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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91화 (9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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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들의 영역

    쓰러진 놈의 마석을 캐내자, 지금까지 본 어떤 마석보다도 더 큰 마석이 튀어나왔다.

    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말이지.

    "이게 계층의 주인인가…. 너무 약한 거 아니야?"

    "사정없이 기습을 가해놓고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구먼."

    "아니, 아무리 기습을 했다곤 해도 저항한번 못해보고 잡히는 건 심하잖아. 이거 웨어 울프 쪽도 그냥 때려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섣부른 소리하지 말게나. 이번에는 단순히 상성이 좋았을 뿐이네."

    "상성? 그러고 보니 주술사 상대로는 절대 안진다고 했었지. 디아나가 뭔가 했었어?"

    "아니. 이 몸이 아니라 자네와의 상성 말일세. 그런 식으로 공격을 받았으니 말일세. 고작 오크 주술사 정도로는 제대로 집중해서 주술을 사용할 수 없었겠지."

    …과, 과연. 그런 뜻이었나.

    싸우면 싸울수록 또 다른 장점이 보이는 성자의 손길이다.

    그럼 앞으로도 일단 한 방 때릴 수만 있으면, 마법사 계통과 싸울 땐 무조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의외로 혼자 다니나보네. 주술사라길래 부하들 주렁주렁 달고 다닐 줄 알았더니."

    "흠. 아마 평소엔 그럴 걸세. 2계층의 초월종들도 그러니 말일세. 방금 전에는 뭔가 의식이라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만."

    디아나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확실히 바위에는 막 칠한 것 같은 새로운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운이 겹치고 겹쳐서 그렇게 쉽게 잡았다는 얘기인가.

    아무튼 정말로 평소에는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는 거라면, 언제 그놈들이 몰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이 된다.

    일행은 재빨리 드랍템을 회수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행동은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오크들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왠지 오크들과 마주치는 빈도가 늘었다.

    게다가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여기서 만나는 놈들은 한가롭게 늑대들이나 끌고 돌아다닐 뿐, 전투에 대한 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런데 지금은 살기등등하게 눈을 빛내고 있다가 일행을 보는 즉시 먼저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보스가 죽었다는 걸 아는 건가?

    어떻게 아는 거지? 분명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층의 주인이 죽은 걸 아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점심식사를 위해 초월종이 있던 부락 중 한 곳에 들어서자, 꽤나 많은 수의 오크와 마주쳤다.

    대략 눈대중으로 보니 스무 마리 정도는 되어보인다.

    물론 원래 부락에 있던 수를 생각해보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직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숫자였다.

    그렇다면 이곳이 전멸했다는 사실은 이미 오크들에게 알려진 거라고 봐야겠지.

    구원은 한숨을 쉬고 주먹을 들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편히 밥 먹긴 그른 날인 것 같군.

    "이제는 네놈들을 처리하는데 단 한 페이지도 소모하지 않겠다!"

    난 이제 2계층 몬스터 상대로 사냥도 하고 온 몸이라고.

    언제까지나 1계층 몬스터 상대로 질질 끌 수는 없지.

    일행의 능력으로 보면 이제는 고작 오크 스무 마리다. 오크들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나서 구원은 일행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여기서 점심 먹기는 힘들 것 같지?"

    "네. 어서 빠져 나가죠."

    "음. 늦으면 또 입구 쪽 부락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일세."

    디아나의 말대로다.

    입구 쪽이 막혀서 물량공세로 샌드위치라도 당하면, 아무리 구원 일행이 날고 긴다고 해도 피해가 없을 수는 없다.

    일단 여기도 스무 마리밖에 없었으니, 입구에는 아직 더 적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이틈에 탈출하자.

    다행이 구원의 예상대로 아직 입구 쪽까지는 오크가 파견되어있지 않았다.

    그대로 오크들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일단은 식사를 위해 마나풀이 자라던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오늘은 거의 하루 종일 굶은 거나 마찬가지라서, 과연 구원도 힘겨웠다.

    육포 같은 건 아무리 씹어봐야 배가 차는 느낌도 안 들고 말이다.

    보통 모험가들은 던전에서 장기간 탐험하는 동안 육포로 버틸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그냥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인가?

    "뭐하는 겐가. 빨리 고기를 꺼내게나."

    하지만 구원을 보며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디아나를 보면, 익숙해지는 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알았으니까. 그렇게 보채지 마. 저기 있는 레이아처럼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어봐라 좀. 얼마나 예뻐."

    "아앙? 지금 뭐라고 했나?"

    "아, 아니. 내가 잘못했다. 미안합니다. 사과할게."

    갑자기 말투가 왜 그러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쫄았잖아.

    구원의 사과에도 디아나는 기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디아나는 살짝 콧김을 거세게 내뱉으며 말했다.

    "자네가 예쁘게 보는 건 태도가 아니라 저 가슴이겠지. 저런 건 고작 지방 덩어리에 불과하네!"

    "고작 지방 덩어리라니…. 너도 커질 거잖아."

    "바로 그걸세! 이 몸도 커질 걸세! 그것도 확정적으로 말일세!"

    디아나는 열변하듯이 외쳤다.

    그래서 결국 뭐 어쩌라는 거야.

    "알았으니까 불이나 붙여줘. 미래의 거유 마법사님."

    "흠."

    내 딴엔 이것도 놀리려고 말한 거였는데, 의외로 싫은 반응이 아니다.

    지방에 불과하다고 안했었냐?

    역시 여심은 어렵다.

    그렇게 고기를 굽자, 이번엔 또 사라의 상태가 이상했다.

    평소에는 알게 모르게 엄청나게 주워 먹던 애가, 상당히 깨작대면서 제대로 먹지 않고 있었다.

    "사라? 왜 그래?"

    "네, 네? 뭐가요?"

    "왜 그렇게 먹어? 어디 속이라도 안 좋아?"

    "어머? 정말요? 눈치 못 채서 죄송해요. 지금 당장 치료해드릴게요."

    "괘,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콜록! 콜록!"

    그러면서 이번에는 억지로 왕창 입에 넣다가 결국 목이 멨는지 기침을 했다.

    "괜찮아?"

    구원은 황급히 물을 건넸다.

    "콜록! 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는 사라의 눈초리는 왠지 모르게 원망의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쯤에서 한번 돌아가는 게 어떨까?"

    식사를 하면서 구원은 모두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레이아의 사제 레벨은 결국 프로텍트를 배울 레벨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던전에 들어올 때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이 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던전에 너무 오래있었다.

    아무리 성장이 좋다지만, 너무 무리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도 있는 법이다.

    이쯤에서 한 번 쉬어 주는 게 좋겠지.

    아마 디아나는 전혀 상관없을 거다. 애초에 던전 공략에 그다지 관심 있는 애가 아니니.

    레이아도 파티원을 위해 힘내는 거지, 스스로의 목표가 던전 공략인 건 아니다.

    문제는 사라인데….

    "그래요. 한번 돌아갈 때도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사라는 의외로 가볍게 수긍했다.

    다행이다. 하긴 얘도 너무 혹사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건 알겠지.

    그렇게 한 번 돌아가기로 정한 일행은, 식사를 마치고 곧장 비밀 기지로 향했다.

    잠은 마나풀의 서식지에서도 충분히 잘 수 있지만, 오늘 거기까지 가지 않으면 내일 안으로 마을에 돌아가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그래서 비밀 기지에 오자마자 곧장 잠을 자기로 했지만, 구원은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과연 오늘은 내가 이상한 잠꼬대를 안 할까?

    레이아, 디아나, 사라를 돌아가면서 건드린 거다. 오늘도 잠꼬대로 뭔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돌아가면서 한 번씩 했으니 다행이지만, 이제는 누구한테 잠꼬대를 해도 두 번째 하는 거다.

    두 번째는 잠꼬대로 그런 거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겠지. 하긴 나라도 안 믿겠다.

    정말로 손이라도 묶고 자야하나.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난 결박 플레이 따윈 즐기지 않는다고. 적어도 스스로 묶이는 건 싫다.

    결국 구원은 스스로를 믿고 아무 대비 없이 잠을 자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구원은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양손의 감각을 확인했다.

    응. 아무 것도 안 쥐고 있다.

    다행이다. 다행…인가?

    하지만 구원은 곧바로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양손에는 아무 것도 쥐어있지 않지만, 몸 전체에 뭔가 따뜻한 게 달라붙어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다.

    침착하자. 그래. 소수를 세자…. 소수란 1과 자신 이외의 수로는 나눌 수 없는 고독한 수.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1, 2, 3, 5…아차! 1은 소수가 아니었지!

    아무튼 이걸로 조금은 침착해질 수 있었다.

    천천히 눈을 떠서 양옆을 바라보니, 사라와 디아나의 얼굴이 보였다.

    살짝만 고개를 뻗어도 입술이 닿을 위치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자는 도중에 난 대체 뭘 한 거냐.

    그냥 달라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둘의 몸이 야릇하게 구원의 몸에 얽혀있었다.

    구원은 스스로의 우뚝 선 물건이 그저 아침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던전이고 뭐고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지만…구원은 이성을 풀로 동원하여 간신히 욕망을 억눌렀다.

    오늘이 마을로 돌아가는 날이야. 오늘 밤까지만 참자.

    구원은 사라와 디아나가 깨지 않게 살며시 둘의 몸을 떼어놨다.

    아들아. 조금만 참아라. 오늘 밤이면 천사님과 천국을 볼 수 있어.

    구원은 레이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구원이 몸을 떼어내고 곧, 사라와 디아나도 눈을 떴다.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으면…아니, 늦었으면 뭐? 생각해보니 이건 내 잘못도 아니잖아.

    아까 그 자세는 명백히 사라와 디아나가 나한테 달라붙어 온 거다.

    젠장.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냥 그 상태로 좀 더 감촉이나 즐기고 있을걸.

    후회해봐야 소용없나. 그냥 이렇게 천사님의 흉부를 감상했다는 걸로 만족하자.

    "레이아.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사라는 일어나자마자 레이아를 깨웠다.

    야. 천사님의 성스러운 가슴, 아니 자태가 안보이잖아. 조금만 더 옆으로 가서 깨워라.

    "자네 뭐하나? 일어났으면 어서 식사 준비나 하게."

    이제 막 잠에서 깬 탓인지, 디아나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응. 알았어."

    쳇. 감상시간도 여기까지인가.

    아직 좀 부족한 느낌도 들지만, 또 기회가 있으니 그때까지만 참자.

    다들 말은 안했지만 긴 여정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게 기대되는 모양이다.

    식사는 다들 말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드디어 비밀 통로의 앞까지 도착했다. 구원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여기만 지나면 마을까지 금방이라서 그런 거냐고?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날 일이 더 기대돼서 말이야.

    구원은 얼른 가죽 갑옷을 벗어서 인벤토리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디아나는 등에 업히고. 레이아 이리로 와."

    바로 이거다.

    내가 아침에 가슴 감상을 순순히 포기한 건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대략 두어 시간동안은 가슴감상 시간이다!

    그것도 무려 내 걸음에 맞춰서 흔들리니 은근슬쩍 무브먼트도 조절할 수 있다고!

    오늘은 휘모리장단에 맞춰서 격렬하게 걸어주겠어!

    갑옷까지 벗은 지금이라면 옷 너머로 감촉마저 즐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구원의 기대는 순식간에 박살났다.

    "아니에요. 레벨도 많이 올랐으니까 이제 스스로 걸어서 갈 수 있을 거예요. 언제까지나 구원씨에게 폐만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레이아는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불끈 쥐고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고운 마음씨다. 결의에 찬 표정마저도 가련해 보여서 동작이 보호본능을 절로 자극한다.

    하지만 구원은 지금 처음으로 레이아의 고운 마음씀씀이가 원망스러웠다.

    "아, 아니. 그래도 힘들 테니까…."

    "아니요. 저보다는 구원씨가 훨씬 고생하셨는걸요. 여기서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죠."

    레이아는 구원의 마음도 모르고 청초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크흑. 아냐. 그게 아니라고요. 전 오히려 누님을 들고 가는 게 피로가 풀리는데.

    물론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서 구원은 마음속으로만 남자의 눈물을 흘렸다.

    "풉. 뭐하나. 자, 어서 가세나."

    이미 구원의 등뒤에 탑승을 완료한 디아나가 구원의 어깨를 가볍게 찰싹 치며 말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네 감촉이라도 탐닉해주지!

    구원은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디아나의 양팔을 앞으로 쭉 잡아당겼다.

    "흐익! 뭐, 뭔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이렇게 꽉 붙잡고 있으라고."

    아예 안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온정신을 집중하면 아주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기는 한다는 게 오히려 더 슬펐다.

    구원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 작품 후기 ============================

    후원 쿠폰, 원고료 쿠폰 보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리마쥬, 마스터칼솔럼 // 지적 감사합니다. 그 부분 수정했습니다. 설마 초등학교때 배웠던 걸 착각할 줄이야. 부끄럽네요.

    은빛고등어 // 맞습니다. 성자 레벨이 오를 때마다 모든 능력치가 1씩 올라가죠. 전부 적용되고 있습니다. 안그러면 구원의 지력이 그렇게 높을 수가 없죠. 다만 성자 레벨이 1때 모든 스텟이 10이었기 때문에 성자 레벨 12때는 10+11해서 21이었습니다.

    소시천지 // 원고료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레비나리진 // 물론 대책이 있습니다. 실은 소설 초반부에 지나가면서 잠깐 나왔었어요.

    그외에 코멘트 써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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