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65화 (16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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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초(端初)

    희미한 햇빛이 살짝 스며드는 어두운 곳에 한 사내가 결박당한 채 앉아 있었다. 어두운 그곳은 마치 허름한 창고 같았지만 곳곳에서 올라오는 눅눅한 습기와 여기저기 묻어있는 핏자국들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사내의 앞에 전소평이 차가운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서있었고 결박당한 채 앉아있는 사내 또한 지지 않고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런 그들 사이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을 깨며 아삼이 전소평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전소평이 사내를 향해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이유로 나를 공격한 것이냐? 그래,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네깟 놈이 뭐라고 사주까지 받아가며 죽인단 말이냐? 그저 네 놈의 그 낯짝이 보기 싫었을 뿐이다."

    전소평의 물음에 이죽거리며 답하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전소평이었다. 하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담담히 묻는 그였다.

    "좋다. 허면 네놈들은 어떻게 그런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지? 각기 다른 문파들의 무공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단 말이냐?

    "그저 어깨 너머로 배웠을 뿐이다. 배운 것도 죄가 된단 말이냐?"

    - 같은 조직에 속한 놈들이 서로 다른 문파의 무공을 사용한다? 배웠다라? 좋다. 그렇다면 그런 무공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

    귓속을 파고드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마른침을 삼키는 사내였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제압하던 아삼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몸을 잘게 떨던 사내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 그냥 배웠을 뿐이다."

    - 그냥 배웠다라…… 그런 무공을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것도 무림에서 일절이라고 꼽히는 무공들이다. 더군다나 네놈들이 각자 사용하는 무공도 모두 제각각이더군.

    "……."

    아삼의 지적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사내였다. 이내 그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면서 기회를 엿봤다. 앞에 있는 자들이 동창의 소속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천천히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엿보는 그였고 그런 사내를 주시하며 전심어서로 말을 잇는 아삼이었다.

    - 네가 속한 단체와 그 목적을 실토해야 할 것이다.

    "흥!"

    - 우리가 잡은 놈은 너 혼자가 아니다.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네놈들의 협박에 넘어갈 내가…… 커억!"

    - 자결하지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해라. 나는 다른 놈을 볼 것이니 이곳은 네가 맡거라.

    "예."

    채 말을 듣기도 전에 그의 턱을 빼낸 아삼이 전소평을 향해 명을 내렸고 밖으로 나서는 아삼을 향해 읍을 하는 전소평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의아해 하는 사내였다.

    전소평을 잡으러 온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사항은 모두 숙지한 상태였다. 그보다 더 윗선으로 보이는 자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 했기 때문에 저렇게 깍듯이 대하는 모습에 의아해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도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는 전소평이 잔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를 향해 다가왔기 때문이다.

    "네 놈이 그 입을 다물고 있다하여 못 알아낼 내가 아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입을 여는 것이 너에게도 좋을 것이다. 알아들었다면 눈을 세 번 깜빡이거라."

    "……."

    전소평의 말에도 죽을 듯이 노려보는 사내였고 그 모습에 인상을 구긴 전소평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딱히 너에게 이것들이 필요하지는 않을 터.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우선 제거하고 묻도록 하지."

    "아아아. 아아!"

    다가오는 전소평의 모습에 고개를 흔드는 사내였지만 이내 굳어오는 몸을 느끼며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방 안에는 이질적인 소리로 가득 찼다.

    "끄으아악! 끄으윽!"

    방 안 가득 고통스런 사내의 비명소리가 가득 울렸다. 그리고 그런 사내에게 고문을 가하며 거칠게 묻는 전소평이었다.

    "말하거라. 네놈들의 정체를!"

    "모…… 모른다. 모른다 하지 않았느냐?"

    입안 가득 고인 피를 흘리며 새는 발음으로 말을 하는 사내였다. 당당했던 그의 표정은 지워졌고 어느새 얼굴 가득 두려움이 번졌다. 이틀에 걸쳐 죽지도 못하고 고문만 당하는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전소평이 뒤에 있는 아삼을 의식하며 손톱 밑으로 찔러 넣던 침을 멈췄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내 미리 일러두마. 절대 네 놈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고문을 받아 몸이 상한다면 그 몸을 치료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몸이 다시 회복된다면 그때 너를 문초 할 것이다.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친히 너에게 알려주마. 잘 생각하거라. 그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하여 능사는 아닐 테니…… 대 명의 동창의 위엄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전소평의 말에 두려운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올려보는 사내였다. 하지만 어느새 마음을 다잡으며 눈빛을 바꾼 사내가 그를 향해 이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대 명? 너희 한족 놈들의 위엄이라는 것이 고작 남자 구실도 못하는 것들로 대변되는 것이었더냐? 사내인지 계집인지도 모르는 네놈들의 그 얄량한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내 궁금하구나."

    '한족이라…… 저들은 한족이 아니었던가?'

    내뱉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삼이었다. 이내 독기 어린 눈빛을 보이는 그를 향해 아삼이 전심어서로 물었다.

    - 네놈들은 한족이 아니라는 것이더냐?

    찬찬히 그 생김새를 살피며 묻는 아삼이었지만 크게 다른 얼굴은 아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당황한 듯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의 모습에 확신을 가진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삼을 향해 사내가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냐? 내가 한족이 아니면 누가 한족이겠느냐? …… 억측하지 말거라."

    - 억측이라? 글쎄 억측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되겠지.

    얄궂은 미소를 흘리며 전소평을 향해 눈짓을 보내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눈빛을 받은 전소평이 사내에게 다가가 다시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내 고통스런 사내의 비명을 뒤로 한 채 방을 나서는 아삼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 그래, 토설한 것이 있느냐?

    자신의 처소로 들어서는 전소평을 바라보며 나직이 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젓는 전소평이었다.

    "얼마나 독한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문초를 잠시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자의 몸을 회복시키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묻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전심어서로 말하는 아삼이었다.

    - 그래. 계속 문초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입을 열겠지. 암기에 맞았던 자는 어떻게 됐느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령이 부른 의원으로 치료를 받게 했지만 큰 차도는 없어 보입니다. 독에 당했다고 하는데…… 그 독이 어떤 독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사천에 있는 당가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했습니다만……"

    - 당가?

    "독으로 유명한 곳이니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의원의 설명입니다. 그 독의 종류도 알아낼 수 있다고 하기에…… 우선은 더 이상 독이 퍼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합니다."

    - 흐음. 현령에게 일러 따로 마차를 준비하도록 해라. 우리 행적은 철저히 비밀로 부치고 근처에 있을 믿을만한 동창 요원을 따로 불러서 그가 이곳에서 일을 벌인 것으로 위장해야 할 것이다.

    "예. 첩형."

    - 단단히 엄포를 놔야 한다. 그들을 데리고 사천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원에 대해서 따로 알아보도록 하거라.

    "…… 원 입니까?"

    -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겠더냐? 죽음을 각오한 놈들이니 잘 감시해야 한다.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입을 열 것이다. 그 동료로 보이던 놈이 불었다는 말을 넌지시 흘리면서 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예. 첩형."

    아삼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아삼이었다. 아직 확실히 알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 단초를 잡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전소평이 방을 나가자 비급을 확인하는 아삼이었다. 마태령의 무공이 적힌 비급으로 장호영을 위한 것이 공교롭게도 아삼에게 들어온 것이었다.

    '흐음. 형강권(形强拳)이라.'

    권마라고 불리는 마태령의 독문 무공이었다. 강맹했던 그의 무공을 대변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적합했던 무공명이었고 천천히 비급의 책장을 넘기는 아삼이 그 무공에 집중을 했다.

    독문 내공과 그 수련법. 그리고 권법이 갖고 있는 초식과 그 형(形)을 살피던 아삼이 천천히 손을 들면서 그 초식을 그렸다. 제대로 익힌 무공이라고는 보법과 심법 그리고 검법이 전부인 아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경지에 이른 그였지만 새로운 무공은 그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몇 개의 초식을 살피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아삼이었고, 그렇게 읽던 비급을 보면서 꽤 상세하게 적힌 그 비급에 의아해 했다.

    대부분의 비급이라고 칭하는 것은 구결과 함께 몇몇 동작의 모습만 그려진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봐왔던 것들의 대부분이 그랬다.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그 뜻을 풀이하고 주의할 것들을 적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누이에게 죽음을 당한 그 둘째라는 놈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가? 꽤나 우직한 성격을 가진 것 같던데…… 아무래도 이 무공의 영향을 받아서 그 성격도 직선적일 것 같은데 이렇게 풀이된 비급을 준비한 것을 보면…… 그만큼 죽은 그자에게 애정이 컸었다는 뜻인가?'

    마태령의 모습을 떠올리던 아삼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내 한번 훑어본 비급을 덮으며 다시 그것을 갈무리한 그가 고심을 했다. 자신에게는 그렇게 쓸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 했던 기발한 초식이 몇 개가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에게 초식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경지에 든 고수와의 싸움에서는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그들을 제외하는 싸움에서는 초식 몇 개가 그렇게 크게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았다.

    '용유검의 남은 초식들도 익혀야 하는데…… 사천으로 이동하는 동안 조금씩 익히는 것이 좋겠군. 그리고 이 비급은…… 흐음.'

    마태령에게 받은 비급을 두고 고심하던 아삼이 전소평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믿을만한 수하로 자리매김한 그였기 때문에 그의 고충과 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전의 싸움에서도 많이 안타까워하던 모습을 떠올린 아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언젠가 그가 익힐 수 있을 비급을 따로 구해주려고 생각을 했었고 이것도 좋은 기회일 것 같았다.

    '보법과 경신술은 그 수준이 낮지 않으니…… 이 무공이 큰 도움은 되겠지.'

    버젓이 살아있는 이의 무공이라 건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마태령에게 말미를 주는 대가로 건네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삼이었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비급을 갈무리한 아삼이 전소평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아삼이 내린 명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전소평이 다시 자신을 찾는 아삼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혹 잊으신 명이라도 있으십니까? 말씀하신 내용은 따로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넝마가 된 그 두 놈을 따로 실을 마차를 준비했고 근처에 있던 동창의 요원을 불러들였습니다. 첩형을 드러내지 않고 내린 명이라 혹시라도 이번 일이 새어나간다고 해도 저만 드러날 것 같습니다. 아직 불러들인 동창의 요원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 조금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 그래. 좋군.

    따로 말하지 않은 일까지 마음에 들게 일을 처리한 전소평이었다. 그렇게 시립해 있는 전소평을 바라보던 아삼이 마태령이 준 비급을 그에게 전했다.

    갑작스럽게 비급을 건네는 아삼의 행동에 의아해하던 전소평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계속해서 받으라는 눈짓을 보내는 아삼을 확인하며 건넨 비급을 받아들었다.

    "이것은……"

    - 마교의 장로에게서 받은 비급이다. 사특한 무공은 아닌 것 같다. 권마라고 불린다지? 그 무공은 여느 정심한 무공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더군. 익히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 제가 익혀도 되는 것입니까?"

    -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따로 익혀놓거라.

    "하…… 하지만 이렇게 귀한 비급을 어찌 저에게……"

    - 말하지 않았더냐? 네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네 경신술의 수준이 낮지 않으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처…… 첩형!"

    - 되었다. 이만 쉬어라.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아삼의 배려에 말을 잇지 못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급히 자리를 피하는 아삼이었다. 이내 멀어지는 아삼을 향해 전소평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아삼에 비해 너무나 뒤쳐진 자신의 무공 때문에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익히겠습니다.'

    자신의 손에 놓인 비급을 단단히 쥐며 다짐하는 전소평이었다. 그렇게 비급의 첫 장을 넘기며 마태령의 비급을 익히기 시작하는 그였다.

    ============================ 작품 후기 ============================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아직 주말이 남아있네요.

    남은 주말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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