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최면물-319화 (319/414)
  • 아리엘이 오싹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왕인 나조차 떨게 되는 신성 모독이다…….

    진심이냐. 너는…. 그 고고한 여신을…… 하필이면, 변기로 삼겠다고…?"

    "육변기 제르미나.

    그게 내 일생일대의 목표다."

    리사가 목욕 타월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과 기품 있는 예쁜 보랏빛 눈동자.

    리사는 날 보며 미소부터 지었다.

    "잘 잤어? 데칼."

    마음이 사르르 녹는 예쁜 목소리다.

    리사는 표정을 가다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의 얘기는 다 들었다.

    제르미나, 라고 하는 파괴의 여신을 제압해야 한다고?"

    "그래서 너희 둘의 힘이 필요해.

    이 세계의 최강자. 마왕과 용사의 힘을 갖춰야 비로소 조건이 갖춰진다고, 시아는 말했어."

    "시아 님이 말씀하신 일이니 틀림없겠지.

    빛의 여신님이 함께하는 이상, 내게 패배는 없어."

    "그 빛의 여신님이 주신 성검.

    섹스하느라 까맣게 잊고 차가운 바닥에 던져 놓지 않았어?"

    "아으!?"

    리사는 허둥지둥 당황했다.

    "데칼! 조금 기다려. 성검을 가지고 오겠어!"

    '여신님 죄송합니다' 하면서 가버렸다.

    "용사 녀석. 저래서야 걱정되는군."

    "<허수아비 마왕>의 힘도 의지할게."

    "……설마, 마왕과 용사가 단 한 명의 남자를 돕게 될 줄이야.

    벨리사는 내 호적수다.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으리라 믿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일단 유격대를 마왕성에 부르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리엘은 머뭇거렸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이 성에는 손님을 환대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 곤란하지 않으냐. 그들은 마왕이 죽었기를 기대하며 성에 발을 들일 텐데.

    멀쩡히 살아서 네 편이 되었다고 하면."

    "그걸 왜 걱정해? 내가 있는데."

    나는 리사와 아리엘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성문을 개방했다.

    그래도 안 오면 발코니에서 '서연아!' 하고 외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연이의 데칼 추적 레이더를 쓰지 않고도 유격대는 눈치껏 입성했다.

    유격대는 잔뜩 긴장하고 전투태세로 성안에 들어왔는데,

    혹시나 아리엘을 보면 바로 덤벼들지도 모르니까 리사와 내가 먼저 나가기로 했다.

    "현우 오빠!"

    서연이 날아와서 나한테 안긴다.

    나는 서연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외로웠지?"

    "오빠가 떠나버리는 줄 알고……."

    "괜찮아. 괜찮아."

    서연이는 내 품에서 안심한 듯 얼굴을 묻고 비비적거린다.

    "리사. 어떻게 된 거야? 마왕은?"

    블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1층 홀에는 불을 밝혀두긴 했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성이라

    먼지가 수북이 쌓인 건 어쩔 수 없다.

    결과적으로 아리엘과 리사는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성에는 전투의 흔적이라고 불릴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왕은 이미 자리를 비우고 떠났다…….

    그렇게 생각되는군."

    앙겔이 중얼거렸다.

    슬슬 리사가 나설 때다.

    "아니. 마왕과 만났어.

    마왕의 이름은 아리엘. 이 성에 기거하는 <허수아비 마왕>이다."

    "허수아비 마왕……. 지금 어디에?"

    블램은 여전히 경각심을 곤두세운 채로 말했다.

    리사는 말 꺼내기 어려운 듯 나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아리엘이 모습을 보여줄 거야.

    놀라지 마."

    나는 2층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단장한 아리엘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온다.

    유격대원들이 놀란 건 물론이고.

    나까지 놀랐다.

    설마 이렇게 꾸미고 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내린 잿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만사 귀찮은 눈매는 어디에 두고 왔는지 눈빛

    도 확연히 다르다.

    예쁜 얼굴 생김새와 갸름한 턱선이 놀랍도록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와 유격대를 일별한 고고한 마왕님은, 턱짓 하나로 위압감을 주며 말했다.

    "내 성에 온 걸 환영한다.

    내가 이 성의 마왕, 아리엘이다."

    "……."

    나는 할 말을 잊고 넋이 나가서 아리엘을 보고 있었다.

    "데칼."

    리사가 날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블램이 칼을 빼 들었다.

    "마왕!

    리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설마 조종하고 있는 건가!"

    "나한테 그런 편리한 능력은 없다.

    ……자, 내 소개는 했으니 이제 네가 할 일을 해라."

    아리엘은 날 보지도 않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모두 주목해."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사정을 알았으면 하는 네리스와 헤르카, 서연이는 깨어 있도록 했다.

    네리스는 다른 대원들이 트랜스 상태에 빠진 걸 확인하고 앞으로 나왔다.

    "주군. 설명을."

    "짧게 요약하면, 마왕 공략은 끝났어."

    "……마왕은 살아있습니다."

    네리스는 납득하지 못한 듯.

    분노를 억누르고 마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끝났어. 네리스.

    마왕은 이제 내 곁에서 일할 거야."

    "그것은…… 용사님도 납득한 일입니까?"

    "그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 알고 있다.

    나조차도 최근의 심경변화를 설명할 수 없어."

    리사는 할 말이 없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용사가 마왕을 죽이지 못하고 친구가 되었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겠어?

    "네리스. 원한다면, 마음을 편하게 해줄까."

    "아니오. 제가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리스는 뜻밖에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의 뜻에 따르는 것이 기사입니다.

    마왕을 훌륭하게 손에 넣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네리스!"

    나는 이틀만에 네리스에게 달려가서 꼭 안았다.

    아아. 네리스 젖가슴. 오랜만이야!

    네리스는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으로 날 보고 있지만, 몸은 대주는 게 너무 좋다.

    "마왕이 허튼짓 못하게 잘 단속할게."

    "당사자를 앞에 두고 말 안 듣는 강아지 취급하지 마라."

    서연이가 의외로 얌전하다.

    "서연아?"

    서연이는 마왕과 용사를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현우 오빠.

    저 두 사람. 대체 얼마나 사랑받은 거야……."

    "……."

    아.

    서연이 눈에는 그게 '보인다'라고 했나……?

    <특정 여성이 내게 사랑받은 정도>가.

    "우윽…….

    곁에 가고 싶지 않아. 기분 나빠서 죽여버릴 것 같아…."

    "어휴. 나잇값 못하네. 이 언니는."

    헤르카가 몸을 숙인 서연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데칼이 없다며 밤마다 발작하는 거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고마워. 헤르카."

    "역시 친구밖에 없지?"

    헤르카는 빈약한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내 친구는 헤르카 뿐이야."

    "대원들한테 최면을 걸 거야?"

    "그래야지. 설명할 자신 없으니까."

    그다음에 깃발 꽂듯이 대왕 팔색 조개를 내려놓고.

    내 땅이 되었음을 선포할 생각이다.

    "아주 살짝…….

    이 이상한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만들 뿐이야.

    아프지 않아."

    나는 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작품후기]

    벨리사와 아리엘의 H 스테가 업데이트 됩니다!!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그래. 거짓말이라도. 너와 평생 함께하기 위한 약속 같은 거니까."

    "……."

    나는 리사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좀 더 나중에 하는 거 어때.

    지금은 기쁨에 취하고……."

    "안 돼."

    리사는 단호하게 날 밀어냈다.

    "정말 안 된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본대가 우리의 성공을 염원하며 미끼 작전을 수행 중일 테니

    까."

    그랬었지…….

    다들 기뻐하고 있는데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넌 진짜 용사구나. 리사."

    "그럼, 가짜 용사인 줄 알았나?"

    리사는 날 보며 예쁘게 미소 지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만나자.

    그다음에는 널 위한 정액받이 용사가 되어주겠다."

    "가까운 곳으로 날려줄까?

    아리엘이나 시아를 불러서 차원 마법으로 이동 시켜 달라고 하면……."

    "시아 님께 감히 그럴 순 없다.

    아리엘에게는 그저 마물을 물려달라고 해줘. 방해만 없다면 금방이다."

    차원 마법이면 한순간일 텐데.

    리사의 태도는 꽤 완강했다.

    나는 여신을 시종, 노예로 부리고 있지만,

    그녀로서는 여신의 마법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태워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겠지.

    아리엘의 마법도 거부하는 걸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칼은 어쩔 거지?

    또 다른 마신이 널 노린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불안하다."

    "귀찮으니까 그냥 있을게.

    나는 여차하면 차원 마법으로 네 곁에 갈 수도 있고. 여기에는 아리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아리엘의 실력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는 것도 용사의 일, 이잖아?"

    "잘 알고 있군.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마왕성에 오겠다."

    "아니,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아리엘에게 팔색 진주를 건넸다.

    "이건?"

    "마중 나갈게.

    성 식구들도 소개해줄게."

    "여자들이 가득한 성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리사는 농담조로 웃으며 말했다.

    "……."

    "……."

    침묵.

    "그대는…… 정말, 음란한 남자다…."

    "내 하렘의 일원이 된 걸 축하해."

    "후우…… 선배들이 많았을 줄이야."

    많지.

    "우리 좆집을 이기기는 어려울 거야."

    "도전은 바라던 바다. 그럼. 다시 보자. 데칼."

    "키스해줘."

    "……어쩔 수 없군. 앙 해라. 츄츄 해줄 테니까."

    "앙."

    리사는 발뒤꿈치를 들고 나한테 달라붙어서 키스해 주었다.

    끈끈하게 혀를 섞으며 타액을 교환하는, 내 취향의 딥 키스다.

    모두 보고 있지만, 리사는 이제 즐기고 있는 듯했다.

    볼을 살짝 붉게 물들인 채, 나와의 키스에 몰두하는 리사는 퍽 사랑스러웠다.

    "처음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응? 뭘?"

    "데칼, 너는 꽤 멋진 남자다."

    "내가 좀 잘생겼지."

    "보고 싶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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