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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33화 (33/100)

-33-

살로스 또한 이를 느꼈는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눈물 자국 탓에 얼굴에 얼룩이 졌음에도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또렷했다.

?

하지만 놀란 얼굴도 잠시, 그는 다급하지만 느긋하게 내게 입을 맞췄다. 말캉한 혀가 서로 얽히며 질척한 소리를 냈다.

?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입안이 미칠 듯이 간지러웠다. 혀가 서로 맞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왜인지 아쉬움이 들었다.

?

?“맞아, 이 향이었어. 이 향이 미쳐 버릴 것처럼 그리웠어.”

??

향, 향이라.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다던 그 향을 말하는 걸까.

?

?“미안해, 수녀님.”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짐승처럼 얽혔다. 꽤 오랜 시간 물건을 품지 않았던 아래는 퍽 뻑뻑했다. 살로스의 손가락이 거칠게 아래에 침범했다.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와 살로스의 손가락과 마찰하며 질척거리는 소리가 이 작은 집에 울려 퍼졌다.

?

위에서는 혀가 서로 얽히고 있었고 아래에서는 손가락과 애액이 서로 얽히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살로스가 손가락을 격렬하게 움직일수록 숨이 차올랐다. 이러다가 숨이 넘어가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드디어 살로스가 입을 떼 냈다.

한 개로 시작했던 손가락이 어느새 세 개나 아래에 들어와 있었다. 둥글게 휘어진 손가락들이 내벽을 긁을 때마다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윽, 흐…….”

?

그는 손에 묻어난 애액을 보며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바지를 고정하던 버클이 풀리자 꼿꼿이 선 그의 물건이 드러났다.

살로스는 곧바로 아래에 그의 물건을 맞추고는 천천히 허릿짓을 시작했다. 물건의 둥근 끝부분이 아래에 조금씩 침투했다.

내벽을 통해 물건의 핏줄 하나하나까지 상세하게 느껴졌다.

?“수녀님.”

?

살로스가 갈라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갈라진 목소리가 듣기 싫을 만도 하건만,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다.

?

?“수녀님, 하아, 대답해 줘.”

?“……싫어.”

?

싫다고 대답했지만 살로스의 옷자락을 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살로스도 이를 깨닫고 희미하게 웃었다. 하여간 눈치만 빠른 놈.

?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살로스의 옷자락을 쥔 손을 올려다봤다.

?

내가 어쩌다가 이런 몽마에게 의지하게 됐을까. 언제부터 감정이 이렇게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는 알 수 없었다. 그 계기가 노아…… 노아라는 것만 자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

살로스가 내 가슴에 얼굴을 박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 때문에 잠시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그 틈을 타 숨을 몰아쉬었다.

?

?“수녀님이 전에 나한테 가지 말라고 했었잖아.”

나는 차마 대답할 힘이 없어 대충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

?“그거, 한 번 더 말해 줘. 가지 말라고, 수녀님 옆에 있으라고 해 줘. 뭐든 해 줄 수 있어. 수녀님이 명령하는 건 전부 할게.”

?“가지 마.”

?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살로스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고, 그것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

하지만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를 잊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는 깊게 생각할 기력이 없었다.

?

이제 너무 지쳐 버렸다.

?

살로스가 다시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서로 부딪힐 때마다 전기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

살로스의 물건이 끝까지 들어오자 아랫배가 살짝 부풀었다. 살로스는 자신의 물건으로 가득 찬 아랫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

성기사들에 대해 불평을 잔뜩 털어놓던 그였지만 관계를 갖는 동안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햇살로 채워져 있던 창문에는 어느새 어둠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

능력을 거의 잃었을 때의 그는 사람처럼 음식을 먹고 수면을 취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자지 않았고 먹지 않았으며 휴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

살로스는 내가 잠들 때까지 계속 나를 지켜봤다. 나는 살로스의 집요한 시선을 외면하며 애써 눈을 감았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깊은 의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

꿈속에서 나는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살로스가 만들어 낸 공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곤 딱딱한 바닥뿐이었다. 그래도 걸음을 내디디 수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려나.

처음에는 조심히 걸었다. 혹여 앞에 장애물이 있을까 봐 마음을 졸이며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곧 이 넓은 공간에 장애물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조금 더 과감하게 걷기 시작했다.

?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아무리 걸어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곳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으니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계속 걷는 것이 지겨워져 결국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히 주먹으로 바닥을 콩콩 두드렸다. 당연하지만 바닥은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

?“……아.”

??

잠시만.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암흑뿐이었다.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나아.”

??

아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만 상대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었다.

?

?“거기 누구야?”

??

그래서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백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

바닥의 작은 구멍에서 흘러나온 빛은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

?“……노아.”

?

앳된 얼굴과 내려다 봐야 할 정도의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의 노아는 아니었다.

?

몸 여기저기에 있는 크고 작은 생채기들. 저 상처들이 가리키고 있는 노아의 나이는 분명했다.

다섯 살. 처음 노아를 발견했을 때 그의 모습이 딱 저랬다.

?

?“…….”

??

겁을 단단히 먹은 어린 소년은 나를 보고는 몸을 움츠렸다. 그는 눈만을 깜빡이며 나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

나도 모르게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처음 그를 봤을 때가 떠올라 뭉클해진 탓이었다.

?

내가 노아에게 한 걸음 다가가자 노아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또다시 꾸물꾸물 움직이며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

?“스텔라 누나아…….”

??

이번에는 언제 적의 노아지? 아직 키가 작은 것을 보니 성장기가 오기 전인 여덟 살 정도인 것 같았다.

이번에도 바실에게 맞고 있던 여덟 살의 그가 떠올라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여덟 살의 노아가 손을 잡아 달라는 듯 힘껏 작은 손을 뻗었다.

?

?“가지 마, 누나. 나 두고 가지 마…….”

어렸을 적의 모습으로 이러는 건 반칙이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홀린 듯 그에게 다가갔다.

?

또다시 밝은 빛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열세 살의 그였다.

?

?“누나, 스텔라 누나? 어디 갔어?”

?“…….”

?“어디 간 거야? 설마 날 버리고 가 버린 거야……?”

??

나를 애타게 찾던 열세 살의 노아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울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우울해 보였다.

?

꿈속이 아니라, 진짜 노아도 내가 말도 없이 떠났을 때 저렇게 행동했을까. 파도처럼 밀려오는 미안함에 나는 더 그에게 다가갔다.

?

계속 그에게 다가갔더니 어느새 손을 뻗으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

이곳은 꿈속일 뿐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그는 열여덟 살의 이기적인 노아가 아닌, 열세 살의 노아였다.

?

나는 조심히 손을 뻗어 노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위로해 줬지만 그는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

마침내 손을 떼어 내려는 순간, 억센 힘에 의해 움직임이 봉쇄됐다.

?

?“가지 마, 가지 말라고 했잖아.”

??

젠장. 두 팔로 나를 옭아맨 것은 열여덟 살, 즉 지금의 노아였다.

?

?“이거 놔.”

??

꿈인 걸 알지만 그의 팔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떼어 내려고 했던 손은 이미 노아에게 잡힌 지 오래였다.

?

?“이렇게 버리고 갈 거면 예전에 왜 날 구해 준 건데.”

?“그야…….”

??

네가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인 줄 몰랐으니까.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노아는 뒷말을 예상했는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

?

?“보고 싶어.”

?“제발 네 감정만 중요하게 여기지 마. 너처럼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네가 마음대로 밀어붙여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

?“누나, 보고 싶어. 누나가 나한테 웃어 주던 것도, 누나가 마지막에 슬퍼하는 표정도. 전부 다.”

??

노아는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밀어내도 밀리지 않았고 그를 거부하는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

?“누나를 간절하게 찾고 있어.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찾지 마. 날 찾지 말고 네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

?

이 넓은 세상에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겠지. 네 이기적인 본심을 알고도, 너를 구원해 주겠다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야.

?

?“누나가 아니면 가치가 없어.”

?“가치, 가치라니. 사람은 가치로 판단하는 게 아니야.”

?“지금 당장, 누나가 보고 싶어.”

??

끝까지 노아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다시 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나를 품에 넣고 놓아 주지 않았다.

?

?“……금방 찾으러 갈게.”

??

노아가 완전히 빛이 되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수녀님, 괜찮아? 식은땀 엄청 흘리더라.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길래 꿈에 들어가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어.”

??

식은땀? 소매로 뺨을 문지르니 소매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허어. 나는 그것을 보고 깊게 숨을 뱉었다.

?

?“별것 아니었어.”

살로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지만 정말로 별것 아니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노아의 꿈을 꿨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

쿵쿵.

?

순간 침묵이 맴돌았다. 누군가 정갈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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