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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32화 (32/92)

32화. 마법이 필요해

나는 목선후가 미간을 찌푸리거나 하하 웃어젖히거나 할 줄 알았다. 나도 긴가민가해서 찔러 본 거니까.

하지만 목선후는 관자놀이가 발그레해지더니 별로 당황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런가 보오.”

그러면 그러든지, 아니면 아니든지. 그런가 보오는 또 뭐냐?

“그대는? 그대는 나를 좋아하오?”

목선후가 성급하게 물었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나? 잘생기고 머리 좋다는 것 외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아, 나보다 더 젊다는 것도 추가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사소하고도 의도치 않은 어떤 순간, 어떤 모습, 어떤 말 때문에 시작한다.

벼락처럼 크게 오든 혹은 실바람처럼 부드럽게 오든 본인은 분명하게 느낀다. 사랑이 찾아왔음을.

나는 아직 이 사람에게서 그 순간을 만나지 못했다. 스치는 손길에도 짜릿해지고 둘이 함께 있는 동안 세상에 다른 사람은 다 사라지는 마법의 순간을 나는 아직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단 한 번의 마법도 없이?

이 시대는 대안이 없는 사회니까. 이 남자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이 남자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내가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목선후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져 갔다. 마치 빛나던 태양이 구름에 가리우듯이.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에 명치 안쪽이 찌릿 아팠다. 이런 느낌은 좋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마법은 없어도 좋아하는 거다.

“어, 저기.”

“대답하지 마시오.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그게 그러니까.”

“그대가 초야에 했던 말을 잊었소. 최근에 달라진 것 같아서. 내 실수요.”

바로 그거야. 도대체 초야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나요? 초, 초야에.”

목선후가 노를 잡아당겨 배 안에 들여 놓고 손을 두 무릎 위에 놓았다. 진지한 표정 속에는 그 문제는 건드리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스며 있다.

그럼에도 별 의심 없이 무슨 일인지 말해 주었다. 안안용이 그 당시 꽤 정신없이 행동했던 모양이다.

“그대는 한인수와 혼인하고 싶었다고 했소. 나하고 초야를 치렀기 때문에 이제는 그에게 돌아갈 수 없다면서 울었지.”

“아!”

말문이 막혔다. 수백 명을 앞에 두고도 말이 막히지 않았던 내가.

원래의 안안용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그녀에겐, 현대의 나처럼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원망이 오롯이 눈앞의 신랑에게 갔겠지.

하지만 때와 장소가 막장급이다.

안안용, 초야를 치른 후에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라고 네 엄마가 안 가르쳐 주던? 그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의 자존심을 박살 내는 거라고.

오 여사님이 큰 실수했네. 시집가는 딸에게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음을 가르쳐 줬어야지.

처가살이는 참아도 그런 말 듣고 참는 남자가 있을까? 여기…… 있구나.

“저, 저기, 미, 미안해요. 내가 지나쳤어요.”

이 시대에 맞는 말을 쓰려고 말조심을 하다 보니 가끔 더듬거리는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목선후는 냉정하게 핵심을 콕 짚었다.

“무엇이 미안한 거요? 내게 그 말을 했던 것? 아니면 한인수를 잊지 못한 것?”

안안용이 그 말을 그 일이 끝난 후에 한 거요. 하기 전이나 나중에 했으면 좋았을걸.

“둘 다요.”

“진심이오?”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안용이 그런 말을 했을 때도 진심이었을 거고 지금 이 말을 하는 나도 진심이니까. 속에 있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 내 표정을 살핀 목선후가 인정했다.

“그대는 정말로 미안해하는군.”

“맞아요. 진짜예요.”

“그래도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오. 그렇게 말했다면 안 믿었을 거요.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이제 알거든.”

“내게……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자그마치 현대에서 왔다고. 컬쳐 쇼크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알겠소.”

목선후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다시 노를 잡았다. 나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배가 호숫가를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말없이 노를 젓는 목선후를 보는 순간 나는 벌써 후회했다. 좋아한다고 할걸. 미쳤어. 이 좋은 기회를 발로 차다니.

“저, 노력해 볼게요.”

내 말에 목선후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현대라면 이별각이다. 현대에서는 어렵게 관계를 이어가려는 대신 새 사람을 찾아서 각자 떠날 것이다. 똥차 가고 새 차 온다면서.

목선후는 한참 조용히 노를 저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눈부셨고 호수 위의 바람은 내 귀밑머리의 땀을 시원하게 씻었다.

“지난번에 뵀던 노부인을 기억하오?”

“네.”

귀한 보석을 한 보따리 안겨 주신 분을 어떻게 잊어?

“이 무더위에 잘 지내시는지 염려스럽소. 며칠 후 뵈올까 하는데 같이 갈 테요?”

“그럼요. 안마 연습도 많이 해 둘게요. 이번에 알았어요. 내가 손힘이 정말 없더라고요. 창씨, 그 나쁜 놈을 한 방에 처리하지 못하다니 분해 죽겠어요.”

“그대가 뭘 처리한다고? 그것도 한 방에 처리해?”

“…….”

목선후가 고개를 돌리고 큭큭 웃었다. 쳇. 오늘부터 물이 든 조롱박을 아령처럼 양손에 들고 근력운동을 할 거야.

배는 이제 호숫가에 이르렀다. 사공이 기다리다가 배 고물을 잡아당겨서 우리가 내리기 편하게 해 주었다. 정오가 다가오더니 호숫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씨, 배고프시죠? 저기 장이 섰는데요. 국수가 아주 맛있대요.”

“그래, 가자.”

호숫가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좁은 오솔길은 고즈넉해서 나는 마차를 타지 않고 목선후와 나란히 관목 숲길을 걸어갔다. 우리 뒤에는 정오와 말순이 조용히 따라오고 팽문은 마차를 몰고 큰길로 갔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제법 큰 시장이 열려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목선후와 둘이 있는 게 조금 어색했기 때문에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무리에게 다가갔다.

***

“누구지? 저 두 사람.”

노천에 있는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아름답고 부귀해 보이는 두 남녀를 보고 세자빈의 오라비인 장진한이 남우효에게 물었다.

“모르겠는데? 입성을 보아하니 한가락 하는 집안인데. 왜 본 기억이 없지?”

“규방의 여인이야 모를 수 있지만 저 사내는…….”

“사내자식이 기가 막히게 잘생겼어. 송옥과 반안 같다는 말이 저 사내에게 딱 어울릴 것 같군.”

“그보다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생각이 안 나.”

“어디서 봤나? 저런 얼굴은 잊기가 어려운데? 환성에 소문이 안 난 걸 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자가 분명해.”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내가 사람 얼굴을 잘 안 잊는데 이상하네? 궁금해서 안 되겠네. 가 보세.”

장진한과 남우효가 국수집으로 다가가자 국수집 주인이 뛰어 나와서 자리를 안내했다. 마침 두 사람의 바로 옆자리였다. 반대편 탁자에서는 두 사람의 시종들이 국수를 먹다가 남종이 경계하는 눈빛을 이쪽으로 던졌다.

장진한이 뒤를 돌아보며 호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너희도 앉아서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

보통 때 같으면 시종이 무엇을 먹든 관심도 없었겠지만 두 사람이 시종들에게 국수를 먹이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말을 걸려면 비슷하게 행동하는 게 좋지.

자리에 앉은 장진한이 탁자 밑으로 남우효의 발을 찼다. 어서 시작하라고.

“세자빈 마마께서는 요즘 어떠신가? 회임하셨으니 올여름 더위가 힘드실 걸세. 내 아내도 작년 삼복더위에 출산을 하느라 아주 힘들었다네.”

“궁에 얼음이 충분하니 그런 염려는 없다네. 윗전들이 얼마나 잘 대해 주시는지 누이가 오히려 황공해하더군.”

“당연하지. 얼마나 귀한 아기씨인가, 하하하!”

“하하하!”

국수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말을 들었다. 갑자기 숨소리도 사라졌다. 어디선가 딸그락 젓가락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이 낮은 백성들이라 두려워서 숨도 못 쉬었다.

그러자 장진한이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상관 말고 편하게 드시오.”

옆자리의 두 남녀에게는 더욱 은근하고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장진한이 자리에 앉으면 저 선남선녀가 와서 인사를 하는 게 다음 순서였다. 이 나라에서 누가 세자빈의 오라비와 친해지고 싶지 않겠는가?

눈도장 한 번이라도 찍으려는 관리들이 파리 떼처럼 들끓는 판인데.

자, 잘생긴 애야, 어서 내게 허리를 굽히고 오라고.

***

뱃놀이 후 국수는 너무 맛있었다. 한 그릇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의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자빈의 오라비라고? 저 거들먹거리는 태도라니. 우리의 느긋한 시간이 방해가 돼서 나는 오히려 귀찮았다. 게다가 평민들이 잔뜩 굳어서 젓가락을 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기분이 상했다. 저 커다란 목소리는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목선후도 살짝 미간을 좁히더니 국수가 반이나 남았는데도 젓가락을 놓았다.

“덥군.”

탁자 위에 놓인 부채를 들더니 쫙 펴서 부치기 시작했다. 부채를 부친다기보다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는 말이 더 적합했다.

한때 소년 수재였는데 이렇게 살고 있으니 저런 권력자들을 만나면 피하고 싶겠지.

아까 초야에 안안용이 한 짓에 아직도 죄책감을 잔뜩 안고 있는 나는 목선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나도 젓가락을 놓았다. 다음에 와서 꼭 두 그릇 먹어야지.

“배불러요. 이제 가요.”

내 뜻을 알아챈 목선후가 보일 듯 말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일어서자 시종들도 따라 일어섰고 눈치 빠른 팽문이 주인에게 국수 값을 주려고 우리 옆을 스쳐갔다.

팽문이 옆 탁자를 지나칠 때 세자빈의 오라비가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아니 발을 걸었지만 우리 4등급 마당쇠는 슬쩍 피해서 멀쩡하게 지나쳤다. 피하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순발력 끝내주는데? 괜히 4등급이 아니네.

이 시대에 와서 왕따 학원물에서나 보던 모습을 보다니. 학교나 학원 복도에 저런 애들이 늘 한 자리를 차지했지. 새삼 웃음을 꾹 참고 목선후의 소매를 잡았다.

빨리 벗어나자. 여기는 현대가 아니다. 여기서 나는 평민이고, 내 남편은 백수다. 어사중승의 아들이기는 해도 관직이 없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평민이나 다름없다.

잘난 남편의 고백까지 들은 오늘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목선후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안안용의 손힘이야 거기서 거기지만 목선후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목선후가 이 시대 남자치고는 과감하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한 발을 떼는 순간.

“잠깐, 이것도 인연인데 누구신가? 인사나 합시다?”

세자빈의 오라비와 동행인 남자가 말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목선후가 내 어깨를 잡은 채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부채로 눈 아래를 가리고 있다.

두 남자 중 한 남자는 소박한 심의를 입었으나 세자빈의 오라비라는 자는 황금색 동곳에 보라색 비단 도포를 입고 허리에는 커다란 옥패를 늘어뜨렸다. 둘 다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인다.

보라색 도포의 남자는 눈을 반쯤 내려뜨고 비웃듯이 입을 비틀고 있어서 등급을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를 부른 남자의 등급은 바로 떴다.

팔 등급?

세자빈 오라비의 시종인가? 그런데 이렇게 잘난 체한단 말이야? 팔 등급이 앉은 채 입을 열었다.

“나는 남우효라고 하오. 엄친께서 예부시랑이라는 중임을 맡고 계시오. 여기 이분은 세자빈 마마의 오라버니 되시는 장진한 공자님이시오. 당신들은 누구요?”

얼마 전에 예부상서의 아들이 진남과 싸워서 죽을 뻔했던 사건이 생각났다.

예부시랑의 아들이 팔 등급이구나. 그럼 과거에 떨어졌을 것이다. 향시 합격 커트라인이 6등급이었다. 남우효는 지방이 아니라 수도인 환성에서 시험을 봤을 테니 더 낮은 커트라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생은 목선후라 합니다.”

목선후가 부채를 내리고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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