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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3화 (3/92)

3화. 비주얼이냐 등급이냐

“뭐가?”

“당장 오늘 저녁부터 어르신들 식사 시중을 드시래요. 외출하는 것을 보니 다 나으신 거라고요. 내일부터는 아침 문안도 드리시고요. 어떡해요? 아씨. 외출하는 것을 보셔서 아프다고 핑계 댈 수도 없는데요.”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신랑이 맞구나. 유치하게 고자질이나 하고.

“하지 뭐.”

수능 명강사는 치트키 하나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몇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수능 영어 트렌드를 따라잡는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시부모님 저녁 식사의 시중을 들거나 아침 문안 정도는 거기에 비하면 껌이다.

아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럴 거다.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너무너무 싫어하셨잖아요. 식사 시중이랑 아침 문안드리다가 병까지 나셨는데요.”

“괜찮아.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네?”

하녀 말순과 눈이 마주치자 말순의 등급이 머릿속에 팟, 떠올랐다.

등급외.

역시나.

***

목씨 가문의 둘째 공자가 머무는 명현당.

말순에게 말을 전하고 돌아온 팽문이 방문 앞에 단정히 서서 목 공자가 얼굴을 들 때까지 기다렸다.

목선후는 형의 부탁으로 팔 폭 병풍을 만들기 위해 난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붓이 힘을 잃고 제멋대로 움직여서 유연하게 휘어져야 할 잎사귀가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삐뚤어졌다.

붓을 잡을 때마다 눈에 띄는 손등의 상처 때문인가. 이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닌데. 목선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붓을 내려놓고 팽문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

“공자님. 마님께서 아씨에게 오늘 저녁부터 식사 시중을 들라고 명하셨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문안인사도 하라고 했고요. 아씨께서 밖에 나가시는 모습을 본 하녀가 이른 모양입니다.”

“아씨는 뭐라 하시더냐?”

“말순이 말로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럴 리가! 그 여인과 혼인한 지 두어 달 가까이 됐지만 단 한 번도 순리적으로 말이 통한 적이 없었다. 무엇이든 싫고 어렵고 귀찮다고 했다. 세 살 난 어린애처럼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여인이었다.

첫날밤 그녀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목선후는 그분의 명 때문에 혼인했지만 그녀에게 특별히 나쁜 감정은 없었다. 목선후의 눈에 혼례복을 입은 안안용은 아름답고 가냘픈 여인이었다.

그런데 새 신부는 분노와 원망에 차서 자신이 부잣집 외동딸이어서 혼인한 거면서 고고한 척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 뒤로도 매일 문제를 일으켜 점잖으신 부모님이 뒷목을 잡게 했다.

그런데 흔쾌히 시중을 들겠다고 했어? 천지가 개벽할 일이군. 또 무슨 속셈인지.

주인의 좋지 않은 안색을 본 팽문이 조용히 덧붙였다.

“아씨께서 언제 오실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세세히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님께서 공자님도 늦지 않게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가 봐라.”

“네, 소인 물러가옵니다.”

하인이 물러가자 목선후는 방에서 나와 누각으로 올라갔다. 엊그제만 해도 저녁에는 선뜻했던 봄바람은 지금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다.

희고 수려한 청년의 얼굴에 황금빛 노을이 비쳤다. 짙은 눈썹 아래 서늘하고 긴 눈매가 아스라이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애롭지만 엄격한 그분의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조정에 출사는 절대 안 된다. 당쟁에 휘말려서 위험해지거나 네 신분을 아는 자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허락할 수 없다.’

‘사내로 태어나서 언제까지 이렇듯 무위도식하며 살 수 있습니까? 조정이 안 되면 군문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더더욱 안 될 말. 전장이 얼마나 위험한데! 네가 누구인지를 정녕 잊었느냐? 더 이상 철없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물러가거라.’

올해 과거시험이 치러지기 직전에 나눈 대화였다. 그렇게 얼굴을 붉히며 보낸 뒤에는 또 마음이 약해져서 귀한 선물을 한 보따리 보내시는 분이다.

이번에 주신 선물 중에는 귀한 산호 노리개가 한 쌍 들어 있었다. 새신부를 위한 장신구지만 그는 주저 없이 다른 선물과 함께 서재 한구석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 여인에게 줄 일은 없을 것이기에.

***

그날 저녁 안안용은 시집온 후 가장 소박하고 검소한 옷을 차려입었다. 머리도 그에 맞춰 단정하게 등 뒤에서 하나로 질끈 묶었다. 그래 봐야 내 눈에는 여전히 화려하게 촌스럽다. 안안용의 미모가 그 촌스러움을 가려 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때?”

나를 보는 정오와 말순의 표정은 안 좋았다. 내가 시댁 눈치를 보느라 초라한 차림을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냥 TPO(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에 맞추었을 뿐인데.

“아씨께서 이렇게 사시는 줄 마님께서 아시면 당장 오셔서 손목을 끌고 데려가실 거예요.”

“맞아요. 아씨가 이렇게 초라하게 입으시는 건 처음이에요.”

“어머니께는 말씀드리지 마. 알았지?”

현대에서는 내가 대학교 일 학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셔서 십 년 동안 혼자 살았었다.

미친 듯이 성공을 향해 뛰어다닌 것도 외롭고 불안해서였다. 의지할 부모님이 없으니 돈이라도 많아야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기대를 하지 않고 갔던 친정에서 극단적으로 정이 넘치는 오씨 부인을 만났다. 현대와 달리 고대의 나 안안용에게는 든든한 친정어머니가 있다.

기대하지 않은 뜨거운 가족애 때문에 엔도르핀이 마구 솟았다.

하녀들에게 다짐을 받고 시어머니의 거처인 안채로 시간 맞춰 들어갔다. 빙의한 후로 처음 보는 가족이므로 은근히 떨렸지만 백 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었던 수능 명강사의 내공을 믿었다.

주방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녀들과 함께 상에 나르고 의자를 정돈한 다음 가족들이 들어오기를 서서 기다렸다.

제일 먼저 동서인 장양란이 들어왔다. 이십대 초반의 청초한 미인이다. 내 눈에는 처음 본 여자지만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만 가볍게 숙였다.

내 인사를 받은 장양란이 빈정거리는 어투로 물었다.

“동서, 봄 감기에 걸렸다더니 이제 다 나았어?”

“네.”

그 순간 장양란의 등급이 떠올랐다.

칠 등급.

여기서 칠 등급은 수능 영어 칠 등급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이다. 일반적인 여인들이 등급외이니까 칠 등급이면 꽤 높은 수준이라고 추측되었다.

“다 나았다면서 또 탕약을 달이는지 냄새가 온 집 안에 나더군. 친정에서 보약이라도 가져왔나? 자네는 좋겠어. 비싼 보약을 끊이지 않고 대주는 친정이 있어서. 그런데 왜 자꾸 아프나 몰라. 누구는 일 년에 한 번도 안 먹어도 이렇게 멀쩡한데.”

중학생 시절 이후 이런 갈굼은 처음이라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동서 시집살이?

“그러게요. 좀 많이 허약해요. 제가.”

“허약하다는 사람이 나들이를 그렇게 자주 하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내 대답에 더 열이 받는지 장양란이 고개를 들고 나를 쏘아보았다. 손아래 동서가 게으름을 피우니 본인이 할 일이 늘어서 원망이 쌓인 듯한데 나는 앞으로도 집안일을 잘할 자신이 없다.

혼자 살면서 내가 직접 해 먹었던 요리는 라면뿐이었고 대부분의 옷은 세탁소에 맡겼다. 청소는 어지르는 사람이 없어서 이삼 일에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면 끝이었다.

부잣집 외동딸인 안안용이나 현대인인 나나 일은 똑같이 안 하고 살았다. 그래서 안안용의 친정에서 거대한 혼수를 보낸 거 아닌가?

장양란에게 앞으로도 아랫동서가 일을 잘할 거라는 헛된 희망을 심어 주지 않기로 했다.

“저는 집안일은 힘든데 나들이는 전혀 힘들지 않더라고요. 형님은 안 그러세요?”

철없는 부잣집 딸처럼 배시시 웃자 장양란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군, 자네.”

먼저 시비를 걸고 비꼬는 사람에게 순순히 져 주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없어서 말이지.

우리 두 사람이 어색하게 마주 보고 있는데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장양란은 나를 한 번 흘긴 다음 순종적인 표정으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곧 사십대 부부와 이십대 청년 두 사람이 긴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왔다.

힐끔 보니 시부모님은 품위가 있었고 두 청년은 깨끗한 연꽃처럼 수려하고 단정했다.

“아버님, 어머님. 동서가 와서 같이 준비를 했습니다.”

장양란의 상냥한 말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내 얼굴을 봤다. 먼저 시아버지와 시선을 맞추자 예상대로 높은 등급이 떠올랐다.

이 등급이다.

사십 초반의, 학자로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를 감안할 때 명성대로 실력이 매우 좋았다.

너무 빤히 쳐다보면 무례하므로 나는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사이 시부모와 두 형제가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서 있는 나를 시아버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렀다.

“작은 애야.”

“네.”

“산기슭에 핀 들꽃도 옮겨 심으면 한동안 앓는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몸조리를 잘하도록 해라.”

“네, 아버님.”

“너희도 앉거라. 가족인데 내외할 거 있느냐.”

시아버지의 말에 시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니다. 큰애는 앉고 작은 애는 서서 시중을 들 거라. 큰애도 시집와서 일 년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시어머니는 눈동자를 볼 수 없어서 등급이 안 보였다. 장양란이 시어머니 옆에 앉았고 나는 그대로 서서 두 손을 배꼽 아래에 모았다.

뭐, 이정도야.

안안용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억울할 텐데 나는 그녀가 아니니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

숟가락이 국대접에 부딪치는 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히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시어머니 뒤에 서서 식구들을 한 사람씩 살펴보았다.

형인 목이후가 남성적이고 다부진 미남이라면 동생인 목선후는 현실감이 없는 저세상의 잘생김을 가지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짙은 눈썹과 곧은 콧날, 그리고 날렵한 턱선이 돋보였다. 현대에서도 이 정도 비주얼은 스크린 너머에 있다.

어이, 잘생긴 학생.

빨리 고개를 들어라. 등급을 좀 보게.

수능 명강사의 호기심이 불끈 샘솟았다. 사 등급? 오 등급?

비주얼이 너무 좋으니 육 등급도 봐준다.

마침내 목선후가 시선을 들었다. 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친 순간 내 머릿속에서 팍! 숫자가 떠올랐다.

뭐? 일 등급?

시아버지가 이 등급인데? 목선후는 일 등급 중에서도 아주 밝은 색의 일 등급이다.

조건 반사적으로 내 입가에 침이 고였다. 현대의 수능 등급과 이 세상의 등급은 격이 다르다. 수능 일 등급은 4퍼센트이지만 이 시대 일 등급은 전국에서 몇 명 없다고 봐야 한다.

얘는 진정한 영재구나.

현대에 있을 때 내 학원의 간판스타가 되어 줄 진정한 영재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하지만 이렇게 밝은색의 일 등급은 내 학원이든 근처의 학원이든 한 번도 못 봤다.

너무 오래 빤히 쳐다봤더니 목선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긴 외꺼풀의 눈매가 휘어지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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