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93화 (93/111)
  • #93

    “제법 고위 마법인걸?”

    아마 황궁에서 일하고 있는 제국인들이 안다면 놀라서 까무러칠 상황이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마법사의 존재가 1 황자에게 붙어있다는 의심이 확산되면서 헨리는 저택에서 놀고먹는 셀바를 황궁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샐리 역시 헨리의 결정을 돕기 위해 함께 황궁에 방문했다.

    “그렇다면 상당한 실력자가 1 황자에게 붙어있다고 봐도 되는 건가.”

    “그렇지. 보통 순간이동 마법이라면 남겨진 코드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그런 코드도 남아있지 않은 걸 보아하니 제법 실력이 있는 것 같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아하니 이쪽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야겠군.”

    “어중이떠중이 수준은 아니라는 것뿐이야. 그건 그렇고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거 맞아?‘

    본인이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제국의 황궁 안에서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있으면 안 되기는 하지.”

    “제국인들이 알면 놀라겠는걸. 그토록 혐오하는 마법사가 황궁의 감옥을 방문해서 도움을 주고 있으니 말이야.”

    셀바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 입가에 미소가 만개해 있었다.

    “그래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것이 아쉽군. 이쪽에서는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데리고 온 건데 말이야.”

    “현장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더 찾을 수 있었어.”

    1 황자에게 붙어있는 마법사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목숨을 걸 정도의 유의미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헨리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셀바를 쳐다봤고, 셀바는 그런 헨리의 반응이 어이가 없었는지 곧바로 받아치는 모습이었다.

    순간이동 마법이야 저쪽에서 확실하게 준비한 카드이기에 저택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것을 바탕으로 추적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 셀바였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즉흥적으로 쓰인 마법의 흔적을 찾기를 원했는데, 감옥 안의 시체를 치우고 소독까지 맞춘 상황에서 이미 남아있던 마법의 흔적들도 사라진 뒤였다.

    “그쪽에서 조금만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이미 찾고도 남았어.”

    셀바는 오히려 헨리에게 핀잔을 날리며 반격했다.

    “크흠, 그건 사과하지.”

    잘못한 게 있다면 변명을 늘어놓을 것 없이 바로 인정하는 것이 좋았다. 결국 본인의 실수로 1 황자가 도망친 장소를 바로 알아낼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니 말이다.

    ***

    “샐리?”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그냥 조금 심란해서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인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피곤이 찌든 얼굴의 클로에가 정원의 그네에 힘없이 걸터앉아있었다. 셀바가 황궁으로 입궁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샐리는 그날 클로에와 제대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던 것이 여전히 찜찜하게 남아있었다.

    “옆에 앉아도 되나요.”

    샐리는 바로 옆에 바람에 살짝 흔들거리는 다른 그네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이죠. 제가 그네 주인도 아닌데.”

    클로에의 목소리에서 이전과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쾌활하면서도 명랑한 소리로 귀가 즐거워지는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축 처진 목소리가 우중충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난번의 일은 미안해요.”

    “네?”

    “그냥 나도 모르게 조금 흥분했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도 마찬가지로 흥분했는데요, 뭘.”

    그때 서로 언성을 높였던 일이 생각나자마자 샐리와 클로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했다. 물론 던져진 주제가 제법 과격하기는 했지만, 술기운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없으시죠?”

    “그렇게 흔들릴 거였으면 애초에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잠깐 이어진 대화는 또 금방 끊겼고, 어색한 침묵에 둘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먼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말없이 그네만 타고 있던 두 사람 사이에 2 황자인 토니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갑작스럽게 전개되었다.

    “제국의 2 황자 토니 크리스토퍼 님을 뵙습니다.”

    “하하,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소. 스테판 공작.”

    샐리와 클로에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모르는 토니는 샐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미 1 황자인 오언을 몰아내면서 동시에 대륙횡단 열차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에서 샐리를 거의 가까운 친우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정도의 친밀한 감정 표현은 샐리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대도 소식을 듣고 온 건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내 토니의 얼굴에 순식간에 지는 그늘이 졌다. 아무래도 그의 입장에서도 1 황자 오언의 탈옥 사건은 꽤 골치 아픈 사건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까지 추정되는 파편들로 봤을 때 오언은 분명히 이대로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형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왔던 토니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부담스러운 상황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요즘 잠도 잘 못 자고 있네. 이제 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나 했더니 마법사가 엮여있을 줄이야.”

    “이렇게 된 거 황제 폐하를 독살한 범인을 찾는 것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샐리의 말에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황제가 독살당했다는 것 이외에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관계가 전혀 없었다. 중대한 사건이니만큼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는 바이지만, 제국의 황제가 살해당한 사건의 범인을 이렇게까지 찾아내지 못하는 건 다른 의미로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날 뭐라고 생각할지….”

    토니는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의 여론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떻게 신경 쓰지 않겠나. 하아, 벌써 피곤하군.”

    토니는 관자놀이 쪽을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여론에 신경 쓰며 자신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것에서 샐리는 이미 결정했던 바를 다시 한번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황자님과 따로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괜찮으신지요.”

    “스테판 공작이라면 난 언제나 환영이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원에서 차라도 한잔하는 거 어떻겠나.”

    “황자님이 원하신다면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성녀님도 함께 해도 괜찮겠나?”

    그 말에 샐리는 클로에를 슬쩍 쳐다봤다.

    ‘저도 껴도 괜찮나요?’

    입 모양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클로에는 샐리를 설득하려면 지금 이 시간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찝찝한 상태에서 끝난 대화를 이어 나갈 차례라는 생각에 클로에의 얼굴에는 저절로 절실한 감정이 드러났다.

    “그래요, 그럼.”

    샐리 역시도 찜찜했던 마음 한구석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뭔가.”

    “차기 황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차기 황제? 난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1 황자에 대한 건 저희 쪽에서 천천히 알아볼게요. 심상치 않은 부분이 있기는 한데 저쪽에서도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예요. 그게 뭐가 됐든.”

    이제 막 탈옥한 범죄자가 바로 움직이려 해봤자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수도로 사들인 대량의 무기와 관련된 건도 있었고, 저쪽에서도 분명히 커다란 폭탄을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지금 샐리는 1 황자 쪽에 크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긴장의 끈을 약간 놓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가. 그건 그렇고 그대가 황제의 자리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군.”

    “아무래도 입장이 달라서요.”

    그 말에 토니도 무언가 있는 것을 눈치챈 듯 곧바로 곁에 있는 하녀들을 물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아서 조마조마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찻잔을 들던 클로에는 도로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직 그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

    “2 황자님을 지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샐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토니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이윽고 드러난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전 2 황자님이 제국을 이끌어나갈 황제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가장 든든한 우군을 잃어버린 것은 이제 좋은 날만 그리던 토니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동안의 냉대와 위협을 이겨내고 이제야 떳떳하게 정상의 자리에서 꿈을 펼칠 생각만 하고 있던 토니였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샐리가 추가적으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녀가 생각하는 바를 토니도 알았다. 클로에가 옆에서 뭐라 거들기도 전에 샐리와 토니의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될 필요 없이 바로 종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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