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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09화 (29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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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

    나는 내가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표현에 조심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마틸다 걔 저주는 여자밖에 걸리지 않는 거야?"

    "네? 그게 무슨…?"

    "아니. 숙주가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이 성불구자가 되는 거잖아? 그럼 만약 저 저주가 남자한테 걸린다면, 그 남자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도 성불구자가 되지는 않는 거 아닐까 싶어서."

    여자가 성불구자가 된다는 게 상상이 안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물어본 거다.

    다만 처음에 저주 설명을 들을 때 여자를 숙주로 삼는다고 들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네. 기본적으로 여성만을 숙주로 삼는 저주로 알려져 있어요."

    레이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역시나 그런 건가.

    하지만 레이아의 말에서 약간 걸리는 게 있었다.

    "기본적으로라는 게 무슨 말이야? 뭔가 다른 방법으로는 남성을 숙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을 숙주로 삼은 경우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맞겠네요. 저 고대의 저주는 교에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저주라, 상세한 내용은 전부 마틸다 추기경님을 통해 알아낸 게 전부에요."

    "하지만 원래는 다른 사람의 몸에 걸려있던 저주였고, 마틸다도 그걸 자기 몸으로 옮긴 거잖아? 그럼 다른 사람에게 또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 아냐? 남자 성직자도 분명 있을 텐데, 아무도 실험해볼 생각은 안 한 거야?"

    "물론 그렇지 않아요. 구원씨처럼 만약 남자의 몸에 저주를 옮기면 저주가 효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많았거든요. 마틸다 추기경님께선 스스로 희생하기 위해 다른 분의 몸에 옮기는 건 완강히 거부하셨지만, 결국 그 말에 설득 되어서 다른 남성분에게 저주를 옮기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결과는?"

    "결과는 그게…보시는 대로…."

    "남자의 몸에는 저주를 옮기지 못한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라서 옮기지 못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옮기지 못한 건지는 저희도 잘 몰라요. 저주를 옮기는 방식이…그게…."

    나는 우물쭈물하는 레이아를 보고 대충 그 방식이 뭔지 예상이 됐다.

    "섹스구나."

    …응? 아니 잠깐. 원래 저 저주에 걸렸던 사람도 여자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마틸다는 그 저주를 자기 몸으로 어떻게 옮긴 거야?

    "비슷해요. 성기를 맞대고 신성력을 운용하여…."

    과연! 섹스가 아니라 그냥 성기를 맞대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럼 마틸다는 그 원래 저주에 걸렸다는 사람과 가위치기를…! 상상이 부풀어 오른다.

    "응? 잠깐. 신성력을 운용해야 되면, 사제가 아닌 다른 사람 몸에는 저주를 못 옮기는 거야?"

    "네. 기본적으론 그래요. 물론 다른 사제가 도와주면 옮길 수도 있겠지만요."

    "그, 그렇구나. 말 끊어서 미안해.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된 거야?"

    "네. 성기를 맞대면 아무래도 마틸다 추기경님께서 상대분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셔서요. 상대 성직자분은 저주를 옮기기도 전에 성 능력을 상실하는 저주에 걸려버리셨죠. 그래서 남성분이라 저주를 옮기지 못한 건지, 아니면 저주에 영향을 받아서 저주 본체를 옮기지 못한 건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에요."

    "응? 잠깐만. 그러면 마틸다의 저주를 일단 다른 여자 사제에게 옮기고, 그 여자에게서 남자에게 옮기기를 시도하면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거 아냐? 마틸다가 남한테 심하게 잘 반하는 게 문제인 거잖아."

    "아뇨. 그것도 해봤어요. 하지만 저 저주는 숙주가 사랑하는 사람만 성불구자로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숙주도 이성을 사랑하기 쉽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죠. "

    "뭐?! 그럼 마틸다는…!"

    "아뇨. 다른 분들은 마틸다 추기경님만큼 쉽게 반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으니까 아마 마틸다 추기경님은 원래…아, 아무튼요."

    아, 얼버무리려고 했다.

    마틸다…너란 녀석은 대체…. 우리 천사님마저 커버하기 힘들어할 정도라니….

    "그렇게 저주에 의해서 사랑하기 쉬워진 상태가 되고, 거기에 이성과 성기를 맞대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닌 이상, 사랑스런 마음이 들지 않을 리가 없죠. 특히 저희는 여신님의 가르침에 따라 성교는…."

    아아. 과연. 그러고 보니 여기 종교애들은 유독 성행위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제대로 카운터를 치는 저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여신님 입장에서도 엄청 기분 나쁠 저주네.

    여신님을 노리고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여신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저주다.

    사랑하는 것도 안 돼, 성행위도 안 돼, 그에 따라 아이를 낳는 것도 불가능해지는 저주.

    "아무튼 그래서 결국 다른 여자 몸에 옮기고 거기서 또 남자에게 옮기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전부 남자가 고자가 되는 걸로 끝났다고?"

    "네…. 결국 마틸다 추기경님께서 모든 짐을 짊어지시기로 하시고 다시 저주를…."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그냥 저주에 걸린 사람에겐 저주 본체를 옮길 수 없다는 것 일뿐, 남자에게 옮기는 건 가능하다는 것만 확실해져도 내가 한 번 해볼 텐데.

    절반의 확률에 걸기에는…아니. 하지만 고작 성기를 맞대는 것뿐이다.

    방금 전 불가피한 상황에선 섹스까지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절반의 확률에 걸고 그 정도 시도해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불가피한 상황에선 섹스까지도 상관없다는 말을 방패로 삼아서 아무 여자하고나 마구 섹스를 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하지만 얘들도 마틸다가 계속 우리 저택에 죽치고 있는 것보다는, 내가 한 번 성기를 맞대는 걸로 저주를 풀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내보내는 게 더 맘 편할 테니까.

    그럼 내가 어디 한 번…아니. 잠깐만. 만약 남자한테 저주가 옮겨진다고 해도, 정말 그걸로 끝일까?

    저 저주가 숙주를 성불구자로 만다는 게 아닌 이상, 나조차도 저주를 몸에 옮기면 계속 저주의 숙주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자가 숙주가 됐을 때 저주가 어떤 작용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여자가 성불구자가 된다는 건 상상이 안 되지만, 내 상상을 뛰어넘는 뭔가가 발동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되는 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우리 애들이다.

    …역시 내 몸으로 저주를 옮긴다는 생각은 너무 안일했던 건가.

    "그래서. 결국 그런 질문을 해댄 이유가 뭔가? 이 몸으로선 자네 몸에 저주을 옮기기 위해 질문을 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네만."

    그때 디아나가 팔짱을 끼고 이 몸을 지그시 노려보며 말했다.

    …아차!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지다 보니까, 안 들키게 주의하면서 질문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그게…."

    "말 해. 던전에서 마틸다씨랑 무슨 일이 있었어?"

    "잠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정이야?! 사라 너 너무한 거…."

    "그럼 아무 일도 없었어?"

    "이, 있었다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고…."

    "확실히 말해. 아까 별 일 없었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어?"

    젠장. 말할 수밖에 없는 건가.

    말 안하면 오히려 더 엄한 오해만 낳을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게 아니라, 던전에 있을 때 어쩌다보니 마틸다한테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평소처럼 바로 얼버무려서 아무도 눈치 못 챈 모양이지만, 평소완 다르게 확실하게 끝까지 고백을 들었어. 그런데 그러고도 성기가 기능을 하더라고. 그래서 보니까…."

    "자네에겐 마틸다양에게 걸린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런 거지."

    "역시 구원씨는…! 하지만 그런 거라면 왜 저희에게 숨긴 건가요?"

    "그, 그야 실비아 때처럼 또 너희가 맘고생하게 만드는 것도 싫고…."

    "구원씨…."

    "으이구. 바보야. 그런 걱정을 해?"

    "자네는 평소엔 생각이 없으면서 이럴 때는 또 생각이 너무 많구먼."

    레이아는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고, 사라는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듯 가볍게 때렸다. 그리고 디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 아무튼! 얘길 들어보니까 내 몸에 저주를 옮기는 건 아닌 것 같아. 정확히 말하면 저주가 안 통하는 게 아니라 어떤 저주에도 성불구자가 되지는 않는 거거든. 저주가 숙주를 성불구자로 만다는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니, 내 몸으로 옮겨도 저주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 거야. 남자 몸에 저주를 옮겨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2차적인 효과가 발동할 수도 있으니까. 마틸다에겐 미안하지만, 구해줄 방법이 없는 이상 어쩔 수 없지! 그럼 이 얘기는 끝!"

    나는 강제로 이 얘기는 끝내려고 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밑도 끝도 없이 남을 구해주려고 해!

    난 그저 여신님이 이 세계에 보낸 성자…어라? 구해줘야 하는 입장인가?

    아니야. 아무튼 안 해!

    아무리 저 저주가 여신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것 같은 저주라고 하더라도, 우리 애들도 피해를 볼 수 있는 한 난 절대 안 하겠어!

    "그렇구먼. 마틸다양은 안됐지만, 이 몸도 자네의 몸에 저주를 옮기는 건 반대일세."

    "우리도 저주를 받을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구원이 다른 여자한테 쉽게 반하게 되면…응. 나도 절대 반대야."

    "그래 역시 너희도 싫지? 그러니까 이 얘긴 이걸로 끝내자."

    내가 그렇게 마틸다 얘기를 끝내려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레이아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이거 왠지 데자뷔가 느껴지는데.

    "하지만 구원씨. 구원씨가 마틸다 추기경님과 한 번 성행위를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저주라는 건 원래 각자 저주에 맞는 해주방법이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저희의 신성 마법으로 저주를 해주하는 건 여신님의 힘을 빌어서 강제로 저주를 없애는 것이지만, 본래는 신성마법 말고도 저주를 해주할 방법은 존재해요. 그리고 마틸다 추기경님의 저주를 해제할 방법으로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는 것이…."

    "저주에 걸린 사람과 섹스를 하는 거라고."

    "…네."

    레이아도 나에게 다른 여자와 섹스하라고 권하는 것 같은 이 상황이 그리 좋진 않은 듯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우리 레이아는 너무 천사같아서 탈이라니까.

    레이아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그냥 그대로 흐지부지되고 끝났을 텐데.

    이렇게 남을 돕는 걸 우선시해버리는 거다. 우리 천사님은.

    "그래서, 내가 마틸다와 섹스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네."

    아차. 이 질문은 너무 레이아 생각을 안 한 질문이었나.

    레이아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의견은 어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해도 된다고 말한 직후 아닌가. 알면서 일부러 묻는 겐가?"

    "정말이지. 노리고 이런 말 꺼낸 거 아닐까 생각될 정도라니까."

    디아나도 사라도, 탐탁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뉘앙스로 승낙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뭔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시 우리 애들이 동정심에 못이겨서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허락하는 방향이 되어버렸다.

    뭐, 실비아 때처럼 계속 내가 데리고 살아도 되는 게 아니니 그나마 이렇게 결정이 빠른 거겠지.

    아니. 하지만 섹스로 해주를 한다는 것도 결국 가능성이 높을 뿐 확실하진 않은 거다.

    만약 섹스를 해도 저주가 풀리지 않으면, 그냥 마틸다한테 네가 좋아해도 되는 유일한 남자가 나라고 자백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러면 또 실비아처럼 계속 데리고 다니게 허락할지 고민해야 되는 상황이 올 거다.

    얘들은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도 허락한 걸까?

    나는 다시 한 번 애들 눈을 하나하나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얘들은 알고도 허락을 한 거라는 걸.

    하긴. 나 같은 것보다 훨씬 머리 좋은 애들이다. 나도 생각할만할 걸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지.

    "너희는 진짜…너무 착해 빠져서 탈인 거 알아?"

    "그만큼 구원은 성격이 나쁘니까 밸런스는 맞는 거 아냐?"

    젠장. 부정하기 힘든 말을 하지 마라! 나도 내가 쓰레기인 건 안다고!

    "천사님! 사라가 괴롭혀요!"

    "어머. 후훗."

    "그러니까 핑계대면서 은근슬쩍 가슴에 달라붙지 말게!"

    "정말 방심을 못한다니까!"

    결국 그렇게 마틸다와 섹스를 하게 될 처지가 되어버렸다.

    정작 마틸다의 의견은 듣지 않았지만, 뭐 걔도 저주 치료를 위해서라고 하면 바로 승낙하겠지.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살짝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기만 하면….

    아무튼 저주라…정말 섹스로 풀리면 다행이겠는데.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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