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59화 (59/116)
  • 59화. 대청마루 위에서의 XX

    [ ※ 추천곡 : 유주 – 호랑수월가 ]

    요원은 무경의 집 앞에서 서성이며 인적이 뜸한 새벽의 저 어두운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고, 마을 잔치는 끝이 난 지 오래였으며, 마을 어르신들 모두가 잠자리에 든 깊은 시각이었다.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먼저 자요. 우리는 아침 일찍 봅시다.

    자정 즈음에 무경에게서 그런 메시지를 받았고 요원 또한 집으로 들어와 씻고 로션을 바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아무리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는 거다.

    뒤척거리다가 까만 허공을 응시했다.

    ‘채 순경은 내가 보고 싶어요?’

    남자의 음성이 듣기 좋은 운율처럼 계속해서 귓전을 머무른다.

    ‘나는 채 순경을 좋아해.’

    자꾸만 심장이 울렁거리는데 이런 걸 가슴이 벅차다고 해야 할지.

    한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던 요원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집 밖을 뛰어나왔다.

    그리고 지금, 망부석처럼 이곳에 서서 남자를 기다리는 중이고.

    제대로 말리지 않아 축축했던 머리칼은 바람에 모두 말라 좋은 꽃향기만이 은은하게 남았다.

    그렇게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어둠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곧은 걸음이.

    요원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임을.

    “하무경 씨?”

    요원의 부름에 상대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하무경 씨!”

    무의식중에 목소리가 커지자, 고요하고 적막한 마을 내에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하무경 씨.”

    금세 목소리를 낮춘 요원이 그를 향해 타타타탁, 달렸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제 나는 다 모르겠고.

    나는 그냥…… 나는 그냥 당신이 이 정도로 보고 싶었는걸.

    비포장도로를 조금 더 달리자 이제 남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셔츠 단추는 두어 개 정도 풀려있고, 슈트 재킷과 넥타이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피로에 젖은 남자의 모습이.

    “채 순경?”

    요원을 발견하고 살짝 눈매를 찡그리는 남자의 분위기 있는 얼굴이 가까이서 보인다.

    “늦으셨네요?”

    요원은 무경에게 더 다가가지 않고 일정 거리 벌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뒷말을 흐리며 미간을 슬며시 좁힌 무경이 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여태 안 자고 있어요. 자라니까.”

    고개를 들어 올린 무경을 바라보면서 요원은, 제 치맛자락을 괜스레 한번 움켜잡았다.

    “잘 수가 없었어요.”

    “왜. 설레서?”

    남자가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네. 너무요.”

    뜻밖의 진솔한 대답에 무경이 잠시 놀란 눈을 크게 떴다. 피로한 목덜미를 문지르는 손 또한 멈췄다.

    흠, 괜히 부끄러워져 요원이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떻게 오셨어요? 기차?”

    “아니.”

    무경이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기차를 놓쳤어요. 그래서 내가 운전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하필 또 내가 술을 마셨더라고.”

    태호나 방 기사에게 부탁하기도 미안해서 그러지를 못하고.

    “그래서 뭐 어떡해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서울에서부터 택시 타고 왔지.”

    웃돈까지 얹어 아주 거금을 주고.

    “택시를요? 택시비 많이 나왔을 텐데요.”

    “많이 나왔어요.”

    “그럼 내일 아침에 오시지 왜 굳이 오늘, 택시비까지 낭비하면서.”

    “보고 싶다면서.”

    찌르르르. 찌르르르. 찌르르르.

    잠들지 않은 풀벌레 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 위에 화음을 얹는다.

    “그래서 왔어. 내 얼굴 보여주려고.”

    사방이 꽃내음으로 진동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무경 씨. 보시다시피…….”

    요원이 그에게 다시 한 발 두 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잔치는 진작 끝났어요.”

    “알아요.”

    “그래도 하무경 씨 밥은 있어요. 하무경 씨 주라고 어르신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셨거든요.”

    “감사하네.”

    “지금 드실래요?”

    “다른 거로 줘요.”

    “다른 거요?”

    요원이 되물으며 그 자리에 다시 멈춰 섰다.

    무경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 좁혀든 상태였다.

    “응. 다른 거로 줘.”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깐 무경이 요원을 지그시 바라보며 읊조렸다.

    “더 맛있는 거.”

    “그거 설마…… 저예요?”

    “맞아요. 맛있잖아요? 채 순경.”

    무경이 농염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아. 채 순경은 모르나? 근데 난 알거든요. 먹어봐서.”

    코끝을 찡그리며 웃는 남자의 얼굴이 장난기 가득한 십 대의 소년처럼 보였다.

    쿵쾅쿵쾅.

    내 심장이 아무래도 고장 난 것 같아. 고장을 넘어서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저런 음담패설에도 설렘을 느끼는 것을 보니.

    “하무경 씨.”

    “네.”

    “하무경 씨.”

    “네.”

    “하무경 씨.”

    “응.”

    그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던 요원이 그의 품으로 단걸음에 달려가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

    갑작스럽게 자신을 덮쳐온 여자의 무게에 무경이 눈을 크게 뜨며 뒤로 한발 물러나는 것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하무경 씨…….”

    요원이 고개를 뒤로 젖혀 놀란 얼굴의 무경을 가만 올려다봤다.

    “얼굴 보니 너무 좋아요.”

    그러고는 새하얗게 웃었다.

    “…….”

    그런 요원을 내려다보는 무경은 눈앞의 여자를 잠시 황홀한 듯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그녀의 얼굴 위에서 새하얀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있잖아요, 채 순경.”

    피로에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요원을 부른다.

    “나 어떡하지.”

    그의 큼직한 손이 천천히 올라와 요원의 뺨을 붙잡았고.

    “너 때문에 정말 죽어버릴 것 같은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다가온 무경이 요원의 입술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

    이러한 모습을 멀찌감치에서부터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상심한 눈빛의 도현이었다.

    ***

    쿵. 쿵. 쿵.

    입술을 진득하게 맞물린 두 사람의 몸이 여기저기 부딪힌다.

    무경의 시골집 철제문에 부딪히고, 담벼락에 부딪히고, 뒷걸음질 치다가 마당에서 굴러다니는 바가지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하고.

    요원은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그렇게 무경의 목덜미에 제 두 팔을 두른 채로 남자에게 키스했다.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쿠당.

    두 사람이 대청마루 위에 무너지듯, 도미노처럼 함께 쓰러졌다.

    요원의 뒤통수를 보호하듯 큼직한 손으로 받친 무경은 간신히 쥐고 있던 슈트 재킷과 넥타이를 거칠게 집어 던지면서, 다시 요원의 얼굴을 끌어올려 입술을 맞물렸다.

    두 사람의 혀가 정신없이 얽히고설킨다.

    무경은 그녀에게 계속 키스하며 요원의 손을 잡아 밑으로 끌어내려 제 벨트 버클을 붙잡게 했다.

    풀라는 무언의 신호를 알아차린 요원이 그와의 키스에 열중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벨트 버클이 철컹, 열렸다.

    쪼옥. 츕.

    무경이 요원의 입안에 혀를 깊숙이 밀어 넣으면서 그녀가 입고 있는 흰 티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흡.”

    갑작스러운 남자의 뜨거운 손길에 요원이 허리를 비틀었다.

    잘록한 허리를 훑듯이 스쳐 올라가는 그의 손가락이 요원의 등 뒤로 옮겨가 브래지어 후크를 능숙하게 풀었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여자의 몸을 쓸며 앞으로 넘어온 그의 손이 풍만한 요원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가 검지 끝으로 가슴의 열매를 지분거린다.

    “음…….”

    요원이 작게 신음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 그의 슈트 바지 안쪽에 작은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똑같이 무경의 단단해진 것을 부드럽게 움켜쥔다.

    아, 씨발.

    위아래로 움직이는 여자의 음란한 손짓에, 하마터면 무경의 잇새로 욕설이 육성으로 터질 뻔했다.

    “지금, 하, 뭐 하니?”

    무경이 찡그리며 숨을 조금 크게 뱉었다.

    뒷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고 온몸이 저릿한 기분을 받았다.

    “하무경 씨는, 하, 이런 거 좋아하지 않으세요?”

    요원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로 계속해서 손을 야릇하게 움직였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달빛에 일렁이는 듯하고, 퓨즈가 나가버린 전구처럼 암전인 머릿속은 새카맣기만 하다.

    그래. 이래서 사람이 존나 복상사를 하는 거야.

    이해 못 하던 그 ‘복상사’가 단숨에 이해되면서 무경은 흥미로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좋아하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뗀 무경이 요원을 보며 매력적으로 웃었다.

    “그런데 나는 넣는 쪽을 더 선호해서.”

    인내가 바닥인 남자가 요원이 입고 있는 밴딩형 긴 치마를 위로 확 걷어 젖혔다. 그 성난 손짓에 요원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하려고요? 여기서요?”

    질겁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여자는 왜 이리도 사랑스러운가. 채 순경은 뭐가 이리도 예쁠까.

    “싫어요?”

    야릇이 얼굴을 찌푸린 무경이 훤히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다리를 음미하듯 쳐다보며 제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핥았다.

    “좋지 않아요? 대청마루 위에서의 섹스.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물소리도 들리고 꽤나 로맨틱한 것 같은데.”

    “대청마루 위에서의 섹스요? 이상한 영화 제목 같은데요.”

    “원래 이 행위 자체가 이상한 거야.”

    무경이 웃으며 제 바지와 드로즈 사이에 손가락을 끼울 때였다.

    “참고로 저는, 씻고 왔어요.”

    청결에 집착하는 요원의 그 한마디가.

    아, 이런.

    한 마리의 짐승처럼 폭주하기 직전의 무경을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