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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43화 (22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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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임명

    "그럼 용무는 마쳤으니 길드로 가볼…실비아?"

    한스를 엿 먹이고 상쾌해진 기분으로 가게를 나서려고 했는데, 실비아의 상태가 이상했다.

    방금 내가 눈을 가리기 위해 머리를 감싸 안았던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서 미동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실비아?"

    눈앞에서 손바닥을 펴고 휙휙 움직여 봤지만 눈동자에 반응이 전혀 없었다.

    시험 삼아 손가락을 코앞에 가져다대보자, 숨도 쉬지 않고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디아나. 얘 위험한데. 숨도 안 쉬어."

    "음? 갑자기 왜 그러나?"

    "글쎄…. 난 그냥 눈 가리고 있었던 것 밖에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비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툭툭 두드려봤다.

    "흐엇! 허억! 허억! 허억!"

    그러자 갑자기 실비아가 전원이 켜진 것처럼 숨을 몰아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 구, 구원님! 아,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는…! 언제 어디서나 구원님이 원하시면 안기는 건 각오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래도…!"

    한참이나 숨을 안 쉬고 있던 실비아는 숨을 무척이나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고, 얼굴도 익은 것처럼 새빨개져있었다.

    눈동자도 그렁그렁 거리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절정에 달한 여자처럼 보일 정도로 색기가 있었다.

    게다가 저런 말까지 떠들어대자, 마치 내가 혼란을 틈타 실비아에게 뭔가를 한 것같은 분위기가 됐다.

    심지어 나마저도 잠깐 고민했을 정도다.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성자 스킬이라도 쓴 거 아니야?

    나는 내 몸 안에 흐르는 마나를 점검해 봤다. 응. 아니다.

    "응? 야! 잠깐! 오해할 말 하지 마라! 디아나, 나 진짜로 눈만 가려주고 있었어! 그렇잖아?"

    디아나의 눈이 점점 더 의심하는 눈초리로 변하기 시작해서, 나는 다급히 외쳤다.

    "에? 누, 눈…? 죄, 죄송합니다. 저, 저도 참. 구원님이 끌어안아주시니 저도 모르게…."

    "어휴, 아무튼 정신 차렸으면 가자. 어서 길드에…."

    "히익!"

    내가 실비아의 손을 잡고 가게를 나서려고 하자, 실비아는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내 손을 피했다.

    뭐야. 그 반응. 상처받는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실비아가 다급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다만, 너무 갑자기 구원님께 닿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아, 앞으론 제게 닿기 전에 한 마디 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시, 심장에 안 좋습니다!"

    실비아는 정말로 심장에 안 좋다는 듯이, 자신의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움켜쥘 만큼 가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심장에 안 좋은 건 나다 이 녀석아.

    옆에서 느껴지는 디아나 시선이 무서워 죽을 것 같단 말이다.

    "…그래. 실비아양. 제가 그 손을 잡아도 괜찮겠습니까?"

    "그, 그럼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실비아는 두 눈을 꼭 감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저러면서도 자세 자체는 춤 신청을 허락한 귀족 영애가 손을 내미는 것처럼 우아한 것이, 참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얼른 길드에 가자."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이번에야 말로 가게를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또 다시 실비아가 그 행동을 제지했다.

    "죄, 죄송합니다! 잠깐만 기다려줄 수 없겠습니까?"

    "응? 또 왜?"

    "그, 그, 그게…화장실…그래! 화장실이 급합니다! 주인장! 잠깐 화장실 좀 빌릴 수 없겠습니까?!"

    너무 긴장했더니 오줌이 마려워졌다든지, 뭐 그런 걸까?

    실비아는 미묘하게 다리를 오므려 안짱다리를 만들고 절박하게 외쳤다.

    "앗, 네. 저기 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왼쪽에 있습니다."

    에리나씨의 안내를 받아, 실비아는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무튼 귀족 영애답지 않게 소란스러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절대 저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후우우우.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화장실에 다녀온 실비아는 약간 평소 컨디션을 되찾은 듯, 어떻게 보면 살짝 멍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얼굴이 번들번들 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그래. 그럼 가…손잡아도 되냐?"

    "네, 네. 물론입니다."

    "그래. 가자."

    나는 실비아의 손을 붙잡고 끌고 가면서, 이번에야 말로 가게를 나섰다.

    볼일을 마치고 와서 행복해 보였던 실비아는 다시 새빨개지고 움직임이 로봇처럼 어색해졌지만, 일일이 신경 썼다가는 평생 길드에 못갈 것 같다.

    이거 나중에 어떻게 조치를 취하든가 해야지.

    길드장은 안내 데스크의 레이첼 누님에게 말하는 걸로 간단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디아나가 없었으면 이렇게 간단히 만나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

    뭐, 디아나가 그래서 따라온 건 아니겠지만.

    "오랜만이군요. 여러분. 오늘은 어떤 일로 오신 건가요? 디아나 당신이 절 직접 찾아올 정도면 꽤나 중요한 일인 모양이죠?"

    "음. 지금부터 이 자…이 몸의 낭군님께서 말해줄 걸세."

    디아나는 어째선지 중간에 내 호칭을 바꿔 말하고, 내 팔에 꼬옥 매달렸다.

    팔에 닿은 디아나의 체온이 살짝 올라간 게 느껴졌다.

    부끄러워할 거면 그냥 바꿔 부르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

    "디아나, 그렇게 견제하지 않아도 당신 남자에게 눈독들이거나 하진 않아요. 애초에 영주성에서 당신이 그 사람 때문에 난동을 피웠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요. 뭐, 당신이 그러는 걸 보니 신기하기는 하네요."

    "따, 딱히 그런 의미로 낭군님이라고 부른 것이 아닐세!"

    레이첼 누님이 성숙해진 것 같은 외모의 길드장은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하지만 생긴 것처럼 성숙한 대응을 보였다.

    과연. 디아나가 갑자기 호칭을 바꿔 부른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건가.

    디아나는 황급히 부정했지만, 누가 봐도 그런 의미로 부른 거다.

    하긴 길드장도 꽤나, 아니 상당히 미인이긴 하지.

    나는 흐뭇한 심정으로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걱정 마라. 아무리 예쁘다고 해서 내가 너희를 놔두고 다른 여자한테 혹하겠냐.

    외모만 보면 길드장과 판박이인 레이첼 누님에게는 예뻐서 다가간 거 아니냐고? 그건 애초에 사라도 만나기 전 일이니 노카운트다.

    "그럼 용건을 들어볼까요?"

    "네. 실은 저희가 던전 탐험 중 엄청난 비밀을 하나, 아니 둘 밝혀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비밀이죠. 안내 데스크에서 말해도 보상금 같은 건 나오겠지만, 워낙 중대한 발견이라, 이왕이면 길드장님께 직접 얘기하고 싶어서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기대되는군요. 어디 한 번 들어보죠."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그게 말이죠. 남성형 몬스터를 발기시킨 채로 잡으면 발기된 양물이 드랍됩니다."

    "………. 흐, 흐음. 그, 그렇군요.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얻을 수 있는 물건들은 꽤나 있었지만, 설마 그런 조건으로 그런 물건을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만약 나 혼자서 길드장을 찾아와서 이런 말을 떠벌였으면 바로 쫓아냈겠지. 하지만 내 옆에는 지고의 대마법사 디아나가 붙어있다.

    길드장은 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엄치는 것이, 진짜 곤란한 표정이었다.

    성숙한 금발 벽안의 누님이 저런 표정을 지으니까 그 갭이 꽤나…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안. 디아나. 내가 딴 생각을 할 수 없게 나에게 힘을 줘.

    나는 팔에 매달린 디아나의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후우. 디아나 성분이 보충되면서 내 머릿속의 마구니가 사라지고 있어.

    "물론 이것만으로 엄청난 발견을 했다고 떠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렇게 얻은 몬스터 성기의 쓰임새죠."

    "네? 뭐라고요?"

    이번에야 말로 길드장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이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이 됐다.

    몬스터 성기의 쓰임새라고 해봐야, 보통 사제용 스태프의 재료가 되는 것과, 여성용 자위기구 대용으로 쓰이는 정도가 전부니까.

    "실은 말이죠. 놀라지 마십쇼. 이 성기, 각각 종류별로 던전 곳곳의 비밀 통로를 여는 열쇠가 됩니다."

    "그렇…네? 뭐, 뭐라고요?! 디아나?!"

    충격적인 사실에 길드장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서 외쳤다.

    역시 레이첼 누님의 어머니이신 만큼 길드장도 꽤나 훌륭한 흉부를 가지고 있어서, 자리에 박차고 일어난 길드장의 가슴이 이리저리 거세게 출렁였다.

    훌륭한 무브먼트다. 뭐, 그래봤자 우리 천사님만큼은 아니지만!

    "음. 사실일세. 지금까지 이 몸들이 발견 한 건, 1계층 늑대개의 소굴에서 1계층 마지막 층으로 이어지는 통로와 1계층 중간에 고블린 부락으로 이어지는 통로, 그리고 2계층의 비밀 장소로 이어지는 통로일세. 2계층의 비밀 장소는 그대로 3계층의 중간층으로 이어지더군."

    "다, 다음 계층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까지 발견했다고요! 그, 그렇다면! 디아나! 왜 그걸 이제야 밝힌 건가요?! 그게 사실이라면…!"

    "아니. 자네 생각을 알겠네만, 이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걸세. 생각해보게. 열쇠는 성기일세."

    "그, 그렇군요. 실례했어요."

    길드장과 디아나 사이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지금은 분위기를 깨기 그러니까, 나중에 디아나한테 물어보자.

    "아무튼 당신이 말한 대로 대단한 발견임에는 틀림없네요. 확실히 던전 탐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발견이에요."

    길드장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자리에 앉아서, 턱을 괸 채 말했다.

    "비밀로 하면서 이익을 독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밝혀주신 점 길드를 대표해서 정말 감사드려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보수를 준비하고 싶지만, 조금 기다려주실 수 있겠어요? 규정은 규정이니만큼, 우선은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요."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네. 아, 그리고 비밀 통로도 포함된 지도도 그려드릴게요."

    길드장의 명령으로 레이첼 누님이 지도를 그릴 종이와 펜을 준비해주셔서, 나는 맵을 보고 그대로 종이에 따라 그렸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디아나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비앙카. 사실이 확인되면 바로 대대적으로 발표를 할 셈인가?"

    "네. 그래야죠. 모험가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던전 탐험의 범위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비앙카라는 건 아무래도 길드장의 이름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2계층의 개미굴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는 비밀로 해주게. 거기서 조금 조사할 것이 있어서 말일세. 뭐, 밝힌다고 해도 모기의 성기를 얻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냐마는 말일세."

    "모, 모기의 성기…."

    길드장이 질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전 그냥 스킬을 사용한 것뿐이에요.

    하지만 듣고 보니 그랬다. 동물 계열이나 아인종 계열의 몬스터들은 모험가들이 한 꺼풀 벗거나 해서 어떻게든 발기를 시킨다고 해도, 곤충 계열 몬스터들은 과연 내가 아니면 성기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이거 왠지 돈 냄새가 나는데.

    "그럼 길드에의 협력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도까지 포함해서, 확인이 되는 대로 클랜 하우스에 저희 길드 직원이 직접 찾아가 보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앞으로도 다른 발견을 하시게 된다면, 꼭 길드에 보고를 부탁드려요."

    지도 작성을 마치자, 길드장이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클랜 하우스까지 찾아오는 서비스라니. 이번 발견이 길드 입장에서 정말로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디아나. 아까 길드장이랑 얘기했던 건 뭐야?"

    길드를 나오자 마자, 나는 당장 디아나에게 아까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음? 뭐가 말인가?"

    "아까 길드장이랑 말했었잖아. 열쇠가 성기니까 도움이 안 될 거라는 둥."

    "아아. 그거 말인가. 실은 말일세, 심층을 공략하는 자들이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지 못하는 이유가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네. 물론 그곳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강력하고, 잠깐만 방심해도 전멸을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곳을 탐험할 수 있는 모험가들은 존재하니 말일세.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일세."

    "뭐? 그러면 진짜로 성기 얘기가 도움이 됐던 거 아냐?"

    "아니, 그건 아닐세. 자네도 3계층에서 만났던 아이스 골렘에게는 성기를 얻지 못하지 않았나?"

    "뭐? 그, 그럼 설마?"

    "음. 지금 발견 된 가장 아래쪽의 던전의 몬스터들은 모두 생명체가 아닐세."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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