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60화 (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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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초(端初)

    제명현의 손에 이끌려 교주전으로 들어서는 아삼이었다. 화려한 문이 열리고 거대한 대전이 그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그 넓은 대전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앉아있던 장위적이 들어오는 아삼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였다.

    용상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곳에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있는 장위적의 모습이 아삼의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거기 앉거라."

    높은 곳에서 내려오며 아삼에게 자리와 함께 시녀가 가지고 온 차를 권하는 장위적이었다. 교주전 한 곳에 따로 놔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교주전을 나가는 제명현이었다.

    어느새 교주전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고 그 적막을 깨며 장위적이 중후한 목소리로 아삼에게 물었다.

    "그래, 그 아이는 잘 만나봤느냐? 오랜만에 수족지애(手足之愛)의 정을 나눈 소감이 어떠하냐?"

    "……."

    "감격에 겨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긴, 오랜만에 만났을 테니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테지. 첫째 아이의 정혼자라고 하면 앞으로 내 가족이 될……"

    - 말씀을 가려하시오. 정혼자라니! 무슨 망발이오!

    장위적의 말이 불쾌한 듯 퉁명스레 대거리를 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반응이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장위적이었다.

    "하하하하. 재미있구나. 내게 그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는 놈은 실로 오랜만이다. 네 누이와 소교주와의 사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 정혼자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냐? 아니면 소교주라고 불리는 내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냐?"

    "……."

    "아니면 이 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냐?"

    - 누이에게 그 어떤 말도 들은 것이 없다는 뜻이오. 누이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그 일을 논하겠소? 앞으로 내 앞에서 그 일은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당돌한 아삼의 말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삼을 바라보는 장위적이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삼을 향해 나직이 말하는 그였다.

    "좋다. 그건 후에 논하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나에게 네 누이를 풀어달라고 했더냐?"

    아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전심어서로 답하는 아삼이었다.

    - 그렇소.

    "내가 네 누이를 풀어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이냐? 너도 알다시피 네 누이를 구명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부모의 복수를 했다고 하지만…… 하필이면 그 상대가 내 아들이었다. 바로 둘째 놈이었지."

    "……."

    "비록 잘못이야 그놈에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내 혈육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더구나. 더군다나 이미 이상하게 얽혀버렸으니…… 내가 풀어주고 싶다고 한들 풀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말이다."

    난제를 만났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드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향해 나직이 되묻는 아삼이었다.

    - ……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장위적이었다. 자신의 의중을 바로 읽어내는 그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황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아삼이었다. 아무리 흉흉한 교의 생활로 교주까지 올라선 그라고 하나, 황궁의 생활과 비교해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짐작하지 못하는 장위적은 연신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아삼을 바라봤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리는 그였다.

    "원하는 것이라…… 글쎄…… 네게 무엇을 요구하면 좋을까? 지금 당장 네 누이를 풀어준다고 하면, 들고 일어설 이가 적지 않다. 교의 반절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신교에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지. 물론 내가 건재하니 대놓고 그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중에라도 그것이 곪아서 터져버린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큰일 일 터. 그렇다면…… 그들의 불만을 잠재울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얄궂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장위적의 모습에 얼굴을 구기는 아삼이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듯 자신을 떠보는 장위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아삼이었다.

    - 누이를 풀어주는 조건이 무엇이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히 말하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장위적이었다.

    "하하하,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그렇게 한참을 웃던 장위적이 어느새 진지한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 계속 말해 보시오.

    "…… 몇 해 전, 마공이 출현했던 일을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일을 조사하러 보낸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네 누이였다. 그리고 그때 둘째 놈이 목숨을 잃었지. 헌데, 요 근래에 다시 새로운 무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 …… 새로운 무공? 마공이오?

    무공이라는 말에 되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쓰는 장위적이었다.

    "마공이라…… 마공이라는 것은 무엇을 보고 마공이라고 하는 것이냐? 단지, 우리 교에서 나온 무공은 무조건 마공이라고 보는 것이냐?"

    "……."

    "믿었던 자에게 쫓겨서 내 몰린 것도 모자라서 마교라는 누명을 쓴 채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그런 우리들을 배척하며, 우리를 두려워하던 무림인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라도 빨리 강해져야만 했다. 물론 마공이라고 불릴 만한 무공들이 존재했지만 그렇지 않은 무공들이 더 많이 있다. 그런 교의 무공을 모두 마공으로 부른다면……"

    - 그것이 마공이든 정공이든 내게 중요하지 않소. 내가 해줬으면 하는 일만 말해주면 될 일이오. 우선 들어보고 판단하겠소.

    딱딱한 아삼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장위적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고 굳은 얼굴로 아삼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좋다. 내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군. 얼마 전…… 사천에 있는 분타에서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사천을 대표하는 당가의 무인 한 명이 죽어서 발견되었는데 그 시체에 난 흔적이 바로 우리 교의 무공이었다는 보고였지."

    "……."

    "당연히 우리 교에서는 그런 짓을 벌인 적이 없었다. 원체 기질이 드세고 아집으로 뭉친 놈들이 사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터라, 굳이 그곳에서 분탕질을 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저 사천은 나중을 위해 조용히 초석을 다지는 선에서 교의 분타를 운영하고 있었다."

    - 그렇다면 그 무공으로 당가의 무인을 해한 것이 마교의 사람은 아니다 이 뜻이오?

    "그래. 신교에 적을 둔 자는 아니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교주로 있는 한 내 뜻에 반해서 그런 짓을 벌이는 간 큰 놈은 없을 테니까."

    "……."

    "그 당가 놈의 시체에서 드러난 무공의 흔적은 지금은 익힌 이가 거의 없는 무공이다. 교가 주원장이라는 놈과 원을 몰아낼 때, 마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전에 사용한 무공이지."

    일부러 명의 태조를 욕보이는 장위적이었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삼이었다. 당연히 조정의 녹을 먹는 아삼이 발끈하리라고 여기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아삼에게는 그저 얼굴 모를 옛날 사람일 뿐이었다.

    그 사실에 침음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리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바라보며 그 말을 꺼낸 의중을 묻는 아삼이었다.

    - 그래서 지금 그 말을 꺼낸 연유가 나와 관련이 있소?

    "마공을 찾기 위해서 네 누이를 내보냈을 때, 알 수 없는 자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구나. 그들의 의도는 우리 신교와 정파라는 놈들과의 충돌인 것 같았다. 실제로 이번에 사천의 분타에서 보고된 것도 그렇고 지금 정파라는 놈들의 움직임도 그렇고,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 이상한 점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요?

    "우리 교의 무공과 그 정파라는 놈들의 무공을 사용하는 낯선 자들이…… 의도적으로 두 세력의 무공을 사용하며 분탕질을 치려고 하는 것 같다. 화산이라는 곳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 같더군. 다른 정파들도 준동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서로가 반목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우리 교와 다른 놈들과의 충돌을 바라는 것일 테지."

    장위적의 설명을 들은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이 찾던 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문파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 그리고 마교라고 불리는 곳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란 아삼이었다.

    '정파와 마교의 무공을 사용하는 놈들이라…… 그렇다면 정파의 유명한 문파뿐만 아니라 마교의 무공까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찾던 놈들과 관련이 깊은 것 같은데…… 어떻게 그들이 그런 무공을 알고 있는 것이지?'

    장위적의 말에 고심하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미미하지만 처음으로 표정이 변한 아삼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장위적이었다.

    "그때 둘째의 죽음으로 유아무아 넘겼다마는…… 아무래도 우리 신교의 무공을 사용하는 놈들을 잡아야 하지 않겠더냐? 네 누이를 풀어주는 대신, 네가 이 일을 맡아다오."

    - 나보고 당신들 교의 일을 해결하라는 뜻이오?

    "네가 동창이라는 곳의 수장 격이라고 하더군. 당연히 군과 함께 수많은 정보를 접할 것이 아니더냐? 우리가 정파라는 놈들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터. 네가 가장 적합한 사람일 것 같더군."

    "……."

    "어떻게 할 테냐? 이 일을 맡아볼 테냐?"

    "……."

    생각지 못한 장위적의 제안에 고심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장위적이었다. 진즉,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신교 내의 이상한 기류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 그 세가 비슷하게 되어버린 장무영과 장가영이 서로 반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안을 쉽게 꺼내지 못 했다. 이 일을 꺼냈다면 서로 자신이 맡겠다고 싸울 것은 불 보듯 뻔했고, 그렇게 된다면 둘째의 죽음으로 떠들썩했던 교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릴 것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이 일을 맡아준다면 그 공으로 네 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

    아삼의 결심을 종용하려는 듯 회심의 말을 꺼내는 장위적이었고 그 사실에 미간을 찌푸리는 아삼이었다.

    '그놈들이 마교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 단초를 얻었으니 다행이지만…… 흐음.'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삼이었다. 이내 한참을 고심하던 그가 장위적을 바라봤다.

    - 좋소. 그 일을 맡겠소. 누이는 지금 당장 그곳에서 풀어줘야 할 것이오.

    "흠. 지금 당장이라…… 당분간은 옥에서 빼내겠다. 다만, 전각에 감금시켜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 일을 확실히 매듭지은 이후에야 운신이 자유로울 것이니…… 맡은 일을 잘 해결하면 될 일이다."

    - 해결하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 네가 이곳에 오고 교를 위해 힘쓴다는 사실만으로도 네 누이는 풀려날 것이다. 다만, 되도록이면 그 일을 잘 마무리지어줬으면 좋겠구나.

    자신을 바라보며 당부하듯 말하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바라보며 조용히 주억거리는 아삼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고 이 일로 누이를 꺼낼 수 있다면 자신에게 나쁠 것은 없다 생각한 그였다.

    - 좋소. 단, 조건이 있소.

    "조건?"

    - 관인인 내가 무림의 정보를 얻은 것은 쉽지 않을 터. 내 이 일을 맡을 터이니 마교에 따로 모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소.

    생각지 못한 아삼의 전심어서에 미간을 찌푸리는 장위적이었다. 이내 고심하던 장위적이 결심을 굳힌 듯 아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어차피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니, 네게 관련된 정보를 내어주겠다. 따로 군사에게 일러둘 것이다. 이 일을 해결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도 내어줄 것이니…… 귀찮더라도 감내하길 바란다."

    내키지 않았으나 장위적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선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일의 전말을 밝혀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하는 그였고, 생각해 둔 다른 것까지 시행하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당돌한 놈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아삼을 바라보는 장위적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수락하는 장위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내친걸음이니 이들을 이용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이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일 테니까.'

    마지막에 내보인 장위적의 미소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의 목적을 위해 손을 잡은 그들이었다.

    "허면 이것으로 우리의 거래는 성사된 걸로 알겠다. 내 따로 말하지 않아도 네 누이를 구하는 일이니 전력을 다할 것이라 믿는다."

    진지한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보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전심어서로 뜻을 전하는 아삼이었다.

    - 걱정 말고 당신이 한 약조나 지켜 주시오.

    "하하하. 알았다. 내 입으로 한 약조는 반드시 지킬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따로 쉴만한 거처를 마련해 두라 일렀으니 우선은 쉬어라. 귀한 손님인데 허투루 대접할 수는 없지."

    얄궂은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흘리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향해 인사를 건네며 교주전을 나서는 아삼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명현이 교주전을 나오는 아삼을 확인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 자가 당신을 처소까지 안내할 것이오. 이 자의 뒤를 따르시오."

    말을 마친 제명현이 대동한 사내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사내가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다가갔고 그런 사내의 뒤를 따르는 아삼이었다. 이내 사라지는 아삼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제명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어렸다.

    '동창을 끌어들인다라…… 과연 좋은 생각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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