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五장. 황궁의 밤 (6/7)

五장. 황궁의 밤

“황후는 어디에 있느냐?”

모란궁이 비어 있는 것을 본 욱연이 황후를 섬기는 상궁 기령을 쳐다봤다.

연우가 황후로 책봉 받으며 모란궁의 상궁이 된 기령이 공손히 뜰을 가리켰다.

“마마께서는 지금 뜰에 계십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어찌해서?”

“왕자 아기씨께서 도통 주무시지 않아 지금 뜰에서 왕자 아기씨와 거닐고 있사옵니다.”

“유모 상궁에게 맡길 것이지.”

그 말을 던진 욱연이 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물론 뒤따라오는 환관과 나인들을 전부 물러나라 한 직후였다.

항상 황제의 뒤를 따르는 늙은 태감과 그에게서 장차 태감이 될 훈육을 받고 있는 연우의 오라비 형우도 이번에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황제가 태어날 때부터 그를 보살폈던 늙은 태감은 이제 눈치가 여우 수준이라 지금 황제가 황후와 단둘이 있기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을 방해하면 그건 충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형우에게 귓속말로 가르쳐 줬다.

저벅저벅 걸어서 뜰에 발을 들인 욱연의 눈에 아기를 감싼 강보를 안고 어르고 있는 연우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바로 곁에 젖 유모가 서 있는데도 연우는 굳이 제 품에 아기를 안고 어르는 중이었다.

다가서는 욱연을 알아차린 젖 유모가 얼른 허리를 숙였다.

“폐하.”

연우가 뒤돌아 앉으며 욱연을 향해 생긋 웃었다.

어찌 이리 고운지 알 수가 없다.

처음 봤을 때부터 연우는 고왔다.

연우를 처음 봤을 때, 욱연은 그녀가 마치 가지마다 망울져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연한 봄 꽃눈처럼 곱다고 생각했었다.

막 피어나기 직전의 꽃눈이었다.

손으로 만지기도 두려울 정도로 약하고 고운, 그런 소녀였었다.

아마 그때부터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 봄바람이 불 때, 이미 자신은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 입에 잘 대지 않는 한밤중의 간식을 굳이 찾은 것도 그날 제 처소의 당번이 그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핑계로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간식이라는 조금은 유치한 핑곗거리를 찾아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쉽게 마음을 꺼내 보일 수는 없었다.

아직 태자비도 들이기 전에 태자가 궁녀를 건드렸다는 소문이 돌면 그녀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어렸다.

피어나는 꽃처럼 고왔지만 아직은 피지 못한 꽃이었다.

욱연은 그 어리고 여린 꽃을 꺾을 만큼 파렴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은 명확했다.

열여덟의 소년의 마음에 그 소녀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첫사랑이었다.

그래서 황제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자 했다.

태자의 신분으로는 신분이 낮은 그녀를 태자비로 맞이할 수 없지만, 황제가 되면 달라질 것을 알았다.

적어도 황후는 삼지 못해도 후궁으로 삼아 황후처럼 대할 수는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황위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생각지 않았던 사건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다.

‘고운 아이가 있구나.’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부황이 던진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의 원흉이었다.

‘네 처소에 저리 고운 꽃이 있었어.’

부황의 후원에는 이미 백여 명이 넘는 후궁이 있었다.

세간에서 백성들이 ‘황제의 후궁은 천명’이라는 노래가 떠돌 정도로 부왕은 색탐이 강했다.

눈에 드는 나인들은 전부 침전으로 끌어들였고, 하룻밤 승은을 내린 다음에는 후궁으로 삼고 그 뒤에는 다시 찾아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부왕의 후원에 있는 후궁들은 전부 하룻밤 승은 후궁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그런 부왕의 눈에 들었다는 건 곧 부왕의 승은을 입게 된다는 뜻이었다.

칠순의 부왕과 아직 열다섯 살도 되지 않은 그 작은 소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떠나, 그녀가 그렇게 짓밟히고 죽을 때까지 후원에서 시들어 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저 아이를 내 침전에 들여야겠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자신은 황제가 아니었다.

황제의 말 한마디면 언제라도 폐위당할 수 있는 태자의 신분이었다.

‘고운 꽃은 꺾는 맛이 있지. 어릴수록 말이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열여덟 살이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혈기가 왕성했었고 다른 방법을 찾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를 부왕의 침전에 들지 못하게 하자는 것뿐이었다.

그때 곁에 있었던 것이 화로였다.

시뻘건 숯불이 타오르던 화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뜨거운 것도 모르고 맨손으로 숯을 움켜쥐어 그녀를 향해 집어 던졌다.

‘아아악!’

그녀의 비명이 울렸고 다른 나인들이 혼절해 버린 그녀를 부축해서 데리고 나가는 것을 봤다.

가슴속이 죄책감으로 가득 차 미어터질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무슨 짓이냐?!’

‘저것이 감히 제 어마마마의 자리를 빼앗으려 드는데,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그냥 둔단 말입니까.’

그렇게 효심이 깊지도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는 효심 있는 척 모후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후궁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가 병으로 앓아누운 모후였다.

‘지금 어마마마께서는 병환을 앓고 계시는데 아바마마께서 저 아이에게 눈길을 주시니, 소자가 효를 지키기 위해 그리한 것입니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데 부황이라고 다짜고짜 화를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왕의 화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눈앞의 꽃을 제가 망가뜨렸는데 부왕이 화를 내는 건 당연했지만 우연찮게 그날 저녁, 모후의 병이 갑자기 위중해지는 바람에 부왕은 화를 낼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지 않아 모후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부왕은 그 일을 아주 덮어 버렸다.

부왕은 이내 다른 나인들에게 눈길을 주고 모후의 상중에도 나인들을 처소로 끌어들여 승은을 내렸다.

욱연은 부왕의 심중에서 연우가 아주 사라진 것을 알고 안심했지만, 그와 동시에 매일 후회했다.

자신의 행동이 부왕에게서 연우를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기고 만 것이다.

그녀가 얼굴의 상처 때문에 세답방으로 배정받았다는 태감의 보고에 절망했고, 그녀의 얼굴에 생긴 흉을 지울 수 없다는 어의의 말에 또 절망했다.

무엇으로도 그것을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도울 수는 없지만, 계속 지켜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우가 모르게 계속 그녀를 돌봐주라고 태감에게 명을 내렸었다.

어쩔 수 없었다.

보는 눈은 많았고, 자신은 황제가 아니었다.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부왕이 죽었다.

부왕이 죽고 황위에 오르며 욱연은 제일 먼저 군사력부터 장악했다.

황궁에 있던 선왕의 수많은 후궁들을 출궁시키고 후궁 소생의 왕자들을 변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황권을 강력하게 세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대신들이 황후를 책봉해야 한다고 할 때도 묵묵히 침묵했다.

강한 권력이 필요했다.

무소불위의 권력.

평민 출신의 나인을 황후로 삼는다 해도 누구 하나 감히 불만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황권이 필요했다.

폭군 소리를 들어가며, 귀를 막은 황제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제멋대로에 사나운 황제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군사력을 장악했고 조정의 대신들을 장악했다.

그리고 남은 것이 우태사였다.

우태사는 항상 자신의 딸을 황후로 삼고 싶어 했다.

우태사를 처리하지 않으면 연우를 황후로 삼을 수도 없고, 황후로 삼는다 하더라도 우태사의 쪽에 선 귀족들의 반발이 막강할 것이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우회책으로 가려 했었다.

우태사가 황제의 장인이라는 명예를 원한다면 그의 딸을 황후로 삼아 주는 대신 연우를 후궁으로 들이자는 우회책을 생각해 냈었다.

연우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황후 간택령을 내렸고, 예정된 대로 우태사의 딸을 황후로 간택했다.

그런데 이변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황후로 간택된 우태사의 딸이 홍역에 걸렸다고 합니다.’

우태사의 주변에 심어 놓은 간자가 그런 보고를 해 왔지만, 우태사의 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책봉식에 나타났다.

홍역을 앓고 있다는 여인이 말이다.

‘쌍둥이 동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황후가 되었어야 할 연홍의 쌍둥이 동생 진홍.

우태사가 다른 사내와 정혼한 이력이 있고 아이까지 유산한 둘째 딸을 연홍인 것처럼 꾸며 입궁시킨 것을 알았을 때, 욱연은 이게 하늘이 제게 주신 기회라는 걸 알았다.

연홍은 홍역을 앓던 중에 죽었고, 연홍의 이름으로 입궁한 진홍은 초야를 미뤘다.

미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녀가 아닌데 어찌 초야를 치를까.

차일피일 초야를 미루던 진홍 쪽에서 초야를 치르겠다고 나왔을 때, 이미 욱연은 진홍의 행동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고 있었다.

진홍이 그녀의 대역으로 내세우려 하는 것이 연우라는 것도 미리 알았다.

하필이면 연우.

그 하고많은 이들 중에서 연우를 대역으로 내세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욱연의 심정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초야를 기다리고 기다려 왔었다.

애초에 연우가 아니면 누구와도 치르지 않을 초야였었다.

상대가 연우였기에 그 엉성한 연극에 속아 넘어가 주는 척했었다.

그녀가 연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고백했었다.

제 일생에 여인은 그녀 한 명뿐이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

자신은 연우에게 죄를 졌다.

그녀의 얼굴을 망쳤고, 그녀에게 상처를 줬다.

그녀의 마음과 상관없이 제 마음으로 그녀를 상처 줬다.

그건 아무리 후회해도 사라지지 않을 죄다.

제 손의 흉터는 그 죄의 흔적이다.

그 죄를 갚는 길은 일생 그녀를 웃게 하는 것밖에 없다.

그녀의 오라비인 환관 형우는 나이 많은 늙은 태감의 뒤를 이어 대전 태감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게 했다.

황후의 오라비이니 그 정도의 직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폐하, 오셨습니까.”

“왜 유모에게 맡기지 않고.”

하늘이 도와 연우를 후궁이 아닌 황후로 만들 수 있었다.

우태사가 그런 죄를 지었고 진홍이 저를 능멸하는 그런 짓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연우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어도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폭군 중의 폭군이라는 말을 들어서라도 기어이 연우를 황후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여인을 위해서라면 폭군 따위는 얼마든지 되어 줄 수 있다.

“이제 거의 잠들었습니다.”

연우가 강보에 싸인 아기를 욱연에게 보여 줬다.

연우를 닮은 아기는 가물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거의 잠들어 가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그냥 유모에게 맡기거라.”

“하지만…….”

“내가 서운해서 그렇다. 아기만 보고 나는 봐 주지 않고.”

“폐하.”

“오늘도 아이에게 젖을 물렸느냐?”

“네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말라니까. 젖을 물리라고 유모를 두었는데, 어찌 네가 젖을 물려.”

욱연이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유모 상궁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유모가 얼른 연우의 품에서 아기를 안아 들었다.

“데려가서 재우거라.”

“네, 폐하.”

아기를 품에 안은 유모가 재빠르게 걸음을 옮겨 사라지자 뜰에는 연우와 욱연 단둘만 남았다.

“이제 나를 재워야 할 거다.”

“폐하…….”

“아이는 재우면서 왜 나는 재워 주지 않는 것이냐?”

“폐하, 심술을 부리지 마시어요.”

“왜? 나는 죄인이라 심술도 부리지 못하는 것이냐?”

“폐하,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시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 제대로 해 볼 수가 없구나. 아이가 울어서 못 한다, 아이가 칭얼거려서 못 한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

“아직 어린 걸요, 왕자가…….”

“왕자가 자라기를 기다리다가는 내가 늙어서 못하지 않을까.”

“폐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참을성이 없어서.”

욱연이 연우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폐하, 여기는 뜰이에요…….”

“누가 감히 황후의 뜰을 엿보겠느냐.”

욱연이 품에서 꺼낸 너울을 연우의 머리 위에 씌웠다.

“폐하, 이건…….”

“너울이다.”

“압니다. 그런데 어째서…….”

“얼굴을 가리면, 네가 더 흥분하니까.”

“폐하……”

연우의 귀가 확 달아올랐다.

욱연의 말은 사실이다.

너울로 얼굴을 가리면 연우는 다른 때보다 더 흥분한다.

아마 대리 승은을 입을 때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불을 켜고 너울을 쓰고 황제와 교접을 할 때면, 연우는 다른 때보다 몇 배나 더 흥분하고 만다.

“폐하, 손이…….”

욱연의 손이 연우의 치마 안으로 파고들었다.

속곳 위를 꾹꾹 누르는 손끝에 속곳이 눅진거리며 젖어 들기 시작했다.

“폐, 하, 읏…….”

연우가 숨을 헐떡였다.

너울에 부딪힌 숨이 제 얼굴에 흩어졌다.

“왜? 좋아서?”

너울 위로 욱연이 입을 맞춰 왔다.

너울을 사이에 두고 연우와 욱연의 입술이 겹쳐졌다.

너울이 가로막아 혀가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를 간절히 더듬었다.

숨결로 너울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풀어헤친 저고리 사이로 연우의 젖가슴이 불룩 드러났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느라 풍만하게 부푼 젖가슴을 손으로 주무르던 욱연이 그녀의 젖가슴을 삼켰다.

“하윽……!”

제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은 욱연의 머리를 연우가 감싸 안았다.

“하응……. 폐하, 하아읏…….”

아이가 빠는 힘과는 전혀 다르게 제 유두를 빨아 대는 사내의 입술에 연우가 숨을 헐떡였다.

벌써 젖이 가득 차서 팽팽하게 부푼 젖가슴에서 젖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내는 아이에게 빼앗기기 싫은 듯 그녀의 젖가슴에서 젖을 빨았다.

쯔읍쯔읍. 사내가 제 젖을 빠는 소리에 연우의 뒷덜미가 화끈 달아올랐다.

사내는 젖을 빨았지만,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는 젖과 다른 것이 주룩주룩 새어 나왔다.

“폐, 폐하……, 젖만 빨지 마시고…….”

“그러면 또 무엇을 빨아 주랴?”

입술에 말간 젖을 묻힌 채로 욱연이 짓궂게 얼굴을 들었다.

욱연은 무척이나 짓궂어서 연우가 곤란해하거나 난처해하면 더 집요하게 굴었다.

물론 연우도 그런 욱연이 싫지는 않았다.

“아래에도 흐르는 것이 있어서…….”

“그쪽에도 젖이 흐르는가 보구나.”

“그것이 아니오라…….”

참 짓궂은 사내가 아닐 수 없다.

“흐르는 것은 빨아 줘야지.”

“아앗……!”

연우의 몸이 긴 의자 위로 풀썩 넘어갔다.

그런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린 욱연이 벌린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그 은밀한 샘에서 흐르는 것을 혀끝으로 받아 냈다.

“하응! 아! 아아아!”

욱연의 혀가 제 안으로 찔러 들어올 때마다 연우가 허리를 휘어 가며 소리를 질렀다.

이 사내는 항상 제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제 그 말을 하지 않을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저만 보면 미안하다고 한다.

연우는 이제 이 사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안다.

그 마음도 안다.

그래서 이 사내를 탓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저만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 이 사내도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저만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라, 이 사내도 힘들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내가 그 시간 동안 저를 기다려 준 것으로 이미 원망의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았다.

이 사내의 다정함을, 그 이전의 다정함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 겨울밤 간식을 건네주던 열여덞 살 소년 태자의 다정한 손길과 눈길을 기억하고 있어서 이제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스러워서 어쩔 수가 없다.

이 사내는 제가 사랑스럽고, 저는 이 사내가 사랑스럽다.

그렇게 한 방향으로 함께 가는 마음인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아아!”

제 위로 체중을 실어 오는 욱연의 목에 팔을 걸며 연우가 뜨겁게 신음했다.

어느새 걷힌 너울이 머리 위로 올라가 나풀거렸다.

제 얼굴을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웃는 사내를 향해 웃어 보이며 연우가 눈을 감았다.

귓전에 사내의 뜨거운 숨소리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의 소리도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황궁의 밤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