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44화 (32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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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마석의 정체

    "그럼 저도 가볼게요. 다시 한 번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보수는 길드로 오시면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레이첼 누님도 호인족 파티와 같이 가려는 듯 우리 파티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마 구조 의뢰의 보수 문제 같은 뒤처리로 같이 처리할 게 남아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나는 레이첼 누님이 저 호인족을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레이첼 누님과 그냥 치료를 위해서 몸을 한 번 섞었을 뿐, 그런 문제로 이러쿵저러쿵할 사이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럼 우리는 다시 계층의 주인이나 만나러 갈까?"

    그렇게 모험가 파티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다시 인원이 팍 줄어든 파티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네? 설마 지금 당장 가자는 말인가요?!"

    그러자 마틸다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그동안 별 문제없이 있더니, 다른 사람을 다 도와주자마자 다시 미궁에 있기 싫어진 모양이다.

    "응. 당연하지. 아직 대낮이잖아."

    아니. 언제나 밝기가 일정한 미궁에서 이런 말은 안어울리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시간은 아직 대낮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이었다.

    애초에 저 모험가들을 구해줄 때도 대낮이었던 거다.

    그런데 거기서 하루를 묵고, 또 같은 속도로 여기까지 돌아왔으니까. 대낮에 돌아오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 하지만…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출발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마틸다는 미련이 뚝뚝 남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또 여기서 하루를 소비하고 출발하는 것보다는, 아예 얼른 계층의 주인을 잡아버리고 돌아와서 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데 말이야.

    "마틸다양 말대로 하세. 아무리 여로가 편했다고는 하나, 며칠동안 던전 안을 돌아다녔던 걸세.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시 출발하세."

    하지만 그런 마틸다를 배려해준 건지, 디아나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파티에서 가장 던전의 주인을 만나고 싶은 건 바로 디아나다.

    거기에 그 거대 마석이 또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디아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나도 마냥 바로 출발하자고 우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루 묵으러 여관으로 돌아가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상외의 인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 여어, 구원! 우연이로군!"

    바로 아라크네의 간부 중 하나이자, 내 동정을 뺏어간 여자. 앨리시아였다.

    앨리시아는 날 보자 꽤나 기쁘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히이익!"

    그리고 난 그 얼굴을 보자마자 일단 비명부터 질렀다.

    "뭐, 뭐야 이 새끼?! 사람 얼굴 보자마자 실례잖아!"

    "네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라! 비명이 안 나오게 생겼나!"

    "윽…자, 자업자득이잖아 새끼야!"

    "아무튼 네가 날 죽도록 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저리 가! 다가오지 마!"

    나는 곧바로 사라의 등 뒤로 숨어서 외쳤다.

    그리고 사라도 비장한 표정으로 내 앞에 척하고 막아섰다.

    여전히 앨리시아는 경계되는 모양이다.

    앨리시아도 왠지 사라한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는지,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기만 했다.

    본능적으로 용사의 힘이라도 느낀 건가?

    아무튼 사라가 있어줘서 든든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한참 사라와 눈싸움하던 앨리시아는 결국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으윽…그, 그래. 내가 조금 심하긴 한 것 같다. 미안하다."

    솔직히 내가 사과 받을 입장이 아니기는 하니까 저렇게 마지못해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저렇게 사과하기 싫으면 그냥 나랑 말을 안 하면 그만 아닌가?

    아니면 또 나한테 볼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여기서 만난 건 우연이다. 볼 일이고 뭐고 없을 텐데.

    아무튼 앨리시아가 저렇게 나오니, 이걸 이용해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과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이 새…그럼 어쩌라는 건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귀여운 목소리로 ‘우왕! 앨리시아가 너무 미안해쪄요!’라고 외치면 인정해주…."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지?!"

    "사라 실드!"

    "그런 거 없어. 이번엔 구원이 잘못했어."

    나는 다시 한 번 사라의 뒤로 숨으려고 했지만, 사라는 옆으로 홱하고 피해버렸다.

    설마 사라가 배신을 할 줄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앨리시아! 협상을 제시한다!"

    앨리시아의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나는 먼저 선수를 쳤다.

    "이 새끼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전에 때린 건 용서해줄 테니, 너도 내가 방금 내가 한 소리를 용서해줘라! 어때? 공평하지?"

    앨리시아는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만을 내뱉었다.

    "으, 응?!"

    "뭐 문제 있어?! 공평하잖아?!"

    "아, 아니…뭐…그런…가?"

    앨리시아는 내 기세에 눌려서 긍정하면서도, 뭔가 석연찮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긴 뭐가 그래. 네가 완전히 손해 보는 거지.

    "아무튼 그래서. 앨리시아. 네가 여기 웬일이냐? 5, 6계층이나 다녀야 되는 거 아냐?"

    앨리시아가 더 곰곰이 생각하기 전에, 나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건 다른 놈들이 열심히 하고 있어. 난 원래부터 교육 담당이니까. 이번엔 쟤들 교육으로 온 거야."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식당의 테이블 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칸나 세레나 에이미라는 아라크네의 삼인방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테이블에 엎어져있었다.

    "쟤들 얼마 전까지 2계층도 힘들어하던 애들 아냐?"

    "언제 적 얘길 하는 거냐. 그리고 사람은 원래 굴리면 굴리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저 삼인방에게 급격하게 동정심이 느껴졌다.

    니들 진짜 상관 잘못 만나서 죽도록 고생했겠구나….

    저렇게 하나같이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강하게 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해주는 것 밖에는.

    "그보다 너희도 이 마을에 도착한 걸 보면, 이제 슬슬 3계층에 자리를 잡고 제대로 둘러볼 생각인 거냐? 그럼 어때? 우리랑 같이…."

    "아니. 4계층으로 넘어갈 생각인데."

    "뭐, 뭐?!"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시아가 갑자기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게 앨리시아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엎어져 있어도 일단 얘기는 듣고 있었던 건지, 삼인방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는 제발 그러지 말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뭐야? 뭔데? 왜 그러는 건데?!

    "너희 3계층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아, 그런데 우리가 조금 세야 말이지. 게다가 5계층에서 얻은 물건들로 장비도 강화하고 나니까 너무 쉬워서 말이 안 나올 정도더라. 사실 그래서 다시 여기 올 것도 없이 바로 4계층에 갈 생각이었는데, 조난당한 모험가를 구조해주느라 잠깐 돌아온 것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라크네 삼인방은 절망에 빠진 얼굴로 날 원망하듯 노려봤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4계층으로 간다는데 너희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그, 그러냐…."

    그렇게 중얼거리는 앨리시아는 일이 맘대로 안 풀린다는 것처럼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원. 얘기 끝났으면 얼른 가자."

    "음. 이 몸도 어서 식사가 하고 싶구먼."

    "구원씨. 이쪽이에요."

    그리고 앨리시아와의 얘기가 끝났다고 판단되자마자, 우리 애들이 나한테 달라붙어서 식당 쪽으로 날 밀어댔다.

    그것도 아라크네 삼인방이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테이블 쪽으로.

    "이, 이봐! 잠깐! 그럼 같이 식사라도…!"

    "미안하지만. 파티원끼리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요. 계층의 주인을 잡으러 가는 거니까 전술이라든지 여러모로 할 얘기가 많거든요. 이해해줘요."

    앨리시아가 미련이 남는 듯 우릴 붙잡으려고 했지만, 사라가 냉랭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그, 그런 거라면 나도 도와주지! 3계층의 주인이라면 몇 번이라도…!"

    "자네가 감히 이 몸에게 조언을 하겠다는 겐가?"

    "윽! 으으으으…!"

    마법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겠지만, 아라크네의 간부들에게는 이미 우리 파티에 디아나가 있다는 게 알려졌다.

    방금 말을 한 게 누군지 앨리시아도 바로 눈치 챘겠지.

    앨리시아는 결국 끙끙거리기만 하면서 더는 우릴 붙잡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앨리시아가 우리한테 저렇게 엉겨 붙으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하는 태도만 보면 마치 어떻게든 좋아하는 여자를 꼬셔보려는 남자같은 모습인데, 설마 저 앨리시아가 날 좋아할 리도 없고…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앨리시아 얘. 레즈 플레이 의혹도 있었잖아.

    설마하니 우리 파티 중 누군가가 맘에 드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아까 사라한테 눈싸움도 졌어!

    설마 사라한테 눈독 들이는 건가!

    "앨리시아!"

    "뭐, 뭐야?"

    내가 이름을 외치자, 앨리시아가 다시 얼굴이 밝아지면서 대답했다.

    역시나 좋아하는군.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좋아할 거 없다. 같이 식사하자고 말하려는 거 아니니까.

    "우리 사라는 못 준다! 이 레즈비언아!"

    "……뭐 이 미친 새끼야?!"

    앨리시아는 한동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굳어 있다가, 맹수처럼 내게 달려 들어왔다.

    그러자 이번엔 바로 사라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서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사라의 앞으로 나섰다.

    "사라! 위험해! 쟤 저러면 네가 막을 줄 알고 수작부리는 거야!"

    "그,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새끼야!"

    앨리시아는 날 한 대 치더니,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리고는 결국 씩씩대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구, 구원 괜찮아?"

    "사라를 지킬 수 있었으니 난 만족해."

    그럼. 한 대 맞고 내 여자에게 마수를 뻗으려는 사악한 레즈비언을 물리칠 수 있었으니까.

    이정도면 값싼 대가라고 봐야지.

    "이 몸이 보기엔 자네가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는 것 같네만."

    "어허. 뭘 모르는 소리. 쟤 레즈비언이 확실하다고. 다들 앞으로 조심해."

    "흐음. 뭐, 알겠네."

    디아나는 뭔가 더 말하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이아."

    "네?"

    "치료 좀 해주세요. 하여간 저건 무슨 여자가 힘만 세서는."

    "후훗. 네. 이리 오세요."

    "결국 또 그건가!"

    디아나가 또 다시 질투심을 폭발시키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치료를 위해서라는 확실한 대의명분이 있다.

    나는 천사님의 품에 안겨서 힐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계층의 주인을 상대하는 전술이란 게 뭔데?"

    식사를 하면서, 나는 아까 사라가 앨리시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는 그렇게 물었다.

    3계층 몬스터들이 하나같이 너무 쉬워서 별 생각 없이 가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렇게 가기는 위험했다.

    3계층의 주인이라는 건, 4계층의 초월종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하다는 거니까.

    "일단 자네는 시작하자마자 성자의 파동을 쓰게."

    "응. 그리고?"

    "적당히 주의를 끌면서 피하고 있으면 이 몸과 사라양이 끝장을 내겠네."

    "그리고?"

    "음? 그게 전부네만. 원래대로라면 공격 패턴을 숙지해서 제대로 맞서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사라양과 이 몸이 같이 공격한다면 그런 다양한 공격 패턴이 나오기도 전에 끝날 걸세. 그뿐인가. 사라양의 레벨을 올릴 생각이 아니라면, 자네의 성자 스킬만으로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네."

    "아니. 아까 앨리시아한테는 뭔가 거창한 회의라도 할 것처럼 말하지 않았어?"

    "이 몸은 그런 말 한 적 없네만."

    그러고 보니 그랬지.

    내가 자연스럽게 사라를 쳐다보자, 사라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뭔가 더 준비해야 될 줄 알았는데, 필요 없었던 모양이네."

    "사라양도 참 조심스럽구먼."

    "던전을 다니는 모험가로서는 기본이죠."

    "음. 바람직한 자세일세."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잘 논다.

    이럴 거면 앨리시아를 그렇게 따돌리지 않았어도…아니. 그 레즈비언이 우리 애들이랑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아마 사라는 내 동정을 뺏어간 앨리시아를 경계해서 그런 거겠지만, 결과적으론 잘 한 일이 되는 건가.

    그건 그렇고 사라도 참 질투할 애가 따로 있지.

    앨리시아가 나 때리는 걸 봐라. 저게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가.

    앨리시아에 한해서는 절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사라도 날 때리지 않냐고?

    전혀 달라. 사라가 때리는 건 애정이 느껴지지만, 앨리시아가 때리는 건 폭력밖에 느껴지지 않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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