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20화 (20/111)
  • #20

    “오늘 같은 일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닙니다.”

    이내 샐리는 자신의 출생 후 당했던 학대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공작부인과 레너드의 학대에 관한 이야기. 공작이 자신의 어머니를 강제로 취한 뒤 협박까지 한 이야기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샐리의 예상대로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안타깝고 동정한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감수성이 풍부한 영애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또한 눈물은 흘리지 않고 있었지만, 그 귀족 영애들과 비슷한 얼굴로 헨리 역시도 조용히 샐리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폐하 모두 거짓입니다. 천한 첩의 자식의 말을 믿으십니까?”

    “증인도 있어요.”

    샐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리와 공작가 저택 주방에서 말단으로 일을 하던 소년이 등장했다.

    “너, 너….”

    오늘을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해왔는지 깨달은 공작부인은 분노에 말을 잇지 못했다.

    메리는 예전부터 학대당해온 샐리의 과거를, 말단 소년은 헨리가 저택에 방문했을 때 공작부인이 보였던 추태를 상세히 털어놨다.

    그렇게 오늘의 파티는 스테판 공작가가 그동안 숨겨왔던 추악한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자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아야.”

    다소 거친 손길이기는 했지만, 행여나 아파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다만 잠시나마 잊고 있던 통증이 연고를 바르자마자 쓰라리듯이 아파져 오는 바람에 샐리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참으시오.”

    상처 부위에 대충 쓱쓱 바르면 될 것을 헨리는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얼굴에 생긴 상처 부위들을 살펴 가며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는 메리가 발만 동동 구르면서 얼굴이 곤죽이 된 샐리를 차마 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 됐소.”

    “고마워요.”

    연고의 끈적한 촉감과 상처의 쓰라림이 겹치면서 오묘한 느낌이 여전히 피부에 감돌고는 있었지만, 헨리의 말대로 적당히 맞아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었다. 행여나 더 큰 일로 번졌으면 어떻게 했을 거냐며 상처 치료가 끝나자마자 메리는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대 하녀의 말처럼 이렇게 다치는 일은 더 없었으면 하는데.”

    결과적으로 샐리가 그렸던 그림이 완성되었다. 레너드는 결국 기사들에게 끌려가 황궁에 구금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래도 스테판 공작가의 이름이 있다 보니 괜찮은 방에 갇혀 지내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핵심은 그가 작위를 이어받을 기회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없을 거예요.”

    말은 이렇게 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물어버린다고 했듯이 벼랑 끝으로 몰린 공작부인과 레너드가 후에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 내 일에 도움을 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아가씨.”

    켈린이라는 이름의 소년.

    열여섯의 나이에 요리에 재능을 보여 공작가에 운 좋게 들어와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겠다고 좋아했던 그였다. 그러나 꿈과 희망에 부풀어 공작가에 들어온 그를 맞이한 것은 공고에 나온 것과 정반대의 부당한 대우들뿐이었다.

    요리사로서의 꿈을 펼치기 좋다는 말은 그저 허우대에 불과했으며 약속했던 급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샐리는 메리를 통해 켈린과 만날 수 있었으며, 자신을 돕는다면 그동안 공작가에서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임금과 더불어 사전에 그에게 공고했던 것들을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이제 저택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군.”

    “그래야죠.”

    이제부터는 공작가를 완전히 손에 넣기 위한 작업만이 남았다. 지금 저택에서 사용인들에게 분풀이하고 있을 공작부인을 내쫓고 그녀의 수족인 사람들을 내보내고 새롭게 단장할 차례였다.

    과연 공작부인이 순순히 물러날까 싶었지만, 황제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인 태도를 봤을 때 지기 싫어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번처럼 공작부인이 그대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소.”

    헨리가 곁에 있었음에도 무턱대고 폭력을 행사하던 공작부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수족을 통해 저택의 입구를 봉쇄하려고까지 했으니 샐리 혼자 보내기에는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내일은 바쁘시잖아요.”

    “그대를 위해서라면 없는 시간도 내야지.”

    “그렇다면 절 지켜줄 기사를 하나 붙여주세요.”

    “알겠소.”

    샐리의 말에 헨리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적합한 인물을 생각해봤다. 역시 가장 믿음직스러운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가 가장 친애하는 수족인 야닉과 주안이었다. 그 둘 다 내일 있을 중요한 훈련에 함께 참여해야 했지만, 헨리의 권한으로 한 명 정도 빼내는 거야 어렵지도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헨리 역시도 공작부인이 저택에 들어오는 샐리를 보고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안이 좋겠어.’

    호탕한 야닉과는 다르게 주안은 아직도 샐리를 미심쩍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헨리가 모를 리 없었다. 다만, 호위 임무에 더 적합한 인물은 좀 더 이성적이고 차분한 대응을 선호하는 주안이 적합했다.

    ***

    “그 말이 사실인가?”

    “네, 황자님.”

    화려한 금발이 달빛을 받아 더 빛나는 만큼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있던 남자의 황금빛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반짝였다.

    “샐리 스테판이라.”

    소식을 전해 들은 이는 제국의 1 황자인 오언 크리스토퍼였다. 먹잇감을 노리는 살쾡이를 연상시키는 이목구비에 눈을 가늘게 뜨니 그야말로 맹수가 따로 없어 보이는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그의 입장에서는 레너드가 공작가의 가주 자리를 차지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자신이 몰래 운영하는 카지노의 단골손님으로 여러 가지 약점들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빌미로 스테판 공작가의 재산을 황궁에 환수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황제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계획은 예상치 못했던 한 인물의 등장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계획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지만, 제깟 게 뭘 알겠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치고 나오며 제 오라비를 제칠 정도면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오언은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 데 있어서 그녀의 뒤에 헨리가 있다고 단정 지었다.

    “이제 좀 길들여졌나 했더니 이빨을 숨기고 있었나 보네.”

    오언에게 있어서 헨리는 질투의 대상인 동시에 경계 대상 1순위였다. 비록 현재 자신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동생인 2 황자였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황자인 자신들보다도 제국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언은 자신의 세력을 이용하여 헨리를 변방으로 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보급에 더 신경 써야겠어. 당장 길드에 연락을 넣어서 내일부터 경계를 더 강화하도록 해.”

    “네, 황자님.”

    명목상 다른 귀족이 운영하는 수도의 카지노. 딱히 불법이랄 것 없는 합법적인 건물로 귀족들도 종종 가볍게 즐기러 오기도 하는 곳으로 꽤 괜찮은 유흥거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제는 그 속에서 카지노의 진짜 주인인 황자가 하는 들켜서는 안 되는 불법적인 일들이었다. 그 손님 중 하나였던 레너드가 완전히 밀려버리고 나니 괜스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 기사단장께서 대체 무슨 꿍꿍이실까.”

    시종이 나간 뒤 어둠과 적막만이 자리를 잡은 방안에서 오언은 음흉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헨리를 떠올렸다. 언제나 머릿속에 빈틈이 없는 늠름한 장군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환호 속에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졌다.

    규칙 따위 상관없이 승리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자신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인물이자 특별한 욕심이 없으나 마음먹으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샐리가 꾸민 일이었다. 그러나 황자의 눈에는 샐리는 아직 경계 대상이 아니었다. 오언의 눈에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무언가 냄새를 맡은 헨리가 서서히 발톱을 내미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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