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13화 (11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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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野心)

    계속해서 앞만 보며 달려가는 아삼이었다. 이미 지나쳐온 길에는 다수의 무인들이 쓰러져 있었지만 다행히 먼저 보낸 일행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왕현에게 살짝 베인 옆구리를 지혈만 해놨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아삼은 미미한 고통을 참으며 긴 관도를 내달렸다.

    한 시진 정도 말을 몰았지만 송상호와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배를 타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쉴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몰아가는 그였지만 뒤에서는 흐릿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제 상당히 지친 듯 헐떡대는 말의 상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무당의 제자만 보내지는 않았던가?'

    조금씩 가까워져오는 먼지구름과 함께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계속해서 관도를 내달리는 그였지만 이미 지친 말의 속력은 줄어들고 있었고 어느새 멀어졌던 자들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선두에 선 무장한 자들이 활을 꺼내며 그를 향해 겨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겨눠진 활에 노출된 적은 처음이었다. 그 불안함에 달리는 말을 채근했지만 거친 숨만 내쉴 뿐 속도는 더 줄어드는 것 같았다.

    피융. 피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화살에 군도를 꺼낸 아삼이 그것을 쳐냈지만 생각보다 강한 반발력이 느껴지자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그런 아삼의 반응에 이번에는 더 많은 화살이 날아왔고 그것을 쳐낸 아삼의 속도는 이전보다 더 줄어있었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화살에 결국 달리던 말이 쓰러지면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고 아삼은 그 등을 박차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조금만 더 가면 강이 나온다. 이대로 저들을 따돌릴 수 있을까?'

    이전의 싸움으로 지친 상태로 말을 몰고 온 아삼이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파로 봐서 고수가 아닌 자가 없는 것 같았지만 고심하던 그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 온전히 규화보전의 힘을 끌어올려야만 할 것 같았지만 그 힘으로도 저 많은 수의 사람들을 처리할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질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모두를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 중에 몇 명이 빠져나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곤란할 일이었다.

    "게 섰거라!"

    커다란 외침과 함께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놈의 목소리에 더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이 바닥을 박찼고 순식간에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점점 멀어지는 아삼의 모습에 당황한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의 등을 박차며 앞으로 치고 나갔고, 그 모습에 몇몇 무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쫓아오는 자들의 움직임을 눈치챈 아삼은 쓴웃음을 지으며 힘을 끌어올렸다. 멀리 누런 빛의 황하가 눈에 들어왔고 그 근처에 배가 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보이는 먼지구름과 함께 그 앞을 내달리는 아삼의 모습을 확인한 송상호가 배를 출발시켰다.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한참 전에 떠나야 할 배를 멈춰세웠지만 지금 상황을 봐서는 지금 출발을 시켜야 뒤따르는 자들을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출발을 해 버리면 당두님께서는……"

    "저들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야 해. 물에 빠진다고 해도 그때, 건져내면 될 일이다."

    "그래. 전소평의 말이 맞아. 고기현, 너는 배에 여분의 밧줄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그것을 구해놔라."

    "…… 네."

    멀어지는 고기현을 바라보던 송상호가 시선을 돌려서 아삼을 바라봤다. 빠르게 달려오는 그였지만 그를 뒤쫓는 자들이 실력도 크게 뒤쳐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단하군. 엄청난 경공이야."

    "……."

    "당두도 대단하지만 뒤쫓는 자들도 모두 고수다. 움직임도 일사분란하군. 그만큼 한왕은…… 무서운 사람이란 뜻이겠지?"

    "그런 한왕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그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당두도…… 대단하지."

    "그래. 그럴 지도 모르지. 평범하신 분은 아니니까. 그럼, 내가 선택한 분이 평범해서는 안 되지."

    고개를 끄덕이던 송상호가 멀리 있는 아삼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송상호를 보면서 투덜거리는 전소평이었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송상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쳇, 그러는 놈이 송기득의 손을 잡았던 거냐?"

    멀리 보이는 배가 포구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걸렸고 그를 뒤쫓는 자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이내 결심을 한 듯 2오 횡대로 위치를 바꾸며 앞선 무인들을 밀어주는 그들이었다.

    뒷사람의 힘을 더해서 앞으로 날듯이 달려나간 그들이 아삼과 거리를 좁혔고 그들을 밀어내던 자들이 활을 꺼내며 아삼의 전방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일부러 그의 앞을 향해 활을 쏘는 그들이었고 쏟아지는 화살에 멈칫한 아삼을 향해 뒤따르던 자들이 검을 뻗어냈다. 등을 난도질 할 것 같은 그들의 검기에 급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공격을 피한 아삼은 기다란 흔적을 남기면서 파인 바닥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앗!"

    그런 아삼을 향해 비호처럼 달려든 상대가 잘 벼린 군도를 휘둘렀다. 피어오르는 먼지를 가르며 날아드는 갑작스런 공격에 다시 무영보법을 밟으며 공격을 피한 아삼이 바닥에 박힌 화살을 차 올리며 군도를 꺼내면서 상대를 향해 내리쳤다.

    티잉. 채앵.

    맑은 쇳소리와 함께 화살을 팅겨내고 내리친 아삼의 공격을 막아선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웃음을 보인 그가 가로막은 도를 들어 올리면서 큰 원을 그리며 바닥을 향해 뿌렸고, 부딪친 도를 빼내려던 아삼은 마치 도가 달라붙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꽂히는 자신의 도를 보며 그대로 손을 놓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자신의 무기를 버릴 줄 몰랐던 중년인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왔고 안을 파고드는 아삼의 장을 보며 다급히 주먹을 내질렀다.

    퍼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장과 주먹이 부딪쳤고 아삼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중년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런 교활한 놈."

    다급히 튕겨져 나간 아삼의 뒤를 쫓는 그였지만 이미 자신의 힘을 더해서 멀어지는 아삼을 쫓을 수는 없었다. 그의 수하들이 뒤늦게 그 모습을 보고 활시위를 당겼지만 분뢰공을 끌어올린 아삼을 잡을 수는 없었다.

    멀어지는 배와 함께 포구와의 거리를 가늠하던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배 위에서 송상호와 전소평이 손짓을 보냈지만 이미 멀어진 배를 한 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젠장, 저걸 생각 못 했군.'

    스스로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아삼이 점점 가까워지는 누런 강물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이내 바닥을 박찬 그가 힘을 끌어올려서 힘껏 뛰어올랐지만 멀어진 배에 다다를 수는 없었다.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그의 앞에 넘실대는 강물이 가까워져 오자 그가 숨어있던 기운을 끌어올렸다.

    '싸울 때도 사용하지 않았던 규화보전의 음기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흘리던 아삼이 강물을 박차면서 다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드…… 등평도수?"

    강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아삼의 모습에 놀란 듯 읊조리는 송상호였고, 전소평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물을 묻히지 않고 배 위로 내려선 아삼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안부를 묻는 두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삼이 누런 황하를 바라봤다. 자신이 밟아온 곳에 떠 있던 얼음들이 물결에 휩쓸리면서 누렇게 변했고, 이내 녹아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그의 눈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그렇게 한왕의 추격을 따돌리고 낙양을 벗어난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삼을 놓쳤다는 보고를 받는 한왕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이내 못마땅한 듯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한왕이 귀찮다는 듯 보고를 올린 사내를 향해 손짓을 보냈다. 그 모습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내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흠…… 내가 아삼이라는 놈을 너무 쉽게 본 것인가? 그 놈의 무공이 생각보다 대단한 모양이구나. 아니면 무당의 그놈이 약했던지. 그나저나 이걸로 무당을 끌어들일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 아닌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생각에 잠기는 한왕이었다. 거병을 준비할 때부터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그였다.

    "전하, 아무래도 무당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울 듯 싶사옵니다."

    가평천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그런 가평천의 말을 거들며 송숭이 말을 이어갔다.

    "소신의 생각도 같사옵니다. 왕현이라는 제자 한 명의 죽음으로는 무당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사옵니다. 그 명분도 부족한 터라 그것을 중시하는……"

    "나도 잘 알고 있네. 내가 왕현이라는 놈을 끌어들인 것은 본산으로 향한다던 무당의 제자들을 전부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네. 하여 그 무당제자들이 몰살당하거나 아삼 그 아이가 죽기를 바랐건만……  왕현 그 자가 혼자서 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은 왕현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리는 한왕이었다.

    "복수보다 문파를 우선시 하는 놈이라…… 명문정파라는 것들은 모두 이러한가? 꽉 막힌 놈들이로군."

    도무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한왕이었다. 무림인의 생각은 범인(凡人)과 다름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그였다.

    무사히 황궁에 복귀하게 된 아삼은 낙양에서의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은밀히 정화의 처소를 찾았다. 아삼을 통해서 그간의 일들을 모두 듣게 된 정화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든 것이 내 불찰이었구나. 내가 너무 한왕을 과소평가했어. 그나저나 내 불찰로 네가 고초를 겪었구나. 그런 일을 벌일 줄이야……"

    - 소인은 괜찮습니다. 헌데…… 생각보다 한왕의 움직임이 주도면밀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한왕이 금의위에게 까지 손을 뻗었을 줄은 몰랐구나. 폐하의 생각처럼 경고만으로 끝날 사안이 아닌 듯싶구나.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 했거늘. 어찌 폐하께서는 혈육의 정을 내세우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정화였다. 하지만 한 번 내려진 홍희제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빤히 보이는 한왕의 속내를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답답함이 밀려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는 정화였다.

    '금의위와 손을 잡았다면 어느 쪽일까? 팽문호? 아니면 가영호? 지금의 금의위의 세를 보면 가영호보다는 팽문호 쪽이 더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팽문호 쪽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왕의 손을 잡을 이유가 없지. 허면 가영호 쪽인가? 그의 세가 줄어든 것은 확실하니 가영호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야.'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정화였고 그런 정화의 얼굴을 살피며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아삼이었다. 어느덧 생각을 정리한 듯 정화가 아삼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팽문호, 그 자를 한번 만나봐야겠다. 네가 팽가와 연이 있으니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보거라."

    한왕과 손을 잡은 쪽이 어느 쪽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정화가 팽문호를 만나서 확인을 하려 했고, 그런 정화의 하명에 아삼의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연이 있다지만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신 말고는 딱히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아삼이었다.

    - 알겠습니다.

    정화를 만나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던 아삼이 자신의 처소 앞을 기웃거리고 있는 어린 환관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깜짝 놀라서 돌아선 어린 환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삼을 발견하고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고 이내 자신을 찾은 이유를 말했다.

    "황자마마께서 찾으십니다. 지금 저를 따르시지요."

    어린 환관을 따라 주고희의 전각으로 들어선 아삼이 자신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주고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왔느냐? 그간 너를 만나고 싶어 사람을 보냈으나 네가 일을 맡아서 궁을 떠나고 없다고 하더구나. 방금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내 또 이렇게 사람을 보냈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느냐?"

    주고희의 안부에 아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읍을 했다. 그런 아삼을 향해 주고희가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받거라. 내 저번 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 너에게 줄 것은 이것 밖에 없구나."

    건네는 상자를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물러나는 아삼이었고 그 모습에 주고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큰 곤경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받아두거라. 내 너에게 주려고 형님께 간청하여 힘들게 구한 것이다. 그러니 네가 꼭 받아야만 한다."

    단호한 주고희의 얼굴에 할 수 없이 상자를 받아든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을 향해 주고희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초환단(九草還丹)이라는 것이다. 몸에 좋은 아홉 가지 약재로 만든 것이니 무공을 수련하는 너에게는 아주 좋은 영약이 될 것이다."

    주고희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주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마마, 황태자마마 납시었습니다."

    낭창거리는 환관의 목소리에 주고희와 아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전각을 들어서는 황태자의 모습에 주고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황태자인 주첨기를 맞았다.

    "황태자마마, 마마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오랜만에 황숙과 담소를 나눌까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리 소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시니 황공할 따름입니다. 어서 자리에 드시지요."

    주고희가 황태자에게 자리를 권했고 자리에 앉은 황태자가 고개를 숙이며 서있는 아삼을 발견하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 아이는…… 그때 그 유려한 글 솜씨를 뽐내던 그 아이가 아닙니까?"

    황태자의 물음에 아삼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며 주고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마마께서는 아직도 저 아이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기억하다마다요. 그 명필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내 황숙께 저 아이를 불러달라고 청할 참이었습니다."

    "저 아이를요? 무슨 연유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주고희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삼 역시 뜬금없는 황태자의 말에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무엇 하느냐? 어서 황숙께 인사드리지 않고."

    위엄 있는 황태자의 명에 황태자를 따라 들어선 낯선 환관 한명이 주고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황자마마, 뵈옵니다. 소인은 왕진이라 하옵니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환관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주고희였고, 그런 주고희를 향해 황태자가 엷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황숙을 찾은 이유가 바로 저 환관 때문입니다."

    "저 환관 때문이라니요?"

    "왕진이라는 저 환관은 학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글 또한 명필이지요. 아삼이라는 저 아이의 글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으니 황숙의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하여 저 아이를 부를 참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글씨를 함께 구경하는 것도 즐겁지 않겠습니까?"

    호탕하게 웃는 황태자의 모습에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고희였다. 이내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을 향해 황태자가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떠냐? 우리를 위해 붓을 들어주겠느냐?"

    "황공하옵니다. 소신이 어찌 황태자마마의 명을 거역하겠사옵니까? 미천한 솜씨나마 괜찮으시다면 응당 드러내겠사옵니다."

    황태자의 하문에 왕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돌아가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붓을 드는 아삼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글 솜씨를 뽐내며 얼굴을 마주하게 된 아삼과 왕진이었고 두 사람의 글 솜씨에 황태자 주첨기와 주고희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 엷은 미소가 흘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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