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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76화 (76/97)
  • 00076 69. 짝사랑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

    서로의 혀가 얽힐수록, 입술의 달싹임이 느껴질수록,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공유될수록 욕망은 그것들을 먹이 삼아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점점 커져간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걸까, 아니면, 했던 키스가 계속 반복재생 되는 걸까.

    분명히 아까부터 키스하는 중이라고 자각은 하고 있는데, 금방 시작한 것처럼 멈출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했을까. 생각하려고 해도 도란이의 조그만 움직임 하나에 그대로 뇌가 마비되어버려, 쾌락만을 갈구하게 된다.

    마치 내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이 된 것만 같다.

    도란이와 이렇게 격렬하게 키스를 주고받는데도 자꾸만 욕심쟁이처럼 욕망이 샘솟고, 더욱 탐하고 싶고, 허기가 지는 것처럼 계속해서 채우고 싶다. 조금만 더 격렬해지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더 좋아지지 않을까, 완전히 만족하지 않을까.

    점점 거칠어지는 내 키스도 거부하지 않고, 사랑스러울 정도로 얌전히 받아들이는 도란이 때문에, 고삐 풀린 말처럼 시간이 지나도 날뛰기만 할뿐, 자제하지 못하는 나다. 미치겠다. 키스하면 할수록 더욱 애가 타.

    더 깊이, 그리고 더 많이, 탐하고 싶고, 느끼고 싶다. 이러다 벌 받는 게 아닐까 겁날 정도로.

    잠시도 떨어지기 싫지만, 계속 호흡이 곤란한 상태가 지속되면, 욕심을 견디지 못해 이빨만 남아버린 에리직톤의 말로를 고스란히 겪을 것 같다. 가쁜 숨을 달래려고 도란이에게서 조금 거리를 벌렸다. 도란이에게서 떨어지니 그래도 장점은 있네. 도란이의 모습이 더욱 잘 보인다.

    …진짜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평소에는 마냥 부둥부둥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우면서, 지금은 귀여운 건 온데간데없고 모조리 탐하고 싶을 만큼 야하게만 보인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색기가 넘치는 거지. 몸선이 야해서 그런가, 아니면 눈꼬리가 길어서 반쯤 감기니까 요염하게 보여서 이러나.

    심지어 살짝 열린 입 틈으로 나오는 뜨거운 숨결마저도 빨리 다가오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인내심과 자제력은 이미 날아간 지 오래라, 유혹을 꺾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다시금 도란이에게 다가갈 준비를 했다. 내가 다가가려는 순간, 옆쪽을 바라보는 도란이다. 고개를 돌려서 그런지, 목선이 더욱 적나라하게 보인다.

    너 진짜 나 유혹하려고 작정했지. 유혹은 얼마든지 해도 되는데 다른 거 쳐다보지 마. 나만 봐.

    쭉 참고 있던 소유욕이 폭발해서일까. 도란이가 잠시라도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쳐다보는 걸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한 손으로 도란이의 턱을 감싸고서 나를 바라보도록 돌렸다.

    색기가 철철 흐르는 요염한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순진무구한 리트리버 눈빛으로 돌아온 도란이다. 그것도 모자라 나와 마주치자마자 울상을 한다.

    갑작스럽게 변한 도란이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린 나다. 언제까지고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욕망 역시, 있는 힘껏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머리를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키스가 별로였나, 아님 내가 너무 거칠게 대했나. 순간적으로 소유욕이 날뛰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것 같기도 한데. 많이 아픈가? 지금이라도 잡고 있는 손을 슬며시 놓아야 하나? 어쩌지? 어째야 하지? 일단 어르고 달랠까?

    “란아. 왜. 왜 그래, 응?”

    “…시간. 시간이.”

    도란이의 말에 아까 도란이가 바라보던 곳을 쳐다봤다. 차량 시계가 오후 1시가 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야 도란이가 울먹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망했네. 약속 시각이 1시인데.

    다가올 후환이 두려운지, 양손으로 머리를 헤집으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도란이다. 덕분에 완전히 이성을 되찾은 나는 도란이와 거리를 벌렸다. 일단 물티슈로 도란이 입술 주변부터 닦아줘야겠다. 번진 립스틱이 또다시 한바탕 벌이라며 유혹하고 있으니까.

    물럿거라, 악마야. 지금 2차전 벌였다간 도란이 죽는다.

    재빨리 뒷수습을 마친 나는 아까보다 더욱 잘 보이는 것 같은 뽀얀 살결에 슬며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내 욕망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욕망주제에 무슨 은신술이라도 배웠나. 뇌는 전혀 기억이 없는데, 도란이 셔츠 단추가 반 이상 풀어 헤쳐져 있다.

    …어쩐지 키스하면서도 목이랑 쇄골이 적나라하게 보이더라.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방비한 옷차림에, 다시금 욕망이 꿈틀거린다.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정성스레 단추를 채웠다. 끝까지.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서 안도하는데 운전석 등받이가 뒤로 넘어간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릴 뻔했지만, 간신히 버텼다.

    덕분에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나는 뭔가 싶어서 도란이를 쳐다봤다. 완전히 뒤로 넘어간 운전석에 누워 양팔을 엑스자로 가슴 위에 놓더니 눈을 꼭 감는 도란이다.

    “…안녕, 난 여기까지인가 봐. 내 장례식에는 새하얀 국화 대신 판다 인형이나 히어로 피규어를 놓아주길 바라. 그게 내 유언이야.”

    “뭔 소리야!”

    짝사랑 끝난 지 이제 겨우 1시간 될까 말까인데 사망선고 하지 마! 씩씩거리며 도란이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일어나! 내가 언니 막아줄 테니까!”

    “진짜?”

    언제 죽상을 하고 있었냐는 듯, 단번에 화색을 띠며 감았던 눈을 뜨는 도란이다.

    …이 인간, 진짜 약았다니까. 도란이 페이스에 제대로 휘말린 것 같아 울컥했지만, 까르르 웃으며 나한테 비비적대는 도란이를 보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분노다.

    나는 이렇게까지 이 멍멍이한테 물러 터져도 되는 건가. 슬며시 자괴감이 몰려온다.

    내 허리를 감싼 채로 내게 비비적대던 도란이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정말이지, 귀여우니까 봐줬다.

    “근데 이소야, 어쩌지?”

    “또 왜.”

    “…나 졸려.”

    말하면서도 도란이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는데도, 많이 졸린 건지 눈을 반만 뜨는 도란이다. 그것도 아주 간신히.

    이윽고 눈을 깜빡이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더니 도로 운전석에 쓰러지듯 눕는다.

    “…누나한…전화…”

    입을 오물거리면서 중얼거리던 도란이가 완전히 곯아떨어져 버렸다. …아까보다 이게 더 유언 같은데. 잠버릇 없이 얌전히 자는 게 이럴 때면 좀 무섭다. 죽기라도 했…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숨소리를 확인하니 아주 잘 들린다. 다행이다.

    도란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도란이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진료를 받는다고 전원을 껐나 보다. 전원을 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재중 전화 목록이 수두룩하게 뜬다.

    …안 봐도 누구인지 알겠다.

    부재중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전화를 걸어야 하니까 통화목록을 확인했다. 여전히 ‘절세미녀 예쁜 누님♥’이라고 되어있네. 은근히 자기 휴대폰에 무관심하다니까. 깊은숨을 내뱉고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너 진짜 죽을래?! 이 망할 시키야! 감히 나랑 한 약속을 깨는 것도 모자라서, 전화까지 씹어?! 어디야!”

    “…안녕하세요, 언니.”

    “응? 뭐야. 겸디, 너 설마 성전환…”

    “아뇨, 저 이소예요.”

    …보통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누가 도란이 사촌 누나 아니랄까 봐, 이쪽도 사고방식이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도란이가 아니라, 나인 걸 안 은유 언니는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살기를 버리고, 온화한 말투로 노선을 급히 변경했다.

    갑자기 이혁이한테 잘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하하, 이소 네가 웬일이야. 그것도 란이 전화로.”

    “…그, 그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대충 둘러대야 할까. 이렇게 화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도란이가 출산한 누나가 걱정돼서 자기 상태를 숨긴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한 나는 거짓말로 둘러대기로 했다. 사실은 당사자가 밝히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요새 란이가 매우 바빠서 계속 밤을 새웠거든요. 그것 때문에 너무 졸려서 운전을 못 할 것 같다면서 지금 잠깐 잠들었어요.”

    “…아, 그래?”

    “네. 한 4시쯤에는 깨울게요.”

    “응. 깨서도 너무 피곤해하면, 그냥 다음에 오라고 해. 괜히 졸린 상태로 운전했다가 사고 날라.”

    “네.”

    역시. 화나도, 보고 싶어도 동생 걱정이 먼저구나. 내 남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게 기뻐서 웃음이 나온다. 언니와 간단히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통화를 끝마쳤다.

    도란이 폰을 차량 사이드포켓에 넣고는 도란이를 쳐다봤다. 운전석에 누워 자는 것도 귀여워죽겠다. …이놈의 콩깍지는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거지. 언제쯤 벗겨지려나. 사실, 평생 안 벗겨져도 상관없지만.

    자고 있는 도란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 잡히는 게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잘 챙겨 먹여야겠다고 다짐한 주제에 아침도 안 먹였네. 원래 계획은 검사받고, 같이 늦은 아침을 먹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식욕이 아니라 다른 욕망이 충족되었네.

    행여나 곤히 자는 애 깨울까 봐, 도란이를 짓누르지 않도록 주의하며, 슬그머니 얼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마음만 같아서는 모조리 입술 도장을 찍고 싶지만, 입술에만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남겼다.

    “잘 자.”

    도란이에게 짧은 입맞춤을 건넨 뒤, 조수석으로 넘어간 나는 도란이처럼 등받이를 뒤로했다. 흐흐, 같이 누우니까 도란이가 더 잘 보인다.

    되도록 자는 애를 건들지 않고 싶었지만, 내 인내심은 생각보다 부족한가 보다. 도란이를 지켜보기만 하다가, 내 쪽으로 내밀어진 도란이 손을 덥석 잡았다. 다행히 조금도 깨지 않는 도란이다. 오히려 정면을 보고 자더니, 내 쪽으로 몸을 튼다.

    “예뻐 죽겠어.”

    꼭 맞잡은 도란이 손등에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혹시라도 깰까 봐, 금세 멈췄지만. 자는 것도 귀엽긴 하지만, 역시 깨어있는 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네.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욕망 때문에 그야말로 인내심 테스트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피곤은 금세 떨쳐내고 얼른 일어나, 잠꾸러기야. 일어나면, 또 찐하게 키스해줄 테니까.

    ============================ 작품 후기 ============================

    이루네님// 쿠크다스지만, 예뻐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도란입니다..♡

    류x님// 저도 도란이가 진정으로 밝아졌으면 좋겠어요 :D

    빗자루계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도란이스러운 댓글이에요! (감탄)

    soae님// 깜짝 연참이에요 /ㅅ/ 맘에 드셨나요? (수줍)

    violetmoon님// 짧고 강력한 웃음이었다고 한다

    8ㅇ811님// 헉, 이렇게 정성스러운 장문의 댓글을 남겨주시다니 /ㅅ/ 거기다 제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게 티가 팍팍 나서 엄청 감동이에요.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D

    月光天女璉님// 독자님들의 인내심도 테스트하는 소설 <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입니다 ㅜ_ㅜ. 사죄하는 마음으로, 다음에는 씨를 심자마자 뽑아버리는 작품을...(이게 아닌가)

    푹 쉬고 월요일에 등장했습니다. XD

    ....지긋지긋한 주중의 시작이지만, 부디 월요병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셨기를.

    다음 연재는 (월요병이 싫어 드러누움)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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