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42화 (4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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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죽어버린 조삼보의 모습에 먼저 창고를 빠져나왔던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본 이인학이 그에게 다가오면서 협박하듯 말을 건넸다.

    "어차피 나를 돕기로 한 것이니, 함부로 입을 놀리지는 않겠지? 조삼보를 넘긴 대가는 내 팽가에 말해서 잘 챙겨주도록 하지."

    "……."

    "이번에 있었던 일은 네놈 운이 좋았던 거야. 괜히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것이야. 아! 넌 벙어리였지?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자신의 할 말만 하고 멀어져가는 이인학이었다. 죽어버린 조삼보를 들쳐업고 걸어가던 그가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품에 있던 폭죽을 터뜨렸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창명한 하늘에 붉은 신호가 쏘아져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을 이끌었던 동창의 '번역'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이인학이 그들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의 표정에 씁쓸함이 어렸다.

    아삼과 이인학이 자리를 뜨자 은밀히 창고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전에 객잔에 있었던 그자들이었는데 익숙한 듯이 창고로 들어선 그들은 죽어버린 시체를 확인하면서 혹시라도 살아있는 자들이 없나 둘러봤다.

    이윽고 모든 시체의 죽음을 확인한 그들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죽어버린 조삼보와 함께 이번 일에서 하오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군. 팽인학이라는 놈의 실력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군. 그 많은 낭인을 처리하면서 조삼보라는 놈까지 잡아들였다니…… 아무리 양자라고 하기는 하나, 역시 팽가라는 말인가?'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이인학이었다. 팽가의 양자로 알려진 이인학의 활약에 많은 세력들이 그를 주목했고 그의 뒤에 버티고 있던 팽가는 다시 한 번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팽가의 명성과 함께 팽인학의 활약이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 공공께서도 언급하셨고, 나도 내키지 않으니 그 공을 깎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은밀히 처리하라는 일을 하오문이라는 놈들을 협박해서 입을 가로막다니…… 상당히 당돌한 놈이지만, 그래도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가? 방세옥이라는 아이가 그놈을 잡았어도…… 쯧.'

    혀를 차던 정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신의 실수로 큰 위기가 닥쳤지만 기지를 발휘해 내서 무사히 그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다른 세력의 명성만 높인 꼴이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이 밝을 리가 없었다.

    며칠 뒤, 내서당에 시립해 있는 아이들의 앞에 선 정태감이 그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팽인학, 앞으로 나오거라."

    정태감의 호명에 얼굴 가득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던 이인학이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정태감이었지만 이내 딱딱한 표정을 보이면서 아쉬워했다. 팽가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품을 가치가 있는 놈이었다.

    "팽인학은 이번 시험을 잘 치러냈다. 다만, 조삼보를 살려서 데려오지 못한 점. 그리고 은밀히 처리하라는 내 말을…… 무시한 점. 이것만 제외하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냈다. 다음에는 이런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모두들 팽인학을 본받아서 더 열심히 정진하길 바란다."

    정태감의 말에 환하게 웃던 이인학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쩔 수 없이 조삼보를 죽였지만 그래도 자신이 좋은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저런 지적 같은 것은 따로 언급하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하지만 정태감은 그렇지 않고 일부러 자신의 실수를 드러낸 것 같았다. 찝찝한 기분이 든 이인학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만 해냈다는 생각에 우쭐한 그가 아래에서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둘러봤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듯한 눈치였고 더러 아쉬워하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어째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네놈의 공과를 가로챘다고 그러는 것이냐? 네놈의 도움을  조금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삼보를 잡는데 더 힘을 쓴 사람은 바로 나다! …… 젠장.'

    자꾸만 아삼이 신경 쓰이는 이인학이었다. 자신이 아삼보다 더 뛰어나다 생각했었지만 이번에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는 아삼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삼의 실력은 자신과 비슷했다. 무공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낭인을 처리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아삼이라는 놈의 무공도 제법 빨라보였지만 자신보다는 못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무공이라는 것에서 뛰어나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은 이인학이 돌린 고개를 다시 치켜들었다.

    '그래. 다른 것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무공만큼은 내가 네놈을 한참 뛰어넘을 것이야.'

    애써 아삼을 무시하는 이인학이었지만 얼굴에 어리는 씁쓸함을 어쩔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서당에서의 모든 훈육 과정이 끝났다. 그리고 오늘 동창에 들일 아이들을 뽑기 위해 훈육을 책임졌던 정태감과 훈육 환관들 그리고 동창의 주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아이들을 훈육하느라 수고들 했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동창에 들일 옥석 같은 아이들을 가리기 위해서요. 허니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혀주길 바라오."

    동창에서 ‘첩형의 장’이라는 지위에 앉아있는 오건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동창요원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바로 팽가에서 심어놓은 당두 구영고였다.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창이라 몇몇의 요원들은 금의위에서 충당되었고 손쉽게 자신의 사람을 심어놓을 수 있게 된 팽가였다.

    "이번 시험에 통과한 팽인학이야말로 동창에 적합하다 생각됩니다. 이미 그 실력이 증명된 아이이니 응당 동창으로 데려와 하지 않겠습니까?"

    당두인 구영고의 말에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의 실력을 검증한 아이였기 때문에 달리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방세옥이라는 아이 또한 훈육 과정 내내 비범한 자질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 운이 나빠서 그렇지, 그 아이라면 팽인학이라는 아이에게 뒤지지 않을 아이입니다. 동창에 꼭 필요한 인재가 아닐까 사료됩니다."

    정태감 역시지지 않고 방세옥을 지지하고 나섰고, 그가 나서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훈육 환관들이 정태감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소신이 보기에도 그 아이만큼 뛰어난 자질을 보여준 아이는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 아니 셋을 깨우칠 정도로 아주 영민했습니니다. 다른 아이들과 별다른 마찰도 없었고 그들을 이끌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뛰어난 자질을 보여준 아이입니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정태감의 한 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무래도 휘하에 있는 환관들이었기에 자신의 뜻에 따라서 의견을 내놓는 그들이었고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살피는 오건휘였다.

    "방세옥이라는 아이뿐만 아니라, 송상호라는 아이의 성과도 훌륭하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도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자가 이때다 싶었는지 앞으로 나섰다. 첩형직을 맡고 있는 정효명으로 그 역시 장인태감 쪽에서 심어놓은 동창요원이었다. 다들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세력에 포섭된 아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였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오건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능구렁이 같은 놈들. 다들 자기 잇속 차리기에 바쁘구나. 정공공이 언질을 뒀던 아이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고 있구나. 사마택의 말로는 범상치 않다던 아이였는데 생각보다 평범한 아이던가? 그 사람이 사람을 잘못 봤을 리는 없을 터인데……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언질을 왜 줘서는……'

    어떻게든 아삼을 동창으로 넣기 위해 고심을 하는 오건휘였다. 하지만 뭐 하나 뛰어난 게 없는 아삼이라 어찌 말을 꺼내야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자신이 비록 동창 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허울 좋은 감투일 뿐이었다. 정화태감의 도움으로 감투를 쓰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동창에서 자신의 존재는 미미할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아삼이라는 평범한 아이를 넣기 위한 명분을 찾는 것인지도 몰랐다.

    "흠흠. 모두의 말씀 잘 들었소. 허면 다른 추천할만한 아이는 없는 것이오? 아직 채워질 인원이 모자란 것 같소만?"

    ‘첩형 장’인 오건휘의 말에 여기저기서 다른 아이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디에서도 '아삼'이란 아이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더욱더 초초해하던 오건휘가 더 늦기 전에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의 이름을 거론하려고 했다. 그때, 오건휘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조금 전에 팽인학을 거론했던 당두 구영고의 입에서 '아삼'이라는 이름이 튀어 나왔다.

    "아삼이라는 아이 또한 동창에 적합하다 생각됩니다. 팽인학이라는 아이 옆에서 조삼보를 잡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그 아이가 벙어리이기 때문에 첩보활동을 해야 하는 당두나 번역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훈육 성과 역시 나쁘지 않다 들었습니다."

    며칠 전 팽명민과의 대화를 떠올린 구영고가 아삼을 추천하고 나섰다. 다름 아닌 소가주가 친히 부탁한 아이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아삼이라는 아이를 동창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구영고였다.

    "팽가의 양자인 팽인학은 무조건 동창에 들어가야 할 것이오. 그래야 금의위뿐만 아니라 동창에서도 우리들의 입지가 커지지 않겠소? 이미 이번 시험을 무사히 치러 낸 아이이니 그 아이를 들이는 것은 문제될 게 없을 것이오. 그리고……"

    "따로 생각해두신 아이가 있는 겁니까?"

    "흐음. 아삼이라는 아이도 동창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소. 이번 시험에서 팽인학을 도운 그 아이의 힘도 컸고, 이전에 보였던 그 아이의 재능이라면 능히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오."

    소가주의 당부뿐만 아니라 팽가의 아이를 한 명이라도 더 들인다면, 동창에서의 자신의 입지도 그만큼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구영고였다. 그래서 더욱더 적극적으로 아삼이라는 아이를 추천하고 있었다.

    "아삼이라? 벙어리라는 아이가 있었던가? 벙어리라면 환관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긴 하네만……"

    짐짓 모른 체 너스레를 떠는 오건휘였다. 생각지도 못한 구영고의 추천에 초조했던 마음이 일시에 풀리는 것 같았고 이미 물꼬를 텄으니 어떻게든 밀어붙이면 그 아이를 동창에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아삼이란 아이는 그다지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훈육 과정을 잘 따라오기는 했으나 동창에 넣기엔 그 실력이 많이 미흡하지 않나 사료됩니다."

    처음부터 아삼을 눈여겨봤던 정태감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자신이 모시고 있던 유공공의 당부도 있었기 때문에 아삼이라는 아이를 끌어들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동창이라는 곳에 들어간다면 곁에 두고 중히 써먹을 좋은 패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을 보인 아삼은 동창이라는 곳에 적합하지 않다 생각하는 정태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아이를 동창에 들이려고 마음먹은 오건휘 역시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두드러진 활약은 없었다하나 훈육 과정을 잘 따라왔다고 하지 않았소? 유능한 인재만 뽑자고 모인 것은 아니오. 아직 어린 아이들이기에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아이 또한 동창으로 데리고 갈 것이오. 우선 뽑아놓고 기대에 영 못 미친다 싶으면 그 후에 내쳐도 늦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벙어리라는 조건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우선은 그 아이를 데려 가도록 하겠소."

    "소신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싹이 보이는 아이를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당두 구영고가 오건휘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모두들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 이 상황이 못마땅한 정태감이었다. 그렇다고 다들 동의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자신의 뜻만을 관철시킬 수는 없었다.

    첩형 장의 위치에 있는 오건휘는 장형천호(掌刑千戶)라고 불리는 정3품직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정태감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거운 짐을 풀어놓은 듯 오건휘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각자 끌어들인 아이들을 동창에 넣기 위한 세력 간의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동창이라는 단체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된 벙어리인 아삼을 많은 세력이 눈독들이고 있었다.

    각 세력에게 벙어리와 함께 동창의 소속을 가진 어린 환관은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 작품 후기 ============================

    43회에 대해서.. 그 한 회는 타 사이트에서 무료로 푼 분량입니다.

    조아라에 문의를 해 봤는데 1:1 답변에서는 프리미엄으로 돌린 상태에서 무료로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입니다.

    25회 코멘트에서 돈독이 올랐다는 말이 나왔는데... 처음에 타 사이트에서 유료로 올린 상태라 프리미엄이 아닌 이상 이곳에는 올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애초에 처음 글을 쓴 곳이 이곳이었고, 다른 글을 읽으셨던 분이 언급해주신 상황이었기 때문에 독점을 포기하고 이곳에 올린 것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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