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51)

***

머리가 무거웠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픽 쓰러졌을 때처럼 지끈거리는 현기증이 일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죠, 아가씨.”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유모는, 가문이 반역자로 몰리기 직전에 사라졌으므로. 그녀는 심지어 제 몸이 예닐곱 살쯤으로 작아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응, 조금만. 힐다….”

엘레나는 어리광을 부리며 늙은 노파의 품을 파고들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시원했다. 그게 좋아서 그녀는 어리광을 부리듯 늙은 노파의 손에 제 이마를 비볐다.

유모의 품에서는 늘 말린 세이지 냄새가 났다.

“아이고, 이를 어째. 열이 오르는걸요.”

“조금만 쉬면 돼.”

“열이 제법 높아요. 오늘은 주인님께 말씀드려서 수업을 모두 취소하는 게 좋겠어요.”

“안 돼!”

엘레나는 열이 올라 흐려진 눈을 번뜩 떴다. 늙은 유모의 옷자락에 매달리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이 걱정으로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그녀는 변명처럼 웅얼거렸다.

“음, 그러니까, 아버지는 내가 아프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고….”

“…그러면 이거라도 드셔야 해요.”

“그거 쓴데.”

엘레나는 유모가 숟가락에 그득 부어 주는 초록색 액체를 반항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약한 저항에도 숟가락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한숨을 폭 내쉬고 순순히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으.”

“조금 더 주무세요. 오늘은 오전 수업이 늦게 시작할 거예요. 마차 바퀴가 진흙에 빠지는 게 보여요.”

이벨린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힐다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될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힐다의 하는 예언은 자질구레한 사고에서부터 죽음까지 다양했고, 한 번 입을 연 것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불행이자 다행이었던 것은 힐다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는 사람이 어린 엘레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와 말 한마디조차 섞기 전에 자리를 피했다. 한쪽 눈이 희멀겋게 멀어 버린 뒤로는 더더욱.

그러나 엘레나에게는 그저 가족일 뿐이었다.

“으응…. 자는 동안에도 어디 가지 않고 옆에 있어 줄 거야?”

“그럼요, 아가씨.”

어린 엘레나가 감당하기엔 힘든 게 당연한 날들이었다. 어디에서나 물어뜯는 시선들, 너 따위에게 황태자가 가당키나 하겠냐는 폭언, 사사건건 비교해대는 말들, 그 모든 것을 인내한 끝에 쏟아지는 친부의 폭력.

애정이나 헌신, 걱정이란 이름을 가장한 목줄이 갑갑하다가도 제가 받는 기대라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다.

다 제가 잘 되길 바라서 하는 말일 테니까….

“불쌍한 우리 아가씨….”

그리고 가끔씩은, 이렇게 힐다가 걱정해 주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힐다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곧 졸음이 몰려들었다. 눈을 느릿하게 깜박거리자 주름진 손이 가슴께를 토닥인다. 노파가 자장가처럼 읊조리는 소리가 잠결에도 들렸다.

“아가씨의 …은 강력한 …으로 묶여 있으니 걱정 말아요.”

“…….’

“아무리 힘드셔도 버티셔야 해요. 버티고, 버티다 보면….”

흐려진 목소리가 귓가에 먹먹하게 차올랐다.

“다시, 새로운 …이 시작될 테니까. 아무도 아가씨를 몰라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육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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