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200화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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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목의 변(土木之變)

    북경에 있는 자금성으로 은밀히 이동하는 와중에도 전소평은 수시로 하오문을 들려 전황을 알려왔다.

    꽤 오랜 시간을 비워둔 자리였지만 여전히 하오문은 활발히 잘 돌아가고 있었고, 용하게도 그곳에서의 영향력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있는 전소평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그의 노력이 뒷받침 된 결과였다.

    "50만의 대군을 이끌고 가셨지만 연신 패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이라트라는 놈들이 보급로를 차단하면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전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 50만이라는 대군으로 그들을 막지 못 했단 말이냐?

    "그것이…… 50만이라는 수는 그저 머릿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귀족과 문신들…… 제대로 된 군은 금의위 일부와 오이라트족이라는 놈들과 비슷한 수의 정예병이 있는데…… 그들의 지휘를 맡은 자들이 제대로 된 장수가 아닌지라……"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전소평이었다. 보고하는 그로서도 기가 찰 정도로 믿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소평의 보고를 받은 아삼은 더욱 속도를 내서 황궁으로 향했다.

    어떤 대책이 오고가는지 파악해야만 했고 조금 더 소상히 지금의 상황을 알아야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50만이나 되는 대군의 패전 소식은 북경(北京)에 남아있던 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황제가 친히 이끈 대군이 변방의 오랑캐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은 왕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황제의 결단이었고, 그들의 패배에 조정의 대신들은 연신 의견을 모아야만 했다.

    "이대로 남경(南京)으로 수도를 옮겨야 합니다. 그놈들이 산서성에서 계속 남하하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선 황실의 어른들을 그곳으로 모신 이후에……"

    "불가합니다. 어찌 북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도망간단 말입니까? 황제 폐하께서도 아직 군을 이끄시고 계시니 쉽게 꺼낼 말은 아닌 듯싶습니다. 이전에 멸망한 송의 예를 보아서 잘 알지 않습니까? 북경을 사수해야만 합니다."

    "병부시랑의 말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허나,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제법 거리가 있다지만 그들의 기마로는 바로 코앞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때 대비한다면 늦는단 말입니다."

    병부시랑 우겸의 강력한 주장에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가는 곽정이었다. 처음부터 자신들의 뜻을 묵살하고 왕진이라는 환관을 따르는 황제가 곱게 보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남경으로 천도하자는 주장을 하는 그였지만 이어지는 한 사내의 등장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황제를 버리고 도망가자는 말이시오?"

    "누…… 누가 함부로 나서는 것인가? 흐읍. 도…… 동창?"

    이부상서 곽정이 태화전 안으로 들어서는 일련의 무리를 보며 놀란 듯 그들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던 동창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 도를 비껴 찬 채로 안으로 들어서는 송상호와 그를 보필하는 방태옥이었다. 그런 그들의 등장에 순간 장내에 적막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들어선 송상호가 우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 눈짓에 고개를 끄덕이는 우겸이었고 자신이 맡은 일은 다 했다는 듯 뒤로 물렀다. 그런 우겸의 뒤를 이어서 안으로 들어선 송상호가 입을 열었다.

    "북경을 버리고 남경을 향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오."

    "그…… 그것이 지금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곳에서 중신들이 논의할 사항이오. 아무리 동창이라고 하나……"

    - 이부상서 곽정. 그대가 그동안 청렴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지만 우리가 알아낸 것만 밝혀도 그 자리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오.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것이 좋겠지 않겠소? 아니면…… 따로 불려가서 이야기를 나눠야겠소?

    "……."

    - 우리 동창의 문초를 받아 보시겠소?

    "…… 크흠."

    송상호의 싸늘한 전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헛기침을 하며 물러서는 곽정이었다. 그런 그가 기세에 눌려서 말을 잇지 못하자 대전에 모인 신료들 중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어젯밤 은밀히 황궁으로 들어선 아삼을 본 송상호는 놀란 눈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아무런 연통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워했고,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그였다. 그런 송상호를 통해서 지금 돌아가는 일을 파악한 아삼이었다. 그리고 몇몇 대신들의 회동을 알아차린 그가 따로 우겸을 불러들였다.

    병부시랑 우겸을 통해 그의 뜻을 관철시켰고 우겸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동창을 움직인 것이었다.

    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신들이 의견을 모으는 동안 전령이 황궁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전령의 보고를 전해들은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랑캐들이 토목보(土木堡)를 포위했다면 황제 폐하의 안위가 걱정입니다. 전령이 이곳까지 도착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휘하에 있는 무장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무리 명목상 모은 군이라고 하나 그 수가 무려 50만에 달했다면서 어떻게 포위를 당했단 말인가?"

    아삼과 함께 보고를 받은 송상호와 전소평이 황당함에 분통을 터뜨렸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하던 우겸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왕진이라는 자의 뜻이 반영된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그저 학식만 뛰어나던 그가 군을 이끈 경험은 전무했을 것이고, 황제께서 그를 대동하고 친정을 하신 것만 봐도……"

    말끝을 흐리는 우겸의 말에 남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아삼은 선황인 선덕제를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건 명이 아니다. 짐 역시 한 아이를 둔 아비의 입장에서 바라는 마음이다. 태자인 기진(祁鎭)을 잘 보필해 줬으면 좋겠구나. 언젠가 내가 내린 무공으로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어떠하냐? 내 청을 들어주겠느냐?'

    일전에 선덕제를 독대하면서 들었던 그 말을 떠올린 아삼이었다. 당시에 그 청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했던 자신의 대답을 상기시킨 아삼이 마음을 굳힌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자리에 앉아있던 동창의 수뇌부와 우겸도 급히 일어나며 아삼을 바라봤다.

    - 주변에 있는 군을 북경으로 불러 모아라. 북경에서 그들을 맞을 것이다.

    "예. 제독 태감!"

    - 화기를 사용하면 쉽게 그들을 막아설 수 있을 것이다. 포위된 황제 폐하의 안위는 내가 책임 질 것이니. …… 이곳은 병부시랑 우겸의 통제를 받아서 필히 사수해야 할 것이다.

    "예. 제독 태감!"

    - 남은 중한 일들은 남아있는 중신들과 의견을 모으라. 동창이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각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아삼의 말게 읍을 하는 그들이었다. 황제가 없는 지금 다시 돌아온 아삼이 모든 결정을 내렸다. 그 기세에 병부시랑인 우겸 역시 다른 이들과 함께 머리를 숙이며 읍을 했고, 그에게 북경의 수비를 맡긴 아삼은 홀로 움직였다.

    토목보에 있는 황제를 구할 생각이었다. 선덕제의 당부를 상기시킨 아삼은 북경에서 멀지 않은 북쪽에 토목보라는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이미 타국에서 배운 무공으로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룬 아삼의 무공이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그의 무공은 다시 한 번 그에게 환골탈태를 경험하게 만들었고 그 어떤 무인보다 완벽한 신체와 내공을 가지게 된 아삼이었다.

    이제는 그 어떤 무인과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긴 아삼이었다. 예전의 송화가 불리지 못했던 그 이름을 이제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단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그였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홀로 움직이는 아삼이었고, 순식간에 먼 거리를 주파한 그가 전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대군을 확인하며 걸음을 멈췄다.

    '저들이 오이라트라는 놈들의 군인가?'

    길게 이어지는 군세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수에 미간을 찌푸린 아삼이 몸을 숨기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걸음을 옮기는 자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면 명의 대군에게서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표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살펴보던 아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벌써 움직이는 것을 보면…… 황제는 어떻게 된 거지?'

    토목보라는 요새에서 포위를 당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아삼이었다. 시간의 촉박함을 느끼고 빠르게 달려가는 와중에 포위하고 있어야 할 군과 만났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움직인 것을 보면 이미 잡혔거나 죽었을 거라고 여겨지는 황제였기 때문이다.

    우선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모습을 감춘 아삼이었다. 적당한 장소에 주둔한 채 밤을 맞이하는 오이라트의 선봉대였다.

    삼엄한 경계 속에 횃불을 밝힌 그들이었지만 그런 밝음도 아삼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영보법을 밟으며 아삼은 빠르게 움직였다. 근처에 있는 제법 큰 천막을 확인하며 그곳으로 움직였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은밀히 움직인 아삼이 안의 기척을 살폈다.

    '무인인가? 제법 큰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낮은 위치는 아닐 터.'

    안에 있는 자의 기운을 가늠하던 그가 몰래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경계병이 있었지만 천막의 위쪽을 가르며 들어서는 아삼의 모습을 눈치 채지는 못 했다. 그들 몰래 안으로 들어간 아삼이 빠르게 기막을 펼치며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의 손이 움직이기가 무섭게 빳빳하게 굳은 장수의 얼굴에는 경악이 어렸다. 스스로 무공이 낮지 않음을 자신하는 그였지만 그 움직임을 눈치 채기도 전에 제압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장수를 제압한 아삼이 그의 아혈을 풀며 전심어서를 날렸다.

    - 명의 황제는 어떻게 되었지?

    "……."

    - 이미 죽은 건가? 아니면……

    "적이다! 적이다!"

    전심어서로 묻던 아삼이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미 기막을 펼쳐서 그가 외친 소리가 퍼져나갈 일은 없었지만 그것보다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 사실에 고심하던 아삼이 다시 전심어서로 그를 향해 물었다.

    - 한어를 할 수 없는가? 아니면 글이라도 아는가?

    "……."

    뜻을 전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장수였다. 사실 자신의 외침이 밖으로 전해지지 못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그였다. 그만큼 앞에 있는 자의 무공은 자신이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장수였다.

    커다란 외침 이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였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아삼이 그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 말할 생각이 없나보군. 어쩔 수 없지.

    "크으윽. 끄으아아악!"

    그의 몸 안으로 파고드는 아삼의 기운에 찢어져라 비명을 내지르는 오이라트의 장수였다. 시린 한기와 뜨거운 양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반대 방향에서 느껴지는 서로 다른 기운에 고통스러워하는 그였다.

    파고드는 그 기운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을 모두 받는 것보다 더욱 심한 고통이 몰려들었고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변해버린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급히 입을 열었다.

    "사…… 살려주시오. 제발!"

    - 한어를 할 수 있군. 그래 황제는 어떻게 됐지?

    "끄으윽! 먼저 이거…… 이것 좀……"

    고통스러워하며 간신히 입을 여는 그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기운을 거둬들이는 아삼이었고 그제야 비명을 멈추는 상대였다.

    다행히 이전과 같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뒤늦게 그것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였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의 시선을 느낀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머뭇거렸다.

    '그래. 어차피 토목보에 묶인 황제라는 놈의 운명은 뻔한 일이다. 아무리 이 자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하나, 우리 군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을……'

    계속 머뭇거리는 그 모습에 다시 손을 움직이는 아삼이었다. 다시 두 기운이 상대의 몸을 파고들었고 생각을 이어가던 그가 고통스러워하며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끄으윽. 아직 잡히지 않았소. 토목보라는 곳에서…… 끄으아악!"

    "……."

    순순히 토설하는 그의 말에 다시 기운을 거둬들이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였다. 그리고 차가운 아삼의 눈빛을 바라보는 그가 마저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증원되는 군과 명의 보급을 막기 위해 따로 움직인 것뿐이오. 명의 황제는 아직 포위된 상태요. 그들을 포위하고 바로 움직였으니…… 이후 상황은 알지 못 하오. 우리…… 끄윽."

    가만히 말을 듣던 아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직 토목보에 있다는 황제의 소식을 들은 그가 앞에 있는 오이라트의 장수를 처리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인가?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다급한 마음에 더욱 기운을 끌어올리는 아삼이었다. 선봉대 격인 적의 대군을 뒤로하고 토목보로 향하는 그였고 그곳과 가까워질 때, 이질적인 소리가 아삼의 귀에 들려왔다.

    먼 곳에서 들리는 그 소리였지만 아삼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라는 사실에 급히 그곳으로 몸을 날리는 아삼이었다.

    "원의 부흥을 위해 애를 썼다고 하지 않았더냐? 내가 왕진이다. 에센 타이시(太師)를 만나고 싶다. 나를 그들에게 안내하거라."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왕진이었지만 그 말을 들을 그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움직이는 왕진과 일행이었기 때문에 저들을 죽인다면 그 재물을 차지할 수 있었다.

    탐욕으로 물든 오이라트 족의 병사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왕진이 다가오는 남들을 향해 분기를 터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는 그들이었고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에 안색을 굳힌 왕진이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나서거라! 우선 저놈들을 처리하고 이들의 수장인 타이시(太師)를 만날 것이다."

    왕진의 외침에 은밀히 숨어있던 그의 호위들이 나타났다. 다가서는 병사들을 향해 살초를 뿌리는 그들의 무공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오이라트의 병사들이었다.

    황제를 미끼로 도망가는 왕진을 급하게 쫓은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수는 채 오십이 되지 않았다.

    왕진을 은연중에 호위하던 무인들이 그들을 도륙하다시피 했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점창과 화산의 무공이라…… 의외의 장소에서 숨은 놈들을 찾아냈구나. 왕진. 우리가 찾던 원의 잔당이 네놈이었던가?'

    왕진을 노려보던 아삼이 바닥을 박찼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오이라트의 병사들과 싸우는 무인들의 위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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