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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19화 (1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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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미리엄은 속을 알 수 없는 교활한 노인이었다. 노아는 항상 암흑가의 주인은 우아하고 거만한 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반 미리엄은 노아가 생각했던 것만큼 우아하지 않았고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추악하고 못난 노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활했다. 그는 평생을 암흑가에 바쳤다. 반 미리엄은 이 세상에 범죄가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랐으며 그것을 위해 암흑가를 운영했다.

?

그리고 노아는 반 미리엄의 그런 능력을 원했다. 온갖 불법적인 일들과 범죄자들을 제 아래에 놓고 원하는 대로 주무르는 능력.

스텔라가 사라진 것이 벌써 4년 전이었다. 어렸던 소년은 이제 성숙해졌다. 여전히 소년의 티가 나기는 했으나, 그는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아는 그녀를 간절히 바랐다.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꽃을 그 모습 그대로 꽃병에 담을지 곰곰이 생각하던 그였다.

노아가 반 미리엄의 측근이 된 지 세 달이 흘렀을 때였다. 반 미리엄은 이상한 병에 걸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피를 토했다.

그리고 또다시 한 달이 흐르자 반 미리엄은 병 때문에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몸이 됐다.

노아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반 미리엄을 내려다봤다. 그는 기운 없이 웃으며 노아의 손을 잡았다.

손을 뿌리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노아는 애써 참았다. 반 미리엄은 노아에게 암흑가를 유지해 달라고 부탁이자 명령을 했다.

노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노아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목적을 이뤘다. 스텔라를 찾기 위해서는 암흑가의 주인이라는 자리가 필요했다. 반 미리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던 이상한 사람이었다. 노아는 그의 무덤을 응시하다가 뒤돌아 걸었다. 노아라는 이름을 암흑가의 주인으로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반 미리엄. 그 이름은 이제 노아의 것이 되었다.

이제 스텔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암흑가의 힘을 이용하면, 금방 스텔라를 내 앞에 데려올 수 있겠지.

하지만 그의 예상을 틀렸다. 몇 달이 지나도 스텔라를 찾을 수 없었다.

?

설마 그 공작이 이미 스텔라를 찾은 것은 아니겠지.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스텔라를 찾기 위해 암흑가에 정보를 흘렸다.

그것으로 보아, 스텔라가 알베르트의 수중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매일이 고통이었다. 도대체 왜, 어디로 도망친 거야. 왜 돌아오지 않는 거야. 설마 내 욕망을 눈치챘나? 내 추악한 욕망을 눈치채서, 내가 미워서 돌아오지 않는 건가.

처음에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어 배출됐다.

암흑가에는 몸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별을 따지지 않고 안았다. 그들의 아래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건을 쳐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스텔라를 닮은 사람을 볼 때마다 그 목을 졸라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너희들이 그녀와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지. 어째서, 감히.

?

그럴 때마다 그의 측근이 겨우 노아를 말렸다. 제아무리 그가 암흑가의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 반발을 살 수도 있었다.

“스텔라.”

그 이름이 이제는 어색할 정도였다. 약 5년 동안 그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그녀를 닮은 사람들을 안아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의 아래에 제 물건을 잔뜩 쑤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녀는 사라졌을 때처럼 갑자기 돌아왔다. 그녀를 간절하게 찾던 공작과 함께.

왜 그녀를 처음 찾은 것은 내가 아니라 저자일까.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빨리 스텔라를 찾지 못했나.

?

노아는 충동적으로 스텔라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당황한 듯 버벅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항상 그녀를 올려다보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가 스텔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입이 예쁘게 그의 이름을 부른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아름답게 그를 바라본다.

이 황홀한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본다는 것이 불쾌했다. 저 눈동자가 나만 향했으면 좋겠다.

그러던 중, 알베르트가 그녀의 눈을 가렸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처럼.

알베르트는 항상 노아를 하찮은 벌레를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5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그는 보란 듯이 문을 열어 놓고 기도실에서 스텔라와 관계를 멎었다. 스텔라는 그의 아래에서 신음을 흘렸다.

노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피가 손톱에 스며들었다.

알베르트 모니카. 그는 귀족들 중에서도 상당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진 자였다. 암흑가를 상대로도 쉽게 밀리지 않을 테였다.

정면으로 그에게 승부를 걸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노아는 방법을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스텔라를 납치하여, 영원히 암흑가에 가둬 놓는 것. 그의 측근인 스테판이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노아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미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오히려 범죄자들의 주인이라는 자리에 걸맞다고 봐야 할까.

하지만 그날,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그날 노아는 사람이 없는 외진 골목에서 수하와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알베르트의 눈을 피해 스텔라를 암흑가로 데려올지.

“노아?”

하지만 그녀는 직접 노아가 있는 암흑가로 찾아왔다. 그녀는 그가 암흑가의 주인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그가 위험에 빠졌다고 착각했다.

도망쳐야 한다는 듯 다급하게 그의 손목을 잡는 손길이 너무나도 다정해서 순간 흔들릴 뻔했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간다면 다시 그녀가 노아의 수중에 들어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 노아는 또다른 계획을 떠올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품 안에서 정신을 잃게 만드는 향을 꺼냈다.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던 스텔라는 이내 정신을 잃고 그의 품 안에 들어왔다.

따듯하다. 얼음 같이 차가운 노아의 몸과 달리 그녀의 몸은 따듯했다. 그 온기가 좋아서,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내 그는 스텔라를 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 안에 얌전하게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노아는 가볍게 스텔라의 입술에 입 맞췄다.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은 무거운 쇠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다. 팔은 자유로웠으나 눈을 가리고 있는 쇠에 자물쇠가 있어 풀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코르넬을 속여 도망쳤고, 이상한 남자들이 나를 쫓아왔다. 도망치던 중 노아를 발견해서 함께 도망쳤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망할, 이런 망할. 나 때문에 노아도 그 남자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그들을 유인해서 다른 곳으로 데려갔어야 했는데.

노아는 괜찮을 걸까.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이 차가운 방안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나는 왜 끌려온 거고? 노예로 팔아넘기려는 걸까,

일단 몸을 일으키려고 끙끙대는데, 갑자기 쇠로 만들어진 무거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저 무거운 소리로 보아, 이곳은 감옥 비슷한 곳인 것 같았다.

차라리 눈을 가린 쇠가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공포가 배가 되어 돌아왔다.

“…….”

상대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억누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노아……. 그러니까, 저랑 같이 있던 남자애는 어디있어요? 그 애도 무사한 거죠?”

제발 그가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아직 그 다정하던 아이와 풀어야 할 오해가 많았다.

?

그러자 상대가 작게 조소를 흘리는 것이 들렸다. 잠깐, 조소라니. 내 말을 비웃는 거야? 그럼 설마 노아는 이미 해코지를 당한 거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

몸이 또다시 거세게 떨렸다. 노아가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물론 몸은 다 컸지만, 아직 여리고 어린 아이인데 그런 그가 죽었을 수도 있다니.

제발 저자가 노아는 죽지 않았다고 말해 줬으면. 간절히 빌었으나 상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죽일 거예요?”

죽일 거면 차라리 정신을 잃었을 때 죽이지. 일부러 깨어나면 죽이려고 기다린 걸까. 만약 그렇다면 악질 중의 악질이다.

하지만 상대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내 뺨을 쓸었다. 마치, 죽일 생각 따위 조금도 없다는 것처럼.

“그게 아니면, 노예로 팔아넘길 거예요?”

나는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상대는 내 손을 들어올려 그 위에 부드러운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던 상대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감옥 같은 방에서 나가 버렸다.

***

남자는 다음날에도 나를 찾아왔다. 그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수프를 들고 와 내 입에 떠먹여 줬다. 무언가 이상한 걸 섞은 건 아닐까 걱정하며 먹었지만 다행히 평범한 수프였다.

남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노아는 죽었느냐고 물어도, 그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해도 남자는 침묵했다.

?

그래서 그냥 이 현실을 수긍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런 곳에 끌려온 이상 나도 사지 멀쩡하게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밤낮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며칠이 지났다. 남자가 내게 식사를 주는 횟수로 날짜를 계산해 볼까 고민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남자가 여섯 번째로 찾아왔던 날, 나는 조용히 그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누구예요?”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까, 혹은 어딘가에서 만났던 사람일까. 도대체 그는 누구이길래 나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가둬 놓은 채로 괴롭게 만드는 걸까.

“만약, 만약 저를 죽일 거면.”

“…….”

“차라리 지금 죽여 주세요. 부탁할게요.”

나는 삶에 대한 애착이 꽤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갇힌 이후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화가 난 걸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왜?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판단할 때, 분노해야 하는 것은 내 앞의 이 남자가 아니라 나 아닌가.

나는 덜컹,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피곤해서 그냥 지금은 이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를 깨우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피곤해 죽겠으니까 제발 깨우지 좀 마. 나는 그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

“누나!”

?

하지만 목소리는 꽤나 다급하게 들렸다. 맑은 미성. 점점 또렷해지는 목소리는 분명 노아의 것이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쇠가 풀리고 흐릿한 시야가 서서히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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