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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과백야-61화 (61/116)
  • 61화. D-0, D-DAY

    무경이 집을 비운 사이, 요원은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이렇게도 묶어보고 저렇게도 묶어보고 티셔츠 안 속옷도 확인했다.

    좀 더 예쁜 거로 입고 올 걸 그랬나?

    아. 립밤이라도 좀 챙겨올걸.

    티셔츠가 좀, 평범한데? 치마를 좀 짧게 잘라?

    주방에서 진지하게 가위를 가져올까 고민하던 사이, 대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새벽녘의 마당을 가로지르는 남자의 구둣발 소리가 오늘따라 더 묵직하게 들렸고, 요원은 얼른 폭신한 이불 위로 올라가 태연한 척 벽에 등을 기대앉았다.

    “채 순경.”

    대청마루를 지나 집 안으로 들어온 무경을 보자마자, 요원의 굳게 다물렸던 입술이 작게 떨어졌다.

    늘 왁스로 깔끔하게 넘기는 그의 헤어 스타일이, 씻고 나오니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덜 마른 젖은 머리칼이 남자의 반듯한 이마 위에 멋대로 흩어져 있는데, 머리칼이 이마를 뒤덮으니 평소보다 더 어려 보이기도 하고, 차분해 보이기도 하고.

    분명, 호텔에서도 봤던 모습인데 그때보다 왜 오늘 더 새롭게 다가오는지 의문이었다.

    “진짜 일찍 오셨네요?”

    요원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최대한 예쁘게 웃어 보였다. 이건 신혼여행에서의 첫날밤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는 안 된 상태로.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눈 밑이 잘게 경련함을 느낀다.

    “채 순경. 마그네슘이 부족한가 봐요.”

    “갑자기 마그네슘이요?”

    “눈 밑이 좀 떨리는 것 같은데.”

    “아.”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민망해져서, 요원은 손바닥으로 제 눈가를 얼른 가렸다.

    “뭐 하고 있었어요?”

    요원에게로 한 발 두 발 다가오며 셔츠 단추를 풀어 내리는 남자에게선 평소와는 다른 낯선 장미 향이 났다.

    “그냥 뭐.”

    요원의 정신이 점차 혼미해짐을 느낀다. 요원은 제 얼굴을 여전히 가린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사색을 좀…….”

    “에이.”

    그런 요원의 손목을 잡아채 자세를 낮춘 무경이 요원과 정면에서 눈을 맞추며 씩 웃는다

    “왜 가려요. 맛있는 얼굴을.”

    요원은 무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왜.”

    여자의 그런 반응을 놓치지 않고 검은 시선으로 관망하고 있던 무경이 킥, 웃으며 붙잡고 있던 요원의 손목을 놓았다.

    “나도 맛있어 보여요?”

    그 질문에도 마른침을 삼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럼…….”

    한쪽 무릎을 꿇으며 몸을 기울여 점차 다가온 남자가,

    “맛있게 먹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요원의 머리칼을 꽉 움켜쥐고 제게로 서서히 끌어당기며 입 맞췄다.

    “읍…….”

    요원의 입술을 혀로 벌려 목구멍에 닿을 듯 깊숙이 찔러 넣은 무경이 손을 더듬거려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넥타이를 잡아챘다.

    민트 향이 나는 서로의 숨결을 주고받으면서 요원의 두 손을 결박시키듯 요원의 손목을 넥타이로 묶는다.

    “으음……?”

    눈을 동그랗게 뜨는 요원을 보며 남자가 입술을 맞댄 채로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서로의 혀를 물고 빨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무경이 먼저 입술을 떼어냈다.

    “미안한데요, 채 순경.”

    타액으로 젖은 제 아랫입술을 엄지로 슥 문질러 닦은 무경이 허리를 세웠고, 요원의 팔을 홱 잡아채 제 아래에 눕혔다.

    “내가 오늘은 좀 많이 급해서 말이에요.”

    무경이 제 벨트 버클을 풀고 바지 지퍼를 주욱 내렸다.

    “서론 생략하고 본론부터 바로 들어가야겠는데?”

    요원의 위에서 화려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제 바지와 드로즈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 한 번에 밑으로 끌어내렸다.

    “속옷 안 벗고 해봤어요?”

    이상한 질문을 던진 그가 제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잡아채 그곳에서 콘돔 하나를 꺼냈다.

    “소, 속옷을 어떻게 안 벗고 해요?”

    무경이 콘돔 비닐을 이빨로 뜯으며 제 것에 잘 맞춰 끼워 넣었다.

    “음. 이렇게?”

    요원의 팬티를 손가락으로 젖혀 틈을 만들어 낸 그가 바로 제 것을 밀어 넣는다.

    “흡!”

    굵직하고 뜨거운 것이 제 몸을 한 번에 꿰뚫자 요원의 등이 아찔한 굴곡을 그리듯 활처럼 휘었다.

    “하…….”

    그제야, 남자의 뜨거운 한숨이 요원의 새하얀 배 위에서 만족스럽게 흩뿌려졌다.

    “이게 더 야해요. 안 벗는 쪽이.”

    이불 시트를 꽉 말아쥐며 눈매를 찡그리는 요원의 모습에 무경이 M자로 세워진 요원의 무릎을 꽉 잡아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파요?”

    “아…… 조금.”

    “천천히 할게.”

    남자의 허리 짓이 불시에 느려진다. 찔꺽거리는 젖은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음란하게만 들려왔다.

    무경이 천천히 움직이며 요원을 감상하듯 내려다봤다.

    새하얀 얼굴, 벌겋게 상기된 두 뺨, 물기 어린 적갈색의 눈동자, 새하얀 이불 위에서 멋대로 흩어진 머리칼, 결박된 두 손.

    자신의 리듬에 맞춰 여자도 함께 위아래로 흔들린다. 확실히 이어져 있음이 느껴진다.

    이건 시야가 자극적이어도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가.

    나 참. 장난하나. 뭐가 이렇게.

    더는 참을 수가 없는 무경이 요원의 두 발목을 한 손으로 꽉 잡아 높이 들어 올리며 허리를 힘껏 쳐올렸다.

    “하아!”

    남자의 허리 짓이 갑자기 거세졌다. 무자비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남자는 이 짓에 정말 능숙한 것 같다.

    “하아…… 아아……!”

    그 거친 움직임에 맞춘 요원의 불규칙한 숨소리는 오늘따라 더욱 야릇하기만 하고.

    유독 좁은 여자의 내벽에 무경은 잠시 허리 짓을 멈추며 아랫입술을 꽉 씹었다.

    무경의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갑자기 주변 기온이 뚝 떨어졌다 느낄 정도로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무경은 미간을 찡그리며 요원을 바라보기만 했다.

    “왜, 왜…….”

    왜 멈추냔 말은 다 잇지 못하고 요원이 무경의 아래에서 보채듯 허리를 살짝살짝 흔들었다.

    “하.”

    또 한 번 오싹함을 느낀 무경의 잇새에서 차가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감당이 어려운 감각에 제 것을 빠르게 빼냈다.

    굵직한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그 야릇한 기분에 요원이 흐응, 하는 콧소리를 냈다.

    “채 순경. 뭐 갖고 싶은 거 없어요?”

    무경은 여자의 그런 모습에 더욱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응? 말만 해요. 내가 다 사줄게. 다 줄게. 내 거 네가 다 가져.”

    평소보다 흐트러진 숨을 내쉰 무경은 요원의 손을 묶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져 여자의 몸을 한 번에 뒤집어 엎드리게 했다.

    “씨발, 채 순경.”

    요원의 골반을 잡아 위로 더 높이 들어 올린 무경이 다시 제 것을 질퍽하게 삽입하며 허리를 자극적으로 쳐올렸다.

    “아!”

    “내가 널, 하, 진짜 많이 좋아해.”

    진심 어린 고백도 물론 잊지 않고.

    값비싼 침대가 아닌, 시골집 이불 위에서 행해지는 두 사람의 행위는 야생적이고도 본능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누워서 하다가, 서서 하다가, 엎드려서 하다가, 다시 누워서 하다가, 옆으로 하다가.

    축 늘어진 몇 개의 콘돔도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그 밤, 우리 두 사람은 아름답지 않았다.

    이 행위는 원래 그의 말대로 아름답진 않으니.

    그럼에도, 우리 기억 속의 우리는 아름다웠고.

    그 밤의 모든 것 또한 아름다웠다.

    심지어,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고양이와 쥐 소리마저도…….

    당신과 나,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기 하루 전, D-1.

    아니, 지금은 새벽이니.

    D-0, D-DAY.

    ***

    [어떻게 우리 딸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나! 싸구려라니! 아무리 하 부사장 가족이라도, 이러면 나 진짜 서운해?]

    일요일, 이른 아침 시간부터 하태경에게 걸려온 현(現) 국무총리 정상철의 전화에 하태경은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총리님. 제 동생이 아직 철이 없어 그렇습니다.”

    [우리 딸이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아나? 내 귀한 외동 녀석이야! 지금 우리 딸 눈독 들이는 곳이 어디 동녘 그룹 하나인 줄 알아? 마음만 먹으면 동녘보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낼 수도 있어!]

    핸드폰을 귓가에서 슬며시 떨어트린 하태경이 그의 아내 홍서현이 내민 장어즙을 받아들었다.

    [어떻게 우리 딸 대우를 그따위로 할 수가 있냔 말이야!]

    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하태경이 다시 핸드폰을 귓가에 붙이며 점잖은 어투로 말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총리님. 정나경 양에게도 면목 없습니다.”

    [동생 교육 똑바로 시켜요, 하 부사장.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을 시엔 우리 얘긴 없던 것으로 합시다!]

    전화가 뚝 끊겼다.

    식탁 상판 위에 핸드폰을 탁, 내던진 하태경이 장어즙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왜 당신이 막내 도련님 혼사에까지 신경을 쓰세요?”

    장어즙을 모두 다 마신 하태경이 빈 잔을 식탁 위에 내려두곤, 저를 위해 마련된 신문을 손에 쥐며 아내의 질문에 대답했다.

    “신경을 써야죠. 그래도 아버지가 아끼시는 우리 막냇동생님이신데.”

    신문을 옆으로 쫙 펼친 하태경이 미소 지었다.

    “추락하기 전에 잡을 끈 하나 정도는 쥐여줘야죠. 그게 가족 아니겠어요.”

    그의 곁에 우아하게 앉아, 얼굴에 붙이고 있던 마스크 팩을 떼어낸 홍서현이 신문 위로 시선을 내리고 있는 하태경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당신 설마, 아버님 가시면 막내 도련님 내쫓으려는 심산이세요?”

    “그래서 살라고 쥐여주었잖아요. 일개 의원도 아닌 무려 총리의 끈을.”

    신문을 한 장 뒤로 넘긴 하태경이 웃음기 밴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나직이 덧붙인다.

    “그럼 잡아야지.”

    「대선까지 10개월, 정권 교체되나?」

    머리기사를 읽는 하태경의 입꼬리가 비스듬하게 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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