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83화 (83/111)
  • #83

    “어디 갔다 오십니까.”

    “아, 그냥 아내와의 데이트가 있어서. 무슨 일이지?”

    “저희 쪽 정보통에 대장께서 흥미가 있으실 것 같은 소식이 있어서요.”

    “흥미로운 소식?”

    “수도에 무기를 밀반입한 조직이 있는데 그 꼬리를 잡은 것 같다는 겁니다.”

    그 소식에 헨리는 관심이 생겼는지 자신에게 보고하러 들어온 부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수도에 무기를 밀반입했다고?”

    “정확히는 수도에 있는 조직이 무기를 밀반입하는 데 가담했다는 소식입니다.”

    “출처는.”

    “그것까지는 아직….”

    샐리가 말했던 1 황자의 사병 양상과 관련 있어 보이는 정보였다. 페드로 산하의 레귤러즈라는 조직이 가진 정보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정보를 캐낸다고 했는데, 능력이 없으면 목숨을 건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샐리에게 이 모든 짐을 지게 할 생각이 없었다.

    수도방위대의 대장이라는 직함이 허수아비처럼 느껴지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부하들에게 최대한 말을 둘러대며 수도에 반입하는 물품들에 대한 체크를 더욱 엄격하게 진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 나온 것이었다.

    “압수한 무기들은 제대로 처리했나?”

    “물론이죠. 그런데 그 녀석들 말로는 어느 버려진 성에 모여있던 무기들 중에서 일부를 빼돌린 거라고 하더군요.”

    “흐음, 그래?”

    이번 건은 확실히 꼬리를 문 것 같았다. 잘만하면 카지노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핵심적인 증거를 얻어낼 수도 있는 셈이었다.

    “루트는 확보했나.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최종 목적지는 본인들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저희도 최대한 힘을 내봤지만, 알면서도 말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군. 그래도 수고했네. 이 정도면 많은 걸 알아낸 것 같군.”

    샐리와 있을 때와는 다른 담백하면서도 딱딱한 어조로 대답한 헨리는 부하에게 보고받은 버려진 성의 위치를 지도 위에서 찬찬히 살폈다.

    확실히 뒤에서 구린 일을 하기 좋아 보이는 위치에 명령만 내리면 부하들과 함께 덮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헨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주안의 묘비에서 자신을 덮쳤던 정체불명의 괴한이었다.

    주안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실력자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히 만만히 볼 조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근래에 들어오는 소식통에서의 거대한 스케일에 가담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헨리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사전답사를 해야겠군.’

    언제나 그래왔듯 헨리는 먼저 혼자서 적진을 탐방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승리의 확률을 올려주는 그만의 필승법이었다.

    ***

    “어때. 내 말대로 같이 오니까 좋지?”

    처음 휴가를 계획했을 때 바쁘다며 혼자 갈 것을 권유한 제이스였지만, 클로에는 처음부터 혼자 이곳으로 올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무기를 밀수하여 1 황자의 행적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 지금 더 이상 바쁘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클로에는 결국 본인이 원하던 대로 제이스와 함께 이곳 숲속의 버려진 성으로 휴가를 왔다.

    “그러게.”

    “이렇게 재충전의 시간도 가져줘야 해.”

    “그래, 네 말이 맞다.”

    못이기는 척 따라온 것치고는 제이스 역시 오래간만의 여유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특히나 오늘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을 때는 다른 건 필요 없이 잔디에 자리만 깔고 누워있어도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사람이 왔다 가기라도 한 건가.”

    “무슨 문제 있어?”

    “아니, 그냥 사람이 왔다 간 흔적들이 보여서. 분명 마지막에 왔을 때 깔끔하게 정리도 하고 갔는데 뭔가 어질러져 있잖아.”

    모르는 체하며 무슨 일인지 묻는 제이스에게 클로에는 부산스럽게 어질러진 실내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 하나가 머물다간 흔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제법 많은 사람의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뭐, 이런 버려진 성이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물다가 갈 수도 있지.”

    “그런가….”

    “주방이 어디 있더라.”

    “주방은 왜?”

    “오랜만에 솜씨나 발휘해볼까 했지.”

    여전히 긴가민가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클로에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제이스는 황급히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두 사람의 휴가에 있어서 하나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는 자신의 요리 솜씨를 뽐내기 위해 주방을 찾았다.

    “정말?”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있어. 여기 올 때마다 내가 해줬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이렇게 같이 휴가를 온 건 오랜만이라 그렇지.”

    함께 제국의 수도로 올라온 뒤에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과는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항상 남몰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제이스와 그런 제이스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에는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 성녀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클로에. 두 사람은 예전처럼 순수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가 없어졌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는 어쩌면 두 사람에게는 특별하면서도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었다. 특히나 클로에는 과거의 향수가 나는 지금과 같은 여유에 갈증을 느낀 것이 확 펴진 얼굴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더군다나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휴가를 거부한 제이스를 가볍게 째려보는 것에서 그녀가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말하면 다 해줄 거야?”

    “음, 재료 내에서 가능하다면.”

    제이스 역시도 이 부분을 잘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오늘과 같은 날을 얼마나 기대했고, 자신에게서 얼마나 서운함을 느꼈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 역시도 오늘만큼은 다른 생각은 잠시 접어둔 채로 순수하게 하루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제이스에게는 이러한 여유가 허락될 여건이 없었다. 더군다나 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의 중심에 발을 걸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여긴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클로에와 제이스 두 사람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숲속의 고성에 헨리가 찾아왔다.

    헨리는 부하가 알려준 성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탐방했고, 꽤나 많은 사람의 왕래가 있었던 흔적들을 숲 곳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

    “뒤에 있는 거 다 알아.”

    “칫, 재미없어.”

    “나한테 그런 장난 안 통하는 거 알면서도 계속 시도하네.”

    “그야 한 번쯤은 놀라게 하고 싶으니까 그러지.”

    “맨날 당하기만 하니까 분해?”

    주방에서 샌드위치와 스튜를 조리하고 있던 제이스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의 주인이 클로에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예전에 자신의 뒤를 덮치려고 할 때보다도 훨씬 더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제이스의 날 선 감각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위에서 하녀랑 놀고 있지 여긴 왜 왔어.”

    “그냥 단둘이 있고 싶어서.”

    성녀의 출가를 궁에서 그냥 허락할 일이 없었다. 원래라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을 대동했어야 했다. 그 부분에서는 2 황자인 토니가 신경 써준 덕분에 제이스의 밑에서 훈련받아 하녀로 잠복해있는 길드원 한 명만 대동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클로에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보였다.

    단둘이서 즐기는 휴가에서 그녀는 잊었던 설렘의 달콤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저 친구끼리 가볍게 마실을 나온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흐음, 우리 성녀님께서 뭐가 그리 불만이실까?”

    “그렇게 부르지 마.”

    이미 목소리에서 잔뜩 심통이 나 있는 클로에였다. 그리고 그런 클로에의 기분을 제이스는 이미 눈치를 챘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아주 잠깐이나마 허락된 일탈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이곳 제국에 온 목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이스는 자신을 흔들리게 할 그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도 휩쓸릴 생각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너무 멀게 느껴져.”

    이 말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하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클로에의 이 말은 분명히 무언가를 떠보려는 의중이 섞여 있었다.

    “내가?”

    “응.”

    “이래저래 바쁘게 움직이느라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덕분에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섰잖아.”

    “우리의 목적 맞지?”

    또 한 번의 침묵은 클로에의 마음 한구석에 조금씩 피어오르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굳이 그의 입으로 직접 듣지 않아도 이미 대답을 들은 것 같은 기분에 클로에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위층의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제이스는 재빠른 걸음으로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려 하는 클로에를 붙잡으려던 손을 끝내 끝까지 가져가지 못했다.

    “이런 더러운 손으로는 널 잡을 수가 없어.”

    제이스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던 손을 거두어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그가 말했던 대로 어쩌면 예전으로는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온 느낌이었다. 이미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그였다. 그렇기에 제이스는 과연 클로에가 봤을 때 자신의 존재가 어떤 색으로 표현됐을지 걱정되었다.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진 걸로 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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