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보라시먼스-늑대와굴뚝새-0화 (1/21)
  • 프롤로그

    잉글랜드 1270년

    말을 탄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마리온은 바짝 긴장

    했다.  고삐를 움켜쥔 그녀의 손은 망토 안으로 사정없이 새어

    들어오는 가을 바람보다 차가웠다.  배더슬리 성을 빠져 나온 지

    도 벌써 이틀이나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도 숙부와 그의 병사들

    이 추격해 올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숙부와 그의 기사단이 성

    을 비운 새를 틈타, 표면상으로는 순례 여행을 가장하여 성을 빠

    져 나왔다.  하지만 해럴드 피슬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 여

    행일지라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숙부는 곧 그녀의 뒤를 쫓을

    것이며, 행여라도 발견된다면...  마리온은 몸서리를 쳤다.

    수녀원까지 갈 수만 있다면 안전하련만.  숙부라도 수녀원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것이다. 그곳에서라면 안전한 돌벽안에서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사심없이 살 수 있을 텐데.  그곳의 여자들

    은 그녀에게 가족이 되어 줄 것이다.  그녀는 한번도 가족을 가

    져본 적이 없었다.

    피신의 대가를 생각하며 마리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한때는

    남편과 가족을 꿈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숙부는 그녀의

    토지와 재산의 소유권을 다른 남자에게 넘겨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그녀를 혼자 외로이 가두고 거칠게 대했다.

    마리온은 다가오는 여행자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들이 숙부

    의 기사단 옷을 입지 않은 걸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들은 외모도 굉장히 험상궂고 거

    칠기 그지없었다.  다시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는 순례 여행자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

    지만, 길에는 암살자와 범죄자들이 득시글 거렸다.  마리온이 고

    용한 젊은 농노와 자유인들은 그녀를 보호하기엔 힘이 턱없이 모

    자란다.  밀러 형제들이 곤봉을 다룰 줄 알기는 하지만 무기를

    가진 산적들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

    그때 그녀가 걱정하던 대로, 그들이 갑자기 그녀의 무리에게

    무시무시한 무기를 흔들어 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리온은

    그들이 기수인 존 밀러를 한방에 쓰러뜨리는 것을 보며 숨을 들

    이마셨다.  그녀의 말이 걸음을 멈추었고, 그녀 옆에 있던 시녀

    에니드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산적떼 중 한 명이 그

    들에게 다가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남자는 공포에 질린 에

    니드를 말에서 끌어내렸다.

    마리온의 심장이 공포로 조여들었다.  그녀는 그 사내가 에니

    드를 거칠게 다루는 것을 꼼짝않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리온은 억지로 팔다리를 움직여, 가지고 있던 조그만 단도를

    조용히 겨누었다.  그녀는 에니드를 잡고 있는 남자에게로 말을

    달렸다.

    마리온은 단도로 그의 심장을 찔러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비수를 찔러 넣으려는 순간, 커다랗고 힘센 숙부에게 맞고

    살던 기억이 떠오르며 손이 굳어져 버렸다

    너무 늦었다.  그가 그녀를 보고 말았다.  그는 조그만 그녀의

    칼을 비웃으며 팔로 그녀를 쳤다.  그녀는 말에서 붕 떠올랐다

    가 어디론가 곤두박질쳤다.  머리가 빙글 빙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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