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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44화 (244/414)

244화

최면의 신

"따라와."

나는 리사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데칼?"

리사가 날 뒤따른다.

나는 팔색 진주로 카렌의 위치를 찾아냈다.

마침 카렌은 스티아랑 같이 멜브릿 본관 1층에 있었다.

"앗. 오빠!"

카렌이 이쪽을 알아차리고 뛰어왔다.

나와 함께 온 리사를 쓱 보더니 깜짝 놀라 숨을 삼킨다.

"오빠 옆에 있는 분, 설마……."

"그 설마야.

용사님이다."

스티아가 뒤늦게 뛰어와 벅찬 듯 말했다.

"용사님!

안녕하세요. 하르페 가문의 스티아 하르페입니다."

리사는 사복 차림이 어색한 듯 한 발짝 뒤에서 괜히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음. 하르페 가문의 장녀인가.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심려가 크겠군."

"제 가문 일을 알고 계셨나요?"

스티아는 순수하게 놀란 듯했다.

"알다마다. 안타까운 사건이었지.

붉은 영혼석이 유통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됐어.

내가 좀 더 제대로 했더라면……."

"그 일에 책임을 느끼지 말아 주세요. 용사님.

저는 용사님께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허락된다면 언제든 달려가서 돕고 싶어요."

"……."

리사는 카렌을 보았다.

카렌은 용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

"……."

"카렌. 소개해야지."

"아, 으. 용사님. 저, 저를 기억하세요?"

"……?"

리사는 카렌을 뚫어지게 본다.

그 결과 카렌은 더욱더 긴장하게 되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용사와 마주치기만 해도 이 꼴이라니. 카렌을 좀 도와줘야겠다.

"나랑 함께 입학한 용사 후보생이야.

이름은 카렌.

카렌은 너를 만나기 위해 용사 후보생이 되었어."

"……나를 만나기 위해?"

카렌은 제복 스커트를 꼭 쥐고 쏟아내듯 말했다.

"어렸을 때!

저를 마물로부터 구해주신 적이 있어요.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이 나요. 용사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저는 용사님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카렌의 열띤 고백 같은 말을 듣고,

리사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한 일이 네 도움이 되어서, 기뻐.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감사해야 하는 건 저예요.

제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용사님 덕이에요.

그리고 오빠를 만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좀 헤매는 것 같더니.

카렌은 제일 예쁜 미소로, 용사님에게 화답했다.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은혜를 돌려준 거다.

"너희 만나게 해준다는 게 생각났지 뭐야."

"오빠도 고마워!"

"소원이 이루어진 기분이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용사님과 마주할 수 있다니."

"봐. 다들 널 좋아하지?"

리사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내렸다.

"몰랐을 뿐……. 이었나…."

뭔가 해낸 기분이군.

"이제 뭐 할까.

용사님만 괜찮다면 검술 개인 교습 같은 거라도……."

스티아가 헉 숨을 삼켰다.

"데, 데칼!

무슨 실례되는 말을 하는 거야. 용사님의 귀중한 시간을 나 같은 것에 낭비하게 할 수는…!"

얼마나 우러러보는 거야.

근데, 카렌 눈도 핑글핑글 돌고 있는 걸 보니 두 사람 다 황송해서 어쩔 수 없나 보다.

가장 중요한 건 리사가 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오늘 데칼 덕에 많은 걸 배웠으니, 답례해야겠지.

미덥잖은 스승이라도 괜찮다면, 내가 좀 봐줄까 하는데."

"……!"

두 사람의 낯빛이 바뀌었다.

"부탁드립니다!"

"저도!"

"그럼 훈련장에 갈까."

"거긴 용 급만 출입할 수 있는데. 우리들이 가도 괜찮을까? 데칼."

스티아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내가 보호자인 셈 쳐."

카렌이 쿡쿡 웃었다.

"나랑 스티아, 보호자 동반 어린이가 돼버렸네."

나는 세 사람과 함께 전훈장에 들어갔다.

익숙한 입장 알림이 뜬다.

축제 기간에 훈련장 이용하는 별난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있기는 있었다.

틸리아 뱅가드다.

틸리아는 멋들어진 도검을 잡고 휘두르기 연습 중이었는데,

나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멈추고 돌아보며 말했다.

"오. 데칼.

무슨 일이야?"

"귀한 손님 데리고 왔지."

리사를 보고 틸리아의 눈빛이 변했다.

"용사님이잖아…!"

"그래. 놀랍지?"

"용사님! 한 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틸리아가 겁 없이 덤벼든다.

리사 인기 많네.

"후보생과 대련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리사는 틸리아의 도전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틸리아는 풀이 죽어서 고개를 떨궜다.

"틸리아는 나랑 하자."

"데칼은 약해서 싫은데."

"……너, 나한테 지기만 해봐라?"

"또 가르쳐 줘야겠어? 싸움으론 날 이길 수 없다니까."

달라진 나를 보여주지.

"대장.

두 사람 가르쳐주고 있어."

"생각보다 혈기 넘치는 성격이구나. 그대는."

리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뜻 밖에, 나와 틸리아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결투까지 할 것도 없어.

바로 쓰러뜨려 줄게."

틸리아는 검을 들고나와 대치한다.

"날 철저하게 쓰러뜨려 봐. 틸리아.

그러면 용사님이 대련해줄지도 모르지."

"무슨 근거로?"

"음~. 그냥 그런 게 있어."

용사님이 우리 대장이니까.

그 말은 속에서 덮어둔다.

"진심으로 하겠어."

틸리아가 기백을 내뿜었다.

대단한데. 붉은 정령핵이 화산 터지듯 꿈틀거리며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주변이 따뜻해진다.

도검에 불까지 휩싸이는 걸 보니 진심으로 할 생각이다.

하지만.

내 바람의 정령은 모든 열기를 전방위에서 완전히 억누르고 있었다.

이쪽도 능력을 과시한다.

"……흐응.

데칼. 정령술이 좀 늘었구나? 자신감의 근원은 그거였어?"

정령술만 늘었겠어?

"오빠 이겨라!"

카렌의 응원은 치어리더 백 명분으로 힘이 났다.

"네가 익힌 걸 써봐. 데칼.

선공을 양보해 줄게. 내가 먼저 공격하면 순식간에 끝날 테니까."

"그럼 간다."

나는 '해를 가리는 자'를 발동했다.

마법을 즉시 시전, 되풀이.

파이어 애로우를 무수히 꺼내서 틸리아를 향해 꽂는다.

이번에는 겨냥도 필요 없었다. 해를 가리는 자의 능력은, 무수한 투사체를 딜레이 없이 상대에게 쏟아붓는 힘이 있다.

그 능력을 발휘해, 나는 불의 폭격을 쏟아부었다.

"!"

틸리아는 정령의 도움으로 불 장막을 펼쳐 파이어 애로우를 받아낸다.

"이 정도로 난사하면, 파괴력은 줄어…!"

뭔가 오해하고 있군.

세찬 소나기처럼 쏟는 파이어 애로우.

한 발 한 발 오버 차징이다.

"윽!?"

틸리아의 장막이.

무려 홍염이 불의 정령으로 만들어낸 방어막을, 내 파이어 애로우가 뚫는다.

유니크 스킬 만만세다.

"하앗!"

틸리아가 멀리서 검을 휘두른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훈련장 바닥을 휩쓸며 나한테 쇄도했다.

나는 보호막도 치지 않고 화염을 그냥 넘겼다.

(여신의 가호가 당신의 몸을 지킵니다)

불은 내게 통하지 않아.

그걸 몰랐군. 틸리아.

"데칼. 꽤 하네. 나 진짜 화났어!"

틸리아는 도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

이건 꽤 긴장되는데.

나는 보호막을 쳤다. 틸리아의 동작. 눈에 비치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던 그녀의 움직임.

허나.

지금은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보였다.

나는 그녀가 몇 시간 짤막하게 가르쳐준 발 움직임으로, 틸리아의 공격을 쓱 회피했다.

틸리아는 공격이 멋지게 빗나가버리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다야?"

"……너!"

틸리아의 몸이 불꽃에 휩싸인다.

불꽃이 참격의 형태가 되어 나한테 날아든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틸리아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스티와 다시 싸울 때를 대비한 원거리 공격 기술인가?

가소롭군. 불 마법을 대할 때는 여유가 넘친다.

어느 정도 여유가 넘치냐면,

리사가 스티아와 카렌을 보호하고 있는 것도 슬그머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틸리아가 가까이 온 순간, 나는 그녀의 칼을 맨손으로 막았다.

키이잉!

공기가 떨린다.

"……!"

뭐 대단한 기술을 써서 막은 건 아니다.

배리어와 바람의 장막을 동시에 펼쳐서, 방어력을 극도로 높였기 때문에.

죽어도 살갗이 베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 마법 사용 체감의 차이에 의한 판단이었다.

보호막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두께만으로는 알 수 없고 마법사의 체감으로 알 수 있다.

내가 수업에서 배운 기초 마법. 배리어는.

처음 배웠을 때는 두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고.

다 익혔을 때는 그래도 가죽 정도는 되는 방어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께가 사람 허벅지만 한 강철처럼 느껴진다.

틸리아가 검을 휘두른다.

나는 불꽃에 휩싸인 틸리아의 검을 순발력 있게 막아내고, 틸리아를 꼭 안았다.

"아……."

틸리아는 온몸을 불꽃으로 보호하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를 대수롭지 않게 안아서 제압.

틸리아는 민망한 듯 바동거렸다.

"데, 데칼. 놓아 줘."

"졌지?"

"……응."

꽤 충격받을 줄 알았는데.

틸리아는 멍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게 충격받은 결과인가?

카렌과 스티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야?"

"……저런 움직임이라니."

"레벨 좀 올렸지."

이스티보다 레벨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가려둔다.

"상대를 얕잡아 보면 안 되지. 틸리아."

"데칼이 이정도로 강해졌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이런 날에도 노력하고 있는 틸리아 처지에서 보면 기가 막힐 일일 거다.

"아니. 이것도 변명일 뿐이야.

내가 졌어."

하지만 틸리아는 시원스럽게 인정하고, 중얼거렸다.

"……역시 데칼은 남편감으로 제격이야……."

…….

오늘 밤 덮쳐질지도 모르겠군.

이제 용사님의 수업 시간이다.

나는 틸리아와 벽 쪽에 붙어서, 리사가 카렌과 스티아를 가르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자세 교정부터.

그리고 자기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차이점을 설명하는 등.

용사님의 수업이라기에 상식을 벗어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범했다.

물론,

배우는 학생들이 열의가 지나친 나머지 열렬한 광신자들처럼 보이기는 했다.

"굉장해! 오빠!

용사님 말대로 했더니, 손목에 부담이 훨씬 없어졌어!"

"데칼. 이걸 봐줘.

내 기술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어!"

"……왜 다들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아하하."

틸리아는 시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랑하고 싶은 대상이 너라서 그런 거 아냐?"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반응해 주었다.

"카렌. 움직임이 더 좋아진 것 같아.

스티아의 찌르기도 매서운데?"

"정말이야? 용사님 덕분입니다."

"용사님. 고마워요!"

리사는 기뻐하는 두 사람을 보고 미소 지었다.

"리사 기술도 한 번 보여줘."

"내 기술?"

"보여주세요!"

"저, 저도 보고 싶습니다."

카렌과 스티아가 차례대로 거든다.

리사는 난처한 듯 말했다.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게 못 되는데……."

"보고 싶어!"

"알았다. 연습용 목검을 줘."

카렌이 자기가 쓰던 검을 리사에게 건넸다.

리사는 그 목검을 받아들고, 벽을 향해 호흡했다.

"리사. 기술명은?"

"기술명? 그렇군. 이건……."

리사의 손이 움직였다.

"「육섬팔뢰」라고 한다."

움직이는 건 보이지도 않았다.

여신의 도움으로 이스티를 능가할 정도로 레벨을 올렸어도, 용사와 나 사이에는 그 정도의 벽이 있다고 말하는 듯이.

참격이 공간을 지배한다.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 마치 신 같은 존재가 무언가를 연필로 그어 지우려는 것처럼.

리사의 공격 범위 전체가 무수한 참격에 휩싸였다.

이어서 여섯 개의 섬광이 그 난도질한 공간을 깨어버리고 터져나간다.

[보호 마법 한계]

[보호 마법 한계]

[보호 마법 한계]

상황판에서 경보 같은 게 울리더니, 전훈장의 벽이 갈라졌다.

기술의 여파만으로 용 급 후보생들이 싸우는 훈련장의 보호 마법이 깨졌다.

다들 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

스티아는 자기가 쥔 목검을 툭 떨군다.

"데, 데칼.

무언가 실수한 것 같은데.

보호 마법이 있다고 알려주었어야지."

"……괜찮을 거야."

저기에 생물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뭐가 됐든 살아남지 못할 거야.

더는 훈련을 이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리사는 기술을 쓴 일을 약간 후회하는 듯했다.

"여기까지 하지.

누군가를 가르쳐본 일은 처음이라, 잘 됐을지 모르겠지만……."

"저, 연습할게요!

용사님이 가르쳐주신 거. 매일매일!"

카렌이 기운차게 답했다.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잠깐 봐주었을 뿐이니까.

머물러 있지 말고, 좋은 스승을 찾도록 해.

데칼. 가자."

"다들 나중에 봐."

나는 리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서 사람 수가 꽤 많이 줄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신났어.

시아 님께 실례되는 일을 해버리고 만 것 같아."

"신났었구나?"

"……."

리사는 수줍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대가 해준 일에 감사한다.

아마 잊지 못할 거야."

"카렌과 스티아를 만나게 해준 거?"

"그래. 오랫동안 잊고 있었어.

중요한 건 고맙다는 말이 아냐.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어.

나는 그걸 위해 싸웠고, 오늘은 다시금 그걸 깨달은 값진 하루였어."

"그럼.

네가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데.

가슴 쭉 펴고 있어도 돼."

"데칼과 만나고 나서 많은 게 변하고 있군.

그대는 대체 뭐지? 멜브릿의 후보생? 모험가? 학생회의 특별조사원?"

"나?"

"끊임없는 싸움의 숙명에 끝을 고할 때가 왔어.

모든 게 데칼이 나타나고 나서 시작된 일이야.

그대는 시아 님과도 잘 아는 사이니까,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었어."

"……."

즉.

겉으로 드러난 신분이 아닌 무언가가 나한테 있다고.

리사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추궁하는 건 아냐.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잊어 줘."

"사실 나는 말이지."

리사가 날 바라본다.

기대감에 찬 소녀의 눈으로.

운명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딱.

용사가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자지가 큰 최면의 신이야."

"……."

무의식에 잠긴 그녀에게 내 정체를 밝히고.

나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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