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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31화 (31/92)

31화. 조명의 효과

‘괜, 괜찮아요. 오, 오지 마세요.’

목선후는 인질에게 위협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안안용의 떨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콱 막히며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억지로 숨을 내뱉자 이번에는 가슴이 바늘에 찔리듯이 아팠다.

저 연약한 여인이 칼에 위협을 당하면서도 나를 걱정하는 것인가?

목선후는 길러 주신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밀행을 나온 부왕을 마주 볼 때는 아버지와 왕, 둘 중 어떤 관계로 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조금 불편했다.

대비 마마는 마음이 편했지만 자신을 아기 취급 했다. 장모님은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아 간 연적처럼 사위를 대했다.

그래서일까. 애틋하거나 절절한 감정은 느껴 보지 못했는데 어제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낯설지만 신기했다.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여인이 아내라니.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세상에 이런 느낌이 있음을.

목선후는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는 안안용의 오밀조밀한 작은 얼굴을 세세하게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귀밑머리를 넘겨 주고 좀 더 편하게 자도록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해 주었다.

평소와 다르게 안안용이 가느다란 팔을 들어 목선후의 목을 감으며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잠들어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이러는 거겠지?

아니, 모르면 안 되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가슴에 안기는 것이니까.

유치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안용?”

작고 동그란 귓바퀴에 입술을 대고 불렀다.

“응?”

잠결인 듯 한숨처럼 대답한다.

“내가 누구요?”

“…….”

“안용, 내가 누구요?”

두 번째 질문에는 자신도 모르게 조급함이 담겼다.

“흑기사.”

“……?”

“안전거리…… 6미터라고요. 다음엔 조심해요. 이 시대에…… 과부되기 싫으니까. 재혼도…… 어렵고…… 음.”

중얼중얼.

여전히 눈을 감은 안안용이 목선후의 목에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말했다. 못 알아듣는 말도 있었지만 과부되기 싫다는 말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따뜻하고 말랑한 여인의 뺨이 닿은 목덜미에 모든 감각이 모여들었다. 안안용의 머리통은 목선후의 목에 꼭 맞아서 원래부터 한 몸 같았다.

“조심하겠소.”

안안용의 어깨를 더 세게 껴안으며 목선후가 마차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마차의 크기는 여전한데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졌다. 눈도 밝아진 것 같다. 한여름 더위마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믿을 수 없지만 어디선가 꽃향기도 난다.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이 현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너무 너무 기분이 좋다. 목선후 인생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

포목점은 멀리서 봐도 달랐다. 정말 달랐다.

낮인데도 조금 어둑한 다른 가게와 달리 안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촛불을 수백 개는 켜 놓은 것처럼.

“와우, 공자님, 이거 봐요.”

마차에서 내린 나는 가게 앞으로 가까이 갔다가 조금 뒤로 갔다가 하면서 포목점과 그 옆의 가게들을 비교했다.

내 모습이 우스운지 정오와 말순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햇빛이 뜨거워요, 아씨.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정오의 말에 목선후가 손을 내밀었다. 어제 이후로 목선후의 태도는 좀 더 다정하고, 활기차고 자연스럽다. 왜지? 안안용이 죽을 뻔해서 불쌍해졌나?

내가 머뭇거리자 직접 다가와서 내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샹들리에는 유럽의 오래된 고성에 가면 간혹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모양이다.

놋과 검은 쇠로 만든 틀에 촛대가 동그랗게 달려 있고 포목점임을 감안해 촛대 밑에는 물이 담긴 틀이 동그랗게 붙어 있다.

촛농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초가 빠져서 떨어져도 밑에까지 불꽃이 떨어지지 않도록. 여기에 모나게 깎은 수정 조각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달려 있어서 촛불을 반사시켰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다.

너무 멋져서 말문이 막혔다. 민아는 내 예상보다 훨씬 이 방면에 머리가 좋았다. 물론 민아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철방도 대단하고.

민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샹들리에를 내밀었다.

“아씨, 이거. 철방 아저씨가 상등 만들면서 하나 만들어 주셨어요.”

“네가 만들어 달라고 했니?”

민아의 뺨이 붉어졌다.

“네. 아씨에게 드리고 싶어서……. 모양은 제가 생각했어요.”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줘서 고마웠나? 촛대는 하나지만 수정 조각들 때문에 다른 촛대보다 훨씬 더 밝게 보일 것이다.

“예쁘구나. 고맙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점주를 보며 말했다.

“내가 민아에게 상을 주고 싶은데요.”

점주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씨. 당연히 할 일인데요. 비용도 넉넉히 주시고 주인님께서도 칭찬해 주셔서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아이의 별 볼 일 없는 재주를 써 주셔서 감사할 뿐이지요. 그리고 상등을 달고 난 후 며칠 동안 매출이 지난 한 달 매출과 비슷합니다.”

부점주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안씨 상가에서는 모두 상등이 빨리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씨께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소인들은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흠흠, 뭐, 그 정도야.”

내가 우쭐거리자 목선후까지 미소를 지었다.

“민아야, 글을 배우고 싶지 않니? 글을 배우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단다. 안씨 학당은 무료야. 훌륭한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시고. 나는 네가 글을 배워서 나를 위해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네! 감사합니다.”

지체없이 대답하는 민아 때문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며칠 내로 민아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포목점을 나왔다.

등급외 동생들이 민아와 비교해서 깨질 것을 생각하니 누나로서 양심에 걸렸다. 특히 안신이.

가출까지 할 정도로 공부하기 싫어하는데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아이가 엄청나게 잘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미안하다, 안신아. 가문을 위해 참아라.

이런 인재들을 잘 모으면 안씨 상가는 위기가 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삼 년 후 아무도 향시에 합격하지 못해서 저 포목점 포함 스무 개의 상가가 날아간다고 해도.

그래도 길이 있을 거야.

나는 안씨 집안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빙의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가문에서 먼 훗날 중요한 인물이 나와 세계를 구할지도 모르고.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는 거요?”

“덥다는 생각이요.”

에어컨과 아이스커피가 그립다. 한낮이 되자 햇빛이 마차 지붕을 달구었다.

“가끔 그대는 내가 모르는 말을 하더군. 왜 그러는 거요?”

“나도 몰라요. 물어보지 마요.”

부채를 들어서 활활 부쳤다. 갑자기 다정해지더니 곤란한 질문까지 막 하네. 이 사람은 머리가 너무 좋아서 웬만한 핑계나 변명으로는 더 의심을 살 것이다.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하는 원래의 무식한 안안용이 되는 게 낫다.

무식한 아내라고 인상 한 번 쓰고 말겠지. 그러라지, 뭐.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부채를 부치면서도 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렇게 덥소? 그러면 호수에 갑시다. 배를 타면 시원할 거요.”

그러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팽문아, 서중호로 가자.”

“네. 공자님.”

나를 위해서 배를 타러 간다고? 뭔 일이래?

목선후가 미소를 짓더니 내 손에서 부채를 빼서 나를 부쳐 주었다.

목선후, 너무 이상해.

나처럼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바뀐 건 아니겠지?

***

세자빈의 오라비 장진한은 과거를 보지 않고 바로 관직에 오를 수 있지만 삼 년 모친상이 아직 끝나지 않아 한가롭게 지내는 중이다.

예부시랑의 장남 남우효는 이번 향시에는 합격했으나 전시에는 떨어졌다. 올해 나이 스물이니 향시 합격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장진한이 위로 겸 불렀더니 그렇잖아도 집에 있기 답답하다며 말을 타고 재빠르게 달려왔다.

“불러 줘서 고마우이. 아버지께서 자네가 불렀다니까 허락하시더군. 아이고, 꼼짝없이 방에 갇혀서 죽는 줄 알았네.”

남우효의 부친인 예부시랑은 예부상서보다 더 깐깐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번에 예부상서의 둘째가 상장군의 아들 진남과 싸운 사건으로 예부상서의 신임이 떨어져 조만간 낙향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별문제 없다면 예부시랑이 자연스럽게 예부상서로 한 단계 진급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과거에 아들이 전시와 어전시까지 합격해서 왕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좀 세워 주길 바랐는데 겨우 향시로 끝났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 등살에 앞으로 삼 년을 어찌 버티나 미리 걱정일세.”

두 사람은 사공과 시종이 딸린 배를 빌려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갔다.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넓은 호수다.

저 멀리 호수 반대편에는 고기잡이배가 군데군데 그물을 드리우고 한낮의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장진한을 따라온 대여섯 명의 호위가 호숫가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장진한의 배를 바라보았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

작은 배를 타는 두 남녀가 보였다. 시종들은 호숫가에 남고 사공도 없이 두 사람만 쪽배에 타서 천천히 호수 가운데로 나가는 중이었다.

***

나는 패닉에 빠졌다. 없어! 배에 구명조끼가 없어! 이럴 수는 없어!

고무오리를 탈 때나 인공 파도를 탈 때도 구명조끼를 입는 나라에서 왔단 말이야. 죽을 때까지 구명조끼 없이 배 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고!

“공, 공자님, 수영할 줄 아세요?”

나와 마주 앉아 솜씨 있게 노를 젓는 목선후에게 물었다.

“아오. 염려 마시오. 그대 한 사람은 문제없이 구할 수 있으니. 보시오, 물살이 잔잔하오. 이런 물에서 무슨 일이 있겠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대를 구할 테니 염려 마시오.”

“공자님, 여기 물 좀 드세요.”

불쑥 물이 든 조롱박을 내밀었다.

“목마르지 않은데?”

그래? 난 또 네가 탈수 증상으로 헛소리하는 줄 알았지.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를 구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목선후 입에서 나올 말이야, 이게?

장미가시를 뽑을 때 손가락 끝도 닿지 않으려 하고 관음증 도둑이 들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내 이불 속에서 빠져나갔지.

탈수 증상까지는 아니라도 더위를 먹은 거다. 계속 나만 부채질을 해 주었으니.

“나, 나도 수영할 줄 알아요.”

목선후가 눈썹을 치켜떴다. 이 시대의 여인들은 대부분 평생 한 번도 수영을 안 하고 산다. 여름철 얕은 냇가에서 하는 목욕이 전부다.

“언제 배운 거요?”

“아이 때요. 한 번 배웠더니 잊어버리지 않던데요.”

안전한 계곡이나 수영장에서만 해 봤으니까 이런 커다란 호수에서 하는 수영은 솔직히 조금 무섭다.

“그대는 알수록 신기하군. 하면 내가 물에 빠지면 나를 구해 주겠소?”

이젠 정말로 목선후가 일사병 직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남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자님도 수영할 줄 안다면서요.”

“알지.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요.”

아름다운 호수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할 말이 겨우 물에 빠졌을 때 누가 누구를 구해 주나, 라니.

이 괴리감이 무엇 때문일까?

마주 앉은 목선후에게 얼굴을 쑥 들이밀고 물었다.

“공자님, 나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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