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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부부-38화 (38/63)
  • 38 화

    욕조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던 수빈이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예준이 들어오겠다는 말에, 집 나가려던 정신이 빠르게 돌아온 것이다.

    “야! 안돼! 안……r

    철컥.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열려버린 문

    빛의 속도로 문을 따고 들어온 예준과 눈이 마주친 수빈은 그대로 굳어버 리고 말았다.

    “고개좀 들어봐.”

    예준은 재빨리 그녀의 얼굴을 들어 안색을

    살폈다.

    욕조의 물은 이미 다 식어버렸는데,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그냥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너, 진짜 이럴래? 어딜 들어오는 거야…….” 아무리 내가 여자로 안 보여도 그렇지.

    그녀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웅얼거렸지만, 예준은 그녀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이마를 한 번 짚고는 곧장 수납장에서 커다란 타월과 가운을 꺼내들었다.

    “일어날수 있겠어?”

    “……쪽팔려서 못 일어나겠어.”

    기어이 그녀의 커다란눈에서 눈물방울이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사실은 넘어지면서 부딪친 엉덩이가 너무너무 아팠다.

    골반 나간 건 아니겠지?

    수빈의 상태를 파악한 예준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야..!”

    다 죽어가던 수빈이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아무리 거품에 몸이 다 가려져 있다고 해도 알몸인데, 일으켜서 뭐 어쩔 건데?

    온몸에 힘을 주고 욕조를 벗어나지 않게 위해 버텼지만, 예준은 냉철했다.

    “그럼 그냥 둬?”

    “너 뭔가 잎었나본데, 나 지금 목욕 중이거든? 알몸이라고!”

    “너야말로 잎었나본데, 너 지금 환자야.”

    “아무리 그래도……

    “시체 치우게 만들지 말고 얼른 일어나.”

    촤악

    “아악!”

    엄청난 힘에 몸이 빨려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준은 그녀의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타월로 그녀의 몸을 친친 감고 앞뒤로 완벽히 가려주었다.

    “아무것도 못 봤어, 나.”

    정신을 놓기 직전까지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수빈을 안심시키며, 예준은 그녀를 조심히 안아들었다.

    공주님이 라기 보단 강보에 싸인 신생아가 된 기분이었다.

    흐윽, 흑…… 옷은 갈아입히지 마. 내 알몸 훔쳐보면 죽어.”

    아프니 서럽고, 제 몸뚱이 하나 못 가누고 있다는 슬픔에 수빈이 기어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보라고 해도 안 보上 나도 내 눈 소중한 것 정도는 아니까.”

    “……나쁜 놈.”

    그렇게까지 말할 건 또 뭐야

    슬픔이 배가됐다.

    예준은 그런 그녀를 안고 수빈의 방으로 향했다.

    해열제를 착아 먹이고, 젖은 머리도 대충 드라이기로 말려 눕혔다.

    그래도 대꾸는 다 하기에,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아, 아까 부딪힌 곳 너무 아파.” 엄마. 너무 아파, 너무아파……. 열에 달떠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예준은 약 효과가 얼른 나타나기를 바라며 , 진전이 없으면 곧장 응급실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체온계를 가져와 열을 재보니 37E. 다행히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그런데 이번엔 오한 때문에 끙끙 앓기 시작한다.

    “추워……:

    기껏 열 떨어트려놨더니, 이게 뭔가.

    예준은 지끈거리는 편두를 짚었다.

    죽어도 젖은 수건을 못 벗기게 해서 젖은 채로 그냥 두었더니, 싸늘하게 식은 몸이 젖은

    수건 때문에 더욱 급속도로 식기 시작한 것이다.

    “속옷어디 있어.”

    “됐으니까 그냥나가.”

    “고집부리지 말고 말해.”

    수빈은 그의 말마따나 부끄러움 챙기다가 다신 못 깨어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엄습했다.

    그녀는 못이기는 척 손가락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서랍장 맨아래 칸.”

    예준은 수빈이 알려준 수납장에서 속옷 한 벌과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얇은 원피스를 가져다주었다.

    그가 가져다준 화려한 호피무늬 브래지어가 시선을 어지럽혔다.

    ……이 와중에도 취향 참 확고하다. 제일 안쪽에 넣어둔 건데.

    예준을 슬쩍 올려다 본 수빈이 민망한 듯 이불 안에 속옷을 감추며 말했다.

    “내가 혼자 입을게.”

    “정 아프면 버티지 말고 말해. 병원 가게.”

    “……알았어.”

    그렇게 예준은 그녀의 방을 떠났다.

    아닌 밤중에 이게 뭔 날벼락인지.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침대에 누웠다.

    “후우,,

    그런데 수빈의 상태가 영 신경 쓰여 잠이 오질 않았다.

    예준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5분에 한 번씩 그녀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냥 응급실을 가자. 가서 주사도

    맞고……

    “됐어!”

    더럭 겁이 난 수빈이 예준의 말을 잘랐다.

    “뭐야. 주사가 무서운 거야, 설마?”

    “아니거든 그런 거?”

    뜨끔한 수빈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어필하려 열심히 눈을 부릅떴다.

    “열도 다 떨어졌고, 아픈 곳도 없어. 그냥 잘래.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 같아.”

    “하여간, 고집은.”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자.”

    “필요하면 불러, 그럼.”

    예준도 더 이상 그녀를 회유하길 포기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의 새끼손가락을 덥석 쥔 그녀가 가자미눈을 떴다.

    “가란다고 바로 가냐?”

    “뭐 어떡하라고, 그럼.”

    어이가 없어 되묻는 예준의 말에 수빈은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5분 만 있다가 가.”

    “아프니까 서럽단 말이야.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야지, 왜 나한테

    고집을 부려?”

    매몰찬 그의 대꾸에 수빈이 스르륵 손가락을 놔주었다.

    “칫

    그러고는 등을 돌린 채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는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하필 이럴 때 곁에 있는 놈 인정머리가 저 모양이니 북받치는 서러움을 어디 호소할 곳도 없다.

    아. 엄마 보고싶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참이 지 났는데도 나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

    예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수빈의 불쌍한 뒤통수를 노려보는 중이 었다.

    ……내 팔자야.

    결국 침대 곁에 자리를 잡고 앉은 예준이 낮은 한숨을 흘리며 말했다.

    “5분 만이야.”

    오예!

    수빈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려 웃다가 다시 뒤를 돌아 차게 식은 손을 내밀었다.

    “손잡아줘.”

    “미쳤냐?”

    “안아달라고 할 순 없잖아.”

    “까불지 또.”

    “추워서 그래, 추워서. 아니면 핫팩이라도

    가져다줘.”

    비몽사몽 웅얼거리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예준이 못이긴 척 손을 내주었다.

    “'여자당' 미션 대신이야.”

    “알았어, 고마워 여보.”

    “미션 한 거야, 미션!”

    환자 주제에 할 건 다 한다던 차가운

    타박과는 달리 그가 가진 체온은 더없이 따듯하기 만 했다. 극과 극이 었던 두 사람의

    체온이 뒤엉켜 적당히 기분 좋은 온도를 만들어냈다.

    잠이 든 건지, 아닌 건지 수빈은 가끔 어깨를 떨며 코를 훌쩍였다.

    아직도 춥나?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려고 상체를 들어 고개를 내리던 순간이었다.

    “어어!”

    수빈이 팔을 뻗어 예준의 목을 감았다

    중심을 잃은 예준의 상체는 수빈에게 그대로 끌려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야, 너 뭐하는 짓……

    한 대 쥐어박으려는데, 물기 젖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엄마’‘

    “보고싶다……

    울음소리와 함께 어린애 같은 칭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추워……:

    춥다고 중얼거 리는 그녀의 몸은 자꾸만 차게 식어갔다.

    가자는 병원은 곧 죽어도 안 간다고 고집이고.

    예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신수빈.,,

    “자?”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봤지만, 미동도 없는 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위에서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예준은 한참을 고민하며 마른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이불을 들추고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한쪽 손으로 제 머 리를 짚은 채 수빈의 상태를 살피던 예준은 그녀를 끌어안아 자신의 품에 묻었다.

    “너 환자라서 돌봐주는 것뿐이야. 깨어나서 뭐라고 하면, 너야말로 은혜도 모르는 인간이야.”

    ,,알았어?,,

    혼잣말 같은 물음이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열띤 그의 체온을 찾아 본능적으로 품을 파고드는 수빈의 작은 몸짓만이 대답을 대신할뿐이었다.

    끙끙 앓던 수빈의 거친 숨소리도 어느덧 잦아들고, 꾸벅꾸벅 졸던 예준도 점점 무거워지던 눈꺼풀을 조용히 내렸다.

    하늘에 떠 있는 별도, 달도 고요한 새벽.

    두 사람은 사이좋게 서로를 끌어안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수빈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O _O_ ”

    ..—■己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몽롱한 정신을 다잡던 순간.

    그녀는 자신이 딱딱하고 따듯한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뭐지, 이게……?

    코끝으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향기가 밀려든다.

    그러니까 이게, 늘 맡던 향기인 것처럼 익숙하긴 한데, 어쩐지 내 방에선 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위험한……?

    일순 수빈의 눈이 번쩍 뜨였다.

    '헉!'

    자신이 예준 품에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꽁꽁 언 것처럼 옴짝달싹도 못했다.

    스르륵.

    커다란 눈이 굴러 위를 향했다.

    히이익! 지예준이다! 지예준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는 마구 어젯밤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잘린 필름 같은 기억들이 너덜너덜 이어지기 시작했다.

    열에 달떠 앓는 소리를 냈던 것고1, 체온계를 쥐고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의 곁을 지키던 예준의 모습들이.

    '5분 만 있다가 가.’

    '아프니까 서럽단 말이야;

    '손잡아줘.'

    '엄마……흐어어어엉.’

    이불킥 백만 년을 예약해놓은 헛소리들이 또렷이 떠오르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내 이름은 수치심. 너의 시공간을 없애버리러 왔지.

    짧게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버둥거림에 예준도 슬쩍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 o 으  ” —....・

    '안 돼! 깨지 마!’

    지금 눈 마주치면 수치사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빈은 다시 눈을 꽉 감아버렸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예준도 잠이 깬 듯 팔을 들더 니 몸을 움직였다.

    “。99 百.

    그는 천천히 눈꺼풀을 올렸다가 다시 느리게 감는 행동을 반복했다.

    수빈은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계속 잠든 척했다.

    고개를 돌린 예준이 수빈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손을 뻗어 협탁에 놓인 체온계부터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쪽 팔을 여전히 수빈에게 내준 채로 그녀의 귀에 체온계를 꽂고 열 체크를 했다.

    “……36.5.”

    한쪽 눈을 감은 채 찡그린 눈으로 체온계 창에 뜬 숫자를 읽던 그의 입술 끝이 만족한 듯 희미하게 올라섰다.

    예준은 체온계를 제자리에 놓은 뒤 수빈이 베고 있는 자신의 팔을 천천히 빼냈다.

    밤새 끙끙 앓던 그녀가 혹시나 깰까 걱정스러웠는지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수빈의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는 걸 마지막으로, 조용히 그녀의 방을 빠져나갔다.

    “파하!”

    방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수빈은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눈을 떴다.

    쿵덕쿵덕 뛰어대는 심장이 요란하게 펌프질을 해댔다.

    마치, 제가 살아있다는 걸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 태세로.

    “……이게 무슨일이야.”

    두근두근 울려대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손바닥 사이에 제 얼굴을 묻어버렸다.

    긴긴밤의 어둠이 물러간 이른 새벽.

    희미한 빛을 머금은 아침이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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