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66화 (6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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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본(拔本)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지만 막을 수 없는 공격도 아니었다.

옆에서 움직이는 살기에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이 분뢰공을 운용하면서 뒤로 한 발 비켜섰다. 모아진 내기가 빠르게 몸속을 내달리며 살기에 반응한 그의 손이 들어오는 주먹을 비껴 막았고 잠시 주춤한 그를 향해서 다른 손을 뻗으려 할 때, 주변의 공기가 떨려오면서 '우르릉'거리는 뇌성이 들리는 듯 했다.

퍼엉.

"커어억."

급습을 하던 신입 요원 중 한 명이 옆구리에 장을 맞고 나가 떨어졌다. 바닥에 처박힌 상태로 입에서 시뻘건 피를 흘리던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있던 곳을 노려봤고 이내 고개를 떨궜다. 그가 노려본 곳에는 딱딱한 표정으로 쓰러진 그를 바라보는 인학이 서 있었다.

팽가의 무공인 벽력장이 그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자신을 도운 인학의 모습이 생소한 듯 아삼의 눈이 그를 훑었고 굳은 표정의 인학이 또 다른 요원을 향해 들이쳤다.

'필사적일 수 밖에 없겠지. 공을 세우려 함이더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인학의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구영고가 인학의 의도를 읽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제법 높은 벽이었다. 경공을 써서 오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경공을 사용할 만한 능력을 가진 이는 자신을 포함한 또 다른 당두뿐이었다. 하지만 앞을 막아선 신영용이라는 자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뛰어난 그의 무공은 그와 주조화라는 당두 둘이 상대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그 사이에 신문하라는 환관은 이 황궁을 벗어날 것 같았다.

'팽인학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막는 사이에 뒤를 쫓게 만들면…… 그 곁을 지키는 두 환관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잠시 고민하는 구영고였지만 지금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되었다. 도주한 신문하라는 환관을 잡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주 당두!"

대치하던 주조화를 부르던 구영고가 바닥을 박찼다. 그 의도를 읽은 것인지 대치하던 주조화가 신영용을 향해 군도를 내뻗었고 빠르게 쳐들어오는 주조화의 도를 쳐낸 신영용의 위로 구영고가 스쳐 지나갔다.

그대로 몸을 띄워서 문을 넘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생각보다 뛰어난 신영용의 무위에 의해서 무산되고 말았다.

어느새 구영고의 발을 낚아챈 황금빛 포승줄이 당겨졌고 그 힘에 못 이겨서 구영고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균형을 잡을 새도 없이 신영용의 군도가 허공을 갈랐다. 바로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날카로운 그 공격에 급히 보법을 밟으며 몸을 뒤로 빼던 구영고였지만 생각보다 빠른 공격은 그의 어깨를 스쳤다.

붉은 피가 튀면서 신영용의 입에 안도하는 듯한 미미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영고의 뒤에서 튀어나온 인영이 그의 머리를 쪼갤 듯이 군도를 휘둘렀다. '우르릉'떨리는 공기와 함께 사뭇 대단한 위력에 급히 도를 들어 올려서 막았지만 그 충격에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팽가의 벽력도다! 팽인학!'

구영고의 뒤로 뛰어오른 팽인학이 막혀진 도를 회수하며 다시 도초를 뿌렸다. 앞에서는 팽인학이 옆에서는 구영고와 주조화가 그를 상대하자 신영용의 손이 점점 어지러워졌다. 특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인학의 행동은 그의 신경을 한 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처음에 내쳐진 공격은 위력적이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런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기세를 잡기 위해서 인학이 무리를 한 것이었다.

어설픈 초식 운용과 미천한 경험은 다른 두 사람이 없었다면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함부로 달려들지 않는 그 행동이 신영용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세 사람이 신영용과 싸우는 동안 배신했던 내부의 적들은 모두 정리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 두 명의 급습에 다른 한 명이 치명상을 입어서 남은 온전한 사람은 아삼을 포함해서 다섯뿐이었다. 그마저도 한 명은 당두 사이에 끼어서 문을 지키는 자를 상대하고 있었으니 다른 이들은 구경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함께 온 송상호가 다른 요원을 바라봤다.

"네가 나를 위로 던져라. 나는 저곳을 넘어서 도망간 신문하의 뒤를 쫓겠다."

"위험하지 않을까?"

"지금은 신문하를 붙잡는 것이 더 중한 상황이다. 나와 방태옥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야."

그의 시선이 옆에 있는 방태옥을 바라봤고, 방태옥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여졌다.

생각을 정리한 그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신입 요원이 그들이 싸우고 있는 문을 등지고 섰고 그 앞에 있던 두 사람이 뛰어가면서 거리를 좁혔다. 마주 오는 송상호를 향해 깍지 낀 손을 내밀자 뛰어오른 그가 그것을 밟고 높이 떠올랐다.

그 뒤를 이어서 방태옥도 밀린 힘을 더해서 담장을 뛰어 넘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놓칠 신영용이 아니었다.

휘두른 군도에 빛이 어리면서 전방을 향해 휘둘러졌고 그 강맹한 공격에 기겁한 세 사람이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 머리 위로 떠오른 두 사람에게 황금빛 포승줄이 날아들었다.

"이익!"

다급한 음성과 함께 송상호의 발이 포승줄에 감겼고 날아온 속도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다시 휘둘러지는 포승줄과 함께 뒤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방태옥은 지레 겁을 먹고 천근추의 수법으로 바닥으로 내려섰다.

'타악'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때린 포승줄이 다시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아삼의 눈이 빛났다.

끌어올린 내기와 함께 바닥을 박찬 그가 멍하게 바라보던 이름 모를 요원의 어깨를 밟았다. 뛰어오른 아삼의 몸을 향해 송상호의 몸이 날아들었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삼의 모습에 송상호의 눈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그런 송상호를 밟으면서 공중으로 도약한 아삼이 더 빨라진 속도로 담을 넘었다. 절묘하게 빈틈을 노린 아삼의 행동에, 회수한 포승줄로 호흡이 흐트러진 신영용은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 장면이 천천히 흘러갔다. 떨어진 속도에 더해서 아삼에게 밟힌 송상호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면서 '쿠웅'소리가 나오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들의 시야가 제 속도를 찾았고, 당황해하는 신영용의 몸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인학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바닥을 박찬 인학의 몸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신영용이 손에 든 군도를 인학에게 찔러 넣었다. 그의 공격을 피해서 자세를 낮추는 인학이었지만 계속해서 쫓아오는 도 끝에 이대로 뒤로 빠질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영용의 도는 주조화의 도에 막혔고 다른 한 손도 구영고의 도를 막아서야만 했다.

촤아악.

"크윽."

미끄러지듯이 바닥을 쓸면서 자세를 낮춘 인학의 도가 그의 허리를 갈랐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치명적인 그 공격에 급히 둘을 떨쳐낸 신영용이 뒤로 물러서면서 허리를 부여잡았지만 뒤로 돌아간 인학은 그대로 문을 통과해서 먼저 넘어선 아삼의 뒤를 따라갔다.

"이놈!"

분노한 신영용이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구영고와 주조화가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신영용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떨쳐내기는 더욱 힘들어 보였다.

멀어지는 인학과 아삼의 뒷모습에 구영고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팽가의 입지를 저 두 아이의 힘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달려가는 아삼의 모습을 확인한 인학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팽가에서 내쳐질 위기를 자초한 자신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만회를 해야만 했다.

'이미 구영고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테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 신문하라는 늙은 환관을 내가 잡아야만 한다.'

입술을 깨물며 의지를 다진 그가 내기를 더 끌어올렸다. 지금은 그들을 따라잡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앞서던 아삼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아삼!"

크게 외치는 인학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아삼이 그를 발견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그 모습에 미간을 좁힌 아삼이 다시 고개를 돌리려 할 때, 뒤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기운과 함께 큰 외침이 들려왔다.

"나를 앞으로 밀어라!"

흡사 명령을 내리는 듯한 인학이 빠른 속도로 그의 옆을 지나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뒤에서 자신을 밀어주면 그 힘으로 속도를 높이려는 생각인 것 같았지만 정작 아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

치고나온 이인학의 등을 보면서 쓰게 웃은 아삼은 기운을 더 끌어올려서 바닥을 박찼다. 분뢰공의 묘까지 더한 그의 경공에 순식간에 인학의 옆을 스쳐지나간 아삼이, 힘을 다해서 늦춰진 인학과 멀어져 갔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학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저런, 망할 자식!"

시뻘게진 얼굴로 뒤를 따르는 인학은 흥분한 상태로 힘을 쥐어짰다. 좁혀지지 않는 아삼과의 거리에 놀랄 겨를도 없었다. 그만큼 흥분한 그는 남겨뒀던 기운까지 끌어올렸다.

빠르게 움직이는 아삼의 눈에 앞서 달려 나갔던 자들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딱히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화의 배려가 고마웠기 때문에 믿음이라도 주자는 마음으로 힘껏 바닥을 찬 그가 무영보법에 분뢰공을 더했다.

두 배는 빨라진 그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고 그 뒤로 흐릿한 잔영이 남을 정도였다. 빠르게 들이닥친 아삼의 행동에 멀리서 경계하며 도망가던 그들이 기겁을 하면서 움직임을 멈췄다.

다가서는 그를 보고 신문하의 앞을 가로막은 두 환관이 어느새 꺼내든 검을 크게 휘둘렀다. 머리와 다리를 향해 교묘하게 휘둘러진 두 검에 기겁한 아삼이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크게 패인 바닥과 함께 몸을 띄운 아삼의 손에 뽑아든 군도가 들렸고 재주를 넘으면서 뿌리는 도초에 기겁한 그들이 앞으로 나가면서 거리를 벌렸다.

"커억!"

"공공!"

신문하와 두 환관들 사이에 떨어진 아삼의 다른 손에 포승줄이 들렸고 그 끝은 신문하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신문하의 표정과 그것을 본 두 환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삼을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죽기 싫으면 그 손을 놔라!"

"……."

옆구리에 늙은 환관을 끼고 내달리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 잡힌 환관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판단을 했고, 실제로 살수지무를 이용해 상대를 훑어봤지만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위협을 하는 환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아삼이 천천히 뒤로 물러서면서 포승줄을 당겼다.

"크으윽."

신문하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듯한 음성이 비집고 나오자 앞선 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씩 아삼과의 거리를 좁히는 그 모습에 군도를 들어 올린 아삼이 뒤로 물러서면서 신문하의 몸을 방패삼아 그의 몸을 확실하게 옭아맸다.

"정녕 죽고 싶은 게냐!"

그 모습을 보던 환관의 입에서 노성이 터졌고,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던 아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자가 눈에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야압!"

우르르릉. 콰아앙.

먼 곳에서부터 빠르게 날아든 인학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뽑아든 군도를 휘둘렀다. 태산압정의 초식으로 위에서 내리 그은 그 공격에 기겁한 환관이 뒤늦게 그 공격을 눈치 채고 뒤로 돌아서서 검을 들어 올렸지만 가로막는 검을 부순 그의 도가 막아선 환관의 몸을 날려버렸다. 팽가에서 전수받은 벽력도였다.

위력적인 그 공격에 당황한 다른 환관이 뒤늦게 나타난 인학을 바라봤고 지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죽어라! 커억."

지친 인학을 향해 검을 내지르려던 그의 목에서 뾰족한 도가 튀어나왔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삼의 도가 빠르게 쏘아지면서 그의 목을 꿰뚫었다.

쓰러진 두 환관과 붙잡힌 신문하. 주변을 빠르게 살피던 인학의 눈이 아삼이 사로잡은 신문하에게 고정됐다.

'저자만 손에 넣으면…… 살 수 있다.'

생각을 마친 그가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아삼을 바라봤다.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듯한 그 모습에 내심 놀란 그가 태연한 척 아삼을 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저 놈을 내가 해치울 수 있을까? 온전히 내 공으로 돌려야 하는데……'

고심하는 인학이었지만 아삼을 해치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예전에 봤던 아삼의 무공실력으로 보건데 지친 자신이 감당할 수는 없었다. 기습도 힘들다고 판단한 인학이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을 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인학의 모습에 아삼의 미간이 좁혀졌다. 좋은 의도가 아닌 것은 멀리에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신문하를 잡은 자신의 행동도 걱정됐다.

'이대로 드러내는 것이 좋을까? 괜한 견제를 받지는 않겠지? 정화 태감을 돕기 위해서 나서기는 했지만……'

서로 마주보며 고심하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삼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앞에 있던 인학이 생각지도 못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커다랗게 떠진 아삼의 눈이 인학의 행동에 다시 좁혀졌다.

처억.

군도를 집어넣은 인학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납작 엎드렸다. 절을 하듯이 엎드린 그가 처연한 눈빛으로 아삼을 올려봤다. 굳게 다문 그 입이 열렸고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의 심경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사…… 살려다오."

"……."

"아삼! 나를 살려다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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