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62화 (16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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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초(端初)

    자신을 내세우는 두 사람의 행동에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는 마태령이었다. 이미 교에서 수십 년을 보낸 그였다. 비교적 성정이 거칠고 급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일들은 숙고하며 신중하게 처리한 일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거친 모습을 보인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당연히 장가영과 하도강의 제안에 숨은 속뜻이 있음을 대강 짐작하고 있는 그였지만 찝찝함보다는 장호영의 복수가 먼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따로 교주를 찾아갔지만 그만 잊으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아비도 잊었는데 숙부인 자네가 어찌 그리 집착을 하는가?'

    장위적의 그 말을 떠올리는 마태령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의 제안도 제안이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장호영의 복수는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호영을 죽인 네년에게 어쩌면 더한 고통을 안겨 줄 것이다. 네년을 위해서 신교까지 찾아온 그 동생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이야.'

    그렇게 마교를 나선 아삼의 뒤를 쫓게 된 마태령이었고 마태령이 움직였다는 보고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긴 한숨을 토해내는 장위적이었다. 신교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희생을 선택했지만 지금까지 의형과 의동생으로 지낸 시간이 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막 신교를 빠져나오는 마차의 모습에 두 눈을 빛내는 마태령이었다. 이내 마차에 시선을 고정시킨 그가 뒤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조용히 내 뒤를 따르거라."

    나직하면서도 위엄 가득한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사내들이었다. 어느새 자취를 감춘 그들을 뒤로하고 마태령이 은밀히 마차의 뒤를 좇았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마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마태령이었다. 자욱한 모랫바람이 계속해서 그의 시야를 가렸지만 여전히 마차를 주시하는 그였다.

    '그년의 동생이라? 우선 저놈의 목이라도 거둔다면…… 그년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제지간으로 엮였지만 마태령에게 장호영은 특별했다. 어쩌면 아버지인 교주 장위적보다 더 장호영을 아꼈던 그였고 또 그런 마태령을 아비처럼 믿고 따랐던 장호영이었다.

    '어리석은 놈! 그렇게 자중하라고 일렀었거늘……'

    애정이 깊은 만큼 장호영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한 마태령이었다. 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호영의 모습에 침음을 삼키던 그가 천천히 품에 있는 물건을 더듬으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망할 놈! 그리 배우고 싶다던 이 비급도 완전히 익히지 못하고…… 이 비급만 익혔었어도 그리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미처 가르치지 못한 초식과 급한 성정을 보완하고자 다듬던 무공이었다. 그렇게 엮은 무공 비급을 채 건네기도 전에 목숨을 잃은 장호영이었고 못내 그 사실이 안타까운 마태령이었다.

    '흠…… 이미 죽은 놈을 생각해봤자 원통 할 뿐이다. 내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너를 그렇게 만든 그년에게 더한 고통을 주는 것이니, 기다려라. 내 그년의 동생이라는 놈을 우선 너에게 보내마.'

    의지를 다지며 다시 한 번 마차를 노려보는 마태령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아삼의 목을 거두고 싶었으나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 교의 근처인지라 자칫 잘못했다가는 교의 위치가 드러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는 청해성에 있는 군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놈인지라 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복수가 우선이라지만 교의 사정도 고려해야만 했다. 교에서 벗어나고 따로 움직일 때, 시간을 둬서 처리하려고 마음먹은 그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곧 네놈의 목을 거둬주마.'

    잔뜩 굳은 얼굴로 아삼을 태운 마차를 노려보는 마태령의 전신에서 순간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두 눈에 어린 그리운 감정과 함께 복잡하게 드러난 시선을 지우며 감정을 추스르는 마태령이었다.

    '살기라…… 은밀히 나를 뒤쫓는 자는 단지 감시만을 위한 자가 아니구나. 역시나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 것인가? 누이의 신변을 지킨다고 했으니……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이제 내 뜻대로 처리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미미하게 느껴지는 살기에 인상을 굳히는 아삼이었다. 그 제안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휘둘렸지만 더 이상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나를 이용하려고 했으니, 그 책임은 응당 당신네들이 져야 할 것이오. 교주.'

    한편, 아삼을 떠나보낸 후 교주전에 앉아 이번 일을 다시 한 번 곱씹는 장위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아삼을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이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는 그였다.

    '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거늘. 아들놈들이라고 있는 것들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숨만 새어나오는 장위적이었다. 이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하게 키운다는 것이 경쟁만을 부추겼던 것 같아서 뒤늦게 후회가 드는 그였다.

    "군사 제명현 들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장위적이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았고 곧이어 군사인 제명현이 조심스럽게 교주전으로 들어섰다. 이내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리는 그였고 그런 제명현을 바라보며 나직이 묻는 장위적이었다.

    "그래, 어찌 됐는가? 움직임이 있던가?"

    "예. 방금 마 장로가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 결국에는 그렇게 되는 것인가?"

    "예. 마 장로가 수하들을 데리고 은밀히 교를 나섰고, 그를 태운 마차의 뒤를 좇고 있다고 합니다."

    "하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사람을 보낼 셋째가 아니지. 혹 마태령이 실패한다 해도 그놈에게는 손해날 일은 없을 테니까."

    제명현의 말에 씁쓸한 듯 긴 한숨을 뱉어내며 나직이 읊조리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의 말에 제명현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마 장로 또한 거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간 둘째 공자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했던 그인데……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더 안타깝군 그래. 아무리 교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나…… 내 못난 아들놈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긴 한숨을 토해내는 장위적이었다. 마태령은 호영의 스승이기 전에 교의 장로이자 장위적의 의형제였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보면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애틋했다. 지금까지 신교를 함께 끌어왔던 그였던지라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장위적이었다.

    '결국 마태령, 자네가 희생양이 된 것인가?…… 미련한 인사 같으니라고.'

    청해성 쪽을 바라보는 장위적의 두 눈에 측은함이 가득 어렸다. 신교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지만 그 일로 마태령을 잃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조용히 두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는 장위적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을 고심하던 그가 시립해 있는 제명현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그 손짓에 가까이 다가서는 제명현이었고 은밀히 전하는 그의 말에 놀란 듯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덜컹거리는 마차에 앉아있는 아삼의 신경은 온통 밖을 향해 있었다. 두 눈과 두 귀를 가린 상태지만 최대한 감각을 끌어올리며 지나온 길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그였고, 느껴졌던 그 살기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은밀히 자신을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장을 늦추지 않는 아삼이었고 어느새 그를 태운 마차가 청해성에 거의 다다랐다. 그리고 아삼의 앞에 앉아서 밖을 살피던 사내가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가린 것을 풀어내며해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청해성에 당도할 것이오. 따로 전할 말이 있다면 나를 통해서 전하라는 교주님의 전언이 계셨소."

    딱딱한 말투로 자신의 용건을 전하는 사내였다. 그자의 말에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걷어내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며 전심어서를 보냈다.

    - 약조한 일은 꼭 지켜야 할 것이라고 전하시오. 그리고……

    "……."

    - 드러내지 않는 일에 대한 책임은 모두 교주의 몫이라고 전하시오.

    "…… 알겠소."

    불경한 아삼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사내였지만 애써 참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였다. 이내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그 사내가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멀어져갔고 그런 사내를 뒤로 하고 다시 마차가 속도를 올렸다.

    뛰어내린 그자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 아삼이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청해성 인근의 익숙한 지형이 가득 들어왔다. 그 모습에 다시 흔들리는 의자에 몸을 기댄 아삼이 품속으로 손을 넣어 딱딱한 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것을 끝내 받지 말았어야했나?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딱딱한 청동패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머릿속에 떠나기 전 교주전에서 나눴던 장위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 이걸 받아라."

    자신을 향해 뭔가를 내미는 장위적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삼이었지만, 그런 아삼을 향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장위적이 말했다.

    "사천에 있는 수리상단의 상단주에게 보이면 될 것이다. 그걸 가지고 가면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온전히 네 뜻대로 그들을 부릴 수 있을 것이다."

    - 그것을 어찌 나에게 주는 것이오?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장위적을 바라보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나직이 말을 잇는 장위적이었다.

    "그리 의심할 것 없다. 그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 같아서 주는 것이니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금이 필요할 것 아니냐? 그 상단에서 비용을 조달하도록 해라."

    - 됐소. 어차피 누이를 위한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소.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며 똑같이 고개를 흔드는 장위적이었다. 이내 나직한 어투로 천천히 자신의 뜻을 전하는 그였다.

    "그리 딱딱하게 굴 것 없다. 사천에 있는 상단은 오래 전부터 당가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이번 일로 이제는 당가의 의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하여 당분간은 아니, 앞으로는 그 상단을 운영하지 못 할 것이다. 황궁에서도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런 상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거라. 더 이상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곳이니 관인인 너에게 넘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중을 위해서라도 네가 갖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주는 것이다."

    - 조정의 녹을 먹고 있는 내가 어찌 사사로이 상단을 움직인단 말이오? 난 받을 수 없으니 그만 그 패를 물리시오.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젓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장위적이었다. 이내 진지한 눈빛의 장위적이 아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받기 싫어도 받거라. 내 너를 위해서 이것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 이 신교를 위해서 힘을 써줬던 자들을 위한 길이라 생각되어 주는 것이다. 어쩌면 너에게 떠넘기는 것이지."

    "……."

    "그들 중 수뇌부 몇을 제외하면 신교와 관련이 없는 자들이다. 일반적인 명의 백성들이란 말이다. 그 수뇌부들도 무공을 모르는 자들로 살기 위해서 우리 신교와 손을 잡은 것뿐이다. 믿기 힘들다면 그들만 따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네가 이 패를 거부한다면…… 그들도 살 방도가 없어질 것이다."

    "……."

    "몇 십 년을 고생하며 키워온 알짜배기 상단이다. 제법 명망있는 곳이니 너에게 주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소를 희생하는 것이니. 이번 일과 관련해서 주는 보상이라고 생각하거라."

    "……."

    자신을 향해 미소를 보이던 장위적의 얼굴이 떠오른 듯 잔뜩 굳은 얼굴로 손에 쥔 패를 움켜쥐는 아삼이었다.

    '뭔가 숨은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 전의 그 살기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단순히 그 일만 엮인 것은 아닌데.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되겠지.'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며 패를 갈무리한 아삼이 두 눈을 감았다. 이번 일을 통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그였고, 규화보전이라는 충분히 강해진 힘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서렸다.

    점점 줄어드는 속도와 함께 멈춰선 마차의 움직임에 눈을 뜨는 아삼이었다. 이내 멈춰선 마차의 창을 통해서 주변을 살펴봤고 보이는 웅장한 성벽을 확인하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청해성을 들어서기 위해서 수많은 인파들이 성문 앞에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이 마차를 몰던 마부를 되돌려 보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일련의 병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소평이 이십여 명의 무장한 병력을 이끌고 그를 마중 나온 것이었다.

    "첩형, 괜찮으십니까?"

    아삼을 발견한 전소평이 급히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다행입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 우겸은 어디 있느냐?

    "지휘첨사 우겸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군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기일이 오늘인지라……"

    - 되었다. 준비한 군은 주변의 오랑캐를 토벌하라고 전해라. 우리가 찾던 놈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더냐?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는 놈들이라…… 다만 정파라고 불리는 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몇몇 문파가 은연중에 한 곳으로 모이는데……"

    - 그곳이 사천이더냐?

    아삼의 물음에 전소평이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채 말을 하기도 전에 알아맞힌 아삼이 신기했고, 어렵게 알아낸 정보를 너무나 쉽게 찾아낸 그의 행동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런 전소평의 시선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기는 아삼이 다시 전심어서로 그를 향해 명을 내렸다.

    - 사천으로 움직일 것이다. 우리가 찾던 놈들의 흔적이 사천에서 발견 된 것 같으니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채비를 마치거라.

    "예. 첩형.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는 아삼과 전소평이었다. 빠르게 성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사내의 등장에 절로 길을 비켜서는 사람들이었고 당연하다는 듯 그들을 제치며 청해성 안으로 들어서는 그였다.

    '드디어 신교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인가? 조금만 더 참아주마. 그 며칠간이 네놈이 볼 수 있는 마지막 세상이 될 것이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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