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93화 (9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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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始作)

    사건을 맡은 동창의 움직임이 더욱더 분주해졌다. 우선은 궁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환관과 궁녀들의 움직임을 세심히 살피는 그들이었다. 죽은 이들이 대부분 궁녀와 환관인지라 아무래도 그들을 대상으로 조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간만에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느냐?"

    당두 구영고가 어젯밤 순시를 돌았던 동창 요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젯밤 내서당의 마태감이 조금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수상한 움직임이라니?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구영고가 물었다. 그런 구영고의 물음에 동창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것이…… 자시(子時)가 넘은 시각에 어딘가를 다녀온 듯 급히 처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각도 늦은 데다가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뭔가를 숨기는 듯한데……"

    확신하지 못한 듯 말끝을 흐리는 동창요원이었다.

    "늦은 시간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긴 구영고가 작은 거 하나라도 놓치지 말라던 금무정의 말을 떠올리며 동창 요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가서 마상을 데려오너라. 데려와 조사해보면 뭔가가 나오겠지."

    구영고의 명에 동창요원들이 길게 읍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겁먹은 얼굴의 마상이 동창 요원들에게 붙들려 왔다.

    "이…… 이게 무…… 무슨 짓이오?"

    요원들에게 끌려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마상에게 다가선 구영고가 짐짓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 겁먹을 필요는 없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불렀으니 성심성의껏 답한다면 곧 풀려날 것이오."

    "묻고 싶은 거라니?"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마상이 구영고를 바라봤다. 하지만 매서운 구영고의 눈빛에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마상이었다.

    "어젯밤 자시가 넘는 시간에 어디를 갔다 온 것이오?"

    구영고의 입에서 어젯밤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잔뜩 긴장한 마상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젯밤이라니?…… 난 그저 소피가 급해 뒷간에 갔다 온 것뿐이오."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하는 마상의 모습에 구영고의 두 눈이 빛났다.

    "뒷간이라? 뒷간이라고 하셨소?"

    콧방귀를 꾸며 마상을 비웃던 구영고가 엄한 표정으로 동창 요원을 향해 소리쳤다.

    "어젯밤 네가 본 것을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자세히 말해 보거라."

    그러자 구영고의 명을 받은 요원이 앞으로 나와 어젯밤 일을 상세히 고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자시가 넘은 시각에 마태감이 주변을 살피면서 자신의 처소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다른 환관의 처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마태감이 온 방향은 뒷간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환관이 있는 곳의 처소 방향이었습니다."

    요원의 보고에 놀란 마상의 눈에 불안함이 어렸다. 그렇게 흔들리는 눈을 놓치지 않던 구영고가 마상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들었소? 당신을 아무 이유 없이 여기로 데려온 것이 아니요. 허니 이렇게 좋게 말로 물을 때 순순히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요. 동창의 고문이 어떻다는 것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 아니오?"

    구영고의 말을 들은 마상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동창의 고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백성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을 황궁에 있는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창에 끌려올 때부터 잔뜩 겁먹었던 그인지라 구영고의 협박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턱대고 자신이 했던 일을 토설할 수도 없었다. 우선은 자신이 무슨 일로 이곳에 끌려왔는지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 대꾸를 하는 마상이었다. 자신의 뒤에 있는 유현을 믿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대관절 무슨 연유로 이러시는 거요? 늦은 시각에 처소를 나선 것이 무에 그리 잘못이라는 거요? 하도 잠이 안 와 그저 말동무를 찾아 동료의 처소를 간 것뿐이오."

    "말동무라?…… 네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네…… 네놈?"

    "유 태감이 너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이더냐?"

    "…… 유 태감이라니? 감히 유 공공께……"

    "닥쳐라.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둘러대는 마상을 노려보던 구영고가 동창 요원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요원의 매서운 고문이 시작됐다.

    고문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고통을 참지 못하던 마상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말…… 말하겠소. 다 말할 테니 제발…… 제발 그만 하시오."

    "그러게 서로가 좋게 끝내자 하지 않았소. 내 말대로 했다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을…… 자, 이제 말해 보시오."

    나직한 구영고의 말에 마상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토설하기 시작했다.

    "실은 무고의 정태감이 무슨 계략을 꾸미는 것 같아 정태감의 처소를 찾아간 것이오.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정태감과 내가 좀 악연으로 엮인 터라 그놈이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하도 궁금하여…… 정말 그것뿐이오. 그놈이 뒤에서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인지 알아보러 간 것이오. 그것이 전부요."

    "정태감?"

    마상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던 구영고가 옆에 선 동창 요원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가서 정태감이라는 자를 잡아 오너라. 그놈까지 잡아와서 닦달하다 보면 뭔가가 나오겠지."

    명을 받은 요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내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정훈 또한 잔뜩 겁먹은 얼굴로 동창 요원들에게 붙들려왔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정훈의 눈에 한쪽 구석에서 힘없이 늘어져있는 마상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런 동창의 부름이 의아했던 정훈은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된 듯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무…… 무슨 일이요?"

    거칠게 자신을 앉히는 동창 요원들을 바라보며 겁을 집어먹은 듯한 표정의 정훈이 물었다. 그런 정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구영고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훈…… 내서당을 교육하던 그 정훈인가? 유 태감에게 버림받았다는."

    "그…… 그렇소."

    직설적인 구영고의 말에 침음을 삼킨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훈의 표정을 천천히 살피던 구영고가 마상을 가리키며 겁에 질린 정훈을 바라봤다.

    "저 자를 아는가?"

    "다…… 당연히 알고 있소. 내서당의 마상이라는 자가 아니오? 헌데 어찌하여 저 자가 이곳에 있는 것이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훈이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 나가려면 표정을 숨겨야 한다는 걸 잘 아는 듯 어리숙한 표정으로 자신을 포장했고, 이미 단단히 마음을 먹은 터라 생각보다 쉽게 앞에 있는 자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자의 말로는 네 놈이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아서 어젯밤 네 놈 처소를 들어갔다고 하던데…… 혹여 네놈이 근래의 살인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더냐?"

    매서운 구영고의 물음에 정훈이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숨긴 정훈이 억울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일을 꾸미다니요? 살인과 관련이 있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어젯밤 무고의 번을 서느라 처소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극구 부인하는 정훈의 표정은 억울함을 나타냈지만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변명은 준비한 상태다. 마상 이놈! 네놈이 죽어가는 꼴을 똑똑히 지켜봐 주마!'

    마상을 노려보면서 마음을 굳힌 정훈이었다. 그런 정훈을 보며 다시 다그치는 구영고였고 그 말에 일부러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짓는 그였다.

    "마상 저 자가 괜히 네놈의 처소를 가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바른대로 말하거라. 저 자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진실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

    마상을 가리키며 구영고가 짐짓 엄하게 말했다. 그런 구영고를 향해 정훈이 주저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 그것이…… 아무래도 마상 저 자가 제 처소에서 뭔가를 훔쳐간 것 같습니다."

    "훔쳐가? 무엇을 훔쳐갔단 말이냐?"

    "그것이…… 번을 서고 처소로 돌아와 보니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이 있길래 혹시라도 잃어버린 것이 없나 찾아봤더니…… 크흠."

    "이실직고하지 못 할까? 네 놈도 저 꼴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실은…… 제 야명주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마상 저 자가 가져간 것 같습니다."

    "야명주? 그 귀한 것을……"

    "몇 년을 모아서 장만한 것으로……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이유가……"

    "야…… 야명주라니! 무슨 소리를 내뱉는 것이냐! 내가 언제 야명주를……"

    "닥쳐라! 저놈의 주둥이를 다물게 만들어라."

    구영고의 명에 고통스러운 비명이 가득 울렸다. 그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던 정훈이 겁을 집어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조마조마하던 그인지라 절로 몸이 떨려왔다. 그런 정훈의 표정을 보던 구영고가 이전에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구영고 역시 야명주라는 값비싼 보물을 숨기는 이유를 수긍할 수 있었다. 남성을 제거한 환관들이 집착을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재물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구영고였고 야명주라는 진귀한 것을 드러내기 싫었던 정훈의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저 나이에 야명주를 가지고 있다? 어지간히도 해 처먹은 놈이었군. 하긴, 유현에게 붙은 놈 치고는 제법 그 능력이 출중하다고 했으니……'

    구영고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훈을 바라봤고 그 시선을 느낀 정훈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떨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구영고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지금까지의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필사적으로 표정을 바꾸려는 정훈이었다.

    동창에 잡혀오기 전부터 이미 이런 상황까지 생각을 해둔 상태였다. 꽤 오래 전, 자신에게 야명주를 자랑하던 마상의 모습을 기억해냈고 지금 그때의 일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유훈에게 받았다면서 일부러 자신에게 자랑을 했을 때는 그 모습이 얄미웠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그때 그 일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스스로의 계책이 마음에 드는 듯 정훈이 숙인 고개 사이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야명주라? 네놈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지는 마상이라는 자의 처소를 뒤져보면 알 터. 인학! 번역인 네가 남은 요원들을 이끌고 가서 확인해 보거라."

    구영고가 옆에 선 인학을 향해 명을 내렸다. 이미 팽가에 큰 죄를 지은 인학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믿을만한 자는 그나마 인학뿐이었다. 아직까지 팽가에서 내쳐지지 않은 인학이었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구영고가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지 고맙다는 눈짓과 함께 고개를 숙여서 읍을 한 인학이 몇몇의 요원들과 함께 마상의 처소로 향했다.

    "샅샅이 뒤지거라."

    인학의 명에 요원들이 마상의 처소를 뒤엎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학도 마상의 침상으로 다가가서 이불을 걷어내며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개 밑까지 뒤져봤지만 별다른 수상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별다른 것이 나오지 않자, 굳어진 얼굴로 잠시 침상에 앉아 숨을 고르던 인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을 돌아봤다. 침상 위에 올린 자신의 손에 뭔가 딱딱한 것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인학이 힘을 줘서 이불보를 찢었다. '쫘아악' 소리를 내며 시원스럽게 찢긴 이불 사이로 이질적인 무언가가 떨어져 나왔다. 꼬깃꼬깃 반으로 접힌 종이뭉치를 발견한 인학이 조심스럽게 종이를 펴고 놀란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이…… 이것은 비급? 비급인가? 흡혈공이라니……'

    첫 장을 빠르게 훑던 인학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생각지 못한 비급의 등장에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종이를 접어서 품속에 넣는 그였다. 뒤늦게 주변을 살폈지만 모두가 몸을 숙여서 다른 곳을 찾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자신의 행동을 눈치 챈 요원들은 없었다.

    '이것은 사건과 관련된 비급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일에 관련된 범인은 마상이라는 자인가? 하늘이 나를 도우고 있음이다. 이 일을 해결한다면 팽가에서 다시 입지를…… 아니지. 아니야. 혹시 모르니 따로 필사를 해 두고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구나. 나는 지금 야명주를 찾으러 온 것이니……'

    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함께 온 동창의 요원 한 명이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갑작스런 외침에 놀랐지만 재빨리 표정을 감춘 인학이 아무렇지 않은 척 보자기를 들어 올린 자를 향해 다가갔다.

    "찾았습니다. 여기 야명주가 있습니다."

    건네는 보자기를 받아든 인학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풀어내자 진귀한 야명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야명주를 확인한 인학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원하는 것을 찾았으니 다시 돌아간다."

    힘찬 인학의 명에 동창 요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내 당당한 발걸음으로 마상의 처소를 나서는 인학과 동창요원들이었다. 어느새 인학의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고 그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게 된 인학이 마상이 필사한 비급을 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우선 몰래 이 비급을 필사해야겠다. 따로 비급을 얻은 이후에 결정적인 물증을 제시하고 마상이라는 놈을 처리하면 그 공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야.'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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