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23화 (23/111)
  • #23

    “일단 돌아가요.”

    헨리 크리스토퍼.

    자신의 반려가 될 인물이자 든든한 동반자. 샐리는 돌아가서 이 문제를 헨리와 상의할 생각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안의 물음은 이대로 저택을 비워둬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더 깨부수기는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닌 공작부인이 저택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가 떠났다고 해서 이 저택이 완전히 샐리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이제 저택으로 들어와야죠.”

    샐리는 서재에 존재하는 비밀의 문과 저택의 사용인들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상의를 나누고 오늘 밤에라도 메리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올 계획이었다. 통제하는 이가 없으면 사용인들 사이에 숨어있는 공작부인의 수족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

    “단장님, 황궁 밖에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손님?”

    훈련을 끝내고 개운하게 목욕까지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헨리는 손님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날 찾아온 게 맞나.”

    “단골 빵집에서 왔다고 하면 아실 거라고 했습니다.”

    부하의 말에 헨리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들어오라고 해.”

    황궁에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지만, 기사단장인 그의 손님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설령 그 사람이 빵집 직원 정도 되는 신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만, 아는 사람만 아는 골목길 어귀의 빵집 주인이 황궁에 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보원인 건가.”

    헨리는 그가 가진 감을 통해 자신을 찾아온 빵집 직원이라는 사람이 샐리가 가진 정보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톰이라고 합니다.”

    직원이라기보다는 심부름꾼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인사를 했다. 허름한 긴팔에 멜빵바지는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상징과도 같은 복장이었다. 나이도 대충 열다섯쯤으로 보이는 소년은 황궁 안에 온 사실에 대해 자각이 없는 것인지 조금의 긴장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샐리가 위험할 수도 있어서요.”

    순간 헨리의 표정이 무섭게 구겨지자 그제야 톰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헨리가 이런 식의 불쾌함을 표현한 이유는 두 가지로 하나는 그 소년이 친근하게 자신의 반려가 될 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가 찾아온 이유인 샐리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의미지.”

    당장 헨리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위험인물은 공작부인과 그의 아들인 레너드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녀가 따로 원한을 살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기껏해야 공작부인과 그의 아들이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 이외에는 딱히 위험할 일은 없어 보였다.

    “전 정보원 중 하나예요.”

    “그 말은 다른 정보원들이 있다는 말인 건가? 대체 내 아내가 될 사람은 너희와 어떻게 알게 된 것이지?”

    “그건 샐리에게 따로 들으시고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 기사단장님밖에 없어서 그런 겁니다.”

    또 한 번 별거 아니라는 듯 샐리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우선순위를 잘 구별하는 만큼 헨리는 톰에게 계속 얘기해보라 손짓했다.

    갑작스러운 방문과 따로 정보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만큼 당황할 법도 한데, 다 예상했다는 듯 평온한 태도를 보이는 헨리를 보며 톰이 오히려 당황했다.

    그러나 중요한 목적이 담긴 방문인 만큼 톰은 목청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테판 공자가 도박에 빠져 산다는 것은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헨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딱히 엄청난 비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만 귀가 밝다면 수도에 있는 이들은 모르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가 어느 카지노에서 도박하는지는 아십니까.”

    “그거야 모를 수가 없는 거 아닌가. 수도에서 귀족들이 가는 카지노야 거기 한 군데밖에 없지 않나.”

    “맞습니다.”

    수도 최대의 카지노 사업.

    넬슨 자작이 소유하고 있는 카지노로 평민, 귀족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수요를 보였다. 제국의 법에 따라 과하지 않은 선에서 즐기는 것으로 단순한 오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희 정보망에 따르면 그 카지노에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게 뭐지?”

    “하나는 그 카지노가 뒷골목의 한 가게와 통로로 이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가게를 통해 카지노에서 마약과 함께 불법도박이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헨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분명 근래에 들어서면서 수도의 치안이 안 좋아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불법도박은 그렇다 쳐도 마약은 제국에서는 중형에 처할 수 있을 만큼 큰 범죄였다.

    “그 정보는 확실한 건가.”

    “확실합니다.”

    “근데 그 사실과 공녀가 위험해지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군.”

    “그 카지노의 배후에 1 황자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톰의 말에 헨리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으며 근처에 있던 칼을 뽑아 톰의 목에 겨누었다.

    “말조심하게.”

    “수도에 더러운 일을 시작한 길드들이 점점 생기고 있죠. 그곳에 심어둔 첩보원이 전해준 소식은 스테판 공작가를 차지한 것이 단장님이 계획하신 건 아닌지 경계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둠 길드, 1 황자, 마약.

    정말 믿어도 되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들의 연속에 헨리는 머리가 과열되기 시작했고, 그 타이밍에 맞게 샐리가 저택에서 귀환해 톰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헨리의 모습을 목격했다.

    “안 돼요.”

    샐리는 곧바로 톰의 앞을 가로막았다. 행여나 샐리의 살이 날카로운 검 날에 상처라도 생길까봐 헨리는 황급히 칼을 거두었다.

    ***

    “진정해, 샐리. 네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야.”

    톰은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헨리의 모습에 깜짝 놀라 달려온 샐리를 진정시켰다. 그가 칼을 뽑은 것은 지극히 합당한 행동이며 실제로 뽑아 든 칼을 사용할 생각 또한 없었다면서 헨리의 입장을 오히려 변호해주었다.

    “뭔데 이런 상황이 펼쳐진 거죠?”

    샐리의 질문에 헨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이야기를 들은 본인도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굳이 위험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몰래 찾아온 모양인 정보원의 의도를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잠깐의 고민 끝에 헨리는 이내 마음을 바꿨다.

    그녀가 연관되어 있지 않은 일이라면 상관이 없었다. 본인이 대신 해결하여 말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샐리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 위험을 똑바로 쳐다보며 정면 돌파를 하면 했지, 이런 식으로 남에게 기대며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헨리는 그녀의 그런 점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에게 눈치를 주고 있는 톰을 외면한 채 그가 말했던 사실을 샐리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랬군요.”

    처음 듣는 사실에 놀랄 법도 한데 샐리의 얼굴에는 일말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나한테 숨기려고 한 이유가 뭐야?”

    “그야 너무 위험하니까.”

    “우리가 언제 위험하다는 핑계로 그 일을 피한 적이 있어?”

    여기서부터 헨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샐리가 자기 힘의 원천이 되는 정보원들과 어떻게 인연이 닿을 수 있었는 지에 대한 대목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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