 건데?"

    "성자님께서 그 위대하신 기술을 전수해주시면, 제 아무리 능력이 안 되는 남자라 할지라도 여자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또 뭔 개…아, 설마…야. 그건 누구한테 들었는데?"

    "저,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확실히 구원받은 커플이 하나 있다고…."

    요한, 한나 이 새끼들….

    그 호인족 새끼도 그렇고, 여기 새끼들은 왜 이렇게 입이 싸?

    그 행동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된다는 거 알고 있냐?

    "그러니까 즉, 이런 말이렷다. 여기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여자를 만족시킬 줄 모르는 놈들이라, 나한테 구원을 바라고 있다고?"

    "그, 그렇습니다! 불쌍한 저희를 제발 구원해주십시오, 성자님!"

    "구원해주십시오오오!"

    사내가 그렇게 외치자, 다른 놈들도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다시 구원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이름가지고 말장난…! 아오! 썅!"

    나는 화를 내려고 했지만, 필사적으로 엎드려 조아리며 구원을 외쳐대는 남정네들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얼마나 필사적이면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여자 한 번 제대로 만족시켜보지 못한 이들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매달리는 거다.

    물론 나는 그런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래도 똑같이 거시기 달고 있는 남자로서 이 자들이 어떤 심정일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물론 불쌍하다고 하더라도,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말이다.

    한둘도 아니고 이 많은 수를 어떻게 일일이 강의해줘?

    떼로 모여서 단체 난교라도 벌이면서 강의를 해?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어설픈 놈들은 지적도 해주고? 그런 짓은 죽어도 못한다.

    나는 일단 이들을 타일러서 돌려보내기로 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제 얘기를 들어보시오!"

    나는 정말로 성자라도 된 것 마냥 팔을 벌리고 목소리를 내리 깔며 최대한 장엄하게 말했다.

    아니. 정말로 성자가 맞기는 하지만, 그 성자 말고 말이야.

    내가 외침을 듣고, 구원을 부르짖던 남정네들이 순식간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조용해졌다.

    시커먼 사내새끼들이 떼로 모여서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괜히 때리고 싶어지니까.

    "여러분의 딱한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저도 힘이 된다면 어떡해서든 돕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 지금 여러분들을 구원해주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을 하는 중입니다!"

    내가 그렇게 외치자, 방금 전까지 기대가 잔뜩 담겨있던 눈동자들이 다들 분노의 빛으로 물들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니들이 지금 성생활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건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비하면 별 중요한 일도 아니라고 말한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날 보고 있을 수 있을까 보자고.

    나는 바로 등 뒤에 있던 마틸다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옆으로 끌어안았다.

    "이 가련한 여성이 보이실 겁니다! 이 아름다운 여성이 바로 아까 이름이 나왔던 저주받은 추기경, 마틸다 추기경입니다! 시선이 닿는 남성 모두에게 사랑에 빠지고, 그 남성들을 전부 성불능자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저주를 혼자 끌어안고 홀로 고생하시던 훌륭한 분이죠!"

    "히, 히이이이이익!"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순식간에 우리 주변으로 반경 20미터 정도가 공터가 됐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밀려서 넘어지고 밟히면서 부상자까지 생길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들은 순식간에 내 주변에서 멀어졌다.

    아무리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작동이 아예 안 되는 건 두려운 모양이다.

    나도 애초에 이걸 노리고 마틸다를 끌어들이긴 한 거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니들 너무 반응이 심한 거 아니냐? 애 울겠다.

    "가련한 여성…. 아름다운 여성…."

    응.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마틸다는 내게 안긴 채 몽롱한 눈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내 얼굴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튼 의도대로 되가는 거 같으니, 나는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세상에는 아직도 수천 명의 남성이 저주 때문에 제대로 물건을 세우지도 못한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정도 딱하나, 아쉽게도 제 몸은 하나뿐! 저는 성자로서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일단 물건조차 세우지 못하는 분들부터 구원해드리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내가 좌중을 둘러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남자들은 아무 말 못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쯤은 마틸다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그러는 느낌도 있었지만.

    오버하지 마라. 아무리 마틸다라도 너희 같은 놈들이랑 고작 시선이 마주쳤다고…안 반하지?

    "그, 그렇다면 성자님! 그 분의 저주를 해결하면, 그 다음은 저희 차례인 것입니까?!"

    그때 한 용감한 젊은이가 고개를 들고 그렇게 외쳤다.

    어지간히도 여자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입니다! 그러니 여신님을 섬기는 신도 여러분, 지금은 안심하고 자리를 떠나십시오. 저주는 꾸준히 치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제 길을 막으시면, 그만큼 저주의 치료도 늦어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물건이 서지 않아 고통 받고 있는 남성들이 더 괴로워하는 시간도 길어지게 되며, 여러분의 성생활이 개선되는 것도 그만큼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서 머리 양 옆으로 힘차게 들어올리고, 세상에 이보다 더 설득력 넘칠 수 없는 어조로 외쳤다.

    그 설득력 넘치는 어조에 수긍한 건지, 구원을 외치던 남자들의 물결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술렁였다.

    좋아. 먹혀들었군.

    "그럼 저는 곧장 저주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만!"

    나는 마틸다를 앞세워서 인파를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마틸다를 중심으로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땀내 나는 남자들로 이루어진 물결이 파도치면서 길이 열렸다.

    설마 마틸다의 저주가 도움이 될 날이 올 줄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내가 길을 뚫고 가자, 우리 애들도 상황을 눈치 챘는지 황급히 뒤를 따라왔다.

    "후우. 깜짝 놀랐네. 뭐야 저거. 내가 언제 나올 줄 알고 저렇게나 많은 인원이 길드 앞에 진을 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고급주택가에 들어선 후에야,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여기는 주로 귀족들이 살고 있는 만큼, 대부분 일반인으로 보였던 그 남자들이 무작정 들이닥치기 힘들 거다.

    "그만큼 필사적이었다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어쩌려고 그런 소리를 했는가?"

    "응? 뭐가?"

    "나중에 구원해주겠다느니 하는 소리 말일세. 진심으로 한 소리인가?"

    "아니. 당연히 거짓말인데. 그러네. 이제부터 안 들키게 로브 뒤집어쓰고 숨어 다니면 되지 않겠어?"

    "자넨 사람의 집념이란 걸 너무 우습게 보는 모양이구먼."

    디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쪽 방면으론 디아나가 내 선배였지.

    내가 끝까지 사람 눈을 피해 다닐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게다가, 자네가 그렇게 말하고 끝까지 아무것도 안 하면 신전에서 나설 수도 있네."

    "응? 신전에서? 왜?"

    "여신님의 사자니 뭐니 자네 입으로 떠들지 않았나. 그런 자가 약속을 안 지킨다고 생각해보게. 어떻게 되겠나? 여신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신전에서 자네를 압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가? 아무리 이 몸이라도 여신님의 존엄을 위해 나서는 신전을 압박을 막아주기는 힘드네."

    "에, 에이 설마…진짜로?"

    나는 우리 파티에서 신전의 뜻을 제일 잘 알고 있을 마틸다를 쳐다봤다.

    그러자 어느새 자기만의 세상에서 빠져나와있던 마틸다가 살짝 미안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난 마신이랑 싸울지도 모르는 몸이야! 그런 데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어?!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돌아가서 좀 쉬자!"

    나는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외치고는 저택으로 향했다.

    "다녀오셨습니…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저택으로 돌아가자, 언제나처럼 바넷사가 현관에서 마중을 하다가 그렇게 물었다.

    바넷사가 보기에도 우리 표정이 상당히 피곤에 찌든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바넷사 너…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거야?"

    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던 거다.

    게다가 내가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상황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던 인파만 해도 그 정도였다.

    아마 이 며칠 동안 도시 전체에 나에 대한 소문이 진동하고 있었던 거겠지.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하지만 무슨 말인지 바넷사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이 슈퍼 집사의 약점을 하나 알게 됐군.

    이 녀석,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항상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까 소문이 무진장 느려.

    뭐, 그래서 그게 어쨌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만.

    "아니. 아무것도 아냐. 일단 쉬고 싶은데 준비해줄 수 있을까?"

    "네. 일단 욕실에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그 큰 욕실 말하는 거지? 좋네. 큰 욕탕에서 몸을 푹 담그고 있고 싶어. 그럼 다들 같이 씻으러 갈까?"

    "은근슬쩍 사리사욕 채우려고 하지 마!"

    쳇. 완벽한 작전이었는데. 어째서 들킨 거지.

    "왜 안 돼?! 그냥 같이 씻기만 할게! 시중드는 메이드들은 물리면 되잖아? 다 같이 사이좋게…."

    "구원. 나랑 같이 씻어서 그냥 씻기만 한 적이 딱 한번이라도 있었어? 다들 알몸으로 있는 곳에서 무슨 짓을 하려고?"

    "구원씨…아무리 그래도 다들 계시는 곳에서는…."

    "그, 그래요! 파렴치한 것도 정도가 있어요!"

    심지어 사라뿐만 아니라 천사님마저도 내가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걸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이제는 성직자가 레이아 혼자가 아니다보니, 더 반발이 거세졌다.

    마틸다 너는 애초에 타겟도…아니, 뭐, 몸매는…응. 그래. 인정해주겠다만. 크윽.

    "…얌전히 방에서 씻겠습니다."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다니….

    결국 선동에 실패한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음. 기다리고 있게. 이 몸이 곧 가겠네."

    "우으…."

    디아나가 기분 좋게 말하자, 날 팩트로 공격하던 사라가 울상을 지었다.

    헤헹. 꼴좋다. 사라야. 그게 바로 자업자득이라는 거다. 반대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욕실에서 나랑 좋은 일이라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렇게 사라를 한 번 웃어주고는, 혼자 쓸쓸히 방으로 돌아갔다.

    뭐지. 이 패배감은.

    아냐. 잠깐만 기다리면 나에겐 디아나와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욕조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 후,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디아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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