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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307화 (307/488)
  • 307화

    “어떻게든 몸을 회복해서 내일 떠날 거야.”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여기선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니, 차라리 르네의 영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낫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에게 일러서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응. 고마워.”

    “폐하, 우선은 다른 생각 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복잡한 건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습니다.”

    노아의 다정하지만 든든한 말에 이엘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그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폐하.”

    “난 약하지 않아. 그 정도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어리지도 않고.”

    노아는 잡고 있던 문고리를 밀어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침대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조금 전보다 열이 내려간 이엘의 이마 위에 입술을 짧게 붙였다가 떨어졌다.

    “알고 있습니다, 엘.”

    “응.”

    “그렇게만 해 주십시오.”

    “…….”

    “말씀하셨잖아요. 테오, 트리시. 그 아이들을 만나고 싶으시다고요.”

    “그랬지.”

    “아이들을 위해, 살아 주세요. 버텨 주세요.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정말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으니. 노아는 그 말을 목구멍 뒤로 삼키며 그녀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 주었다. 그러면서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아 안 된다는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 발간 뺨 위에 입술 도장을 여러 번 찍으며 제 사랑을 표현했다.

    조금이라도 네가 외롭지 않도록. 한순간도 외로움을 느낄 수 없게, 내가 그 공간을 꽉꽉 채워 주리라는 다짐을 하며.

    *

    “폐하께선 괜찮으신 게 확실해?”

    “네. 보통 이맘때쯤 앓으시더라고요. 여독이 쌓여서 이번엔 좀 크게 앓으신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은 괜찮아지셨어요.”

    스완의 대답에 패티스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하듯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곤 손가락 새로 스완을 쳐다봤다. 처음으로 백조 놈이 쓸모 있었다. 그녀와 목숨이 연결된 탓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놈을 통해 이엘의 상태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드 님, 폐하와 합류하는 일정을 좀 앞당기시는 게 어떠십니까. 여긴 급한 일을 잘 마무리했으니까요.”

    “알겠어요, 백작. 그러면 내가 가서 폐하의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스완을 통해 폐하께 소식을 전해 주세요.”

    오드는 그 말을 끝으로 스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를 향해 다정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스완. 성력을 사용하는 걸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요.”

    “어떻게 안 무섭겠어요. 잘못 사용하면 또 저주를 받을 텐데.”

    “올바르게 사용하면 되는걸요.”

    “올바름의 기준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스완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더니 제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게끔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손바닥 위에 새하얀 빛이 모닥불 일렁거리듯 작게 피어올랐다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크기가 손바닥보다 더 커지기 직전에 스완은 재빨리 주먹을 쥐듯 손가락을 접어 성력을 꺼뜨렸다.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이러다 통제하지 못할까 봐 무서워요, 오드 님.”

    “시간이 충분했다면, 내가 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괜찮으니 서두르진 말아요. 천천히 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우선은…… 혼자 어떻게든 해 볼게요.”

    “그러지 말고 호르난 경에게 자문을 구하는 건 어떤가요?”

    “호르난 경이라면, 성전기사단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는 내게서 성력을 빌려 사용한 지 꽤 되었으니까요. 아마 성력을 사용하는 방법과 통제하는 방법 정도는 그대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의지를 다지는 스완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던 오드는 마지막으로 패티스와 피시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또 만나죠. 신의 가호가 제도와 그대들에게 임하길.”

    “신께서 함께하시길.”

    그렇게 오드는 제도를 떠났다. 그가 떠난 집무실엔 아주 잠깐 정적이 일었다가 패티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적막이 깨졌다.

    “패티, 어디 가?”

    “지하에.”

    “뱀의 영지에서 잡아 온 자를 만나러 가는 거야?”

    피시의 물음에 패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빠르게 집무실을 나갔다. 그는 지하 감옥에 있는 렉토스 리히만을 고문할 생각인 듯했다. 아마 패티스가 예정보다 빠르게 오드를 이엘이 있는 곳으로 보낸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오드가 있으면 고문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스완.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뭐가?”

    “렉토스라는 인간. 저렇게 고문한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게 더 있을까?”

    “글쎄. 일단 털어 보면 뭐든 나오지 않겠어?”

    퉁명스런 스완의 대답에 피시는 입을 꾹 다물고 소파에 앉았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로날드는 피시를 퍽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어쩐지 기죽어 보이네. 하여간 스완 저놈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니까, 쯧. 그렇게 생각하며 피시 곁으로 다가갔다.

    “백작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제법 다정한 로날드의 말에 피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로날드의 털을 쓰다듬었다.

    “고마워, 로니.”

    “뭐야? 둘이 친구라도 됐어?”

    옆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스완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검지로 피시와 로날드를 번갈아 가리키며 입을 쩍 벌렸다.

    “응. 왜? 안 돼?”

    “아니, 안 될 건 없지만…….”

    무구한 눈빛으로 저를 보는 피시 때문에 스완은 머쓱해진 건지,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 뭐…… 안 될 건 없지만, 그래도 우논이랑 테르가 친구가 된다는 게…….

    “너 질투해?”

    그때 불쑥 튀어나온 로날드의 한마디에 스완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뭐? 뭐를 해? 질투? 내가? 내가아?!”

    “응. 네가.”

    “참 나. 무슨 내가 질투를 한다고……. 황당하구만.”

    “맞잖아.”

    “…….”

    “나랑 피시가 친구가 된 게 질투 나는 거 아냐?”

    로날드가 히죽 웃었다. 아, 재밌다! 우리 영지에 있을 때 저놈이 우릴 얼마나 놀려 먹었는데. 이렇게 놀릴 거리를 찾게 되다니. 로날드는 웃음 터지려는 것을 억누르고 큼큼, 헛기침과 함께 눈을 가늘게 뜨며 스완을 쳐다봤다.

    한편 스완은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내가 왜 너희를 질투해?!”

    “그야, 너도 우리랑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

    “내, 내가? 내가 미쳤다고 테르랑 친구를 해? 육지 사는 우논이랑 친구를 한다고? 내가? 내가아?! 아니, 애초에 내가 육지에 사는 놈들이랑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해? 잔인한 종족이랑 내가 어떻게 친구를 하니?!”

    “싫으면 말고.”

    “…….”

    “피시. 쟤는 놔두고 우리는 밖에 나가자. 네발 달린 육지 종족끼리 나가서 뛰어 놀자!”

    참 나. 다리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스완이 황당한 낯으로 로날드를 빤히 쳐다봤다. 저 약아빠진 테르 놈. 그 옆에 앉아 있던 피시는 언제나처럼 어떤 저의도 없는 순수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우리는 나갈게. 쉬어, 스완.”

    “잠깐만!”

    “왜?”

    “…….”

    스완은 열었던 입을 꾹 다물었다. 일어선 피시의 뒤로 히죽거리는 늑대 놈 때문에. 저게……. 어느덧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백조는 입술을 꽉 깨물고 씩씩거리더니 피시를 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 나도 같이 가!”

    “우리랑 갈 거야? 친구 하기 싫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로날드가 신이 나서 대꾸했다. 이에 발끈한 스완이 제 명치 쪽을 주먹으로 두드리고는 크라바트를 잡아당겼다.

    “야! 넌 꼭 친구를 한다고 말해야 친구가 되는 거냐?”

    “그럼 아니야?”

    로날드가 고개를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렇게 되물었다. 그런 천연한 태도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스완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만 놀려, 로니.”

    “칫.”

    피시가 다정하게 로날드를 나무라곤 스완을 바라보며 제 손을 내밀었다.

    “가자, 스완.”

    “…….”

    “네가 육지에서 달리지 못하면, 우리가 너의 다리가 되어서 함께 달려 주면 되잖아.”

    육지 놈들은 전부 잔인해서 어울리기 싫었는데……. 솔직히 이 퍼석하게 메마른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건 전적으로 이엘 때문이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이곳에 올 일도 없었고, 설령 땅을 밟을 수 있다고 해도 금세 제 종족이 있는 호수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만큼 스완은 이곳에 큰 정이 없었다. 애초에 여기서 자신은 객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그녀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안 갈 거야?”

    “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해, 놀려서. 가자, 어서. 백작님 오시기 전에 나가야 돼. 백작님은 우리가 서로 어울려 노는 걸 싫어할걸.”

    “패티는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야.”

    “그거야 피시한테만 그런 거겠지. 난 하트 님보다 패티스 님이 더 무서워. 뭔가 다 꿰뚫어 보는 것 같단 말이야.”

    “음, 그건 동감이야. 하트보다 패티스가 더 무섭긴 하지.”

    피시가 장단을 맞춰 주며 웃자 로날드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하울링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로날드는 제 하울링에 저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가, 뒤에 있던 테이블에 몸이 걸려 우당탕탕 넘어졌다. 마치 한 편의 극을 보는 것처럼 피시와 로날드의 우스꽝스러운 대화에 스완의 고운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참 나, 진짜 격 떨어지는 육지 놈들……. 하지만 스완은 한숨을 내쉬며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둘을 지나쳐 먼저 집무실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뭐 해. 나가서 놀자며.”

    “같이 갈 거야?”

    “너희가 날 태워 준다면, 뭐……. 생각해 볼게.”

    스완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피시와 로날드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스완에게 달려들어 그를 끌고 가다시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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