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39화 (39/111)
  • #39

    “황제 폐하의 은덕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닐세. 앞으로 제국을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진보적인 생각 덕분 아니겠는가. 그보다도 오늘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군.”

    이것은 일종의 엄포였다.

    하지만 이 엄포는 일리가 있었다. 샐리 역시도 나름대로 배려를 받았음을 알고 있었다. 황제는 스테판 공작가가 여전히 자신의 뜻을 지지하기를 바랐고, 순식간에 공작가를 차지한 샐리의 기량을 굉장히 높게 사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실망, 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난 자네의 그 자신감이 참 마음에 들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샐리에게 가볍게 환영 인사를 건넨 황제의 시선은 이제 바로 옆에 있는 헨리에게로 옮겨갔다. 샐리를 바라볼 때와는 그 시선의 온도가 사뭇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자해 보이는 미소는 유지되고 있었다.

    “자네도 있었군.”

    “네, 폐하.”

    “그러고 보니 또 그 야만족들이 근처 마을을 습격했다는데 소식 들었나?”

    “들었습니다, 폐하.”

    “그렇군.”

    샐리를 대할 때와는 달리 완전히 싸늘해 보이는 것이 온도 차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곧 부부의 연을 맺을 두 사람인데 이렇게 온도 차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특이하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정무회의를 시작하지.”

    그렇게 시작된 정무회의는 샐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고 가는 현장이 아니었다.

    서로 신체적인 폭력만 행사하지 않고 있을 뿐.

    투기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양 세력으로 갈라진 회의장에 속한 많은 귀족들의 입이 쉼 없이 움직이며 말로 싸우고 있었다. 그 열기가 좀 심하다 싶을 때만 황제가 직접 나서 중재를 할 뿐이었다. 그 외에는 귀족들은 최대한 상스럽다고 생각하는 단어들만 골라내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가며 서로를 모욕하며 헐뜯었다.

    “재밌네요.”

    분명히 재밌는 광경이기는 했다. 평소 자신들의 품위를 자화자찬하며 조금이라도 신분이 낮은 이들을 깔보는 귀족들이 싸움 개들과 다름없는 말 그대로 개 같은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니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편하게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몸 상태가 다시 나빠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해서였다.

    “다시 안색이 안 좋아지고 있소.”

    그리고 그런 안색의 변화를 헨리는 놓치지 않고 곧바로 포착해냈다. 애초에 그가 이 회의장에 온 이유가 바로 아슬아슬해 보이는 샐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그토록 혐오하는 귀족들과 자신을 못 마땅해하는 황제가 있음에도 말이다.

    “다시 나빠지는 것 같아요.”

    “그럼 빨리 용건을 끝내고 나가는 것이 어떻겠소.”

    어느덧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불덩이가 된 이마를 만져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기에 샐리는 헨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한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후우.”

    한 번의 큰 심호흡이 이어졌다.

    마음을 다잡으면서 집중력을 위한 마지막 힘을 끌어오는 느낌이었다.

    “폐하, 제가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

    “이번에도 황자들은 정무회의에서 제외된 건가?”

    “보면 알잖아. 나도 형님도 아직은 부족하다는 거겠지.”

    “그냥 욕심이 많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국의 정무회의는 대륙의 다른 국가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황자들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명확한 이유 없이 그저 황제의 명 하나만으로 1 황자와 2 황자 모두 귀족들이 회의장에서 열띤 토론을 펼치는 동안 황자궁에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황자 둘 중 한 명인 2 황자 토니에게 찾아온 제이스는 찾아오자마자 장난스럽게 깐족대며 괜히 성질을 한 번 긁고 있었다.

    “근데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지?”

    “그냥 심심해서. 너 뭐 하나 보러 왔지.”

    “심심하다고?”

    평소라면 이 시간대에는 어디론가 외출하는 것이 아니면 대부분 클로에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제이스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심심하다고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토니는 곧바로 의문을 표했고, 제이스는 묘한 낌새를 곧바로 눈치챈 것에 대한 칭찬의 의미로 혀를 한번 찼다.

    “오늘은 개인적인 용무가 여기 있어서 말이야.”

    제이스가 말한 장소는 바로 이곳 황궁이었다. 그가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알 수 없는 2 황자 토니는 그를 괜스레 불안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걱정하지 마. 내가 황궁 안에서 사고치는 거 봤어?”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제이스의 눈에는 짓궂음이 담겨 있었다.

    ***

    “수도 방위대라니. 아예 수도의 병력을 재편하자는 건가?”

    “네, 맞습니다. 폐하.”

    생각지도 못했던 파격적인 제안에 장내가 어수선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현 수도의 중심을 잡고 있는 기사단은 바로 펠릭스가 이끌고 있는 기사단으로 1 황자와 강력한 연관이 있는 귀족 집안이었다.

    특히나 펠릭스가 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르는데 있어서 1 황자인 오언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기에 1 황자를 지지하는 귀족 세력에게는 샐리의 제안이 당연하게도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제의 경우 오히려 본인이 기대했던 파격적인 제안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이 의견이 반드시 황제에게도 이익일 것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는 했지만, 샐리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굳이 군을 재편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수도의 치안을 위한 선택이에요.”

    “수도의 치안이라니. 공작의 말씀대로라면 현재 제국의 수도가 마치 불한당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와 헨리 경이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포함해서 수도 내의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신문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통계였다. 그리고 샐리는 자신이 보고 들은 정보를 늘어놓으며 내정에 힘을 써야 하는 근거를 들어 황제를 설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공작 그대가 생각하는 새로운 조직은 어떤 것이오.”

    “현 황성의 근위대를 맡고 있는 1 기사단과 헨리 경의 기사단을 하나로 합치는 것입니다.”

    단순히 제국 밖의 상황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내실을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는 샐리의 주장은 젊은 귀족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계속해서 어느 국가와 전쟁을 해야 한다느니 같은 제국의 실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다른 반대 귀족들도 샐리가 가지고 온 근거 자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역사책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 하는 과정에서 내부부터 무너지게 된 비중이 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이 지금보다 더 강대하고 커지기 위해서는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지금부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바입니다.”

    “흠,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군.”

    확실히 제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안에서부터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내용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황제의 긍정적인 반응에 양측의 귀족 세력은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손 좀 잡아줄래요?”

    하지만 좋은 분위기 속에서 샐리는 마냥 기뻐하기가 힘들었다. 계속되는 두통과 고열에 순간 앞이 흐리게 보일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슬슬 혼자 힘으로 서 있는 데에도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샐리가 침착하게 심호흡하며 본인의 나쁜 상태를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헨리는 그녀의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테이블 밑으로 그녀가 뻗은 손을 곧바로 낚아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