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샬로트의 웨딩마치-17화 (17/19)
  • 17.

    사라가 처음에 품었던 당혹감이 일단 사라지자 자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듯 아이들처

    럼 깔깔대며 툭 터놓고 얘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점점 초조해진 앨프가 아내를 데리러 오는 바람에 즉석 회의는 늦은 시간이 되기 전에 끝나고 말았다. 샬로트는 미소지으며 형부를 맞았고 그 미소는 그녀가 목사관의 입구에서 언니 부부를 배웅할 때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혼 생활이 잠자리에 관해 상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폭넓은 지식을 지니게 된 덕분이었다.

    "초조하니, 얘야?"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샬로트는 욕망 어린 생각에서 퍼뜩 깨어났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뇨, 아빠. 그냥 기쁠 뿐이에요"

    그녀의 대답은 진실이었다.

    "나도 그렇단다. 너와 백작님을 생각하니 말이다."

    아버지는 끄덕였다.

    샬로트는 아버지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 그 품에 안겼다.

    "아아. 아빠. 이런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베풀어 주신데 대해 감사드려요"

    "흠, 천만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난 한 게 없단다. 네가 저런 남편을 얻게 된 건 다 네 미모와 매력과 기지 덕이란다."

    샬로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빤 런던에서 시즌을 보낼 수 있는 자금과 기회를 제게 마련해 주셨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전 결코 위클리프 백작의 아내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얘야, 난 가끔은 필연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는단다. 시즌 데뷔와 상관없이 넌 어쨌든 백작 부인이 되었을 거야."

    샬로트는 아버지의 순수한 믿음을 대하자 목이 메였다.

    "아빠를 실망시켜 드리게 될까봐 정말 두려웠어요."

    그녀는 아버지의 따스한 품에 안겨 말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샬로트.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아버지는 딸을 놓아주더니 코에 비뚜름하게 안경을 걸친 채로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편감 없이 돌아왔다고 내가 네게 실망하다니 그럴 리가 있냐. 네 그 미모와 우아한 행동거지는 엄마를 쏙 빼 닮았는걸."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미소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넌 또 너만의 매력이 있단다. 그리고 난 그런 너를 사랑한단다. "

    "알아요, 아빠.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렸을 경우 전 저 자신에게 실망했을 거예요. 런던으로 떠날 때 전 남편감 찾는 일이 그저 재미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결혼이란 심각한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버기스 경이 청혼했을 때 승낙할 수 없었어요"

    "버기스? 버기스라. 왜 그 이름이 이렇게 낯설지 않은 거지?"

    아버지는 잠시 곱씹어 보더니 자신의 쇠약해진 기억력을 탓하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아, 뭐 차차 생각나겠지. 그런데 무슨 얘기 중이었지, 얘야?"

    샬로트는 대화 도중에 샛길로 빠지기 마련인 아버지의 평소습관을 보고 미소지었다.

    "전 엄마와 아빠처럼 행복해지고 싶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빠께서 원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린리 자작과도 결혼할 수 없었죠"

    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발짝 물러나더니 안경을 바로잡았다.

    "린리 자작?"

    "네. 아빠가 편지에 써 보내셨던 귀족 말이에요. 아빤 그 사람에게 절 시집보내겠다고 동의까지 하셨잖아요!"

    "그랬지."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층 더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어쨌든 전 그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었어요"

    샬로트는 되풀이해 말했다.

    "뭐라고?"

    아버지는 점점 불안이 커져가는 얼굴로 물었다

    "결혼식이 취소된 거냐?"

    "린리 자작과는 그래요. 하지만 전 위클리프 백작과 결혼하잖아요."

    아버지는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얘야, 미안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구나. 넌 위클리프 백작님과 결혼하지만 린리 자작은 아니라니."

    "당연하죠!"

    샬로트는 아버지의 둔감한 이해력 때문에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결혼식을 앞두고 피곤한 데다 신경이 곤두서서 이러시는 건가 싶었다. 목사는 다시 고개를 가로젓더니 흘러내리는 안경을 다시 한번 콧등 위로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분들은 모두 동일인이란다. 얘야."

    "그분들이 ‥‥‥‥"

    샬로트는 눈을 깜박이며 아버지의 말을 되풀이했다.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

    "나야말로 몹시 헷갈리는구나."

    그는 한숨을 쉬었다.

    "위클리프 백작님은 물론 편지에 린리 자작 얘기를 쓰셨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분에겐 작위가 여럿 있단다. 난 그래서 너희들 두 사람만이 아는 일종의 농담인가 보다 했지."

    아버지는 딸의 확증을 기다리듯 흘끗 일별을 주었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기색을 가장했다.

    "물론 여기 그분의 정식 이름이 있단다. 내일 예식 때 사용해야 하니 준비해 뒀지."

    아버지는 성경을 들어 펼친 다음 안경을 고쳐 썼다.

    "아, 그래, 여기로군. 맥시밀리언 앨리스테어 웬트워스 포테스큐, 위클리프 5대 백작, 린리 3대 자작, 해들링턴 남작."

    아버지는 뻐기는 기색이 완연한 채 고개를 들고 미소지었다.

    "내가 서류에서 찾아냈단다."

    "그 악당!"

    샬로트는 혼잣말로 속삭였다.

    "그 사람에게 그런 속임수를 짜낼 능력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자작님과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요."

    그녀는 방긋 웃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할 게다. 얘야. 시계를 보렴. 내일은 네 결혼식 날이니 조금이라도 자 둬야 할 게 아니냐."

    그는 상체를 숙여 딸의 볼에 입맞췄다.

    "물론이에요, 아빠."

    샬로트는 짓궂은 미소를 싹 지워 버리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가 이 자리에 있어서 동생의 표정을 보았더라면 분명 너무나 여러 번 보았던 장난의 전조라고 진단했을 터였다. 하지만 샬로트에게는 다행인 것이 사라는 가버리고 없었으며 그녀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귀여운 딸이 장난을 꾸미리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맥시밀리언은 잠 못 든 채 캐스털리 저택의 침실에 누워 화려한 꽃장식이 달린 침대 휘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결혼식 날에 대해 생각 중이었고 그런 생각은 잠을 불러오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실 정확히 말해 그는 첫날밤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객들의 입도마에 오르는 일없이 신부를 잽싸게 채올 수 있을지 심사숙고 중이었다. 런던 저택에서 호스킨스가 그가 저지를 뻔했던 일을 막아 주었던 그날 이래 맥시밀리언은 목사의 딸과 거리를 두었다. 그녀는 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의 절제심을 몰아낼 능력을 갖춘 존재인 듯했다. 아니, 이런 표현은 상당히 완곡하다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는 맨 처음 그를 남자로 완성시켰던 귀여운 객실 담당 하녀부터 시작해 지난번 정부였던 여자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성적 관계를 가졌던 모든 상대를 떠올려 보았다. 그 모두가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샬로트는 아주 색다른 거물이었다. 그녀와 있으면 그는 평소와 달리 참을성을 발휘하는 기술 따위는 깡그리 잊은 채 분노와 정욕에 불타는 한 마리 야수로 돌변했다.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고 다음 번에는 자제심을 발휘하겠다고 맹세해야 마땅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는 둘 사이에 타오르는 뜨거운 정열에 거리낌없이 몸을 맡길 기회를 고대했다. 그 이전까지는 그렇게까지 좋았던 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는 집사도 없을 것이다. 맥시밀리언은 미소지으며 이불 밑에서 거북한 듯 뒤척였다. 이번에는‥‥‥ 그녀의 순결을 차지할 것이다. 그녀를 향한 맹렬한 열망이 마침내 한 풀 꺾일 때까지 그녀의 몸을 차지하고 또 차지해야지. 그런 기분 좋은 생각에 잠겨 있던 맥시밀리언은 침실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인들이 이 시간에 돌아다닐 리는 없으니 침입자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는 자는 척하며 속눈썹 사이로 침실 입구를 훔쳐보았다. 파리한 달빛이 열린 창문으로 새어 들어와 카펫 위로 쏟아져 내리면서 문간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문이 사르르 열렸다. 헐렁한 옷차림에 테 없는 모자를 눌러쓴 젊은이 한 사람이 들어서자 맥시밀리언은 바짝 긴장했다.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그에게는 손닿는 곳에 무기 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아마 젊은이 쪽도 마찬가지인 것?같았다. 사실 젊은이는 위험 인물이라기보다는 다소 어리둥절한 눈치였고 결국은 이런 말을 내뱉었다.

    "아아, 맥스! 마침내 당신을 찾아내서 정말 다행이에요!"

    맥시밀리언은 자신의 신부가 될 아가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기가 막힌 나머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방 안을 가만히 살피더니 쪼르르 달려와 그의 침대에 덥석 뛰어들었다.

    "여기가 얼마나 넓은지 당신 알고 있어요?"

    그녀는 그를 감싸안으며 숨가쁘게 말했다. 맥스는 그녀를 자신의 알몸에서 다정하게 떼어냈다.

    "난 여기 살기 시작한 이래 내 소유의 다른 저택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다 파악해 두었소"

    그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물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오?"

    샬로트는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손가락으로 가슴털을 희롱했다. 그녀는 그가 한 말을 듣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넋을 잃고 열중해 있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린리 자작의 시간을 잠시 빼앗으려고 왔죠"

    그녀는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손길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졌던 맥시밀리언은 결국 크게 껄껄대며 웃었다.

    "왜? 내가 당신 수법을 그대로 이용했다고 화난 거요?"

    샬로트는 몸을 뒤로 빼더니 짐짓 기가 막히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수법이라뇨? 내가 당신을 차지하려고 부정한 수단이라도 썼다는 소리예요?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해요?"

    맥시밀리언은 다시 껄껄대며 웃었다.

    "자아, 샬로트. 시인해요! 당신은 내 관심을 끌려고 한두 번은 수를 썼잖소."

    맥시밀리언은 그들이 만났던 때를 모두 떠올려 보았다. 우연히 마주친 적도 있었고 계획적으로 만나게 된 때도 있었다.

    "갑자기 목선이 깊게 패인 드레스만 입게 된 건 왜였소?"

    "당신이 그렇게 입으라고 했잖아요!"

    샬로트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당신 할머님의 병환은?"

    그녀는 진짜 화났다는 듯 똑바로 앉아 그를 노려보았다.

    "꾀병이었다는 소리예요?"

    "아니었소?"

    "맥시밀리언 앨리스테어 웬트워스 포테스큐! 그건 절대 꾀병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샬로트는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맥시밀리언은 셔츠에 감싸인 채 불룩 튀어나온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눈치채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좋소, 좋아. 당신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지."

    그는 다소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로디와 벌인 그 탈선 행위는 뭐요? 그것도 나 때문에 계획된 무대 아니었나?"

    그녀가 얼굴을 붉힌 것 같은데? 방 안이 어둑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그래도 고개를 떨구고 인상을 쓸 만한 양심은 지니고 있었다.

    "하! 그럴 줄 알았지!"

    그는 그녀의 망설이는 기색을 놓치지 않은 채 물고 늘어졌다.

    "좋아요."

    샬로트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당신 관심을 끌려고 했다는 점은 인정하겠어요. 하지만 겨우 몇 번뿐이었어요. 그리고 첫 번째 시도도 하기 전에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걸요"

    "하지만 결과는 좋았잖소. 그 덕에 린리 자작에게서 청혼을 얻어냈으니."

    "흥!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맥스? 아빠한테서 그 비참한 편지를 받고 난 하마터면 죽어 버릴 뻔했다고요! 왜 그랬어요, 맥스?"

    그녀는 다시 화가 났고 이번에는 진짜 펄펄 뛰었다. 그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의 번득이는 눈빛이 보였다. 그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지금 그는 비열한 작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웃기는 감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초연한 태도를 견지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즐거웠다. 하지만 막상 청혼을 했을 때는 그녀가 그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지 전혀 확신을 못하고 있었다.

    "당신이 내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소"

    그는 퉁명스럽게 설명했다.

    "당신의 탈선 행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선 당신과 결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소. 그런 결론은 만족스럽긴 했지만 한편 난 재산을 노리는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샬로트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청혼을 했다고 조작한 거예요?"

    맥시밀리언은 다소 부끄러운 듯 끄덕였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오직 부와 지위였다면 그 청혼을 받아들였겠지. 그럼 당신이 내게 전혀 호감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셈이고."

    그는 이런 엉터리 말을 입에 담는 자체가 다소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애정을 누리고 싶었다. 애정 없는 삶을 생각하니 그의 몸이 빳빳이 굳어졌다.

    "난 우리 아버지 같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맹목적으로 빠지셨고 어머닌 오직 이익에만 눈이 멀어 결혼을 했던 거요."

    샬로트는 순간 침묵을 지키며 아직도 그의 몸에 얹혀져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차분한 얼굴은 눈부신 머리카락을 가린 괴상한 모자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이해해요. 당신이 그런 계략을 쓴 걸 용서하겠어요."

    그녀는 다음 순간 밝게 미소지었다.

    "그럼 이제 모든 게 정리되었으니 당신은 돌아가야 하오."

    그녀는 다시금 그의 가슴털을 손가락에 휘감았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다정한 행위를 점점 더 날카롭게 의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도톰한 입가에 놀리는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여기 온 건 다른 이유도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유혹적이었다. 문득 맥시밀리언은 봄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강렬한 향기와 얇은 시트 한 장만을 사이에 두고 그의 허리에 맞닿아 있는 그녀의 육체를 의식했다. 그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분위기를 금세 감지할 수 있었다. 샬로트에게는 뭔가 속셈이 있었다.

    "그게 뭐요?"

    그는 되도록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길다란 속눈썹이 볼 위에 팔락거렸다.

    "우리가‥‥‥‥ 저기, 오늘밤에‥‥‥ 사랑을 나눠 버리고 나면 당신이 내일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아니, 파티장을 빨리 떠나고 싶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지겠죠. 난 당신이 그러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뭐라고?"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만 실수하고 말았다. 그는 호흡을 골랐다. 이런 시간에 방문자가 있다는 것을 하인들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두 사람이 결혼할 사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맥스. 화내지 말아요. 난 그저 당신의 런던 저택에서 그런 일이 있은 이후 당신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요즘 들어 쌀쌀하고 시큰둥했잖아요. 그래서 그 행위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계속 두려움에 떨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빨리 치러 버릴수록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내 말뜻 알겠어요?"

    "뭐라고?"

    그녀가 하는 말이 과연 그의 귀에 들리는 말과 동일한 것일까?

    "에이, 맥스!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거죠? 내가 온 건, 우리가 전에 런던에서 하다 만 일을 마저 하기 위해서예요. 이번에는  더 ‥‥‥"

    "날 유혹하러 왔단 말이오?"

    맥스는 믿어지지 않아 물었다.

    "흠,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건 알아요. 당신 집이 하도 넓어서 길을 잃고 말았거든요. 그건 계획 밖의 사태였던 데다 정작 당신을 만났을 때는 린리 자작 얘기를 묻고 싶었던 터라 다른 데에 정신을 팔아 버렸죠"

    "그럼 대체 어쩔 생각이었던 거요?"

    맥시밀리언은 양 팔로 팔베개를 하고 물었다. 이거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목사의 딸이 사내아이 같은 옷차림을 하고 유혹할 계략을 꾸미다니.

    "당신 방을 우선 찾아내서 옷을 죄다 벗고 당신과 한 침대에 들려고 했어요"

    그녀의 솔직 담백한 고백을 들은 맥시밀리언은 숨을 헐떡였다. 그의 남성이 굳어졌다. 그는 그녀가 얘기한 장면을 그려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거기서부터는 알아서 자연스럽게 될 줄 알았죠"

    "꽤나 가능성이 농후하군"

    그는 쌀쌀맞은 어조로 꼬집었다.

    "당신이 자제력을 완전히 내던졌을 경우에는 그렇겠죠"

    샬로트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가 뭐라고 입씨름을 벌이기도 전에 그녀는 한쪽 다리를 그의 몸에 걸치고 올라와 그의 허리 위에 걸터앉았다. 맥시밀리언은 그의 남성을 내리누르는 느낌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달빛이 그녀의 셔츠를 비추자 팽팽해진 옷감 아래로 동그란 젖꼭지가 언뜻 보였다.

    "그런 가슴을 하고 남장이 제대로 먹히리라 생각했소?"

    그는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피자 물었다

    "살짝 빠져나올 때는 헌 바지랑 셔츠 차림이 편해요"

    "살짝 빠져나올 때라."

    맥시밀리언은 그 가슴에서 도저히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얇은 옷감 너머에서 불쑥 솟아 나와 있었다.

    "내 아내가 되면 살짝 빠져나가는 일은 절대 금지요"

    "싫어요, 맥스."

    그녀는 양 손을 그의 가슴에 올려놓고 근육을 손바닥으로 쓸기 시작했다. 그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오, 살로트."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정말이지 지금 해치워 버리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내일 하루 종일 그것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잖아요"

    맥시밀리언은 눈썹을 치켜 떴다.

    "지금 당신은 놀란 고양이처럼 겁먹은 얼굴인데."

    샬로트는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당신은 날 잘 알잖아요, 맥스. 난 너무너무 겁이 나면 도리어 최고로 뻔뻔해져요"

    "그럼 당신이 오늘밤 자기 침대에서 자야 할 이유가 더욱 더 확실하군. 자, 내 몸에서 일어나요"

    맥시밀리언은 말했다. 그는 이런 말을 약혼녀에게 하게 되리라고는 여태껏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싫은데요"

    샬로트는 짓궂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 순간 그녀는 모자를 벗고 시원스레 고개를 흔들어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금빛 곱슬머리가 그녀의 얼굴 주위로 풍성하게 쏟아지면서 달빛을 받아 폭신한 면화처럼 빛났다. 맥시밀리언은 가슴속으로 마구 밀려들어온 숨을 억눌렀다. 머리를 풀어 내린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그녀가 이렇게 관능적인 모습으로 얼굴 주위에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적이 언제였지?

    "당신은 아주 자신만만한 모양이군."

    그는 거칠게 말했다. 그녀와 맞닿은 몸이 부풀어오르고 있었지만 그는 계속 태연한 척 가장했다. 샬로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길이 서로 마주치더니 그대로 얽혀 들었다. 그녀의 의도를 그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녀는 양팔을 들어 셔츠를 머리 위로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하얀 우윳빛을 한 커다란 가슴이 풀려 나왔다. 맥시밀리언은 그 모습을 보고 그녀의 몸 밑에서 경련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그에게로 상체를 숙여 자기 몸을 내어주었다. 그녀의 가슴이 농익은 과일처럼 그의 코 바로 몇 치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자태를 뽐냈다. 맥시밀리언은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야성적인 신음을 흘리며 양 손을 치켜들었다. 넘쳐날 듯 풍만한 그녀의 가슴이 그의 커다란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젖꼭지를 문지르자 샬로트는 허리를 젖히며 밤의 대기 속으로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아아, 맙소사. 그는 꺼져가는 이성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마음 깊은 곳 한 켠에서는 그녀를 침대에서 떠밀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행위는 도리가 아니었다. 그는 의무에 따라 결혼 첫날밤까지 그녀에게 손대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의무감을 빼면 시체인 사람이었다. 맥시밀리언은 신음하며 양 손을 그녀의 허벅지로 가져가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어느새 그는 조급하게 시트를 차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그의 허리 위에 동그마니 올라앉았고 그는 단단해진 그의 남성에 와 닿는 그녀의 부드러운 바짓자락을 느꼈다. 허리 위로는 알몸인 채 아래에는 남자 바지를 입은 샬로트의 모습에는 뭔가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옷감에 몸을 비벼댔다. 조금만‥‥‥‥그는 그녀를 끌어내려 눕히고 그 위로 올라간 다음 전혀 그 같지않은 몸짓으로 굶주린 듯 뜨겁고 격렬한 키스를 그녀의 입술에 퍼부었다. 동시에 그의 양 손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감싸쥐었다. 그녀는 혀를 그의 혀와 맞대 응답했다. 순결한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음이 그녀에게서 나직이 터져 나왔다. 그는 양 손을 그녀의 머리카락에 파묻고 거세게 움켜쥐었다. 너무나 부드러운 감촉‥‥‥ 그는 신음했다. 자기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신음이었다. 샬로트도 그의 목구멍에서 절박한 신음이 터져 나을 때마다 박자 맞춰 흐느꼈다. 그는 손을 그녀의 어깨로 가져와 매끄럽고 보드라운 등을 훑고 계속 아래로 더듬어 내려갔다. 그녀의 바지 허리춤에 닿자 그는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 엉덩이를 찾아냈으며 뜻밖에도 팬티가 가로막자 더더욱 자극을 받았다. 너무나 낯설면서도 왠지 유혹적이었다. 누군가가 다시 신음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일까 생각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목에 입맞추며 상체를 끌어당겨 자신의 입술로 가슴을 가져왔다. 젖꼭지가 어둠 속에서 북극성처럼 까딱까딱 흔들렸다. 그는 입술로 젖꼭지를 찾아내 물고 아무리 격하게 행동해도 모자란다는 듯 양쪽을 번갈아 가며 거세게 빨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마침내 숨이 가빠 인내심을 찾아야 될 때까지 서로의 몸을 꼭 붙인 채 비비며 신음했다. 그는 그녀를 똑바로 눕히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맥시밀리언은 열정 때문에 떨면서 그녀의 바지 앞섶 단추를 풀고 손을 밀어 넣었다. 촉촉했다. 그는 전율하며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가락이 박자를 타자 그녀는 '헉' 하고 날카롭게 숨을 들이키며 콧소리를 내는 동시에 그에게 몸을 밀착시킨 채로 의미심장하게 비벼왔다. 다음 순간 그는 그녀의 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리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는 여태껏 정부들의 찬탄을 얻어냈던 인내심을 발휘해 처음에는 혀를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엄청난 성찬이었다. 자제력은 그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입으로 차지해 맛을 보며 빨아들였다. 그는 그녀의 흐느낌을 들었고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그녀의 몸부림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부여잡은 채 혀를 그녀의 몸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녀는 움찔 경련하더니 그의 혀 아래에서 팽팽하게 몸을 굳히고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는 바지를 다 벗겨 버린 다음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잡았다. 아아, 맙소사. 마침내‥‥‥그는 천천히 비집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녀의 몸이 너무 뜨겁고 꽉 조여들었으므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신음을 토해내며 끝까지 밀고 들어갔다. 그녀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 소리가 뇌리를 뚫고 입력되자 그는 뻣뻣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는 미숙한 소년처럼 떨면서 눈을 떴고 순간 깨달았다. 그는 목사의 딸의 순결을 취한 상태였다. 맙소사‥‥‥그는 무슨 소리를 냈던가, 아니면 어떤 표정을 지은 것이 분명했다. 샬로트가 돌연 그에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맥스. 난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었고 이젠 끝났잖아요"

    그녀는 입술을 들어 그의 이마며 광대뼈. 턱선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녀가 그를 위로하려 한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샬로트‥‥‥"

    그는 무슨 말인가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한 곳에 모으려 했지만 그에게 밀착된 그녀의 가슴과 그의 몸을 꽉 조여 감싸고 있는 그녀의 몸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언제 그녀가 다리를 들어올려 그의 몸을 감았던가?

    "샬로트‥‥‥ 아아, 그래, 샬로트‥‥‥‥ 그래. 그렇게‥‥‥‥"

    이 음성이 내 목소리였던가? 그는 일찍이 몰랐던 쾌락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동시에 그는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들어올려 그녀를 한층 가까이 끌어안고 그녀의 몸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아아, 그래. 샬로트‥‥‥ 당신 몸은 너무 뜨겁고 너무‥‥‥‥"

    그는 거의 몸이 빠져나올 정도로 물러났다가 다시금 깊숙이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몸 아래에서 신음했다. 다음 순간 그는 이성을 잃고 그녀의 몸 안에서 움직였다. 그녀를 촉촉하게 둘러싼 황금빛열기말고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대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려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의 이름뿐이었다. 기도처럼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단 채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계속해서 몸을 밀어 넣어 그녀를 차지했다. 더욱 뜨겁게, 깊게, 강하게. 마침내 그는 그녀의 품안에서 전율하며 그녀의 따스한 몸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새겨 넣은 다음 헐떡이며 그녀의 몸 위에 짐짝처럼 쓰러졌다. 한참 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자기가 바보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에 대고 뭔가 속살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자신의 몸무게가 그녀에게 너무 무리를 주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으므로 그는 팔꿈치를 괴고 상체를 들어올렸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당신 괜찮소?"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끄덕였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은 부어 올랐고 얼굴 주위에 흩어진 곱슬머리는 격한 동작 때문에 땀에 젖어 말려 올라간 상태였다.

    "사랑해요, 맥스."

    그녀는 속삭였다.

    "당신이 내 몸 안에서 자제력을 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 말을 듣자 그의 몸이 다시금 부풀어올랐다.

    "나도 이러는 게 좋소"

    그는 사악한 미소를 그녀에게 지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내야 했다. 그들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였다. 망할! 시간은 점점 야심해졌고 그녀는 그에게 오기 위해 자기 집, 그것도 목사관에서 살짝 빠져나온 길이었다. 내일이면 충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언니와 얘기를 했어요"

    그녀는 짓궂은 미소를 입가에 흘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양 손을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넣어 머리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언니가 재미있는 사실들을 이것저것 많이 얘기해 줬죠."

    그녀는 발끝으로 그의 장딴지를 관능적으로 쓸었다.

    "샬로트"

    "우리 전부 다 해봐요, 맥스."

    그녀는 졸랐다. 그녀는 그의 길다란 머리채를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달빛이 비치는 그녀의 얼굴에 그의 머리채가 검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한테 보여 줘요"

    그는 신음하며 똑바로 누워 목사의 딸이 다시금 허리 위로 올라오도록 내버려두었다. 한 번만 더, 그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 그녀를 집에 보내야겠다. 해뜨기 전에, 결혼식 전에 그녀를 집에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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