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70화 (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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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

    우측에서 느껴지는 살기와 거대한 기운에 시선을 돌린 아삼의 눈에 빠르게 달려드는 새하얀 손이 가득 들어왔다.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그 손을 바라본 아삼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 속에 숨기고 있는 거대하고 차가운 기운에 위급함을 느낀 아삼이 모든 기운을 두 손에 끌어 모아서 그 장을 막아섰고,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무영보법을 극성으로 펼쳤다. 물론 두 가지 행동은 동시에 이루어졌고 익히고 있던 분뢰공의 묘를 극성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안 돼!"

    퍼어엉.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의 팔과 천요희의 새하얀, 투명한 손이 부딪쳤고, 그 기운에 맞선 아삼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하늘을 날았다.

    "아삼. 아삼!"

    낯선 여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서 뒤로 날아가던 아삼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 손을 막아선 자신의 두 팔은 부러진 듯 고통이 일었고 무엇보다도 두 손을 통해서 파고드는 한기가 그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한기다.'

    몸속을 파고드는 지독한 한기와 함께 그의 몸이 차갑게 식어만 갔다. 입에서 뿜어지는 붉은 피와 함께 추운 날 볼 수 있을 정도의 입김이 튀어나왔고 등 뒤로 거대한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런 충격에 고통스러워 할 겨를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음기에 정신을 집중시켜야만 했다.

    두 팔로 스며드는 극음의 기운이 그의 혈맥을 타고 돌았다. 흩어지는 그 기운과 함께 덜덜 떨던 아삼이 단전에 모여 있던 양의 기운으로 그 기운에 맞섰지만 자신이 지닌 양기도 침범한 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기운이 다른 두 기운이 맞서는 동안 아삼의 몸은 수시로 붉게, 그리고 하얗게 변해만 갔다. 멀리서 들리는 흐릿한 소리와 함께 다급한 소리가 전해졌고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정작 아삼은 그런 소리들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단전에 모여 있던 자신의 기운이 침범한 기운에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차가워지는 몸을 느끼면서 그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던 그 때,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이 단전의 깊숙한 곳에서 느껴졌다.

    어느새 단전까지 침범한 소수마공의 음한 기운에 규화보전의 음기를 막아섰던, 사마택이 전해준 내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낀 아삼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낭패다. 이대로 저 기운이 풀려버린다면…… 이 놈보다 더한 음기가 깨어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있는 곳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내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아삼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다가온 자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얼굴 위로 떨어지는 햇빛을 가린 거대한 체구. 커다란 덩치를 지닌 자가 쓰러진 아삼을 바라보면서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왔다.

    "아삼? 아삼!"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흐릿한 시야에 잡힌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옷에 붉은 휘장을 걸친 자는 바로 황세웅이었다.

    오건휘의 의도로 어쩔 수 없이 출발이 늦은 금의위가 그곳에 뒤늦게 도착했고, 그들 중에서 부상자를 수습할 몇 명을 남기고 잔당의 뒤를 쫓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게 된 사람들 중에 한명이 바로 황세웅이었다.

    이곳에 파견된 지휘관 자체가 금의위 내에서 팽가에 반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팽가의 사람으로 알려진 황세웅이 남을 수 밖에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아삼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놀란 황세웅이 차갑게 식어가는 아삼의 몸을 붙잡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너를 의원에게 보일 테니까."

    조심스럽게 아삼을 들어 올리는 황세웅의 행동에 기운을 막으려던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흔들리는 몸으로는 자신의 기운을 통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이 상태로 의원에게 보여지면 자신이 익힌 기운의 정체가 들통 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조금씩 풀리는 사마택의 내기와 함께 그 안에 꼭꼭 감춰져 있던 규화보전의 음기가 조금씩 준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의원에게 보인다고 해도 딱히 나를 살릴 방법이 없을 거야. 그렇다면…… 스스로 극복하는 수 밖에 없다.'

    미간을 찌푸린 아삼이 다급한 표정을 보이면서 걸음을 옮기는 황세웅을 바라봤다. 팽가에서 인연이 시작 된 자였지만 이상하게 정이 갔던 사내였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믿을 수 있을지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잠깐 고민을 해봤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내 결심을 굳힌 그가 황세웅을 바라봤다.

    - 인적이 없는 곳으로 나를 옮겨다오.

    "……."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놀란 황세웅이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흔한 전음이 아니었다. 마음을 울리는 듯한 그 소리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려진 아삼을 향해 꽂혀들었다.

    - 인적이 없는 곳으로 나를 옮겨다오. 시간이…… 없다.

    "아삼? …… 아, 알았다. 알았어."

    놀란 황세웅이 아삼의 전심어서에 급히 방향을 틀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옆에 있는 숲을 향해 뛰어들었고 경공을 이용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인적이 없는 곳, 그곳은 산 중턱에 있는 관제묘 밖에 없었다. 황보세가에서 내쳐지고 방황을 할 때, 팽가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저기 떠돌던 그 당시에 이 근처에 있는 관제묘에서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리던 황세웅이 아삼을 안고 빠르게 그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말대로 따라주마. 아삼.'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인학보다 떨어지는 실력으로 동창의 요원이 됐다던 아삼이었다. 수준 높은 전음을 구사할 정도로 자신을 숨긴 아삼에게 무슨 비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옛 기억을 떠올린 그는 최선을 다해서 그를 도우려고 했다.

    품에 안겨서 그런 황세웅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도 그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꼈고 어느새 멀리 보이는 관제묘와 함께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경공을 펼치던 황세웅의 숨이 거칠어졌고 멀리 보이는 관제묘가 조금씩 가까워질 때, 멀리서 환한 빛과 함께 무언가 타들어가면서 하늘을 밝혔다.

    "젠장, 금의위를 모으는 신호다."

    "……."

    신호를 본 황세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했고, 관제묘에 들어서 아삼을 눕힌 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그를 바라봤다. 고민을 하는 듯한 눈치였다.

    금의위에 들어가 있는 그였지만 아직까지 그 지위가 높지는 않았다. 팽가의 힘이 도움이 됐지만 반대로 금의위 내에서 팽가에 반하는 세력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 이곳에 건문제의 잔당을 소탕하러 나온 자는 그런 팽문호의 라이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가영호'라는 자였다. 당연히 팽문호는 배제된 상황이었다.

    '아직 황보세가에 이렇다 할 복수도 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 그들의 눈 밖에 난다면…… 그렇다고 아삼, 이 아이를 이대로 놔둔다면……'

    고민하는 황세웅의 표정을 보던 아삼이 다시 한 번 그에게 전심어서를 날렸다. 내부에서 부딪치는 힘들 때문에 그의 몸이 떨려왔지만 의사는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다.

    - 가라…… 네 호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 아삼?"

    - 몸속의 기운을 다스려야 한다. 네가…… 네가 있는 것이 더 곤란하……다.

    그의 고통스러움까지 전해지는 듯한 전음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보던 황세웅이 결심을 굳힌 듯 그를 바라봤다.

    부러진 듯한 두 팔과 그 위에 선명하게 찍힌 장의 모습을 보고 붉은 휘장을 벗은 황세웅이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찾아서 두 팔에 부목을 대줬다. 그리고 찢겨진 휘장을 누워있는 아삼의 몸에 덮어주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미안……하다. 나중에 꼭 찾으러 올 테니. 잘 이겨내라."

    - 고…… 고맙다.

    아삼의 말에 억지로 웃어보이던 그가 다급하게 관제묘를 나섰다. 뛰어가는 그 소리와 함께 찾아든 적막에 마음을 가라앉힌 아삼이 다시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몸속으로 스며든 소수마공의 한기에 자신의 양기와 사마택이 전해준 내기가 힘을 합해서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봉해있던 규화보전의 음기가 눈을 떴다.

    극음의 기운을 가진 두개의 서로 다른 기운이 움직이자 간신히 막고 있던 아삼의 몸속에 있던 양기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힘을 쥐어짜고 있지만 그 둘을 막기는 역부족이었고 조금씩 아삼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대로는…… 힘들다. 어떻게 양기를 북돋아 줄 방법이 없을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아삼이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에 인학에게 받았던 소공단이 떠올랐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움직이면서 품안에 있던 소공단을 찾으려 했지만 부러진 팔로는 힘이 들었다. 더해가는 한기에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기려고 절로 몸이 굽혀졌고 다행히 품에 있던 소공단이 떨어져 나왔다.

    작은 갑 안에 있던 소공단을 확인한 아삼이 부목이 덧대어진 팔을 휘둘러서 그것을 부수자 부러진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삼켰고 떨어져 나온 소공단이 더러운 바닥을 굴렀다.

    먼지가 쌓인 바닥을 뒹군 소공단을 개의치 않던 그가 떨리는 몸을 이끌면서 소공단을 물었다. 텁텁한 흙, 먼지와 함께 입으로 들어간 소공단을 잘게 씹으면서 목으로 넘겼고 진이 빠진 몸을 다시 눕힌 아삼은 조금이라도 효과가 보이기를 희망했다.

    그의 바람이 통했는지 몸 안으로 들어간 소공단이 효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두 음기에 의해서 얼어붙은 것 같던 아삼의 내기와 사마택의 기운이 소공단으로 몰리는 두 음기에 힘입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격렬하게 대치하던 두 음기를 끌어안는 양기였다. 아삼과 사마택이 물려준 내기. 그리고 몸속으로 들어온 소공단의 기운이 두 음기를 감쌌고 그 사이에서 두 음기가 부딪치기 시작했다. 두 기운이 부딪칠 때마다 아삼의 몸에 하얀 서리가 꼈고 온 몸의 살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는 아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기운을 통제하기 위해서 가부좌를 튼 아삼이 떨리는 몸으로 기운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한동안 서로 다른 음기의 부딪침은 계속 이어갔다. 결국 규화보전으로 생성된 음기가 그의 몸속으로 침투한 소수마공의 음기를 이겼다. 그 극음의 기운을 흡수한 규화보전의 음기가 몸집을 불렸고 주위를 막아선 양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부딪치는 기운이 온전히 아삼의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얗게 서리가 낀 몸이 다시 붉어지면서 녹기 시작했고, 이내 다시 하얗게 서리가 끼기를 반복했다. 치열하게 싸우는 두 기운은 팽팽하게 맞섰고 한동안 얌전하게 봉해져있던 규화보전의 음기가 크게 들썩였다.

    섞일 것 같지 않던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면서 상쇄되기 시작했다.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그 기운에 아삼의 몸이 크게 들썩였고 음과 양의 상충된 기운이 합해지면서 몸속을 누볐다. 그 기운의 영향인지 부러졌던 두 팔의 뼈가 조금씩 붙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충돌에 들썩이던 아삼의 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렇게 부딪치던 기운도 영원할 순 없었다. 그동안 모은 내기와 사마택이 전해준 내기도 소수마공의 음기를 흡수한 규화보전의 음기에 비해서는 모자랐다. 소공단의 도움이 있었지만 흡수된 양도 미미했기에 상쇄되고 남은 음기가 별다른 장애물 없이 아삼의 혈맥을 내달렸다.

    투두둑. 투두둑.

    좁은 혈맥이 확장되면서 차가운 한기에 얼어붙었다. 가로막는 혈맥은 음기로 얼어붙었고 밀어부치는 음기에 얼음이 깨지듯이 산산이 깨져나갔다. 내달리는 기운과 함께 그의 혈이 확장되고 뚫리기를 반복했고 결국, 남은 기운이 회음혈을 뚫고 백회혈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쩌저적.

    머릿속에서 울리는 주변이 얼어붙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여든 규화보전의 음기가 혈의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아삼에게 전해졌다.

    쿠웅.

    커란란 충격과 함께 아삼의 몸이 들썩였다. 그 한 번의 충격으로 아삼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막힌 그 기운이 다시 힘을 모아서 백회혈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삼은 본능적으로 그 행위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들이치는 그 기운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그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었지만 이미 통제를 잃은 기운이 그의 바람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내달리는 기운이 단단하게 막힌 백회혈을 강타하는 순간을 느낀 아삼이 절망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르짖었다.

    '안 돼! 제발.'

    순간 백회혈로 내달리던 극음의 기운을 이질적인 기운이 막아섰다. 양기도 음기도 아닌 기운이었지만 신묘한 성질을 가진 그 기움이 규화보전의 음기를 가로막았다. 이내 부딪친 두 기운과 함께 주춤한 음기가 다시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던 아삼의 머릿속에 '전심어서'가 떠올랐다. 정화가 건넨 그 전음술을 수련하면서 단련한 상단전에 모인 기운들이 음기를 막아선 것이었다. 강한 음기를 막은 그 기운과 함께 몸속에 흡수되지 않았던 소공단의 기운이 그곳으로 모여들었고 위력이 줄어든 규화보전의 음기와 대치했다.

    그리고 다시 백회혈로 내달리는 규화보전의 음기와 모인 기운들이 부딪쳤다.

    콰아앙.

    아삼의 몸속에서 커다란 기운들이 폭발했다. 그 폭발이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백회혈을 뒤흔들었다. 백회혈에 막혀진 그 폭발이 아삼의 몸을 향해 다시 내달렸고 그의 몸을 관통한 폭발이 전신에서 표출되자 어두웠던 관제묘 안이 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파아앙.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삼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기파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기파가 뻗어나간 주변 십 장의 공간이 꽁꽁 얼어붙었다. 새하얀 눈꽃이 내린 것처럼 그 공간이 그렇게 얼어붙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얼어붙은 관제묘가 그대로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삼이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무협은 쓰는게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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