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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19화 (19/97)
  • 00019 19.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

    중학교 2학년 초반은 내게 있어 여러모로 어수선한 나날이었다. 언제나 함께 있을 줄 알았던 도란이네 가족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갈지도 몰랐으니까.

    화는 태어날 때부터 천식을 앓았는데, 천식 때문에 입원하는 일이 잦아지자 도란이의 부모님은 화를 위해 도시에서 벗어나서 생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셨다. 그래서 경기도 쪽에 집을 사두시긴 하셨지만, 섣불리 이사를 결정하지 못하셨다.

    갑자기 이사를 해버리면 도란이가 적응을 못할까 봐 걱정이 크셨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도란이와 화를 따로 살게 하면 오빠 바라기인 화가 울고불고하며 오빠만 찾을 테니 따로 살 수도 없었다.

    워낙에 친밀하신 도란이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기에 그 문제로 서로 의논하는 일이 잦아졌다.

    덕분에 나는 이사 얘기를 내내 들으며 싱숭생숭했었다. 지 누나 말고 도란이가 자기 친형이었으면 좋겠다며 지금도 말하고 다니는 망할 이혁이 놈이, 도란이가 이사 간다고 징징대는 걸 듣는 것도 피곤했고.

    역시나 그날 밤도 가족끼리 한데 모여 이사문제로 상의를 나눴다. 계속 듣고 있으니 기분이 울적해져 혼자 마당으로 나왔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학을 가는 건 몇 번 겪은 일이었지만, 도란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다.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어서 가족 같다고 생각해서인 듯했다.

    “추운데 여기서 뭐 해?”

    “…란아.”

    가뜩이나 싱숭생숭한데, 도란이까지 마주하니 저절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다행히 도란이는 어두워서 그런지 알아채지 못하고, 내 옆에 앉아 평소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애써 꾹 참았었는데, 더는 도란이와 이렇게 일상을 나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자, 도란이가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뭐야. 이소, 갑자기 왜 울어. 응?”

    “…란이 너, 진짜 이사 가?”

    “어, 음…. 글쎄.”

    부모님이 결정하실 문제이니 도란이가 모르는 건 당연했다. 도란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인 걸 알면서도 도란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가고 싶은지, 가기 싫은지.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도란이는 나긋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거기 가면 화도 안 아플 수 있을 테니까.”

    “너는 우리랑 헤어져도 괜찮다 이거야?”

    덤덤하게 말하는 도란이가 못내 서운한 나였다. 나는 자기랑 헤어지기 싫어서 이렇게 울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니까. 내가 쏘아붙이자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던 도란이는 이내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하나도 안 괜찮았어. 너랑 혁이랑 아주머니, 아저씨, 친한 친구들. 모두랑 멀어져야 하잖아. 그런데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휴대폰도 있고, 너희 부모님도 자주 놀러 오시겠다고 하시니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란아.”

    “떨어져 있는 만큼 더 자주 연락하면 되는 거잖아. …이소 너는 내가 이사 가면 나한테 연락 안 할 거야?”

    “뭔 소리야. 당연히 할 거거든? 심심하면 연락할 거야.”

    “응, 나도 그럴게. 네가 귀찮다고 할 정도로 연락할게.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마.”

    도란이는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보며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얘도 슬픈데 참고 있는 거구나. 도란이를 오래 봐 왔던 만큼 눈빛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애써 울음을 삼킨 나는 도란이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해. 이사 가는 게 정해지면, 나한테 가장 먼저 말하기로. 이사 가서도 나한테 꼬박꼬박 연락하기로.”

    “응, 약속할게. 너한테 가장 먼저 말하고, 연락도 꼬박꼬박할게.”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몇 번이고 약속했다. 반복되는 약속이 도란이의 말처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면 괜찮을 거라는 확신을 줬다. 울적했던 기분도 어느 정도는 가라앉았다.

    그렇게 괜찮을 줄 알았다.

    ***

    학교는 달랐지만, 학교가 바로 옆에 붙어있기에 등하교를 매일 함께했던 우리였다. 청소 당번이나 일이 있어 하교가 늦어지면 문자를 보내놓거나, 먼저 마친 쪽이 상대방 교문에서 기다리는 게 관례였다.

    종례가 끝나고 언제나 도란이가 서 있던 교문 쪽을 쳐다봤지만, 도란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기다려야 하나 보다. 툴툴거리며 도란이네 남중 교문 앞에 서서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도란이가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켜서 문자를 확인했지만, 도란이에게서 온 문자는 없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 녀석이기에 슬그머니 걱정이 싹텄다.

    혹시 나 몰래 이사를 가려고 등교하는 척을 한 건 아닐까 하며 허무맹랑한 망상까지 하고 있을 무렵, 도란이 반 친구가 나오는 게 보였다. 황급히 반 친구의 팔을 붙잡고는 도란이 아직 안 나왔냐며 물어보았다.

    그리고 친구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란이 점심 전에 먼저 갔어. 엄마랑 동생이 교통사고로…”

    나는 그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실감했다.

    반신반의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프게도 반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엄마는 아주머니와 화가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위반을 한 차량과 부딪혀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너무 놀라서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넋 놓고 있던 나는 힘들어하고 있을 게 분명한 도란이를 떠올렸다.

    다시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장례식장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아빠도 장례식장으로 오는 중이니 같이 오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아빠에게 연락해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부부로 유명했던 도란이의 부모님이라서 그런지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빈소에 보이는 두 사람의 영정사진이 난생처음 겪어보는 주변인의 죽음이 어떤 건지 실감케 했다.

    아주머니와 금실이 좋으셨던 아저씨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오열하고 계셨다. 아저씨를 보니 도란이에 대한 걱정이 점점 더 커졌다. 동생이 생긴 이후로는 거의 울지 않긴 했어도 원래 눈물이 많은 도란이인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저씨처럼 오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울어서 쓰러진 건 아닐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도란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아빠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엄마에게 도란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착잡한 표정으로 도란이가 병원 밖 벤치에 앉아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말을 듣자마자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며, 도란이를 찾았다.

    힘들게 도란이를 발견했지만, 도란이에게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다.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순식간에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도란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도, 아저씨처럼 오열하지도 않았다. 마치 눈만 깜빡이는 인형처럼, 벤치에 앉아서 초점 없는 눈으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나는 장례식 내내 도란이의 옆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리고 도란이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실 정도로 힘들어하셨던 아저씨였다. 도란이는 아저씨를 위로하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누가 봐도 어린애답지 않게 무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도란이를 걱정한 우리 부모님이 번갈아가며 옆집에 찾아가 두 사람을 다독거리고, 집안일을 도왔다. 부모님은 옆집에 갈 때마다 도란이에게 안부를 물었지만, 도란이는 그때마다 괜찮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아저씨는 어느 정도 추스르시고 일상생활을 재개하셨다. 도란이도 조금이지만 웃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 모습에 우리 부모님은 안도했지만, 나는 도란이가 웃는 게 불편했다.

    눈에는 여전히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는 주제에, 주변 사람들 때문에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는 게 티가 났으니까.

    친구들 역시 도란이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 건지, 주말에 도란이와 함께 놀 계획을 세웠다. 나는 친구들과 놀면서도 도란이가 걱정돼 계속 주시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과 어울리는 도란이를 보며 조금이라도 녀석의 기분이 풀리기를 기도했다.

    문제는 노래방에서 터졌다.

    성악가인 아주머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도란이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실력도 뛰어났다. 그래서 친구들은 도란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래방에 가는 걸 계획에 넣었었다.

    하지만, 노래방 입구에서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던 도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가겠다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모습에 놀란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 역시 도란이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도란이는 노래방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주저앉아있었다. 온몸이 벌벌 떨리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자 속상하고 안쓰러워서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떨고 있는 도란이에게로 가 녀석을 끌어안았다.

    “이 바보 똥 멍청이야! 그러게 왜 혼자 멍청하게 참고 있냐고!”

    “…이, 이소. 나, 나… 못 부르겠… 나…”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할 정도로 바들바들 떠는 녀석을 세게 안았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꼭 깨물고 있는 입술에서는 하도 세게 깨물어 피가 나오고 있었다.

    “울보 주제에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참는 거야. 꿋꿋이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처럼 보여서 불안해 죽겠단 말이야!”

    “…무섭 …무 …서워. 나, 나… 울어버리면 엄마가… 화가… 없는 게… 옆에 없다는 거…인정하는 것 같…”

    “…바보야. 아주머니랑 화는 없지만, 그래도 아저씨도 있고, 나도 있고, 혁이도, 우리 엄마아빠도, 친구들도 있잖아!”

    “그, 그렇지만…”

    아까보다 떨림이 심해졌다. 아무래도 부모님께 연락해야 할 것 같아 도란이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 순간, 도란이가 손등 쪽 손목을 반대쪽 손으로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손톱으로 잡아 뜯다시피 해 피가 나오고 있었다.

    놀라서 다급하게 손을 떼자 한두 번 그런 게 아닌 듯 손목에 흉터가 가득한 게 눈에 들어왔다. 그 흉터가 녀석의 다친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만간 도란이를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갈 거라는 마지막 경고처럼 느껴졌다.

    두려웠다. 이대로 도란이마저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도란이의 손을 꼭 붙잡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렇게 무서우면 내가 평생 옆에서 같이 있어 줄게. 빈자리가 무서운 거면 내가 엄마든, 동생이든, 누나든, 뭐든 되어줄 테니까…! 제발, 란아. 무서우니까 그렇게 참지 마. 너까지 잃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는 계속해서 너까지 잃고 싶지 않다고, 제발 도란이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빌었다. 그러자 도란이도 그동안 참고 있던 걸 터트리듯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서 한참을 오열했다.

    나중에는 도란이가 걱정돼서 찾으러 나온 친구들까지 합세해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누군가가 학생들이 단체로 울고 있다는 신고를 할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펑펑 울었다.

    ============================ 작품 후기 ============================

    푸른달유에님// ㅠㅠ. 언제나 텐션 높은 도란이도 아픈 상처가 있답니다. 늘 밝은 내용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번편도 슬픈 내용이라 후다닥 올렸습니다.

    골목을 지나가던 행인1 : 뭐지, 신종 종교의식인가. (공포)

    서-프-라-이-즈 예고치 않은 연재! 자유 연재의 힘…이 아니라, 너무 울적한 내용이라 후다닥 넘기려고 ^_T

    내일 올라올 외전은 본편의 전개와는 전혀 상관없으면서도 상관있는 내용입니다 :D

    일요일은 본편 연재예요! (엄마, 제가 한 소설 주 5회 연재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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