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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40화 (40/111)
  • #40

    발언할 때 의자에서 일어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형식의 회의 방식이 샐리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헨리가 손을 잡아준 덕분에 몸을 지탱해줄 힘이 생겨서인지 그래도 기운을 내 말을 이어 나갔다.

    “수도라는 것은 국가의 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제국에는 헨리 경 이외에도 훌륭한 무장들이 많으니 폐하께서 바라시는 일을 진행하는데 별 무리 없으리라 판단이 됩니다. 다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는 수도를 지키는 데에 있어서 헨리 경만 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그렇다면 공작께서는 새로 재편되는 군의 통수권을 펠릭스 경이 아닌 헨리 경에게 맡기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폐하, 펠릭스 경도 헨리 경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처지지 않는 인물이옵니다. 더군다나 황성의 근위대로 오랜 시간 근무하였으니 이런 방면에 있어서 더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반대편에 앉아있는 귀족 중 하나가 곧바로 반대하고 나섰고,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다른 귀족들도 앞다투어 한마디씩 거들었다.

    “흠, 의견이 분분하니 이거 결정하기가 힘들구만. 공작 그대의 말대로 헨리 경을 수도 방위대 대장으로 앉힐 경우 어떤 이점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샐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감에 찬 대답을 하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

    “첫째, 헨리 경은 제국을 넘어서 대륙 최고의 기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 평판과 위상이 대단합니다. 그런 사람의 존재 하나만으로 수도 내의 백성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면서도 불한당들이 함부로 설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실력 있는 기사의 존재로 앞으로의 기사 양성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헨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가 수많은 전쟁에서 세운 공을 생각하면 지금의 대우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황제도 말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이 크고 작은 싸움을 계속 일으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거의 죽으러 가는 싸움에서도 헨리는 언제나 승리하며 상처 하나 없이 귀환했다. 그리고 언제나 승전보를 들고 오는 헨리는 제국민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남편이 될 사람이 워낙 잘나서요. 이름값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굉장하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샐리는 의도적으로 처음에 자기와 헨리에게 시비를 걸던 클럭슨 백작과 눈을 마주치며 말하고 있었다.

    “흥, 겨우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 추천하는 것이오?”

    “그럴 리가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실전 경험의 차이입니다. 단순히 치안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도를 방어하는데 있어서 헨리 경의 전투 능력이 펠릭스 경을 월등히 앞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전투 경험? 지금처럼 평화로운 수도에 그런 것이 왜 필요하오. 공작께서는 너무 과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굳이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 없이 너무 나대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백작께서는 너무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뭐, 뭐요?”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제국에게 대륙의 국가들이 하나둘 이빨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수도를 방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그, 그건.”

    “폐하, 헨리 경의 공성과 수성의 전투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니 굳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극히 지당한 논리에 클럭슨 백작은 당황하여 입이 얼어붙었다. 샐리는 그런 클럭슨 백작을 그냥 무시하고 황제에 자신의 의견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

    “헨리 경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펠릭스 경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아니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폐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안?”

    “네, 누가 더 뛰어난지 애매하다면 자웅을 겨뤄보면 간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샐리의 제안에 황제는 솔깃하다는 듯 관심을 가졌다. 기대를 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태 지루하게 앉아있던 황제는 어느새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상체를 숙이면서 샐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래서 둘 중 더 뛰어난 자를 가려 적임자로 만들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헨리를 추천하는 것도 근거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 생길 반발까지도 예상한 대처방안이었다. 애초에 샐리는 여기까지 설계를 해두었고, 젊은 귀족들은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며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반대파의 경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결국 결정권은 황제에게 있었기에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군. 조만간 날짜를 잡아보지.”

    드디어 샐리가 공작으로서의 정치 무대에 데뷔를 완료하였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할 일이 끝나자 어떻게든 버티던 힘이 다 빠져 샐리는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대?”

    여전히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헨리는 자신의 부름에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샐리로부터 심상치 않은 사태를 느꼈다.

    “폐하, 제 부인이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양해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공식 석상에서 처음 써보는 낯간지러운 호칭. 하지만 그런 간질거리는 분위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그리고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헨리는 샐리를 안고 곧바로 회의장을 거의 뛰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뒤에서 귀족들이 수군대기 시작한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헨리의 머릿속에는 지금 당장 샐리를 어떻게 해서든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들리지도 않았다.

    ***

    상황이 터졌을 때 언제나 냉정하고 흔들림 없이 일을 처리하던 헨리도 이번에는 심하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어찌나 당황한 것인지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 식은땀이 그의 조급함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칼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봤음에도 자신의 품 안에 힘없이 기대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샐리를 보고 있으니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젠장, 단순한 몸살이라며.’

    헨리는 약도 먹고 푹 쉬었음에도 이토록 낫지 않는 몸살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샐리의 몸 상태가 어쩌면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 조급해졌다.

    의사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혹시 생명에 지장이 생기게 된 것은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자 헨리는 제아무리 예법을 중시해야 하는 황성 안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내려주세요.”

    나중에 안 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마차까지 전력으로 질주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때 정신을 차린 것인지 목이 쉰 채로 자신을 내려달라는 샐리의 목소리가 헨리의 귀에 들어왔다.

    “그대 괜찮은 것이오?”

    “괜찮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내려주세요.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요.”

    파리해진 안색으로도 샐리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까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려는 샐리에게 헨리는 울컥 화가 나기 시작했다.

    “꼴사나울 것이 뭐가 있소. 그대와 나의 사이라면 이미 이 황궁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본다면 입이 가벼운 자들은 기뻐할 테지.”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할지라도 상대는 환자였다. 그렇기에 헨리는 최대한 감정을 삭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언성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모습이 부끄럽다고 생각한다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시오. 난 그대를 내려줄 생각이 없으니 불만이라면 본인의 힘으로 내리면 될 것이오.”

    헨리 본인도 모르게 조금 까칠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만큼 걱정을 했다는 뜻이었다.

    “스테판 공작님?”

    때마침 황궁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있던 클로에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이런 데서까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며 혀를 차며 지나가는 하녀들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옮긴 것인데, 헨리의 품에 안겨 있는 샐리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아 종종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예의를 차리지 못하는 부분은 성녀께서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클로에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헨리였다. 헨리는 생기가 넘치는 과일처럼 탐스러웠던 샐리의 입술이 힘없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봤고,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잠깐만요.”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에 클로에는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으며 질주 본능을 일깨우려는 헨리를 저지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헨리는 자신을 가로막은 클로에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노려봤다. 클로에는 그런 날카로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샐리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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