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92화 (9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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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始作)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금무정의 보고로 동창의 수뇌부들이 급하게 소집되었다. 한 자리에 모인 상위 직급을 가진 자들의 모습한 확인한 금무정이 품에서 서찰을 꺼내들었다. 어린 환관의 시체에서 발견한 그 서찰이었고 금무정이 서찰의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련주님께

    말씀하셨던 비급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빈손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씀하신 비급은 아니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비급을 손에 넣었습니다. 우선 그 비급을 반으로 나눠서 그 중 일부를 보내니 확인해 보길 바랍니다. 온전한 비급을 가지고 싶으시다면 날짜를 정해서 그때 그 장소에서 보도록 합시다. 날짜는 따로 정해 연통을 주겠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서찰의 내용에 동창의 수장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 사특한 무공을 익히기 위함인 줄 알았지만 이번에 발견 된 비급으로 드러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자들이 엮인 것 같았다.

    "련주라…… 어느 집단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가?"

    "…… 련이라는 곳이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강호의 무인들이 뜻을 합쳐서 만드는 곳이 련이나 맹이라고 칭하는데 이렇게 뭉뚱거려서 말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비급을 노리고 궁에 누군가를 심어놓은 것을 보면 어중이떠중이는 아닐 듯싶습니다. 사황련이라는 사파의 단체가 유력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단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혹여나 이 일이 말씀하신 곳과 연관되어 있다면…… 일이 너무 커지게 됩니다."

    동창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의 말투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련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쉽게 추측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황궁의 힘이 크다고 하더라도 무림의 큰 단체를 쉽게 조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있었던 당새아의 일로 이미 그들의 불만도 꽤 커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 서찰을 보아하니 비급에 무림의 알 수 없는 련주까지 관련된 것 같은데……"

    제독인 오건휘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자 그런 오건휘를 향해 만태산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어쩌긴요. 이 서찰에 비급을 나눠 련주에게 보냈다했으니, 그 뒤를 캐내서 그 비급을 찾아와야죠. 그 비급을 찾는다면 응당 이런 일을 꾸민 자도 색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태산의 말에 금무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막말로 그 뒤를 쉽게 캐낼 수 있겠습니까? 무림과 엮인 일입니다. 비급이라면 목숨도 버리고 달려드는 그들을 쉽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그들과 싸워야 한다면 그때는 우리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겠지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니요? 우리 동창의 힘이라면 그까짓 무림인들이야 수월하게 잡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새아도 잡아들인 동창입니다. 암요! 지금 동창이라는 이름 앞에 당당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무림인들도 우리 동창의 실력을 무시하지는 못할 겁니다."

    지난번의 공을 거론하면서 한껏 거들먹거리는 만태산이었다. 그런 만태산이 못마땅한 듯 금무정이 미간을 좁히면서 말했다.

    "하지만 저번 그 일로 황궁을 보는 무림인들의 시선이 좋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그들이 과연 우리에게 협조를 해줄지……"

    "아,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힘으로 뺏으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리 나약한 말씀만 늘어놓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금무정의 말을 막은 만태산이 제독인 오건휘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만태산의 눈빛에 오건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제 폐하의 명이 내려졌으니 상대가 그 누가 되었건…… 부딪쳐야만 하네. 해보지도 않고 물러설 수는 없겠지. 우선은 이 비급의 행방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니 요원들을 풀어 비급이라는 것을 찾는 것에 힘을 아끼지 말게."

    오건휘의 말에 만태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 만태산의 모습이 못마땅한 듯 금무정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고, 오건휘의 미간 또한 좁아졌다. 지난번의 공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때 받은 금원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태산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그의 기고만장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오건휘였다.

    '행여 지금 내린 판단이 괜한 의심을 부르는 것은 아닐 테지?'

    금무정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오건휘가 딱딱하게 굳은 그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된 것인지 곱씹어봤다. 정화의 사람인 금무정의 눈치 또한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동창의 시선을 궁 밖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확신하는 정훈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시선을 돌렸다고 해서 이번 일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첫발을 내딛었고 시간을 번 것뿐이었다.

    '우선 저들의 시선을 돌리기는 했으나 그 일이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동창의 이목을 집중시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고심하는 정훈이었다. 묵직한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방에 울려 퍼졌고 규칙적으로 한참을 울리던 그 소리가 멈추면서 정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쩔 수 없이 이 비급을 드러내야겠구나. 우선 뭉뚱거려서 련주에게 보낸다고 했으니, 이제 그 련주를 드러내야할 차례겠지. 이목을 사황련 쪽으로 돌려야겠어. 아무래도 쉽게 건드릴 만한 곳은 아닐 테니.'

    생각을 마친 정훈이 처소 깊숙이 갈무리해둔 비급을 꺼내들었다. 한참 동안, 비급을 바라보던 정훈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반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어차피 머릿속에 관련된 내용을 모두 외워놓은 상태였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우연히 얻은 비급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비급을 사황련의 련주에게 보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켜야 하는데……내가 나설 수는 없고……'

    한참을 고심하던 정훈의 미간이 펴지면서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마상. 그 인사라면 충분히 걸려들고도 남겠어. 능력에 비해서 욕심이 많은 놈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마상 그 자를 치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쥐죽은 듯 조용한 내서당 안으로 정훈이 당당히 들어섰다. 며칠 전 내서당 훈육생의 시체가 발견된 이후로 잠시 훈육이 중단된 내서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정훈의 두 눈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무료하게 앉아 있는 마상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간 잘 지냈는가?"

    짐짓 미소를 보인 정훈이 그를 향해 물었고 갑작스런 정훈의 등장에 앉아있던 마상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자네가 여긴 어인 일인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렸네. 훈육생 하나가 목내이로 발견됐다고 하더니 무척 조용하구먼."

    정훈이 조용한 내서당을 훑어보며 말했다. 미소를 보이며 주변을 바라보는 정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마상이었다. 괜히 훈육생이 변을 당한 탓이 자신의 치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마상이 정훈을 향해 이죽거리며 대거리했다.

    "무고가 한가하다하더니 정말 한가한가 보구먼. 이리 무고를 비우는 것도 그렇고 내서당일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렇고…… 한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곳에 미련이 남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내 상관할 바는 아니나 쓸데없는 미련 두지 말게나. 다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네."

    마상의 말에 정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거리하는 정훈이었다.

    "무고가 한가하기는 하지. 어떤가? 이제 자네가 그 한가함을 느껴보겠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크크크. 아니네."

    "무슨 뜻인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정훈의 말에 마상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런 마상을 다독이며 정훈이 나직이 말했다.

    "어허, 그리 열 낼 것 없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자네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지 내 걱정돼서 하는 말이네. 나 또한 그 자리에 있을 때에는 그 자리가 영원할 줄 알았거든. 자네 자리를 잘 지키게나. 그 자리에 앉을 날도 길지 않을 것이네."

    의미심장한 정훈의 말에 의심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마상이었다. 그 말을 내뱉는 저의가 의심쩍었기 때문에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는 마상이었지만 그런 마상의 눈빛을 짐짓 모른 체 하는 정훈이었다.

    '저 인사가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뭐란 말인가? 혹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정훈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마상이었지만 어떠한 것도 읽어내지 못했다. 결국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정훈을 향해 의문을 표하는 마상이었다.

    "자리를 잘 지키라니? 길지 않을 것이라니? 도대체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훗,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게나. 그저 노파심에 하는 말이니…… 자네도 잘 알다시피 유 공공께서는 능력 좋은 인사를 좋아하시지 않는가? 혹 아는가? 내가 유 공공의 마음을 다시 얻게 될는지…… 하하하."

    파안대소를 터트리는 정훈의 모습에 마상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그럼, 수고하시게나. 나는 이만 가 봐야겠네. 아무리 한가한 무고라고 하나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지 않겠나? 오늘은 무고의 번을 서야 하니 지금 돌아가 봐야겠네."

    "……."

    "그 자리…… 보중하게나. 그곳에서 내려오면 그때는…… 내가 받은 수모를 잊지 않을 것이야. 하하하."

    뒷짐을 지며 유유자적 내서당을 빠져나가는 정훈의 뒷모습에 한참동안 그가 머문 자리를 바라보던 마상이 턱을 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훈, 저놈이 필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자존심 강한 저놈이 나를 찾지는 않았을 터.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지? 무슨 일을 꾸미고 있길래 저렇게 당당한 거지? 유 공공의 마음을 다시 얻는다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내려 애쓰는 마상이었지만 원체 어리숙한 인사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훈의 속내를 알아낼 수 없었던 그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어렵게 올라선 자리를 뺏길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어떻게 내가 얻은 자리인데…… 정훈! 이놈, 내가 이 자리를 쉽게 내줄 것 같더냐?'

    아랫입술을 깨물며 의지를 다지는 마상이었다. 초조함에 입술을 씹어대던 그의 눈빛이 한 곳을 향했다. 정훈의 방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날 밤, 달빛을 피하며 한 사내가 어둠속으로 파고들었다.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듯 조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처소 안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참을 귀를 기울이던 사내는 결심을 굳힌 듯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처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두컴컴한 처소 안으로 들어선 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봤지만 다행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밤 무고의 번을 선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만족한 듯 미소를 짓던 자가 더듬거리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서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욱 어두운 방안에서 미간을 좁힌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싼 천을 걷어내자, 희미한 빛을 뿜어대는 구슬이 어둠을 밝혔다.

    야명주였다. 값비싼 물건을 손에 쥔 마상의 눈에 만족감이 스쳐지나갔고 조심스럽게 야명주를 들고 주변을 살피던 마상이 서책을 들추면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네놈이 입을 다문다고 해서 모를 내가 아니다.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알아낼 수 밖에.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야.'

    두 눈에 불을 켠 마상이 정훈의 처소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급해진 마상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그 손길은 점점 빨라져만 갔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정훈의 처소를 샅샅이 뒤지는 그였지만 아직까지 의심스러운 것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괜히 호들갑을 떤 것인가? 정훈, 그 놈이 그저 나를 떠본 것일 수도 있지 않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 마상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고개를 드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한 듯 다시 처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막 정훈의 침상을 뒤지던 마상이 손끝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잡혀들었다. 그 느낌에 눈을 번뜩인 그가 본능적으로 베개의 밑을 뒤졌다.

    '찾았다!'

    베개 밑으로 깊숙이 손을 집어넣은 마상이 누렇게 바랜 양피지를 끄집어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책자를 살피던 그때, 그의 발밑으로 서찰 하나가 툭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서 서찰을 집어 든 마상이 야명주를 가져다 대면서 재빨리 서찰의 내용을 훑었다.

    '이것으로 사황련을 끌어들인다면 송기득, 그 자는 더 이상 공공의 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일이 잘 풀려서 사황련이 움직여준다면 부디 공을 잊지 마시고 다시 공공께서 품어주십시오. 일처리가 미숙하고 덜떨어진 마상 그놈보다야 제가 백번 천 번 낫지 않습니까? 공공 부디 제 충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서찰을 잡은 마상의 두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제서야 낮에 의기양양했던 정훈의 태도가 이해가 가는 마상이었다.

    '이런 능구렁이 같은 놈. 뒤로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단 말이냐? 공을 세워 다시 제자리를 찾겠다? 허나, 내가 알게 된 이상 그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뭐라? 덜떨어진 마상?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놈!'

    정훈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린 마상이 무공의 구결로 보이는 것이 써진 양피지와 서찰을 품 속 깊이 갈무리했다. 그리고 그 야명주를 소중하게 품에 넣으면서 정훈의 처소를 빠져나갔다.

    무고에서 돌아온 정훈은 방안을 둘러보면서 누군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묘하게 틀어져 있는 물건들을 확인한 그는 마상이라는 작자가 왔다가 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내 아무런 것도 눈치채지 않았다는 듯이 평소처럼 행동한 그는 침상에 누우면서 베개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급과 서찰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대로 움직였구나. 마상, 네 놈이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너는 그렇게 내 생각대로만 움직이거라. 허면 나는 안전할 것이다. 네놈의 그 행동이…… 결국 내 명줄을 구하고, 네 목숨을 끊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의심을 살 짓을 해대는 멍청한 놈이라니. 유현 네놈의 안목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구나.'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에 만족한 듯 정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이대로 자신의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이 난관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마상이 주변을 살피며 문고리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며 자신의 품속에서 비급과 서찰을 꺼내든 마상의 두 눈이 빛났다.

    '정훈아, 이놈아! 미안하지만 네 놈의 공을 내가 가로 채야겠구나. 이 서찰의 내용대로 이 비급을 사황련에게만 보낸다면 나는 지금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황홀한 듯 마상이 연신 미소를 터트렸다. 그런 마상의 공명심을 자극하려했던 정훈의 계략이 딱딱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서찰을 태워서 그 흔적을 없앤 마상이 탁자 위에 놓인 비급을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비급이길래 사황련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한 거지? 사파의 최고 세력인 사황련의 환심을 살만한 물건이라면…… 꽤 중한 무공이란 말인가? 이놈, 무고에서 놀고만 있지는 않았구나! 그렇게 중한 것이라면 이렇게 쉽게 내줄 수는 없지 않는가?'

    양피지를 바라보던 마상이 결심을 굳힌 듯 옆에 있는 붓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손을 놀려 쓰인 구결의 내용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보내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명심뿐만 아니라 욕심도 많은 마상이었다.

    필사를 끝낸 마상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만족한 듯 미소를 짓는 마상이었다.

    '이제 이것만 사황련으로 보내면 된다. 내일 날이 밝으면 표국을 이용해야겠군. 하루라도 빨리 도착할수록 공을 세울 시간도 가까워져 오겠지.'

    비급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마상의 두 눈에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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