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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60/89)

다른 남자와 결혼해

60화

“아니야! 말하지 마!”

품에 안긴 그녀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하지 마, 정담은.”

그녀의 목 안쪽에 얼굴을 묻으며 애원하듯 읊조렸다.

누군가 그녀의 남편이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화가 났다.

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남자가 대체 누구였는지 미친 듯이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죽어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가느다란 팔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분명한 건.”

대체 또 무슨 말로 사람 심장을 들쑤시려고 하는 걸까.

“내가 78년을 살면서 사랑한 남자는 민서후뿐이라는 거예요. 나한테 유일한 남자예요.”

유일한 남자라는 부분은 좋았다.

그런데……. 78년?

그녀를 안은 몸에 힘이 들어갔다.

“놀랄 거 없어요. 내가 지난 삶에서 쉰하나에 죽었다고 했죠? 난 지금 스물일곱이니까요. 그러니까 78년을 산 거죠.”

“그만!”

할머니 연세가 올해 여든셋이다.

그렇게 따지면 다섯 살 차이……?

왜 이렇게 끔찍한 상상을 하는 건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붕붕 내젓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요? 할미랑 이러고 있는 것 같아서 이상해요?”

정담은은 발칙하기 짝이 없는 말을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다는 걸 깜빡했다.

이 여자 입부터 막아야겠다.

아내의 말문이 막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그녀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긴 목 안쪽에 묻고 있던 입술을 옮겨 조잘거리는 붉은 입술을 냉큼 물었다.

말랑말랑한 입술에서 눈물 맛이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해 대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그녀를 저버릴 방법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매끄러운 입안을 훑고 들어가자, 혀가 부드럽게 맞닿았다.

세상에서 가장 식감이 좋은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아내의 입술을 택할 것이다.

작은 몸을 소중하게 안아 들었다.

침대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고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

검은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마주한 남자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담긴 눈빛이었다.

“고마워서요.”

그녀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지고 있었다.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서요.”

목을 꽉 끌어안으며 어깨에 옆머리를 기댄 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보였다.

치매 할머니를 위해서 하루는 큰오빠가 되었다가, 하루는 남편이 되었다가, 또다른 하루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하물며 할머니께도 그랬으니, 다소 정신 나간 소리를 해 대는 아내에게도 장단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녀를 살포시 침대 위에 눕혔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물었다.

“아니.”

고개를 내저으며 말랑말랑한 살갗 위에 입을 맞췄다.

“흐으.”

그녀가 달뜬 호흡을 내뱉으며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려 주었다.

가벼운 손짓 하나에 열기가 치솟았다.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어.”

작게 웃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이제 좀 솔직해 보여요.”

입을 맞추다 말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동그랗고 까만 눈, 무구한 얼굴로 그녀가 속삭였다.

“근데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내가 한 말은 전부……! 아아!”

소복하게 솟아오른 살갗을 집어삼키자, 그녀의 등허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알겠는데, 오늘은 그만.”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손에 감기는 감촉은 황홀했다.

“흐읏.”

달콤하게 앓는 소리를 들으며, 벗은 옷을 침대 아래로 던졌다.

“후우.”

한숨이 흘러나왔다.

손을 뻗어 협탁 서랍을 열었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필 이런 순간에 피임 도구가 다 떨어져 버렸다.

“그냥, 해요.”

조용히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서글픔이 묻어났다.

“정담은.”

나는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대고는 숨을 골랐다.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요.”

임신이나, 아이와 관련한 부분에서 그녀는 약해졌다.

이것도 그 이전 삶인지, 전생인지와 연관 있는 거야?

두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으면서도, 애석한 눈빛을 보이고 있는 아내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다 잊게 해 줄게.”

잠시라도 아내의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파고들었다.

가느다랗게 뜬 눈,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아, 서후 씨!”

내 이름을 울부짖는 그녀의 눈초리를 타고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눈가에 입을 맞추고, 눈물을 핥아 올렸다.

귓불을 혀로 할짝거리고, 목 안쪽에 입을 맞추며 충실하게 움직였다.

“흐으읏.”

작은 손이 내 얼굴을 감싸 올렸다.

애틋하게 달아오른 뺨에 입을 맞추자, 그녀의 손이 목덜미를 타고 미끄러졌다.

만약 신이 있다면, 아내와 나를 서로에게 꼭 맞는 존재로 창조한 모양이다.

그녀가 달뜬 숨을 헐떡거릴 때마다, 이 세상에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곁에서 기이한 세상을 무수히 보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사회적 통념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이 먼저였다.

그리고 부모의 부재로 인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배웠다.

내 삶의 모든 역사가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아내를 사랑했다.

“담은아.”

“으응.”

“사랑해.”

기막힌 순간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사랑한다.

“응, 나도……. 나도 사랑해요.”

신음 섞인 대답을 내뱉으며 그녀가 등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길에 따라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하아.”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녀가 얼른 고개를 들어 올려서 내 입술을 머금었다.

입안으로 매끄러운 혀가 밀려들어 왔다.

처음 맛보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핥고 빨았다.

“흐음.”

목울대는 울리는 거친 신음 소리에 내가 다 놀랄 정도였다.

오늘따라 제어가 되지 않았다.

입술을 붙인 상태에서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가 신혼인 거, 동네방네 소문내지 않아도 다 안다면서요?”

“그래.”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을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렇게라도 확인받고 싶다는 겁먹은 마음을 말이다.

그녀의 곁을 지켰던 다른 존재가 있었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 거였다.

정체 모를 남자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살갗에 입을 맞추고, 서로를 부둥켜안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매트리스와 마른 등 사이로 팔뚝을 밀어 넣었다.

격렬한 열기로 인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몸을 더욱 꽉 당겨 안았다.

“아으으.”

그녀가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숨결을 모조리 앗아 버리고 싶다는 충동마저 무섭게 일어났다.

이토록 누군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처음이었다.

이미 내 아내가 된 여자인데도.

“담은아.”

그녀의 이름을 경건한 기도인 듯 읊조렸다.

“으응, 서후 씨.”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그녀가 응답했다.

“뭘 해도 좋으니까.”

“으응”

“내 옆에 있어, 담은아.”

애처로운 부탁이었다.

“응, 서후 씨.”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안았다.

“서후 씨도 꼭 내 옆에 있어 줘. 오래오래.”

마치 내가 떠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가 매달리는 듯했다.

“응. 그럴게.”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황홀함에 젖은 아내의 모습은 무한히 아름다웠다.

“있잖아.”

몇 차례 서로를 보듬은 우리는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정체 모를 놈의 그림자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뜸을 들이자, 그녀가 귀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응, 뭐가 있어요?”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침대에서 마주 보고, 만지고, 입을 맞추고, 함께 잠든 놈이 있다고 생각하니……. 살의가 일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응?”

“이전 삶에서 그 남편 놈……. 여기에서도 살아 있어?”

“응, 그건 왜?”

그녀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죽여 버릴까 싶어서.”

풉, 하고 소리를 내며 웃음 지은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내 가슴에 턱을 괸 아내는 두 손으로 남편의 앞머리를 5:5로 갈랐다.

“뭐 하는 짓이지?”

“선비님이 자꾸 이렇게 거칠어지시면 곤란하오. 나 자꾸 반하잖아요.”

그녀의 말투에서 예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혹시 몇백 년을 살아왔다든가, 그런.”

“아니라니까요. 78년이라니까.”

이게 지금 무슨 대화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못 믿겠다면서……. 이전 삶의 내 남편은 질투하는 거예요? 그게 뭐야.”

뭐긴 뭐야, 그냥 정담은한테 미친놈이지.

나는 아내의 등허리를 팔뚝으로 감싸며 자세를 반전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흩어졌다.

“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뺨에 관능이 어린다.

“새삼스러운 질문은 하지 말고.”

입술을 머금으려는데, 그녀가 어깨를 밀어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 내일 아침 일찍 주간 임원 회의 있어요.”

“못 걸어 들어가면, 업어다 줄게.”

정담은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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