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82화 (82/111)

#82

“근데 지난번에 들었을 때 노예 경매 말고도 다른 즐길 거리도 많다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나요?”

“아, 투기장도 있습니다.”

“투기장이요?”

“이것도 노예들을 이용한 건데 대충 경매에서 팔리지 않은 노예들을 써서 싸움을 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관중 분들께서는 그 결과를 가지고 돈을 거시며 투기장을 즐기시지요.”

“그 노예들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하나요? 그게 아니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

이것은 일종의 떠보기였다.

목숨이 달려있다면 뭐가 안 될 수가 없는 구조이겠지만, 뭐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이런 불법시설에는 무언가 더 캐낼 만한 것들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희 투기장에서 쓰는 약물이 있어서 그 부분에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이디께서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관심이 있으신가 보군요.”

“원래 얌전해 보이는 고양이라도 그 속은 모르는 법 아니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하.”

질문의 진짜 의도도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직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샐리의 농담에 반응했다. 벌써 이렇게 술술 불어도 괜찮나 싶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있었을 테니 제 딴에는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노예 경매부터 볼까요? 경매장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 방안에서 가실 수 있습니다.”

“방안에서 간다고?”

조용히 대화를 듣던 헨리는 직원의 말에 방을 둘러보며 두 사람의 대화에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네, 지금부터 경매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여드리죠.”

그렇게 말한 직원은 입구 쪽에 놓여있는 화분으로 다가가 그 화분을 시계방향으로 6시 정도 되는 위치까지 돌렸다. 그러자 끼긱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벽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경매장의 입구가 등장했다.

“이곳이 바로 경매장의 입구입니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치였다. 얼마나 정교했느냐면 샐리도 헨리도 방에 들어와 느껴지는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경매에 참여하기 위한 번호표를 가진 채 제법 고급스러운 소파 자리에 착석했다.

경매장 안은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어두운 조명 아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쓴 이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며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나 바로 옆의 남자가 피는 담배 연기가 곧바로 샐리가 앉아있는 자리로 넘어와 샐리는 그 불쾌한 연기에 연이어 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빨리 나가고 싶네요.”

“그러게나 말이오. 조금만 참으시오.”

헨리 역시도 샐리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 불쾌한 공간을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가 앞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제국에는 이런 더러운 장소 따위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꽉 물었다.

***

“제국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네요.”

샐리는 아까부터 자신의 자리로 담배 연기를 보내던 남성이 통역사를 이용하여 경매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본 적 없는 차림새도 그렇고 거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자세가 어딘가 먼 나라의 귀족처럼 보였다.

“이런 스케일이라면 1 황자가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하겠군.”

“그러게요. 오히려 그 정도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예요.”

“그대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이오. 기왕 잠입했으니 카지노의 사장되는 사람의 방에 쳐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

헨리의 말은 아예 순식간에 현장을 덮쳐 미처 감추지 못했을 증거들을 손에 넣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박성이 짙어 보였다. 행여나 확실하게 엮을 증거가 없다면 말 그대로 허탕밖에 되지 않았다.

“전 다름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샐리 그대가 생각하는 그림은 어떤 것이오.”

“셀바의 조수에 대해 얘기했었죠?”

샐리의 말에 헨리는 마정석 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맥에 묻혀있던 무수한 양의 마정석은 야르만족의 도움으로 스테판 공작가의 지방 영지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머무르며 마정석을 지키는 역할을 통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었고, 샐리 역시 신용할 수 있는 전사들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 그 마정석의 존재를 공개할 생각이에요.”

“괜찮겠소?”

“그럼요. 우리 제국에 아주 좋은 소식일 텐데요.”

“좋은 소식이라니. 그 마정석과 카지노가 연관되어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정확히 들으셨어요.”

역시나 헨리는 생각했던 대로 눈치가 빨랐다. 샐리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셀바의 조수라는 남자의 설계도가 깊은 인상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 그려진 열차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샐리는 그것이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묘안이 되어주리라는 것에 확신을 얻었다.

“대륙 횡단 열차를 건설할 계획이에요. 동대륙과 서대륙을 이어줄 거대한 열차를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 열차 길에 이 카지노를 넣어버릴 생각이로군.”

“정답이에요.”

마치 장난기가 많은 개구쟁이처럼 눈빛을 반짝이는 것에서 그녀가 이 계획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 지가 드러났다. 대륙횡단 열차와 그 중심이 되는 제국의 번영은 제국의 그 누구라도 반길 묘안 중의 묘안이었다.

마법사의 조수라는 신분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신분이라는 것도 걸리지 않을 선에서 만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은둔의 발명가.

샐리는 혁신적인 인재의 등장을 사람들의 환호와 열광을 이끌어낼 가장 적절한 시기로 잡은 것이었다. 특히나 요즘 같은 흉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국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계획을 먼저 발표하면 저쪽에서도 대처할 시간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

“제가 계획을 발표하는 날 바로 덮쳐야죠.”

“아하, 알겠소.”

샐리가 생각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듯 헨리 역시도 샐리와 같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가 생각한 대로 대륙횡단 열차 계획을 발표함과 동시에 헨리는 수상한 소문을 듣고 카지노에 잠입하여 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행태들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을 토대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제 빚쟁이들에게 시달릴 이유도 없어지겠네요. 열차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천천히 갚아야겠어요.”

샐리는 이미 계획이 성공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 뒤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경매장에서는 무대 위에 조명을 받으며 나온 진행자가 장내의 분위기를 서서히 예열시키기 시작했고, 이윽고 목줄과 수갑을 찬 노예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기 시작한 샐리와 헨리는 이전까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던 분위기는 차갑게 식은 채 비참하게 경매장에 끌려온 이들의 얼굴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그중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울자 진행자는 손에서 어떤 장치를 꺼내더니 그 장치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 아이는 고통스럽게 자신의 목줄을 부여잡은 채로 바닥을 굴렀다.

그 참혹한 광경에 샐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다. 그리고 잇몸에 무리가 가 출혈이 날 것이 걱정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보기 힘들면 말하시오.”

“보기 힘들어요.”

헨리의 말에 샐리는 곧장 이 광경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노예 경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상했던 부분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머릿속의 상상과 현실에서의 광경은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한 샐리를 보자 헨리는 곧바로 자신의 큼지막한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 뒤 남은 한 손으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투기장은 나 혼자 가도 괜찮소.”

“같이 가요.”

“정말 괜찮겠소?”

“그럼요. 이런 거에 약해지면 여기에 온다는 소리도 안 했을 거예요.”

이미 많이 힘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인 채 하는 말에 설득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저 가혹한 취급을 받는 이들은 이보다도 훨씬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제 손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지 못하고 비참하더라도 살아가는 것이었다. 가슴 속에 아주 작더라도 희망의 빛을 품은 채 말이다.

그리고 샐리는 그 사람들이 아직 놓지 않고 절박하게 잡고 있는 희망의 불씨를 크게 키워줘야 하는 사명을 갖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후아, 후아.”

샐리는 콩알만 해진 가슴을 키우기 위해 크게 심호흡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아무리 봐도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며 목을 부여잡은 채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악을 쓰며 비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약한 면이 튀어나왔다.

“그게 누구라도 힘들어했을 거요.”

헨리는 샐리보다는 감정을 통제하는데 훨씬 더 능통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관객들이나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아이의 복부를 발로 차며 학대하는 진행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로 용서가 안 돼요.”

“나도 마찬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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