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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주인-70화 (70/76)
  • #70화. 오몽 (1)

    펜트하우스의 창 너머로 어느새 선명한 주홍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덩달아 독경의 마음이 급해졌다. 주인이 저녁은 집에서 먹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약한 레스토랑을 취소하고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직접 요리를 해 주고 싶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독경은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정성스럽게 재료를 손질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도착할 시각에 맞춰 고기를 구웠다. 때마침,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직접 준비하는 거야?”

    부엌으로 걸어오며 주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할까 해서요, 하하.”

    독경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들며 멋쩍게 말했다.

    “미리 얘기하지. 그럼, 나도 일찍 와서 거들었을 텐데. 설마, 내가 못 미더워서 혼자 하는 건 아니지?”

    “하하, 그럴 리가요. 모처럼 직접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잠시 뒤, 눈앞에 근사한 상이 차려졌다.

    주인이 자리에 앉자, 독경이 와인을 잔에 따라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도 채운 다음, 슬며시 운을 뗐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너도....”

    그녀가 조금 떨리는 음성으로 말끝을 흐렸다. 설핏, 눈시울이 붉어진 것도 같았다. 그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려 짐짓 발랄하게 권했다.

    “먹어 봐요. 선배 취향대로 구웠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주인이 스테이크를 한 점 썰어 입에 넣고는 오물거렸다.

    그 모습을 독경이 맞은편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요즘에야 실감하는 그였다.

    “맛있다!”

    그녀가 해사하게 활짝 웃었다. 그제야 그도 제 입에 고기를 잘라 넣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행이네요.”

    두 사람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나누며, 찬찬히 식사를 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풍경처럼 보였겠지만, 그들은 알았다. 이 평화를 얻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간절하고, 처절하게 싸워 왔는지를....

    “이독경....”

    주인이 그윽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독경이 선선하게 답했다.

    “고마워.”

    “뭐가요?”

    “그냥.... 그냥, 다....”

    평소와는 달리 깊은 애상에 젖은 그녀를 그는 물끄러미 관찰했다.

    입매는 환히 웃고 있었으나 눈망울은 어딘가 서글퍼 보이는 것이, 깨질 듯 연약하게, 부서질 듯 가녀리게 그의 망막에 닿았다.

    “선배, 사랑해요.”

    독경이 동굴 안처럼 낮게 울리는 저음으로, 어딘가 위태로운 그녀를 꽉 붙잡았다. 주인이 두어 번 눈을 크게 깜박이더니, 이내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알아, 알고 있어.”

    잠시 잔물결 같은 고요가 흐른 후, 그녀가 입술을 조심스레 달싹거렸다.

    “이독경, 내가....”

    다시금 뜸을 들이던 붉은 입술이 고혹적으로 천천히 벌어졌다.

    “내가.... 음,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부끄러운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나온 뜻밖의 고백에 독경은 당황했다. 예리한 칼날이 무뎌진 것처럼 크게 뜬 두 눈이 맞은편에 멎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 심장 박동 소리가 먹먹할 정도로 세게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런 상대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은 그저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한번 결연하게 읊조릴 뿐이었다.

    “사랑해, 이독경.”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잔잔하고 적막한 공기에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그 파동에 휩쓸린 독경의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 낙하한 검붉은 심장은 여전히 힘차게 펄떡거리며 요동치다, 발치 끝까지 떼굴떼굴 굴러가 멈췄다.

    그 광경을,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순식간에 아연해졌다.

    “선배....”

    독경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양 새카만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선배,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말해 주면... 안 돼요...?”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간청했다. 주인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사랑해, 이독경.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거야....”

    열렬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와닿는 고백이 끝나기 무섭게, 독경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주인의 손목을 다급히 이끌며 걸음을 옮겼다.

    “선배, 식사 다 했으면 우리....”

    독경은 주인을 침실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그녀를 벽에 떠민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주인이 눈을 감은 채 거칠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그를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독경이 자신조차도 제어 못 할 욕망이 펄펄 들끓는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아, 선배....”

    그가 조급하다 못해 서툰 손길로 블라우스의 단추를 벗겼다. 의외였다.

    독경은 주인과 처음 사랑을 나눴던 순간에도 능숙하고, 느긋하게 행동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막 사랑에 빠진 순진한 소년처럼 안달복달하며 어리숙하게 굴었다.

    그녀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다정히 쓸어내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이독경, 난 네 거야. 영원히.”

    “후....”

    그 말에 독경이 모든 동작을 우뚝 멈추고는 양손을 벽에 짚은 채, 한숨처럼 깊게 심호흡을 했다.

    요동치던 심장이 비로소 차분해지고 바들바들 떨리던 손끝이 안정을 찾자, 그는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한 여유로운 미소를 씩 그렸다.

    “알아요, 알고 있어요.”

    독경이 주인에게 제 입술을 느른하게 맞붙였다.

    혀끝에 그녀의 보들보들한 살점이 느껴졌다. 그는 늘 그래 왔듯 입안의 점막을 집요하게 훑으며, 뻔뻔하고 교만하게 감각을 오롯이 만끽했다.

    봉긋한 가슴과 탄탄한 허벅지가 그의 손끝에서 허물어지고, 그의 혀끝으로 단단해졌다.

    두툼한 손안에서 주물리는 젖가슴은 만질수록 몰랑거리는 반면, 혀끝에서 돌돌 말리는 유두는 빨릴수록 더욱 단단하게 솟아올랐던 것이다.

    독경은 주인을 모조리 씹어 삼켜 버릴 것처럼, 모든 부위를 집요하게 제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단단하고 뾰족한 송곳니가 무릎에서부터 허벅지 안쪽까지 지분거리다, 이윽고 음부에 도달했다.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혀로 그녀의 음핵을 가볍게 핥다, 앞니로 살짝 씹었다.

    “흐흥....”

    찰나의 짜릿함에 주인이 사타구니에 박힌 독경의 머리카락을 힘껏 쥐었다.

    그가 그런 그녀를 침대 위에 풀썩 눕혔다. 그러고는 지퍼를 내리며 발기할 대로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주인이 멍하니 허공을 향해 꺼덕이는 검붉은 물체를 보는데, 독경이 그녀의 허벅지를 양쪽으로 꽉 누르며 다리를 활짝 벌렸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다시 모으려 했지만,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가 민망할 만큼 노골적으로 번들번들하게 젖은 아래를 내려다보다, 퍽 하며 제 것을 입구 안으로 찍어 눌렀다.

    “아읏!!”

    주인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어깨를 바들거렸다. 그러나 독경은 그녀의 가는 발목을 양손에 움켜쥔 채 허리를 격렬하게 흔들 뿐이었다.

    “하, 으읏, 아앗....”

    그녀의 마른 몸이 쉴 새 없이 흔들리며 굵직한 성기가 밀려왔다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후, 선배....”

    그의 입에서 짙은 신음이 흘렀다. 그러나 허리를 멈추기는커녕 철썩거리며 더욱 세게 살을 처댔다.

    “아으, 흣....”

    주인이 고통스러운 쾌락에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쳤다. 단정하게 정돈됐던 시트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독경이 그녀의 양 다리를 제 몸통에 꽉 두른 뒤, 상체를 아래로 기울였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술을 마구잡이로 뭉개며 키스를 하더니, 틈새로 중얼거렸다.

    “선배, 사랑해요.... 하, 사랑해요....”

    “나, 나도 사랑해.... 사랑해, 으응....”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몹시도 길고 힘차게 사정을 했다. 온몸이 사정감으로 바르르 떨렸다.

    그녀 또한 내벽을 때리는 자극에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독경이 주인의 촉촉이 젖은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 물기가 그녀의 눈물인지, 떨어진 제 땀방울인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독경은 새벽 무렵이 돼서야 깊은 충족감을 느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얻는 것이, 이토록 충만한 기쁨을 주는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잠결에 주인이 자신의 몸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촉감을 느꼈다.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나른하고 간질거렸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애정이 담뿍 담긴 관능적이고 섬세한 느낌도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으나, 어쩐지 몰려오는 잠을 물리칠 수 없었다.

    독경은 속절없이 몽롱한 기운에 휩싸인 채, 주인의 손이 제 이마의 상처에 머물러 있음을 알아챘다.

    ‘또, 속상해하는 중인가?’

    그는 어렴풋한 사고 속에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늘 그렇듯 그녀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자책도.

    눈을 뜨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눈으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미안해하고 있겠지.

    ‘정말, 괜찮은데.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데....’

    독경은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수마에 짓눌려 입술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주인의 손길이 옮겨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제 왼쪽 어깨였다.

    그녀는 세로로 긴 흉터를 손끝으로 찬찬히 더듬으며 내려갔다. 마치 그 순간의 아픔을 따라서 느껴 보려는 것처럼 하나하나 세심하고 끈질기게.

    그리고 이윽고, 그 손길은 가장 최근에 생긴 상처에 닿았다. 나무 조각에 찔린 상처는 아직 덜 아물어 빨갛게 부은 상태였다.

    “미안해, 미안해. 모두, 나 때문에....”

    주인의 촉촉이 젖은 목소리가 잠에 빠져들려는 독경을 잡아끌었으나, 그는 끝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속절없이 심연 아래에 잠겼다.

    그 애틋한 손길이 잠든 뒤에도, 꽤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는 것은 남은 온기로 알았다.

    ***

    독경은 아주 오랜만에 잠에 푹 빠졌었다. 이토록 깊이 잠들어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인 듯도 싶었다.

    그는 마치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그러고는 곧장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 천사처럼 평온한 얼굴로 잠들었을 주인이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왜인지 텅 비어 있었다.

    그가 천진하게 눈을 비비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체를 일으켰다.

    “선배....”

    아직 졸음이 덜 깬 것처럼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침실 안에 울려 퍼졌다. 잠시 기다려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독경이 슬며시 몸을 일으켜 단단한 근육 위에 가운을 두르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선배, 어디 있어요...?”

    그가 부엌과 화장실, 서재를 차례로 돌며 그녀를 찾았다. 혹시 몰라 테라스도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주인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뭐 사러 나갔나?”

    독경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현관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다시 세 시간이 흘렀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해가 서쪽으로 붉게 물들며 떨어질 때까지도,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세한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집 안에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서늘한 가을밤 공기가 그나마 남아 있던 그녀의 온기마저 빼앗아 갔다.

    그는 눈 한번 깜박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현관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온밤이 하얗게 새도록 우두커니 앉아서....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밤보다도 더 어둡게, 나락보다도 더 깊게 조금씩 물들어 갔다.

    주인은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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