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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61화 (61/121)
  • 61화. 붉은 벽돌성의 새벽 (12)

    프랭크 딜린저의 집에 오게 된 사유는 단순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사건을 조작하거나 증거를 은폐한 과거를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은 높은 확률로 범인의 동기와 연결될 것이었다.

    프랭크 딜린저는 피해 수사관 중 하나인 알버트 브레너의 말도 안 되는 수사에 의해 누나를 잃었다.

    형이 이미 집행된 데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재수사를 요청할 만큼 당시의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심지어 사건 당일 수사국을 방문한 정황까지 있으니,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용의자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 프랭크 딜린저가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춘 용의자라는 점은 도리어 그가 범인이 아님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거야 게임 플레이어로서의 시선이지. 다르게 말하자면 당장은 어떤 근거도 댈 수 없는 관점이란 뜻이다.

    애당초 프랭크 딜린저의 집에 가보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게 밀리엄 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 프랭크 딜린저의 집 ]

    시스템창이 이다지도 성실하게 반응해주는 것을 보면, 프랭크 딜린저가 범인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의 집에서 무언가를 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확신이 사치는 아니리라.

    밀리엄은 마차에서 내리는 내 손을 잡아준 다음, 앞서 걸어가 프랭크 딜린저의 집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고 나타난 이는 곱슬거리는 짧은 금발머리에, 죽은 테오도어 와이엇만큼이나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결례를 부디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딜린저 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니, 켄트우드 수사관님 아니십니까? 저희 집엔 무슨 일로…….”

    말마따나 연락도 없이 들이닥쳐 놓고선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는 밀리엄의 태도에, 프랭크 딜린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뒷머리만 긁적였다.

    “실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왕립수사국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서 딜린저 씨께 조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번에 왕립수사국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이란 대목에서 프랭크 딜린저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꿈틀 경련하던 안면에 달리 형언할 수 있을 법한 표정이 들어선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왕국 유수의 일간지에 대서특필된 대형사건이고, 프랭크 딜린저는 왕립수사국의 동태에 관심이 아주 많을 테니 아마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러니 그를 당황케 한 것은 아마 그 사건과 관련해 자신에게 물을 것이 있다는 밀리엄의 말이겠지.

    “왕립수사국 사건에 관해… 저에게 말씀이십니까?”

    “예. 우선…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을까요?”

    밀리엄은 모자를 벗어 가슴에 가져다 대며 정중히 물었다.

    그 말에 프랭크는 여전히 반쯤 상황파악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나 문을 더 활짝 열어주었다.

    프랭크는 우리를 거실의 소파로 안내했다.

    그는 아담한 2인용 소파에 나란히 앉은 나와 밀리엄을 번갈아 보며 조금 불안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밀리엄은, 놀랍다면 놀랍게도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일련의 자초지종을 모조리 설명했다.

    조금 의아하다 싶었으나, 가만 보니 밀리엄은 상대가 말도 안 되는 비리 수사로 혈육을 잃은 장본인이니만큼 충분한 설명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배려가 프랭크 딜린저 본인의 심신안정에 긍정적이었는지는, 솔직히 확신하기 어려웠다.

    나는 설명이 이어질수록 새파랗게 질려가는 프랭크의 안색을 가만히 살폈다.

    마침내는 식은땀까지 흘리는 프랭크는 정말로 아주 불안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특이한 반응이라 하겠는가?

    희게 질린 얼굴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도.

    기실 자신이 사람을 열두 명이나 죽게 만든 살인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라면 누구나 으레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밀리엄의 설명이 모두 끝난 뒤, 프랭크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고 거실에는 잠시간 굉장히 불편한 적막이 찾아들었다.

    “그… 그러니까, 수사관님 말씀은 제가 수사관님들을 열두 분이나 살해한 범인이라는…….”

    “아, 아닙니다. 딜린저 씨. 저는 딜린저 씨가 범인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혹시 모를 오해나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십사 부탁드리려는 겁니다.”

    밀리엄의 다급한 해명에도 프랭크 딜린저는 안면 가득 떠오른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짜고짜 생사람을 잡는다며 화를 내거나 불쾌해하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의 호소에 귀 기울여준 바 있는 밀리엄의 말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잠시간 마른세수를 한 프랭크 딜린저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긴 한숨과 함께 허리를 굽히고 손깍지를 꼈다.

    이윽고 몇 차례의 문답이 이어졌다.

    사건 당일 수사국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느냐, 건물을 나서는 과정에서 혹시 다른 때와 다른 이상한 구석을 느끼지는 못하셨느냐.

    상식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질문에 프랭크는 착실하게 대답했고 시스템창은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말하는 내내 다리를 덜덜 떨며 자꾸만 오른쪽을 힐끔거리는 프랭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말 어지간히 불안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게 정말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누나의 일로 생긴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문답이 이어졌을 즈음,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듯 거친 숨을 토해낸 프랭크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그러고 보니 손님이 오셨는데 차 한 잔 내오지 않았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딜린저 씨.”

    밀리엄은 성큼성큼 주방 쪽을 향해 사라지는 프랭크 딜린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 밀리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나의… 그러니까 ‘플레이어’의 역할은 뭐지?

    그냥 밀리엄과 프랭크 딜린저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저 안에서 쓸 만한 정보를 추려내면 되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시스템창이 어딘지 마음에 걸렸다.

    만약 여기서 내가 뭔가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하는 거라면, 그건 대체 어떤 행동일까?

    나는 작은 거실 안을 빙 둘러보았다. 아담한 소파. 낡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세간살이.

    별로 특별하다거나 수상해 보이는 지점은 없었다.

    그러나 프랭크 딜린저가 굳이 차를 내주러 자리를 비운 이 순간은 어떤 기회처럼 느껴졌다.

    이건 말하자면 그런 상황 아닌가?

    제한된 짧은 시간이 있고, 그 안에 이 방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야 하는?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베로니카?’ 하는 밀리엄의 목소리를 미안하게도 한 귀로 흘리며 다시 한 번 집 안을 살폈다.

    물론 다시 본다고 특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탐색을 하는 것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일단 낭비를 감수하고 모노클 아이콘을 눌렀다.

    그렇게 손에 들린 모노클을 눈가에 가져다 댄 순간이었다.

    쨍한 금색 빛무리가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처럼 강하게 눈을 찔러왔다.

    이게 뭐지?

    나는 황급히 모노클을 떼고 다시 눈앞을 보았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무어 대단한 물건 따위가 아니라, 그저 닫힌 커튼이었다.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손안에서 사라지는 모노클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저게 뭐라고 그렇게 전체적으로 번쩍번쩍 빛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커튼을 젖혀봤자 창문이 있을 뿐일 텐데.

    그러나 아이템을 사용해 결과를 얻어낸 이상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조금 전 밀리엄과 대화를 하는 내내 오른쪽을 힐끔거리던 프랭크 딜린저의 태도가 떠올랐다.

    분명 그 오른쪽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창문 쪽이었지 아마?

    창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 나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밀리엄의 시선을 느끼며, 닫힌 커튼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이윽고 시야에 들어선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해 질 무렵의 전경 따위가 아니었다.

    커튼 뒤는 애초에 창문이 아니라 벽이었다.

    크고 작은 신문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 ‘신문이 스크랩된 벽’을 발견했다. ]

    “미, 밀리엄. 잠깐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라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성큼 걸어온 밀리엄이 내 대신 커튼을 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벽을 보는 밀리엄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렇게 수려한 얼굴 위로 일순 당혹감이 스쳤다가 이내 딱딱하게 굳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에는 누나의 사건과 관련한 기사들을 조사하느라 스크랩해둔 건가 싶었다.

    그러나 벽에 붙은 것은 한 가지 사건에 관한 기사들이 아니었다.

    기사 한 장 한 장이 각기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당황스럽게도 그 모든 사건이 전부 눈에 익었다.

    5년 전의 말리스 연쇄독살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자정의 교살자 사건에 캠벨 남작 일가 사망 사건…….

    기사 속에는 하나같이 아까 전 피해 수사관들의 비리증거가 담긴 파일에서 본 바로 그 사건들이 담겨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당황해 이리저리 움직이던 시선이 한 신문지의 상단에 닿았다.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한 필체의 손글씨가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친애하는 딜린저 씨에게.’

    낯익은 모양새에 오른쪽으로 번진 글자들…….

    그것은 수사국 출입대장에서 보았던 플레밍턴 타임즈의 기자, 카일리 돌턴의 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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